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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생
김 성 한
침몰해 가는 타이타닉호에서 악대는 최후까지 연주를 계속했다.
―카프카
그들에게는 시간이 없었다. 오직 좀은 공간이 있을 뿐이었다. 무자각의 심 연 속에서 충동에 휩쓸려 돌고 있었다.
그런데 어느날 시간이 앞을 가로막고 섰다. 파리가 날아다니면서 이(虱)의 환갑을 알리는 순간, 시간은 한 개 이정표로 변모하여 김좌수가 벗어 팽개친 누덕옷이 뒹구는 방구석까지의 거리로 나타났다.
이(虱)의 환갑은 일대 희망이었다. 무진장의 보고(寶庫)를 차지한 백만장자 이(虱)의 환갑잔치는 먹을 만할 것이었다. 더구나 이 내외는 이날을 위해서 며칠을 두고 장만하였다고 했다. 망녕이 들어서 밤낮 중얼거리는 김좌수의 살은 시들었다. 하여 기회 있을 때마다 팔팔한 그 막동며느리의 잔등 살이며 만반한 손주딸의 볼기짝 살을 뜯어 두었다는 소문이었다.
김좌수의 손주며느리가 거처하는 구석방에서 밀려나온 빈대와 벼룩은 침을 삼키면서 날이 어둡기만 고대하였다. 오래간만에 맛나는 음식으로 배를 채울 생각을 하니 가슴이 두근거리기도 하였다. 걸핏하면 소독약을 뿌리고 향수를 풍길 뿐 아니라, 어쩌다 약간 건드리기만 하면 야밤중이라도 일어나 불을 켜고 지아비 죽인 원수나 만난 듯이 법석읕 떠는 이 집 신부, 손주며느리의 등살에 죽을 고비도 몇 번 겪다가, 간밤에는 요새 미국에서 돌아온 신랑이 대학인가 하는 이상한 고장에서 들고 왔다는 물약을 뿌리는 통에 일가친지를 다 죽이고 홀아비 신세가 되어서 문틈으로 빠져 이 굴뚝 기슭에 당도한 그들이었다.
날쌘 벼룩도 그 놈의 물약에는 별 수 없었다. 정신을 찾은 빈대가 눈을 뜨자 벼룩은 팽개쳐진 돌 밑에 자뿌라져 있었다. 숨은 붙어 있는 모양으로 가끔 다리를 꿈틀거렸으나 정신은 있는 성싶지 않았다. 신새벽에 달려나온 소학생 손주가 내갈긴 소변이 천천히 다가와도 그냥 자뿌라져 있는 것이었다.
괘씸하던 마련으로는 그냥 내버려 두고도 싶었다. 매양 자기 재주만 믿고 쓸데없이 사람의 고기를 건드리는 바람에 앙갚음을 받는 것은 대개 자기들이었다. 며칠 전만 하더라도 이 벼룩은 식후의 운동을 한다면서, 불을 끄고 드러누운 신랑신부의 자리에 냉큼 들어가서 신부의 젖가슴을 힘껏 뜯었다. 표독스러운 신부는 단박 일어나서 불을 켜고 신랑을 들볶아 가지고 토벌을 시작하였다. 재빠른 벼룩은 어느새 도망을 가고, 벽에 얌전히 붙어 있던 자기 마누라만 애매하게 붙잡혀서 학살을 당하였다. 죄는 자기네가 저지르고 벌은 이쪽에 넘기는 얄미운 족속들이다. 지금 이 비참한 환경을 당하게 된 것도 이 벼룩놈 때문이다. 그 놈이 공연스리 대낮에도 방바닥에 내려가서 재주를 부렸기 때문에 원자탄 같은 그 물약을 갖다가 멸족시킨 것이 아니냐 말이다.
빈대는 가만히 앉아서 천천히 흘러내리는 소변의 대강(大江)을 바라보고 있었다. 벼룩의 운명을 결정하는 것은 이미 그 위대하다는 사람들은 아니었다. 저 강물과 자기다. 이 어쩌면 자기 만일는지도 몰랐다.
