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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흥초등학교에서 광치기해변까지!.....제주올레길 1코스 탐방기(15.1km)
지난 겨울에 제주올레길 8, 9, 10코스를 종주하고 경주로 돌아간 이후, 코로나사태가 터져 모든 활동이 중지된 상태가 지속돼 올레길은 까맣게 잊고 있다가 이번 여름 제주를 다시 방문하니 생각이 났다. 이미 제주 체류 20일이 지났지만 얼마 남지 않은 기간 중에 올레길을 1코스에서 5코스까지 해 보려고 한다. 하지만 이 무더위에, 이 나이에 조금 무리겠지? 꼭 해야 한다면 막 밀어붙이면 돼지만 이제는 올레길 걷기 이런 것들이 내 삶의 主가 아니다. 그러니 그저 남는 시간에 가고 싶을 때 가볼 생각이다. 예전 백두대간을 종주할 때는 달랐다. 무슨 숙제처럼 어떤 의무감에서 시간만 나면 찾아 갔으니 그것도 한 때 병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요즘 주변 사람들 얘기 들어보면 그 당시에 나는 말만 하면 백두대간 얘기를 꺼냈다고 하니 한마디로 백두대간에 미쳐있었던 것이다. 그렇게 한군데 미쳐서도 한번 살아 봤으니 사실 여한은 없다. 내 살면서 미쳐본 분야가 어디 한, 두 군데 였더냐? 이제 제주올레길은 꼭 완주하고 싶다. 이 나이에 맞는 활동은 이 올레길이 적합하다는 생각이 든다. 이미 6에서 10코스까지는 종주했으니 1코스에서 5코스까지 하고는 정상적으로 11코스부터 차근차근 올라올 생각이다. 자! 1코스 출발!
제주올레길의 첫 시작점은 제주도 서귀포시 성산읍 시흥리의 시흥초등학교인데 새벽에 차를 달려 이 근처에 오니 차 세울 데가 없었다. 이 길을 조성할 때 그 부분에 크게 신경을 쓰지 못한 것 같다. 시흥초교 주차장에도 외부차량 주차금지가 나붙어 있고 여기저기 <사유지이므로 주차금지>라는 팻말이 흩어져 있다. 내가 불평할 계제는 아니다. 내가 좋아서 온 것이니. 나는 그냥 길거리에 차의 한쪽바퀴를 보도에 올리고 주차시켜 놓았다. 그리고 올레길에 들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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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측으로 두산봉을 바라다 보며 난드르(넓은 들) 길을 걷다가 숲이 시작할 즈음에 올레길안내사무소를 만난다. 그 표지에 이런 문구가 적혀 있다.
제주올레는 온전히
걸어서 여행하는 이들을 위한 길입니다.
끊어진 길을 잇고,
잊혀진 길을 찾고,
사라진 길을 불러내어,
제주올레가 되었습니다.
이 길에서 평화와 자연을 사랑하는
행복한 여행자가 되십시오.
그래! 맞다. 나도 그렇게 행복한 여행자가 되려고 여기에 혼자 왔다. 지금 나는 아주 행복하다. 새벽 5시에 깨서 준비해서 예까지 왔으니.....이렇게 여유 있고 가고 싶은 곳을 마음대로 가고 하는 사람이 별로 있을까? 그래서 인도네시아에서 선교하는 절친 장영수 목사가 나보고 ‘영원한 코리안 보헤미안’, ‘아직도 꿈과 희망을 찾아가는 할리우드 키즈’, 또 ‘글로칼(글로벌+로칼) 사나이’ 라고 했을까? 근데 엄청나게 덥다. 아침 7시가 채 되지 않았는데 이렇게 덥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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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 올레1코스는 오름과 바다가 이어지는 제주올레에서 가장 먼저 열린 길로 넓은 들판과 푸른 바다를 한눈에 볼 수 있는 코스로 총 길이가 15.1km이며 종주에 6시간 쯤 걸린다. 하지만 나는 4시간 반에 끝냈다. 썩어도 준치 아니더냐? 기대와 설렘으로 시작한 제주올레1코스의 첫걸음은 말미오름, 알오름을 넘어 수국의 아름다운 종달리해변을 거쳐 성산 일출봉을 지난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광치기해변의 끝없는 광활한 바다를 끝으로 코스 전체의 조화가 잘 배합되어 걷기의 욕구를 충분히 만족시켜주는 코스이다. 제주말로 놀멍 쉬멍 걸으멍이라! 이 코스는 제주도 올레의 첫 코스이자 상징적인 코스다. 시작점 시흥리는 서귀포시이지만 중간에 거치는 아름다운 종달리는 제주시다. 