1919년 4월 11일, 중국 상하이. 망명 독립운동가 29명이 모여 대한민국임시의정원을 구성했다. 그 자리에서 헌장 제1조를 의결했다.
"대한민국은 민주공화제로 함."
군주도 없고 황제도 없고, 오직 민(民)이 주인인 나라. 3·1운동 불과 40여 일 만에 벌어진 일이었다.
이 선언이 가능했던 배경을 우리는 대개 3·1혁명으로만 기억한다. 틀린 말은 아니다. 하지만 3·1혁명 선언문 어디에도 '민주공화제'라는 말은 없다. 독립과 자주를 외쳤을 뿐, 새 나라의 체제를 어떻게 만들 것인지는 말하지 않았다. 그 공백을 채운 것이 따로 있었다.
임시정부 수립 2년 전인 1917년 7월에 발표된 「대동단결의 선언」이 있다.
이 문건은 고종의 주권 방기를 한국 국민 전체에 대한 묵시적 '선양'으로 해석하고, 그 주권을 민(民)이 계승했다고 선언한다. 군주주의에서 공화주의로의 전환을 명시적으로 주장한 최초의 정치 문서다.
여기에 이름을 올린 핵심 인사들, 그리고 1919년 2월에 발표된 「대한독립선언서」 서명자 39인 중 상당수가 대종교인이었다.
대종교는 1909년 나철이 중광한 민족 종교다. 단군을 민족의 시조로 받드는 이 종교는 망국이 눈앞에 다가온 시점에 간도로 교단을 옮기면서 독립운동의 실질적 기반이 되었다.
1916년 나철이 구월산 삼성사에서 순교한 뒤 2대 교주 김교헌 체제 아래서 대종교는 더욱 적극적인 무장투쟁 노선으로 전환했다. 이후 대종교인들이 주축이 된 북로군정서는 1920년 청산리 전투를 이끌었다.
임시정부와 대종교의 연결고리는 숫자로 확인된다. 먼저 초대 임시의정원부터 그렇다. 의원 29명 중 대종교인으로 확인되는 이가 21명으로 전체의 72%였다. 의장 이동녕 자신이 대종교의 핵심 인사였다. 다른 종교·사상 세력과 비교할 때 압도적으로 높은 비율이었다.
내각 구성에서는 더 뚜렷하게 드러난다. 국무총리제를 채택한 초대 내각에서 각료 9명 중 7명이 대종교인으로 전체의 77%였다.
이후 대통령제로 전환하면서 제1기 내각은 17명 중 8명으로 47%, 제2기는 12명 중 9명으로 75%, 제3기는 9명 중 7명으로 77%를 유지했다.
비율이 급격히 낮아진 것은 제4기와 제5기로, 각각 25%와 6%까지 떨어졌는데 이는 이동휘·이승만 세력에 대한 반발로 대종교 인사들이 대거 이탈한 결과였다.
1925년 이후 국무령제로 전환하자 대종교의 비중은 다시 치솟았다. 제1기 국무원은 이상룡을 포함해 9명이 임명됐으나 이상룡 한 사람만 부임하면서 현상적으로 100%가 대종교인이었다.
제2기는 5명 중 3명으로 60%, 제3기는 6명 중 4명으로 66%였다.
국무위원제 시기로 넘어가면 이 흐름은 더욱 확고해진다. 1927년부터 1940년까지 7개 기수에 걸쳐 임시정부를 운영한 국무위원 중 대종교인 비율은 제1기 83%, 제2기 100%, 제3기 54%, 제4기 45%, 제5기 85%, 제6기 85%, 제7기 81%였다.
특히 제2기 국무위원 5명은 전원 대종교인이었다. 이 시기 임시정부 주석을 이동녕이 네 번이나 역임했다는 사실은 대종교인이 임시정부를 얼마나 압도적으로 이끌었는지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주석제가 도입된 이후에도 마찬가지였다. 1940년부터 1944년까지 유지된 제1기 주석제 국무위원 11명 중 8명이 대종교인으로 72%였고, 1944년부터 광복까지 이어진 제2기에는 16명 중 8명으로 50%를 유지했다. 임시정부 전 시기를 통틀어 내각에 참여한 인원은 총 53명이었는데 그중 27명이 대종교인으로 전체의 절반을 넘었다.
이 사람들에게 단군은 종교적 신앙이기도 했지만, 동시에 독립투쟁의 에너지원이었다. 주목할 것은 이 단군 인식이 대종교인에게만 국한되지 않았다는 점이다. 기독교 독립운동가 이승만도, 사회주의 계열의 이동휘도 단군을 찬양하는 글을 남겼다. 당시 독립운동 진영에서 단군은 종파를 넘어 민족 정체성의 공통 언어였다.
사상의 흐름도 일직선으로 연결된다. 대종교 경전 『신지비사』의 균평위 사상이 나철의 「중광가」로 이어지고, 그 정신이 「대동단결의 선언」을 거쳐 「대한독립선언서」와 「3.1혁명선언서」로, 다시 「대한민국임시정부 헌장」으로, 「대한민국건국강령」(1941년)을 통해 현행 대한민국 헌법으로 이어진다. 조소앙의 삼균주의도 그 연장선에 있다.
홍익인간·이화세계라는 고조선의 건국이념이 민주공화국이라는 현대 언어로 번역되는 과정이 여기 있다.
1920년 2월 임시정부가 발포한 국무원 포고 제1호는 이렇게 시작한다.
"대개 우리 大韓 나라는 聖祖 檀君께옵서 億萬歲 無窮의 國基를 肇하심으로부터..."
대한민국임시정부는 스스로의 역사적 연원을 단군에서 찾았다. 대종교 세계관이 임시정부 전체의 공식 역사인식으로 자리 잡았음을 보여주는 장면이다.
그런데 이 사실이 지금 제대로 알려져 있는가. 광복 80년이 지나도록 대한민국을 실질적으로 만들고 이끈 대종교인들에 대한 평가와 현양은 철저히 외면받고 있다.
교과서에서 대종교의 이름은 독립운동사 한 줄짜리 각주 정도로 처리된다.
현행 헌법 제1조는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고 규정한다.
이 조문의 사상적 원형은 1919년 4월 임시헌장 제1조에서 왔고, 그 임시헌장은 대종교인들이 주도한 「대동단결의 선언」과 「대한독립선언서」의 주권재민 논리에서 왔다.
헌법 제1조는 하늘에서 떨어진 게 아니다. 누군가 목숨을 바쳐 만든 언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