빈대는 기어서 벼룩의 옆으로 갔다. 앞발로 그의 머리를 툭 건드려 보았다. 조금 꿈틀거리다가 두 눈을 가느다랗게 떴다. 그러나 아무 말도 못하였다. 발바닥으로 꾹 밟았다. 희미한 비명 같은 것이 들리는 듯 하였으나 아무런 반항도 없었다.
“애새끼, 맨날 뻑시더니만 그래 요꼴이야? 그 흔한 재주 한번 부려보지.”
빈대는 아주 신이 났다. 간밤의 그 무시무시하던 참변도 잊어버리고 휘파람을 불었다. 아득한 옛날 빈대족과 벼룩족의 조상들이 이 천지에서 생을 영위하기 시작한 이래로 수억 수백억의 빈댁와 벼룩들이 이 세상을 지나갔다 할지라도 일찌기 벼룩의 대가리를 짓밟은 빈대는 자기를 두고 없었을 것이다. 실로 이것은 빈대의 역사에 있어서 일대 전기를 이룩하는 사건이요, 여기 이 굴뚝 근방은 자자손손 구구전승하여 떠받들고 머리를 조아려 모실 성지(聖j也)요, 이날은 빈대족 영광의 날이 아닐 수 없었다.
감격은 벅찼다.
그는 앞쪽 두 발로 벼룩을 자빠뜨려 놓고 돌아서 엉덩이로 벼룩의 입인저리를 지긋이 누르면서 여섯 발을 일시에 동원하여 뱃통을 북치듯이 마구 내리쳤다. 둔하다느니, 바보라느니, 냄새가 고약하다느니, 모든 조상들이 며룩족한테 받아 내려오던 그 수모의 원한을 한꺼번에 풀었다.
“벼룩이란 놈은 이래야 알아.”
빈대는 엉덩이에 한층 힘을 주면서 몇 차례 더 두드리고 나서 휘유― 한숨을 내쉬면서 빙그레 웃었다.
밑에서 벼룩이 움직거렸다.
“보채지 말구 가만있어!”
빈대는 호기가 등등하였다.
“아이구 숨이 막혀…… 얘 좀 물러나.”
벼룩은 죽어 가는 소리로 애원하였다.
“이 자식 누굴 보구 얘라논 거야, 응! 얘가 다 뭐야!”
빈대는 벽력같은 호통을 질렀다.
“넌 원래가 돼먹지 않은 것이 죽을 때까지두 고모양 고꼴이로구나.”
빈대는 엉덩이를 들었다 쿵 찧으면서 여섯 발로 일제히 펀치를 먹였다.
“아, 아이구우우…… 빈대님, 죽을 죄를 졌읍니다. ……이 이제부턴 받들어 모시겠읍니 다. 아이구우우……”
“이 더러운 자식아, 님쯤 가지구 될 줄 알아? 너두 봤지, 김좌수네 머슴 살던 마당쇠두 군대에 가서 몇 해 있더니만 야마가다를 셋 인가 붙이니 님이 되잖았어? 날 그래 마당쇠쯤으로 아는 거야? 이 자식 두고 보자.”
빈대는 또 엉덩이를 닐름 들었다. 벼룩은 와들와들 떨면서 자빠진 채 고개를 연방 구벅거리면서 애걸복걸하였다.
“아, 아, 아니올시다. 아앙, 빈대각하 죄송합니다. 각하 용서해 주시오, 이제부터 각하의 비서루 신명을 바치겠읍니다.”
빈대는 약간 흐믓해서 엉덩이의 힘을 늦추면서 돌아앉아 정면으로 벼룩을 내려다보았다. 온 낯이 성항데 없이 이물고 입은 찡그리고 있었다.
“이 자식, 입은 왜 그 꼴이야, 응!”
벼룩은 죽을 상을 하면서도 억지로 웃음을 지으려고 하였다.
“아이구, 각하두, 좀 구려서……”
빈대는 앞발로 벼룩의 뺨따귀를 후려갈겼다.