가까운 거리에 있지만 시작과 끝이라는 의미도 있고, 과거 제주목사가 부임했을 때 시흥리(始興里)에서 시작해서 종달리에서 순시를 끝냈다 하여 그렇게 이름했단다. 그 전에는 이 시흥리를 힘센 장정들이 많아 '심돌(力乭)마을'이라 불렀다고도 한다. 이렇게 시작과 끝을 한데 어우르는 이 코스를 걸으며 문득 시작도 없고 끝도 없는 인생의 의미를 되새겨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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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레길안내소를 지나자 바로 말미오름의 가파른 사면이 시작된다. 南으로 펼쳐진 단애의 지층이 맨살처럼 드러나 멋을 낸다. 인간이 존재하지 않았던 시기의 시간들이 간간이 드러났다. 저 단애의 울퉁불퉁한 지층들은 이곳이 형성될 때 마그마가 물을 만나 폭발적으로 분출하며 화산재를 분출하여 그 화산재가 칸칸이 쌓여 이룬 층이다. 말미오름의 정상은 두산봉(126.5m)이다. 정상의 전망대에서는 제주의 동쪽바다, 성산일출봉과 우도가 한 눈에 들어온다. 말미오름에는 말과 소들이 방목되고 있는데 가끔 사람에게 덤빈다고 하여 조심하라고 팻말에 공지하고 있다. 말미오름을 한참 내려가면서 습지와 초지를 지나면 넓은 들(난드르)이 나오고 다시 알오름으로 오르는 오르막이 나온다. 이 부근에서 2012년에는 올레길 살인사건이 났다고 한다. 여성 혼자 게스트하우스에 숙박하고 올레길에 나섰는데 게스트하우스 주인이 몰래 뒤따라 나선 것이다. 그리고 인적이 드문 이 부근에서 여성을 해했다고 한다. 꼭 무슨 히치코크의 도 아니고 미친놈이 아니고서야 어디! 그 사건을 생각하긴 싫지만 그만큼 한적하고 외진 곳이라 지나오면서도 조금은 찝찝하다. 그 많은 나홀로 산행에서는 그런 적이 없었는데. 당시 그 사건으로 올레길이 된 서리를 맞기도 하여 여성의 나홀로 여행에 경각심을 주기도 했다. 알오름에 오르니 전망이 확 트였다. 멀리 희미하게 성산일출봉도 보였다. 어차피 오늘은 저 일출봉을 지나야 한다. 이곳은 알을 닮았다 하여 알오름이라고 부르는 오름으로 해발이 143.5m이다. 동남쪽으로는 성산일출봉과 우도가 보이지만 바로 동쪽으로 산봉우리가 하나 있는데 바로 지미봉이다. 지미봉은 올레길 마지막 21코스의 막바지에 오르게 되는 봉우리다. 기이한 운명이다. 제주 올레의 마지막 봉우리(지미봉)와 첫 봉우리(말미오름)가 바로 지척이라니. 시작과 끝이 다르지 않다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끝에 다다르면 또 다른 시작이 이루어진다는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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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오름을 조금 내려서다가 우측으로 빠져 시골 마을길로 들어선다. 제주 전형의 시골길이다. 현무암의 돌담길과 편평하게 정지된 검은 흙의 농지들, 그리고 여러 가지 꽃들, 문주란, 달맞이꽃, 자주달개비, 설악초 등이 길가에서 지나는 나를 반긴다. 큰길을 만나고 종달리에 들어서면서 의외의 아름다움을 종달리 해변마을에서 접한다. 어느 누구도 올레1코스에서 종달리 골목의 이야기를 한 것을 본적이 없다. 종달리 마을 골목길을 지나면서 왜 올레길을 이 골목길로 지나가게 했는지 이해가 갔다. 옛날 집들, 그것도 제주가 바람이 심해 아주 낮게, 아주 조그많게 지어진 집들을 허물지 않고 겉은 그대로 두고 색칠만 하고 속을 인테리어해 아주 아름다운 미니추어 집들로 가득찬 마을을 만들어 놓았다. 그리고 갖가지 영업들을 하고 있었다. 나는 올레1코스에서 이 골목길이 가장 인상에 남았다. 그리고 그 골목길을 벗어나니 바다가 나오면서 푸른 밭과 갈대밭이 있는 종달리 소금밭이 나온다. 옛날에는 지척에 바다를 두었지만 갯바위에서 소금을 만들다보니 소량 생산밖에 못하였다. 그래서 부족한 소금을 육지에서 수입하는 실정이었다. 이를 해결하고자 조사해보니 제주에서는 이 곳 종달리가 소금생산의 최적지로 확인되었다. 조선 선조 대에 마을 유지를 육지로 보내 제염술을 배워 소금 생산을 시작한 곳이 바로 이 곳이다. 한 때 46곳의 소금밭에서 가마에 바다물을 끓여 연간 89,052근, 53톤의 소금을 생산했었다고 한다. 