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를 찾아서] 또 하나의 오래 된 배롱나무 … 그리고 일본 야쿠시마 답사 초대
지난 《나무편지》에 이어 그냥 지나칠 수 없는 또 한 그루의 배롱나무 이야기를 전해드리고, 뒤에는 일본 사람들이 ‘팔천년’ 된 나무로 소개하는 전설 속의 삼나무 조몬스기가 살아있는 《일본 야쿠시마》로 떠나는 답사여행에 대해서 알려드리겠습니다.
오래 된 배롱나무는 강릉 오죽헌 배롱나무입니다. 연휴 끝인 지난 주 초에 강원도 강릉을 찾았습니다. 언제나 그렇듯이 딱 한 그루만을 찾아보겠다는 생각은 아니지만, 오죽헌의 배롱나무의 안부가 가장 궁금했습니다. 강릉 오죽헌을 찾는 건 대개 이른 봄입니다. 이 집 뒤란의 매실나무에 붉은 매화가 피어날 철을 맞추어야 했으니까요. 그러다보니, 매실나무 못지 않게 훌륭한 자태를 가진 배롱나무는 잎조차 돋아나기 전이었지요. 그래서 오죽헌 배롱나무의 꽃이 보고 싶었습니다.
○ 또 한 그루의 크고 오래 된 … 더없이 아름다운 배롱나무 ○
그 날 강릉에는 비가 많이 내렸습니다. 오락가락하는 빗줄기는 굵었다가 잠시 가늘어지기를 되풀이하며 하루종일 그치지 않았습니다. 대지를 촉촉히 적신 비는 온갖 나무들의 갈증을 메워주고, 땅속에 스며 세상의 모든 생물들이 살아갈 양분으로 저장되었겠지요. 비에 젖은 강릉 답사 길은, 맨몸으로 걷기조차 힘겨웠던 지난 몇 주 동안의 폭염을 생각하면 더없이 상쾌했습니다. 몸은 젖어들었지만, 그럴수록 마음은 상쾌했습니다. 비를 맞으며 숲을 걸을 때마다 물에서 태어난 생명이 우리 유전자에 남긴 태초의 기억을 되살리게 된다는 존 뮤어의 생각을 되짚으며 상쾌한 기분으로 나무 곁에 머물렀습니다.
모두가 잘 아시는 것처럼 오죽헌은 사임당 신씨의 친정 집입니다. 사임당 신씨가 이곳에서 태어나 자랐으며, 나중에는 바로 율곡 이이 선생도 바로 이 집에서 태어났습니다. 오죽헌이라는 이름은 집 뒤란에 수피가 검은 대나무인 오죽 烏竹이 많이 있다 해서 붙은 거죠. 지금도 오죽은 적잖이 살아 있지만, 그리 오래된 건 아닙니다. 보물 제165호로 지정된 목조건물, 오죽헌은 조선 세종 때에 좌승지를 지낸 문인 최치운(崔致雲 1390~1440)이 처음 지었습니다. 건물 주변에 서 있는 오래 된 나무들도 그때의 최치운이 심은 나무라고 합니다. 그러니까 육백 년 쯤 된 나무로 보아야겠지요.
○ 아름다운 사람의 손길을 타고 자란 큰 나무 ○
집을 지은 최치운이 심고, 이 집을 물려받은 사임당과 율곡 선생이 애지중지 가꾼 나무로 매실나무와 배롱나무가 있습니다. 오늘 《나무편지》의 배롱나무가 그 나무입니다. 천연기념물 제484호로 지정된 뒤란의 매실나무는 다음 기회 - 아마도 내년 봄, 붉은 홍매 꽃 필 무렵 - 에 전해드리기로 하고, 오늘은 배롱나무 이야기만 전해드리겠습니다. 오죽헌이라는 이름의 정갈한 살림채 정면에 서 있는 이 배롱나무는 누가 뭐라 해도 단연 이 집의 상징이랄 수 있습니다. 최치운이 심은 나무라면 육백 년이 넘은 나무이지만, 그 당시에 자라던 줄기는 오래 전에 죽었습니다. 하지만 뿌리가 죽지 않은 상태에서 얼마 뒤, 곁에서 세 갈래의 새 줄기가 솟아오르면서 지금에 이른 것입니다. 율곡 선생이 이 집에 머무를 때에도 있었다고 하니 그것도 4백 년은 훨씬 넘은 오래 전의 일입니다.