“예를 모르는 자식, 각하의 엉덩이가 구려? 이놈, 그래 내 엉덩이가 구리다 이 말이지?”
벼룩은 또 보들보들 떨었다.
“아, 아니올시다. 향기롭다는 말을 그렇게 했나 봅니다. 각하의 엉덩이가 구릴리 있겠읍니까?”
빈대는 비스듬히 몸을 뒤로 젖혔다.
“음―, 민주주의 시대라 폐하라는 건 없을 터이니 각하쯤으루 참아 주지.”
빈대의 기분이 전환되는 기회를 놓치지 않고 벼룩은 아양을 떨었다.
“각하는 언제나 진중하시고 인자하시고 지혜롭고 덕망이 높으신 분이라고 지방 천지에서는 각하의 빈대족은 말할 것 없거니와, 파리·모기·좀을 비롯하여 저희들 벼룩족 간에 칭송이 자자하옴니다……”
빈대는 으쓱해서 입을 여덟팔자로 올리밀었다.
“……그러하옵기 아까도 말씀드린 바와 같이 비서로 써 주시면 신명을 바칠까 합니다.”
빈대의 입에서는 또 벼락이 터졌다.
“너 같은 더러운 놈을 누가 비서루 쓴댔어? 되지 못하게스리……”
“죽을 죌 졌읍니다. 종으루 목숨만 살려줍쇼.”
쉴새없이 아래서 고개를 놀리는 벼룩을 내려다보면서 빈대는 엄숙한 얼굴을 하였다.
“음―, 살리구 죽이는 건 좀 생각해 봐야지.”
빈대는 앞발 두 개로 팔짱읕 끼고 눈을 감은 다음, 깊은 생각에 잠기는 표정이었다. 그러나 별로 생각이라는 것은 떠오르지 않았다. 시장기가 치밀었다. 벼룩이란 놈의 고기도 먹을 수 있을까 저울질하는데 밑에서 움찔움찔 하더니 벼룩의 비명이 올라왔다.
“아이구 홍수야, 각하 이거 큰일났읍니다. 물에 빠져 죽게 됐읍니다. 아푸…… 빨리, 아 빈대각하……”
놀라서 눈을 번쩍 뜨니 과연 홍수였다. 그다지도 멀리서 천천히 흐르던 소변강은 이미 눈앞에 당도하였고, 앞강은 각일각(刻一刻)으로 벼룩의 몸뚱이를 침 범하여, 조금만 있으면 그의 온몸을 덮을 것이요 이어서 자기를 집어삼킬 기세였다.
그는 겁을 집어먹고 후닥딱 뛰어서 마른 육지에 올라섰다.
“각하 좀 살려주시오.”
강물과 더불어 떠내려가면서 벼룩은 발버둥을 쳤다.
“이 돼먹잖은 자식아, 그대루 물에 빠져 뒈져라. 너까짓 것이 살믄 무슨 신통한 수가 있을 줄 알아?”
물에 떠가는 벼룩은 발버둥을 치면서 애걸을 계속하였다.
“각하 이럴 법이 있읍니까? 아이구…… 아푸푸……”
그러나 빈대는 그지 우습기만 하였다. 살겠다고 버둥거리는 꼴이 오히려 재미났다.
“자―식, 꼴 좋―다.”
빈대는 혓바닥을 내밀어 벼룩을 놀려 주다가 돌등에 자뿌라져서 청천 하늘을 쳐다보았다. 배가 약간 고픈 것이 탈이지 기분은 좋은 편이었다. 모두가 고소한 맛이었다. 방안에 있던 모든 버러지족이 몰살되는 판국에서 살아났다는 것만 해도 어쩐지 자기가 비상하다는 느낌이었다. 벼룩 따위는 집 안에서 죽어자빠질 것이지 팔자에 없이 살겠다고 뛰어나왔자 결국 홍수에 죽어버리는 것이 아니냐?
“미련한 자ㅡ식.”