이곳에서 생산된 소금은 조정에 진상될 정도로 품질이 뛰어났었다는데, 그후 교통이 발달하여 육지 소금을 들여오게 되면서 방조제를 쌓고 간척지를 조성하여 논으로 만들었다고 한다. 또 1990년 대, 쌀이 남아돌자 휴경하여 오늘에 이르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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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참 논길을 가다가 마을을 지나 조그만 언덕을 넘으니 바로 바다가 나왔다. 이제부터 올레길은 바당길(바다길)이다. 여기서부터 종달리해변길이라고 하여 성산일출봉까지 이어진다. 지루한 해변길이자 또 보면 아름다운 해변길이기도 하다. 이 해변을 더위 속에 계속 걸어가는데 아르츠스 앤풀빌라, 목화휴게소를 지나면 유명한 ’오조해녀의 집‘의 유사품 격인 갖가지 해녀의 집들이 나타나고 송난포구를 지나면 ’강승우길‘이라고 나온다. 강승우 중위는 한국전쟁 중 백마고지 전투에서 고지를 차지한 적의 기관총 진지 세 곳에서 뿜는 화력으로
난공불락의 요새로 아군이 상당한 곤경에 처했는데, 그때 부하 둘과 함께 육탄으로 돌진하여 기관총 진지를 파괴하고 맹렬하게 산화한 제주출신 전쟁영웅이다. 이를 기리기 위해 이 길을 '강승우로'로 명명했다고 한다. 내가 군 근무 시 3사단 지원포대 출신이어서 더 애틋한 정이 가는 분이다. 다시 말하면 잔꾀가 없고 그저 정의감과 의무감에 불탄 열혈남아가 아니었나 싶다. 제 한 목숨을 초개같이 버리다니 그것은 아마 당시의 위급한 상황에 자기라도 희생하여 그 난관을 타개하겠다는 책임감이 아니었겠나 싶다. 그런 분이 진정 영웅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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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곳을 지나면 길에 큰 석상이 하나 위치하고 있다. 이 동네에 250년 전, 마을 안에 도깨비불이 자주 보이고 원인모를 화재가 잦았다고 한다. 풍수지리상 화기를 마을이 맞는 형국이라 바닷가에 석상을 세웠더니 도깨비불과 화재가 없어졌다나. 이 석상을 ‘영등 하르방’이라고 불렀다. 시간이 지나 주민들이 관리를 소홀히한 어느 날 석상이 쓰러지고 화재가 다시 발생하는 등 마을이 소란스러웠는바, 다시 석상을 세우자 마을이 평안해졌다는데 무슨 전설과도 같다. ㅎ 그 후 마을에서는 석상을 잘 보존하였는데 잘 보이지 않는 외진 곳에 있던 것을 해안도로가 개설되면서 2011년 현 위치로 옮겼다. 기나긴 종달리해변을 지나오면 성산갑문을 넘어가기 전에 유명한 식당, <오조해녀의 집>이 나온다. 나는 여기서 아점을 먹으려고 여태 배고픔을 참았지만 간판에 전복죽 전문이라고 쓰여져 있어서 그냥 지나친다. 다른 것도 있겠지만 왠지 전복죽은 크게 먹고 싶지가 않았다. 예전과 다르게 전복의 희소가치는 많이 떨어지지 않았는가? 그리고 종달리와 시흥리를 지나 오조리에서 성산을 잇는, 갑문을 연결한 다리, 갑문교를 건넜다. 무더위지만 바닷바람은 제법 세게 불어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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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문교를 지나 성산에 들어서면 올레길은 해변으로 빙 돌아 나가 성산해안도로로 연결한다. 그리고 성산일출봉 입구 앞 거리롤 지나가게 한다. 오늘 코스에서 가장 번화한 곳이다. 하지만 내가 할 것은 아무 것도 없다. 살 것도 없고 보고 싶은 것도 없다. 이제는 다리에 힘도 풀리고 걸음마저도 여의치가 않다. 며칠 전 한라산을 등반했고 어제 밤도 4시간쯤 자고 새벽에 일어나 밥도 먹지 않고 쉬지 않고 걸어왔으니 지칠 때가 되었다. 이제 내 나이 65살이 아니던가. 예전과는 다르다고 봐야지. 성산마을에 들어서면 탁자형 네모난 돌에 바다와 성산일출봉을 주제로 한 시인 이생진의 시가 쓰여 있다. 성산리 마을에서 조성한 '시의 바다' 쉼터다. 충남 서산 태생으로 섬을 좋아해 천 곳이 넘는 섬을 다녔지만 특히 제주를 사랑했다는 시인 이생진의 '시비 거리'이다. 아마 그는 그 아름다운 1004개의 섬들인 신안에는 가보지 못한 모양이다.
