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양이 협회를 소개합니다.
고양이 협회. 어디 거창한 단체 이름 같다. 하지만 고양이협회는 우리 네 아이와 친하게 지내는 슬아, 총 다섯 명이 회원으로 있는 작은 모임이다. 회원들을 잠깐 소개하면 대표는 첫째(유림, 만12세), 디자이너는 둘째(유나, 만11세), 기자는 슬아(만9세), 연구원은 셋째(유얼, 만10세), 넷째(유주, 만8세)다. 협회의 주요 업무는 길고양이를 돌보는 일이다. 우리 아파트 단지에 거니는 고양이들, 슬아네 단지에 사는 고양이들, 임고서원에 있는 고양이들을 돌보는 일을 한다. 우리 아이들은 매일 단지 안에 사는 고양이 먹이를 챙겨 준다. 처음에는 ‘얼마나 가겠어?’ 했는데, 벌써 1년 반이 지났다.
주인 없는, 버려진 고양이에 대한 따뜻한 마음으로 일이 시작된 것은 아니다. 영천으로 이사온 후 아이들은 집에서 고양이를 키우고 싶다고 했다. 하지만 아내와 나는 극구 반대했다. ‘너희 키우는 것만으로도 힘들어!’ 하지만 포기하지 않고 우리를 설득했다. 밥도 주고, 매일 씻기기도, 털도 안 날리게 하겠다고 했다. 이게 다 우리의 일이 될 걸 알았기에 아이들의 부탁을 단호히 거절했다.
어느날 부터 단지를 돌아다니는 고양이가 눈에 들어왔다. 차 사이를 유유히 돌아다니면 아이들은 그 고양이를 보겠다며 달려갔다. 귀엽다며 한참을 쫓아다니고 돌아왔다. 여러 번 마주치면서 한 마리가 아니라 여러 마리라는 걸 알게 되었다. 주로 어디에 머무는지도, 한 마리가 임신했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다. 아이들은 돈을 모아 먹이를 사주겠다고 했다. 흘려 들었는데, 엄마와 마트를 다녀오더니 커다란 고양이 먹이를 사왔다. 다음날부터 먹이를 주기 시작했다. 이때부터 길 고양이들을 돌보았다. 슬아도 슬아네 아파트 단지와 임고서원에 있는 고양이들에게 먹이를 준다는 걸 알게 되었다. 그리고 며칠 뒤 아이들은 함께 길고양이를 돌보자며 “고양이 협회”를 만들었다.
아이들은 길고양이에게 이름을 지어 붙여주었다. “바니, 토토, 삼순이, 참치, 호야, 토비, 임절미, 치즈, 깜깜이 등등”. 이름은 어떻게 지었냐고 물어보았다. 서로 생각나는 대로 말하고 회원 모두의 마음에 들면 그 이름으로 불렀다고 한다. 내 눈에는 똑같은 고양인데, 아이들은 누군지 다 알아보고 그 이름을 불러 준다. 사랑하는 만큼 보이나 보다. 어느 고양이가 어디에 상처났는지도 안다. 다른 고양이와 싸운 건 아닌지 걱정한다. 집에 있다가 고양이 울음 소리가 들리면 이건 누가 우는 거라며 서로 이야기한다. ‘에이, 정말? 그냥 때려 맞추는 거겠지?’ 속으로 웃고 넘어간다.
협회를 만들고 얼마 지나지 않아 슬아는 “고양이 신문”을 발간했다. 평소 아이들이 귀엽다며 찍은 사진을 싣고, 길고양이를 소개하는 기사를 쓴다. 정기적으로 나오진 않지만 벌써 몇 번의 신문을 발간했다. 우리 집 둘째(유나)는 길고양이를 모델로 해서 아이패드로 캐릭터를 그렸다. 각각의 특징을 잘 잡아서 그 고양이에 맞는 캐릭터를 그렸다. 다양한 옷도 입혔다. 귀엽고 깜찍한 캐틱터들이 탄생했다. 우리 집에서는 컴퓨터로 코딩을 하거나 아이패드로 그림을 그리는 시간은 매일 30분 정도 밖에 안 된다. 둘째는 그 시간을 모두 캐릭터 그리는 일에 쓰지만 전혀 아까워하지 않는다.