중얼거리면서 어떻게 되었나 꼬락서니나 보자고 고개를 쳐들었다. 죽어서 송장이 된 줄만 알았던 벼룩이 엉기엉기 기어나오는 것이 아닌가? 자세히 보니 그렇게도 무섭던 홍수도 얼마 안 떨어진 풀포기 밑에서 멎고 땅 밑에 새어 들어가서 거의 다 말라 버리는 길이었다.
벼룩은 가까스로 채송화 잎사귀에 기어오르자 기진맥진해서 모로 쓰러져 가지고 숨을 돌렸다.
빈대는 갈지자 걸음으로 천천히 다가가서 한마디 던졌다.
“얘, 벼룩아, 너 이번에 살아난 건 내 덕인 줄만 알아라.”
벼룩은 대답이 없었다. 빈대는 바싹 다가가서 앞발로 턱을 잡아 흔들었다.
“이 자식, 건방맞게스리 왜 대답이 없는 거야, 응?”
“아이구― 맥이 하나도 없어서……”
실오리만한 대답이었다.
빈대는 크게 한바탕 기침을 하고 나서 연설을 시작하였다.
“너 들어 보아라. 너의 일가가 방안왕국에서 보채던 일, 더구나 너희들 행패 때문에 우리 일가가 당한 가지가지 참변을 생각하면 우찰을 해도 시원치 않겠지마는, 나논 그럴 수가 없었다. 그래서 네가 정신이 혼미한 것을 보고 내 비전(秘傳)으로 살려준 거야. 너는 그것두 모르구 내 엉덩이가 구리다구 했겠다. 요놈의 벼룩아, 배은망덕두 유분수지.”
벼룩은 여전히 말이 없었다. 또 앞발을 쳐드는 빈대를 보고 벼룩은 기가 질려서 자기 앞발을 모아 절하였다.
“각하, 왜 배은망덕하겠읍니까? 맹세합니다. 받들어 모시겠읍니다.”
“이제부턴 옛날과는 달라. 세상이 바뀌었다는 걸 알아야지.”
어느 정도 기운을 회복한 벼룩은 빈대의 억지에 못이겨서 방으로 들어갔다. 배가 출출하니 고기를 얻어오라는 것이었다. 화가 치미는 생각을 하면 모가지를 비틀어 죽이고 싶었으나 아까 난리통에 다리가 둘이나 부러지고 온몸에 민틈없이 상처가 났으니, 자칫하면 도리어 맞아죽을 판이었다.
문틈으로 들여다보니 신랑 신부는 여전히 코를 골고 있었다. 살살 기어들어가서 공동베개 끄트머리에 올라섰다. 신부의 얼굴은 보기만 하여도 치가 떨렸다. 염라대왕이나 다를 것이 없었다.
숨을 죽이고 생각던 끝에 신부의 허리에 두른 신랑의 팔을 목표로 돌격하기로 하였다. 일격에 결말을 지을 작정이었다. 훌쩍 뛰어서 포동포동한 팔목에 내리자마자 꽉 물어떼어 가지고 다시 뛰어내렸다. 사나이는 한번 팔을 꿈틀할 뿐 그냥 코를 골고 있었다. 벼룩은 그 자리에 엎드려서 마구 씹어먹었다. 양이 차지 않아서 이번에는 잔등 살을 물어뜯어다가 먹었다. 신랑은 아무렇지도 않은 모양이었다. 이 놈도 빈대 같은 놈이로구나 생각하면서 먹었다. 배가 불러서 반쯤 남겼다.
기운이 났다.
기운이 나고 보니 빈대에 대한 복수심이 무럭무럭 일어났다. 그러나 요만한 기운으로는 반드시 이긴다고 할 수는 없었다.
벼룩은 먹다 남은 고기를 끌고 구석지에 가서 침을 잔뜩 발랐다. 다음으로 오줌을 담뿍 쏘아붙였다. 그래도 부족하였다. 잠깐 생각하다가 항문에 대고 마구 비벼댔다.