성산일출봉의 형태는 그 자체로 신비스럽다. 외국의 어느 곳에도 뒤지지 않는 곳이 성산일출봉이다. 아마 동양에서 베트남의 하롱베이 외에는 가장 신비스러운 경관을 자랑하는 곳이 아닐까 생각한다. 성산일출봉은 마그마가 물속에서 분출하면서 만들어진 수성화산체 섬이었으나 모래와 자갈이 쌓이며 본섬과 연결되는 바람에 이젠 섬이 아니다. 바다와 맞닿은 삼 면은 해류에 의해 침식되면서 깎아지른 듯한 낭떠러지의 단애가 되었고 거대한 분화구 위에 99개의 바위 봉우리가 빙 둘러 서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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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모습이 거대한 城과 같다고 해서 성산이라고 한다. 제주의 경승 베스트 10 인 ‘영주십경’의 첫째가 성산일출봉이라는데 맞는 말이다. 제주 최고의 경승은 성산일출봉이다. 그래서 아마 올레길 1코스도 여기서부터 시작하게 했을 것이다. 저기 일출봉을 품을 팔아 올라보면 분화구 속은 넓은 초지로 형성되어 예전에는 성산리 주민들의 연료와 초가를 이는 띠의 채초지로 이용되어 왔다는데, 또한 매년 불을 놓아 방목지로도 사용하여 나무는 거의 없고 억새, 띠 등이 군락을 이루고 있다. 성산일출봉이 본섬과 이어지도록 해류가 실어온 모래가 쌓인 해안이 길게 이어진다. 보는 위치에 따라 달라지는 모습이 다양하여 그 또한 신비스럽기 그지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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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목적지가 저기 보인다. 광치기해변이다. 광치기에 다가갈수록 일출봉은 멀어지고 일출봉은 멀어질수록 경관은 더 아름다워진다. 광치기해변은 성산일출봉을 배경으로 일출을 담으려는 사람들이 많이 찾는 곳이다. 이곳이 유채꽃으로 유명하지만 지금은 봄이 아니다. 그래서 봄의 최고 올레코스를 1코스라 하는 사람들이 많다. 광치기에는 용암이 바다로 스며들어 식으면서 굳어진 물에 드러나는 녹조 낀 화산석이 장관이다. 그 어디서도 볼 수 없는 경관이다. 그리고 말 달리는 광치기해변의 어느 곳에 가면 해변에 놓인 표지석, 우리 아픈 역사의 흔적이 있다. '제주 4·3 성산읍 지역 양민 학살터'가 여기 광치기해변에 있다. 성산읍민 400여명 비롯한 인근 구좌읍, 표선면, 남원읍의 양민들을 학살했던 현장이다. 이 광치기해변 가운데에 모래해안으로 물때에 따라 길이 열리던 곳이 1940년 도로를 개설하며 완벽하게 본섬과 연결되게 했는데, 이때 열린 길 이름이 '터진목'이다. 이곳에도 ‘터진목 제주 4·3유적지’에 제주 4·3 성산읍 희생자위령비가 추모공원에 조성되어있다. 제주올레 1코스를 시흥초등학교에서 시작하여 여기 광치기해변에 닿으면서 15.1킬로미터의 장정을 마무리한다. 새벽에 자는 아들을 두고 밥만 식탁에 차려놓고 몰래 도망 왔는데 빨리 가봐야 겠다. 혼자 일어나서 어리둥절 아버지를 찾을 지도 모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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