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판결문에서는 “곽병채의 성과급 등은 업무실적과 건강 악화에 대한 보상, 다른 임직원들의 성과급 액수 및 그들이 분양 받은 아파트로 인하여 얻은 이익과의 균형 등을 고려하여 지급한 것으로서 피고인 곽상도에게 공여한 뇌물이 아니고, 그 지급 과정에서도 회사 내부의 정상 적인 절차를 거쳐 지급하였으므로, 피고인 김만배에게 위 성과급 등의 지급에 관하여 불법영득의사가 인정되지 아니한다.”고 했다. 여기서 불법영득의사는 배임과 같이 회사자산을 마치 자기 자산인 것처럼 마음대로 처분하는 것을 의미하는데 그런 것이 아니므로 죄가 안된다는 것이다.
이미 언급했듯이 업무실적이라는 것은 기본적으로 국회의원 아버지의 도움을 통해 이루어진 것으로 의심되고, 임직원들의 성과급 액수는 50억 원이 지급된 시기 전에 지급된 경우만 비교 대상이 되어야 하며, 건강 악화에 대한 보상 역시 이 사회에서 납득할 만한 수준이어야 할 것이다. 또한 “분양받은 아파트로 인하여 얻은 이익” 역시 제3자들이 지불한 것과 동일한 분양가를 기준으로 고려해야지 분양 후 오른 가격을 기준으로 하여서는 안 되며 곽상도 부자가 자꾸 해명을 바뀌어왔음도 눈여겨볼 점이다.
50억 퇴직금이 고등법원에서도 무죄가 된다면, 예를 들어 내가 지인의 회사에 내 자녀를 취직시키고 내 회사에는 그 지인의 자녀를 취직시킨 뒤 몇 년 지나서 퇴직금을 와장창 주었다고 치자. 그리고 각자 정당한 퇴직금을 받은 것이라고 주장한다면 세법상 무죄이고 배임도 아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끝으로 판결문에는 “곽병채에게 지급한 성과급이 일부라도 아버지 곽상도에게 지급된 사실도 없다.”는 말이 나오고 ”아들에게 성과급이 입금된 일시는 2021년 4월 30일 15:17경인데 그가 은행에 접속한 시각은 15:48경이고 아버지 곽상도와 통화한 시각이 15:37경이므로 아들이 화천대유로부터 성과급 등이 입금된 사실을 안 상태에서 아버지와 통화하였다고 단정하기 어렵다”(216-217쪽)고 했다.
그러나 입금이 되면 은행에서 거의 즉시 문자로 그 사실을 알려준다. 은행 쪽에 문자가 언제 나갔는지 기록이 남아있을 것이고 만일 문자가 발송된 내역이 나온다면 입금된 사실을 안 상태에서 통화한 셈이 된다. 게다가 그 정도 거금이 입금되는 것을 화천대유에서 아들에게 미리 알려주지 않았을 리가 있겠는가. 아무 회사에라도 물어봐라. 퇴직금이 얼마이고 언제 지급될 예정인지를 퇴직자에게 알려주는 것은 상식 아닌가.
또한 판결문에서는 “아들이 금품이나 뇌물을 받음으로써 곽상도가 그만큼 지출을 면하게 되는 경우 등 곽상도가 직접 받은 것과 같이 평가할 수 있는 관계라는 점이 합리적인 의심의 여지없이 증명되었다고 볼 수 없다.”(209쪽) 고 했다. 이 문장을 단번에 이해하기는 어려울 것이기에 쉽게 풀어 본다. ‘곽상도가 지출해야 할 금액이 있는데 아들이 그 금액을 누군가로부터 대신 받아서 아버지 대신 지출한 경우라면 곽상도에게 직접 준 것이나 마찬가지로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50억 퇴직금을 그런 경우와 동일한 내용으로 평가하기에는 미심쩍다.’ 이 말을 좀더 풀어보면 ‘곽상도에게 주어야 할 금액을 아들에게 대신 준 것이라는 것이라고 단정하기에는 의심되는 구석이 있다’는 뜻이며 ‘곽상도가 받아야 할 금액을 아들이 대신 받아간 것이라고 단정하기에는 의심되는 구석이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여기서 나는 ‘김만배가 곽상도에게 주어야 할 금액=곽상도가 받아야 할 금액’으로 보고 판결문에서는 전혀 언급되지 않는 증여세 관점에서 살펴보고자 한다. 곽상도가 2021년에 신고한 재산내역에서 본인명의 예금이 약 12억 8천만 원, 잠실 장미아파트 1채가 있었고 아내 명의 예금이 약7억 9천만 원이었다. 아내는 그 당시 오랜 기간 암 투병 중이었고(2021년5월20일 사망) 곽상도는 60을 넘긴 나이였다. 그런 상황이 되면 어느 정도 자산이 있는 부모는 누구라도 자식에게 증여나 상속을 어떻게 할지를 고민하게 된다.