빈대는 아직도 채송화 잎사귀에 앉아서 뚫어지게 방쪽을 지켜보고 있었다.
벼룩이 문틈을 나서자 허둥지둥 달려오는 것이었다. 굴뚝 위에서 마주쳤다.
“고것뿐이야?”
빈대의 첫마디였다.
“각하, 이것두 생명을 걸구 가까스루 뜯었읍니다.”
“이 못난 자식, 하여튼 이리 내놔. 우선 요기라두 해야지.”
벼룩은 고깃점을 빈대 앞에 공손히 바쳤다. 빈대는 ‘못난 자식’올 되풀이하면서 게걸이 든 듯 먹기 시작하였다.
“넌 거기서 먹었지?”
“아니올시다. 각하에게 드리기 전에 그럴 수 있읍니까?”
“해…… 그래야지. 자ㅡ식 괜찮다.”
“각하 잡숫다가 조금만 남겨 주십시오.”
“뭘 할라구?”
“저두 좀 먹어야지요.”
“네까짓 것이 남겨라 어쩌구? 먹다 남으면 주는 거구 안 남으면 못 주는 거지.”
“그래두요.”
“그래두요가 다 뭐야? 배고프면 그 자리에 죽어자빠지면 그만 아냐? 잔소리가 무슨 잔소리야? 너 같은 게 몇 무더기 없어졌다구 누가 코웃음이나 칠 줄 알았어? 더―러워서.”
벼룩은 잠자코 있었다.
고기를 거의 다 먹다가 빈대는 눈을 깜빡거리면서 고개를 갸우뚱하였다.
“이 고기가 좀 구리구나. 거, 이―샹한데? 이거 어딧 고기냐?”
“네? 아― 고기 말씀입니까? 거 제일 먹음직한 엉덩이 고깁죠.”
“흐흥 그럼 그렇지. 내 눈에 어김이 있을라구. 놈의 고기야, 년의 고기야?”
“놈의 고깁니다.”
“뭐 놈의 고기? 이 못난 자식, 년의 고기가 더 연하구 더 만만하다는 것쯤 너두 알지? 그래 나한테 이런 걸 바쳐?”
빈대는 아주 못마땅해서 금방 내려갈길 기세였다.
“아, 그거 년의 엉덩이 고기라구 하잖았움니까?”
벼룩은 딱 잡아떼었다.
“음―, 그럼 내가 잘못 들었나? ……그래, 맛이 년의 고기가 틀림없어. 요담
엔 사타구니 고길 뜯어와, 알았어?”
빈대는 입을 움직이면서 씩 웃었다. 벼룩은 뱃속으로 웃으면서 공손히 머리를 조아렸다.
파리가 온 것은 오정이 가까워서였다. 식후에 피곤이 몰려서 돌 틈에 들어가 한잠 자고 난 빈대와 벼룩이 모가지를 내밀어 세상형편을 살피는데 붕붕 소리와 함께 날아온 파리는 굴뚝 옆대기에 앉아서 싱글벙글하였다.
“얘들아, 좋은 소식이 있다.”
성미가 급한 벼룩은 대뜸 돌등에 기어올라가서 물었다.
“뭐야, 뭐?”
“이 영감이 오늘 환갑잔치다. 어서 빨리들 가자. 가지각색 고기가 다 있다, 느―들.”
“야 빈대야, 아니 젠장 빈대각하 빨리 갑시다. 다들 먹어치기 전에.”
빈대는 법석을 떠는 벼룩을 힐끔 가로보고 파리를 향하였다.
“자네 수고했네. 어서 가세.”
파리는 못마땅한 표정으로 노려보다가 한마디 던졌다.
“얘, 빈대야, 넌 또 뭣이 잘났다구 별안간에 그렇게 점잔읕 빼는 거야. 아니꼬와서 참.”
빈대는 시무룩해서 항변을 하였다.
“다 그럴 만해서 그러는 거야. 세상이 언제든지 한 모양인 줄만 알아?”
파리는 입을 삐一죽하였다.