그리고 며칠 전 그 캐릭터를 상품으로 만들어 프리마켓에 나가서 판매했다. 슬아네 부모님의 도움을 받아 경주에서 열리는 ‘마카모디’라는 프리마켓에 참여했다. 열리기 몇 주 전부터 아이들은 모여 준비했다. 어떤 캐릭터를 상품으로 만들지 정했다. 각 캐릭터를 동그란 작은 거울, 메모지, 스티커로 만들기로 했다. 회비를 모으고, 온라인으로 주문했다. 상품이 왔는데, 생각보다 수준이 높았다. 프리마켓 전날 마지막으로 모여 상품을 얼마에 팔지 정하고, 가격표를 붙이고, 어떻게 배치할지도 정했다. 고양이 협회 소개하는 문구도 적었다. “고양이 협회는 초등학생들이 길고양이 같은 동물들은 정말 소중하다는 걸 알려주고 싶어서 만든 협회입니다. …”
다음 날 아침 부산스럽게 준비를 하고, 프리마켓이 열리는 우라분교로 향했다. 마켓을 열자 뜨거운 관심을 받았다. 준비한 상품도 금방 팔리고, 많은 분들이 관심을 가져 주었다. 아이들이 스스로 협회를 만들고, 상품을 만들어서 판다는 게 신기한 모양이었다. 어른들이 길고양이에 대해 물어보면 저마다 아는 만큼 설명해주었다. 나는 느즈막이 합류했다. 마켓이 마칠 때즘 한 분께서 나와 아내에게 어떻게 아이들을 도와주셨냐고 물어보셨다. ‘저희는 상품 주문할 때 결재 클릭만 했어요!’라고 했다. 말만 몇 마디 거들었을 뿐 아이들이 스스로 다 준비했다. 성공적으로 첫 마켓을 마치고 아이들은 많이 벌었다며 좋아했다. 그 돈으로 고양이들에게 어떤 간식을 사줄지 이야기하며 돌아왔다.
이 글을 쓰려고 아이들에게 몇 가지를 질문했고, 짧은 답을 들었다. 길고양이를 돌보면서 언제 가장 뿌듯하냐고 물었다. 그러자 아이들은 고양이가 밥 먹을 때, 간식 먹을 때라고 했다. 고양이들에게 밥을 주면 와그작와그작 씹어 먹는 모습도, 소리도 너무 귀엽다. 한참을 보게 된다. 나는 아이들이 왁자지껄 떠들며 자라는 모습이 참 좋다!
첫댓글 읽다가 저도 모르게 입을 벌리고 헤벌쭉 웃었습니다. 정말 따듯하네요. ^^
아이들을 보는 저도 절로 웃음이 나더라구요! 고맙습니다~
제가 실수로 기존 글을 날리고, 수정한 글을 올렸어요;;; '답글'을 남겼어야 했는데, '수정'을 해버렸네요 죄송합니다~
따뜻한 아이들의 모습이 정말 사랑스러워요!
지호샘도 따뜻한 분이네요.
[고양이 협회] 소개
기분좋게 참 잘 들었습니다^^
따뜻한 칭찬 고마워요!!^^
아우 너무 좋네요. 저 따뜻함, 적극성! 홈스쿨 하는 아이들의 강점이네요.
그 강점을 거리를 유지하면서 응원하는 지호쌤의 시선도 좋고요.
흐뭇하게 잘 읽었습니다.
* 임고서원이 뭔지 몰라서, 앞에 설명을 간략하게 붙여주시면 더 좋을 것 같습니다. ^^
*안 그래도 합평 때 임고서원 설명을 넣어야 하나 말아야 하나 이야기가 있었는데, 글 흐름에 크게 중요한 것 같지 않아서 제 임의로 안 넣었어요^^;;;
글 잘 읽어주어서 고마워요!
이렇게 적극적이고 스스로 아이디어내서 어떤일에 집중하는 아이들을 본 적이 없는거 같아요. 마치 어린이드라마를 보는듯이 읽었습니다. 제가 다 뿌듯하네요. 미소가 저절로 지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