가운데에 있어야 할 원래의 줄기가 오래 전에 죽었고, 죽은 나무의 뿌리에서 새 줄기가 솟아올랐다는 이야기나, 새로 난 줄기가 셋으로 갈라져 올라왔다는 점도 지난 《나무편지》에서 이야기한 부산 양정동 배롱나무와 매우 닮았습니다. 산림청 보호수로 지정돼 있는 이 오죽헌 배롱나무는 높이가 4미터 쯤 되는데, 이는 6미터 쯤 되는 부산 양정동 배롱나무보다 작은 규모입니다. 따뜻한 날씨를 좋아하는 배롱나무의 특징을 생각하면, 강릉이라는 지리적 위치가 부산만큼 좋은 조건이 못 된다는 것도 그 원인이 될 겁니다. 강릉 오죽헌 배롱나무는 우리나라의 배롱나무가 자라는 가장 북쪽에 속하지 싶습니다. 그런 만큼 계속 관심을 갖고 지켜봐야 할 나무입니다.
주말도 아니고, 거개의 초중등 학교가 개학을 한 뒤의 평일이지만 뜻밖에도 오죽헌을 찾은 사람들은 많았습니다. 얼마 전 어떤 텔레비전 프로그램에서 오죽헌을 소개한 적이 있었다고 하네요. 그 영향의 하나일 거라고 합니다. 비까지 내렸지만 우산을 들고 오가는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비를 맞으며, 혹은 크고 작은 우산을 들고 사람들은 단아한 기품을 갖춘 오죽헌과 이 계절, 세상에서 가장 화려한 붉은 빛으로 도도하게 피어나는 배롱나무 꽃 사이를 추적추적 오갔습니다. 지금 그러한 것처럼 앞으로도 오래도록 이 자리에 건강하게 살아남아 이곳을 찾는 모든 사람들에게 큰 기억으로 남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 《일본 야쿠시마 조몬스기 답사》 여행에 초대합니다! ○
오늘 《나무편지》에서는 원령공주의 숲으로 널리 알려진 일본의 《야쿠시마 조몬스기 트레킹》에 대해 알려드립니다. 지난 봄 《일본 천연원시림 트레킹》에 이어진 답사입니다. 오는 10월22일(일)부터 나흘에 걸쳐 이어질 이번 트레킹은 특히 일본인들이 ‘팔천년’ 된 나무라고 주장하는 전설의 삼나무 ‘조몬스기’ 답사에 초점을 맞추었습니다.
전체 인원이 14명으로 제한돼 있어서, 아직 시간은 있지만 조금 서둘러 신청하시는 게 좋지 싶어서 미리 알려드립니다. 자세한 내용은 아래 링크한 신청 페이지를 참고하시고, 전화 문의는 하나투어(1899-6016)나, 일본 트레킹 전문 JT투어(02-732-1950 김창희 대표)로 하시면 됩니다. 위의 사진은 야쿠시마가 아니고, 지난 봄에 다녀온 일본 천연원시림의 풍경입니다.
일본 야쿠시마 조몬스기 트레킹 신청 페이지
○ 더불어 《서강대 평생교육원 나무강좌》도 알려드립니다. ○
아울러 지난 주에 알려드렸던 서강대 평생교육원 나무강좌 신청 페이지도 다시 한번 알려드립니다. 지난 《나무편지》에서 이 강좌를 알려드리고 여러 분들의 문의를 받았습니다. 관심과 성원 보내주시는 만큼 더 알찬 강좌로 잘 준비해 찾아뵙겠습니다. 수강 신청은 [서강대 평생교육원 홈페이지(https://scec.sogang.ac.kr)]에서 [수강안내==>과정목록]으로 가셔서 아래 쪽의 [전문교육과정==>나무인문학]에서 하실 수 있습니다.
서강대평생교육원 《나무인문학》 강좌 수강신청 페이지
이제 누구나 한 목소리로 하나의 단어, ‘가을’을 이야기할 때가 다가왔습니다. 결실의 계절 가을을 보다 알차게 맞이할 수 있도록 여름의 끝에서 더 기운내시기 바랍니다. 고맙습니다.
아, 참! 오늘 《나무편지》의 맨 위 사진은 지난 주, 아산 맹사성고택 뒷동산에서 우연히 만난 흰배롱나무 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