“헤, 참, 오래 살면 손주 늙어 죽는 걸 본다더니만 오늘은 별꼴 다 보겠네.”
벼룩은 쓸데없이 지체하는 것이 안타까웠다. 그는 빈대에게 등을 돌리고 파리를 향해서 한쪽 눈을 끔뻑했다.
“얘, 파리야 닥쳐라. 오늘 큰 변동이 일어나서 이제부터 빈대각하란다. 자세한건 이따 얘기하기루 하구 빨리 가자.”
파리는 시끄럽다는 듯이 더 묻지 않고 날기 시작하였다. 빈대와 벼룩이 나란히 기어가논 바로 상공을 천천히 나는 것이었다.
뱐쯤 가다가 빈대는 갑자기 발을 멈췄다.
“지 자식 봐라. 뭣이 잘났다구 남의 머리 위를 휩싸고 야단이야? 얘, 벼룩아
지 놈을 잡아내려라.”
자꾸만 위풍을 갖추려고 드는 빈대의 꼴이 아니꼬왔으나 지금 지체했다가는 얻어먹을 것도 못 얻어먹을 염려가 있었다.
“얘애―, 파리야 내려와서 우리랑 같이 걸어가자, 얘기두 하구.”
파리는 곧 내려왔다.
“느.― 들 오늘은 좀 별나구나.”
“저 자식 말버릇 봐라.”
빈대는 또 화가 났다.
벼룩은 일이 터질까 보아서 얼른 파리를 가로막았다.
“얘 파리야, 자세한 건 이따 얘기한다구 안했어 ? 너두 먼길을 와서 시장할 텐데 우선 가서 먹은 다음에 시비를 가러두 늦지 않다.”
마구 잡아끌었다.
벼룩은 완충지대의 구실로 가운데 서서 ‘각하’니 ‘얘, 파리야’니를 되풀이하면서 잘 조정하여 별일 없이 마당 구석에 선 대추나무 밑까지 왔다. 여기서는 김좌수가 거처하는 사랑방이 지척이었다.
빈대는 또 화가 동하였다. 대추나무 줄거리 서너 자 올라간 데 앉은 메뚜기가 건방지다는 것이었다.
“각하, 남이야 건방지건 말건 상관 있읍니까? 어서 빨리 갑시다.”
앞발을 붙잡고 간곡히 달래는 벼룩의 앞발을 뿌리쳤다.
“날 몰라보는 놈을 그래 그냥 둬? 이거 다 네 죄야. 네 최다, 응!”
이 통에 파리는 모두 팽개치고 가겠다거니, 빈대는 메뚜기를 그냥 둘 수 없다거니 한바탕 소동이 벌어졌다. 벼룩이 동분서주해서 아무리 애써 보아야 소용이 없었다. 생각한 나머지 벼룩은 대추나무에 올라가서 메뚜기와 교섭을 시작하였다.
“얘, 메뚝아.”
“이 자직 방구석에 처박혀서 계집의 엉덩이나 핥을 것이지 여긴 왜 왔어 ?”
메뚜기의 응대는 지극히 무뚝뚝하였다.
“얘, 난 널 생각하구 불원천리하구 예까지 왔다.”
“건 또 무슨 바람이 불어서?”
“이(虱)가 오늘 환갑이다. 같이 가자구 왔지. 손주딸의 볼기짝 살이랑 별에별 것이 다 있다아.”
“응―--”
“너 안 갈래?”
“누가 안 간댔어?”
“그런데 조건이 있다. 너 땜에 예까지 오느라구 우리 셋이 다 기진맥진했어. 너 좀 업어다 주려므나.”
메뚜기는 뚱했다.
“너 고만 힘도 없니?”
“요것이, 내가 힘이 없어 ? 느―들 따위는 백개라두 업는다.”
“야― 근사하다.”
“저 위 마누라한테 얘기하구 올 테니까 먼지 내려가서 기다려.”
벼룩은 얼른 내러와서 빈대에게 고해바쳤다.