법인에서 현찰 50억을 합당한 자료도 없이 지출한다는 것은 형사구속을 초대하는 것이다. 지출 명목이 있어야 한다. 그런데 화천대유 법인에서 50억을 국회의원 곽상도에게 변호사 선임비 명목이건 성공사례비 명목이건 주게 되면 절반 정도는 곽상도가 자기 이름으로 44% 세금(지방세포함)을 소득세로 내야하고, 그것을 다시 아들에게 증여하면 아들이 자기명의로 40% 정도는 증여세로 내야 하므로 실제로 아들 손에 쥐어지는 금액은 18억 수준이 되고 만다. 즉 아들이 직접 받으면 세후 27억7천이 되고 아버지가 받아서 증여하면 18억 2천이 되며 차액이 9억4882만 원이나 된다. 즉 아들에게 직접 전달되어야 9억4882만 원이 더 아들 손에 쥐어지는데 세상의 어느 아버지가 직접 받고자 하겠는가. 당연히 아들에게 법적으로 그럴듯한 명목으로 직접 돈이 전달되기를 바라지 않겠는가. 주는 쪽도 마찬가지이다. 어느 쪽이 생색이 더 나겠는가. 아들 쪽이라는 건 애들도 알 것이다. 결국 곽상도가 지출을 면하게 된 금액은 948,824,000원이 된다.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공직자와의 거래는 A를 줄 테니 B를 해달라는 식의 명확한 장사거래가 아니라는 사실이다. A를 주고 나서 B 혹은 B에 가까운 C를 받을 일을 기다리는 식이다. 이것을 상거래식으로 생각하면 안 된다. 판결문에서는 “곽상도와 김만배 사이에 …알선의 청탁이나 대가 지급에 관한 약속이 있었음을 인정할 만한 직접 증거가 없다”고 했는데 도움을 줄 것이라는 기대를 화천대유가 갖고 있었고 그 대가는 간접적으로 얼마든지 미리, 혹은 사후에 지급할 수 있는 것이었다.
한편 검찰에서는 하나은행에 곽상도가 영향력을 발휘하여 경쟁사인 호반건설이 아니라 자기 편에 계속 남아있기를 김만배가 기대하였고 그 기대치대로 결과가 나왔기에 곽상도 아들을 고용하는 등의 행위를 한 것으로 주장하지만 재판부에서는 하나은행에 대하여 곽상도가 영향력을 행사한 증거가 없다고 하였다.
내 짐작으로는 이렇다. 곽상도는 아무런 행동도 하지 않았는데 결과가 저절로 그렇게 된 일종의 ‘자연뽕’ (변호사가 없어도 제반 사실들을 볼 때 자연히 소송 당사자에게 유리한 결과가 나올 사건임에도 불구하고 변호사를 선임하여야 한다고 누군가 꼬드겨 선임료를 받아 챙기며 생색을 내는 행위를 이렇게 부른다) 아니었을까? 이런 경우 곽상도는 아무 짓도 하지 않았음에도 그것이 자기 공로였다고 은근히 혹은 노골적으로 내세울 수 있고 대가를 달라고 할 가능성이 있다.
김만배와 곽상도가 돈 문제로 크게 말다툼을 크게 하였다는 사실은 그 가능성을 뒷받침하지 않을까? 판결문에서도 곽상도가 감만배와 돈 문제로 다툼을 하였다고 봄이 상당하다고 한 것을 보면(154쪽) 판사들이 고민을 많이 했을 것으로 짐작된다.
여기서 웃기는 것은 김만배는 돈을 나눠줘야 한다는 것 때문에 탁자까지 두드리며 언쟁이 생긴 것이라고 하는데 곽상도는 사회기부를 얘기했다는 것이다. 나도 기부를 꽤 하는 편이지만 제3자에게 너도 돈을 벌었으니 사회에 기부하라고 하고 그 말을 들은 사람이 책상을 두드리며 언성을 높인 적은 단 한 번도 없었기에 곽상도가 도대체 얼마나 개인적으로 기부를 해왔었기에 김만배가 언성을 높일 정도로 그토록 탁월한 기부 정신이 있었는지가 매우 궁금하다.
게다가 2021년 3월 기준으로 곽상도의 재산 등록 액수는 43억 7872만 원이었다. 이 상황에서 어떤 명목으로건 거액을 받게 되면 향후 공직자 재산등록 과정에서 드러날 것이기에 실제로는 받을 수가 없는 상황이었다.
화천대유 및 김만배 입장에서 생각해 보자. 판결문에서도 여러 번 나오듯이 김만배는 몇억은 껌값처럼 생각하고 있었고 하나은행 문제도 해결되었으므로 이미 국회의원이 된 곽상도를 방패막이로 삼으려면 돈을 수십억 정도는 주어야 할 것으로 생각했을 것이다. 하지만 국회의원이므로 직접 건네지는 못하고 정치 후원금으로 쪼개서 주는 것도 마땅치 않은데 아들이 들어와 있으므로 아들에게 법인자금을 어떻게 넘길 것인가를 고민하고 퇴직과 관련된 여러 명목을 찾았을 것 아닌가. 곽상도 입장에서 보더라도 그게 훨씬 더 마음에 들었지 않았을까?
그의 저서로 《7할의 행동과 3할의 숙명》이라는 책이 있다는데 이 책에서 그는 "나는 돈 문제에 지나칠 정도로 강박관념이 있다"면서 "국회의원이 돼서는 후원금을 받는 것이 제일 어려웠다. 혹시 무슨 단서가 붙는 것은 아닌가 싶어 늘 조심이 따른다", "어떤 분이 나를 보고 국회의원이 지갑 가지고 다니며 지갑을 열어 돈을 쓰는 것을 처음 봤다고 할 정도로 나는 돈 문제에 한 치의 실수나 오차도 없이 살려고 노력하고 있다"고 주장했다고 한다. 정말? 와우!
나의 인생 원칙: 나는 나 자신을 백색이라고 말하는데 주변 사람들이 나를 흑색으로 본다면 그들의 눈이 잘못된 것이 아니고 나의 말과 행동이 정반대이며 이는 곧 인테그리티integrity가 박살 난 것이기에 흑색으로 보이는 것이므로 나 자신을 백색이 아니라 흑색이라고 바꿔서 생각하여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