춘천의 권진규 미술관 작품전
옛날부터 꼭 권진규 조각가의 작품을 보고 싶었는데 최근 춘천에서 권진규미술관을 오픈해서 가족들과 다녀왔습니다.
춘천의 맛 집을 검색해보니 샘밭이 나오네요.
오옷~!
처음 먹어보는 닭갈비...
살이 두툼하고 양념된 닭갈비를 숫불구이로 먹습니다.
상추에 싸서 파절임과 생마늘을 곁들여 먹는데 정말 담백하고 맛있습니다. 후식으로 막국수를 한그릇씩 걸치니... 역시 금강산도 식후경입니다.
차를 몰고 10분쯤 가니 “달아실 김진규미술관”이 나옵니다.
개인적으로 이 미술관 조용하고 마음에 듭니다.
미술관 입구에 골짜기 다방에서 조용히 차 한잔을 마시면 마음이 차분해집니다.
옛날부터 꼭 한 대 가지고 싶었던 진공관 스피커 보입니다. 다방에서 흘러나오는 음악소리가 예술입니다. 일하시는 잘생긴 청년에게 얼마정도 하냐고 물어보니까 6천만원선이라고 하네요.
골짜기 다방에도 온통 예술작품들이 즐비 전시회장이 따로 없고 어딜가나 작품들 뿐입니다.
테이블에 올려져 있던 백윤기선생의 닭 쫒던 개(2001년 브론즈)작품
미술관 입구부터 온통 예술작품입니다.
백남준, 1997, 라디오 가이와 백가지 꽃. (엔틱라디오와 모니터로 만들었습니다)
2층으로 올라가니 권진규와 여인 기념전 입구가 보입니다.
작품에 앉아서 사진을 찍어도 되냐고 물어보니 큐레이터가 기꺼이 사진을 찍어줘서 한 컷 했습니다.
에트루리아의 늑대동상의 유방처럼 둥글지도 모나지도 않고 단단히 앞가슴에 붙어있는 저 브론즈색의 유방 내 작품에 그런 표현이 나타나준다면 하고 생각해본다.
1965. 3, 1
예선 테라코타968년.
김진규선생의 작품의 대부분은 테라코타였습니다.
그의 조형어법은 더하기가 아니라 뺄셈을 통해서자기의 이상을 달성하려는 일종의 조형감량법입니다.
뭔가 만들다만 작품처럼 보여지지만 한참을 바라모면 조각상이 내 마음속을 들여다보고 있는 것 아닌가하는 착각이 들게 합니다.
생전의 작업실인 서울 도선동 [김진규 아틀리에]를 아이들이 들여다보고 있습니다.
이곳에서 자살을 했다고 하니 더 애틋하게 보입니다.
“절지여도 포절하리라.
포절 끝에 고사하리아.“
노실 천사를 작업하며 dmfasms 봄, 본 - 권진규 중.
조선일보 1972뇬 3월 3일
가지가 꺾여도 절개를 지키겠다. 절개를 지키다 차라리 말라 죽겠다는 의미로 인용한 백거이의 시. 삶의 고통에 꺾일지라도 예술을 향한 절조는 끝내 지키겠노라 한 권진규의 예술관이 잘 드러나 있습니다.
중간에 화장실에 갔는데 앤디 워홀의 마르그레트 여왕2세 작품이 떡하니 붙여져 있음.
설마하는 마음으로 큐레이터에게 진품이냐고 물었더니...
진품이랍니다.
1층 종합미술관에 갔더니 내가 좋아하는 김기민선생의 작품이 있었습니다.
자연과 숨쉬다. 자연으로부터 오다, 자연 그들과 함께, 내 친구 달몽이(2015년)
작가 자신을 캐릭터하여 알 수 없는 표정으로 작품을 만들었습니다.
작품들과 눈이 마주치면 움직이는대로 눈동자를 흘깃 흘깃 처다봄.
꼬라보는 표정이 웬지 기분이 나뻐져서리...
김용진 선생의 달리와 니체(2012)
멀리서 보면 멋진 작품인데 가까이서 보면 뒤에서 침을 박아서 인물을 만들어냈습니다.
김경민 만남 그 후(2015, 브론즈)
김경민의 작품은 똑같은 옷을 입은 한쌍의 남녀가 등장합니다.
표정이 익살스럽고 과장된 동작을 많은 사용하는데 기분이 좋아집니다.
개인적으로 정정주 작품이 너무 좋았습니다.
3D 에니메이션인데 방문을 통해서 햇빛이 들어오고 시간이 지남에 따라 방안에 들어온 그림자가 이동을 합니다.
무심코 지나가는 일상생활속에 작가는 주의깊은 관찰력과 상상력으로 작품구상을 했던 것 같습니다. 제자리에서 30분이나 서서 이 작품을 보고 있은데, 마치 조용한 저수지에 낚시대를 드리우고 있을 때의 심심함을 느꼈습니다.
그밖에 작품들....
권진규에 대해서..
한국의 조각가. 1922년 4월 7일 함경남도 함흥에서 태어났습니다. 광복 전 일본에 유학하여 사설 강습소에 다니다가 1948년 도쿄예술원에 들어가 미술교육을 받았고 1949년에는 무사시노미술학교 조각과에 입학하여 조각을 본격적으로 공부했습니다.
1959년 귀국 뒤에는 주로 테라코타와 건칠을 사용한 두상조각과 흉상을 제작하였다. 고도로 절제된 긴장감과 움직임이 없는 정적인 조각을 통해 영원을 향한 이상세계를 추구하는 인간의 모습을 담아내고자 하였습니다.
제자인 장지원을 모델로 한 《지원》을 비롯하여 《영희》,《홍자》, 《경자》 등 주변 여인들을 형상화한 작품들은 지나치게 길게 내민 목과 사선으로 좁게 처리된 어깨가 특징적입니다. 특히 목을 길게 앞으로 내민 것은 마치 영혼의 소리를 들으려는 구도자의 자세처럼 느껴져 작가가 추구하는 예술세계를 짐작하게 합니다.
1966년 홍익대학교 조각과와 서울대학교 건축과에서, 1972년에는 수도여자사범대학(현 세종대학교)에서 학생을 가르쳤습니다. 1965년 수화랑 기획에서 45점을 가지고 첫번째 개인전을 개최한 이래, 1968년 도쿄의 니혼바시 화랑, 1971년에는 명동화랑에서 개인전을 열었습니다. 1973년 5월 4일 자신의 작업실에서 자살하였습니다.
첫댓글 호신! 즐거운 시간이였겠습니다~~^^ 즐거운 설 명절 되세요!!
삭제된 댓글 입니다.
김진규 관장님과 자꾸 헷갈려서..
그래도 아는 사람들은 그려러니하시더라고요.
테라코타도 오타로 아시고..
새해 복 대박 받으시길 바랍니딘.
@강 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