“각하, 순전히 각하의 오해였읍니다. 각하 오셨다는 말을 듣고 업어다 모시겠다구, 아 그러는 걸요. 파리야, 넌 입을 닥쳐라.”
빈대는 아주 기분이 좋아서 연방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그렇지, 그럴 거야.”
메뚜기는 약속대로 내려와서 여섯 다리를 버티고 대령하였다. 빈대는 점잖게 목덜미에 앉고 벼룩과 파리는 그 뒤 날갯죽지에 앉아서 일로 감좌수의 방 누덕옷을 향하여 걸음을 재촉하였다.
누덕옷 갈피에서 빌어진 환감잔치는 아주 성찬이었다. 주로 연한 애기들의 살로 배를 채우게 되었고, 말끔한 피도 콩깍지에 반씩 돌아갔다. 이 자리에 모인 중에서는 주인공 내외를 제하고 이런 진수성찬은 난생 처음이었다. 모두들 허리띠를 끄르고 먹어댔다. 그래도 이 부부는 말끝마다 ‘아무것도 차린 것이 없어서 미안하다’ 하였고, ‘다음 진갑에는 정말 잘 차릴 터이요, 또 파리를 보낼 터이니 꼭 오라’고 하였다.
잘들 먹었다. 아무리 먹어도 음식은 자리가 나지 않았다. 이는 과연 백만장자였다.
먹고 나니 다들 기운이 씽씽하였다. 빈대와 벼룩은 더욱 기운을 느꼈다. 그 중에도 애써 피를 마신 벼룩은 금방 날아갈 것만 같았다. 이제 빈대 한마리쯤은 문제없다논 자신이 생겼다. 그렇다고 남의 환갑잔치를 망칠 수는 없어서 꾹 참고 있었다. 그러나 일은 마침 내 벌어지고야 말았다.
잔치상을 물리고 환담에 꽃을 피우는 도중, 빈대가 바짝 앞으로 나앉으면서 주인이 내외를 보고 한마디 건네면서부터 일은 벌어진 것이었다.
“여보 주인장, 이제 환갑잔치도 끝났으니 지금 이 시간부터는 내 명령대로 움직여줘야 하겠소.”
이 내외는 어안이 벙벙하고 손님들도 모두 영문을 몰라하였다.
“명령이라? ”
늙은이는 눈을 굴렸다.
“그렇소, 아니 그렇다. 오늘부터 나는 여기 모인 어떤 놈과도 달라. 나는 각하다. 오늘밤만은 그냥 여기서 재워 줄 테니 내일은 꼭두새벽에 아무것도 가지지 말구 이 왕국에서 물러가라.”
“빈대 손님 그거 무슨 말씀이유? 여기는 우리가 반세일계(萬世―系)루 내려온 우리 땅이요. 여기 모인 모든 손님들, 이런 억지가 세상에 어딨소?”
이 부인은 땅바닥을 치면서 대들었다. 파리는 코웃음치고 메뚜기는 양미 간을 찌푸리면서 굽어보았다.
“하, 아직 모르는 모양이군. 얘 벼룩아, 너 자초치종을 설명해라. 첨서부터 말이다. 내가 각하가 되지 아니치 못한 그 소이연과아 또오 재 메뚜기가 공손히 나를 업어 모셔야 한 그으 자초지종 말이다―”
둔한 메뚜기는 고개를 기웃거리고 파리는 너털웃음읕 쳤다.
벼룩은 홀짝 뛰어 보고 앞발로 천후운동을 하여 몸을 시험하고 나서 빈대 앞에 바싹 다가앉았다.
“이 빌어먹을 새끼, 자초지종이 다 뭐야! ”
빈대는 뒤로 물러서면서 큰소리를 질렀다.
“이놈, 각하를 보구 이런 무엄한 짓이 어딨는고―”
벼룩은 다시 한번 홀짝 뛰어보고 나서 앞발로 빈대의 가슴곽을 들이찼다.
“이 새끼 얼른 뒈져라.”
빈대는 비키다가 메뚜기의 옆구리에 부딪쳤다. 상을 찌푸렸던 메뚜기는 빈대의 모가지를 거머쥐고 벼룩한테 물었다.
“벼룩아, 이 새끼가 아까 씨부린 건 분명 날 욕한 말이지? 틀림없지?”
“틀림없어. 그 새끼 못되게 놀던 얘길 할라면 길어서 그만두겠다마는, 애새끼 돼먹잖았다.”
말이 떨어지기 바쁘게 벼룩은 이마로 빈대의 상판을 받았다. 메뚜기는 더욱 상을 찌푸리면서 코피가 철철 흐르는 빈대의 두뺨을 이리 치고 저리 쳤다.
“너 새끼 돼먹지 않았다.”
이 부인은 보기가 안 되어서 달려들어 뜯어말렸다.
“잘못이 있기로서니 환갑집에 와서 그렇게까지야 할 법이 있소? 어서들 놓고 말로 하시오.”
들어보니 그럴듯도 해서 메뚜기는 벼룩한테 또 물었다.
“벼룩아, 이 새낄 놓을까?”
“놔라. 있다 돌아가는 길에 대추나무 밑에서 애새낄 체졸시키자.”
벼룩의 의견이 그럴싸해서 메뚜기는 빈대를 놓았다.
“그거 좋갔다.”
완력이 중지되고 입들이 나서자 글자 그대로 온 방안은 말의 도가니로 화하였다. 주인공 늙은이는 ‘고현 놈’이라 꾸짖고, 이 부인은 뻔뻔스럽다 야단하였다. 메뚜기는 ‘돼먹 잖다’를 자꾸 되씹고, 벼룩은 죽여버린다고 별러댔다. 파리만은 혼자 득도한 듯 외면하였다.
시비는 그칠 줄을 몰랐다.
나중에는 외면한 파리가 건방지다고 벼룩이 쏘아붙이자, 이 부부는 우리 파리는 왜 건드리느냐고 역성을 들고, 쥐죽은 듯 가만있던 빈대가 일어서면서 벼룩이 새끼는 원래가 배은망덕하는 후레자식이라 하고, 메뚜기는 딱 버티고 서서 시끄럽다 모두 갈긴다고 협박하였다.
혼란은 무제한으로 계속되었다.
이윽고 때묻은 모시 적삼만 걸치고 바지는 아예 입지 않는 김좌수가 낮잠을 깨고 일어나 중얼거리면서 방안에 기어다니다가 누덕바지를 집어 들고 헤헤 웃었다. 웃다가 발끈 뒤집는 통에 이·파리·빈대·벼룩·메뚜기 모조리 떨어졌다. 떨어지면서 버룩은 옆으로 내뺀다는 것이 김좌수의 왼손에 쥐어지고, 메뚜기는 발에 밟혀서 찌그러졌다.
파리만은 얼른 날아서 벽에 붙었으나 이 내외와 빈대는 장판 바닥에 떨어져 뒹굴었다.
김좌수는 아주 신이 나서 두 손으르 벼룩을 힘껏 비비다가 입에 집어넣고 단 두 대 남은 어금니로 딱 씹었다.
“그―렇지, 죽기 전에 벼룩 맛도 봐두렸다.”
구석까지 도망갔던 빈대와 이들도 발각되고야 말았다. 꾀가 많은 이 부인만은 굴러다니던 양말 속으로 들어갔으나 그의 남편과 빈대는 붙잡히고야 말았다.
“흐흥, 이래서 세상은 오래 살고 볼 노릇이지. 이하구 빈대가 부부라. ……그건 그렇구 옥황상제께서 이승에 사논 빈대 맛은 어떻더냐 물으시면 모른다구 할 수야 있나. ……으흠 이와 빈대를 합장하는 맛도 진미렸다.”
딱 소리와 더불어 빈대와 이는 없어지고 말았다.
파리는 천정에서, 이 부인은 양말 속에서, 그지 떨기만 하고 망령든 김좌수는 중얼거리면서 기어다녔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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