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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 관음사 와이콴 스님과 관징 법사
황휘팡(黃惠芳, 미국 LA 觀音普陀寺)
1) 와이콴 스님과 관징 스님의 만남
와이콴 스님의 법명은 한자의 혜군을 베트남 말로 읽은 것이다. 와이콴 스님은 관징 법사님보다 8살이 많은 1916년 월남에서 태어나 1975년 월남전이 끝날 때까지 거의 60년간을 월남에서 살았다. 우리 집은 베트남 화교로, 어머니 허아이 사이에 7남 1녀가 태어나 모두 10식구였다. 나는 6째로 위로 오빠 5명, 아래로 남동생 2명이 있는 외딸로 1947년 생이다. 월남전이 끝날 때 우리 식구는 모두 홍콩으로 건너갔다가 3년 뒤인 1978년 미국으로 이민을 왔다. 당시 나를 비롯한 5명의 오빠들은 모두 30살이 넘어 어렵지만 미국 사회에서 자리를 잡기 시작했고, 동생들도 몇 년 안에 모두 자리를 잡게 되었다.
미국으로 이민 온 뒤 3~4년 동안 집안 식구들이 어느 정도 자리를 잡자 아버지는 모든 것을 내려놓고 출가하였는데, 그 때 나이 이미 66살이었다. 아버지는 1982년 10월 LA에서 작은 방을 하나 빌려 절을 세운 것이 보타산 관음보살사이다. 미국에서도 월남어로 포다손 관음보탓투라고 부르며, 종교법인으로 등록되어 있기 때문에 뒤에 Inc.을 붙인다. 7명의 아들들은 미국에 적응하기 바빴기 때문에 아버지의 불사에 별 관심이 없었고, 어머니와 나만 힘닿는 대로 아버지를 도왔다.
아버지 와이콴 스님이 언제 관징 스님과 만났는지 정확하게 알 수 없지만 1983년쯤인 것 같고 아무리 늦어도 1984년 초일 것이다. 다음에 보겠지만 1984년 6월에는 이미 관징 스님과 함께 중국을 방문하기 때문이다. 바로 이 시점에서 관징 스님은 와이콴 스님에게 동운종 정법안장을 전했고, 미국에서 처음으로 정법안장을 주었다고 한다. 사진을 보면 방이 아주 좁은 것을 알 수 있는데, 1982년 처음 좁은 방 하나에 부처님을 모셨던 옛 관음보살사라는 것을 알 수 있다.
2) 1984년 관징 스님과 함께 중국 방문
관징 스님을 만나 귀의하고 정법안장을 받은 와이콴 스님은 1984년 6월부터 8월까지 약 3개월간 스승과 함께 중국 본토를 찾아간다. 이때 관징 스님은 60살이고 와이콴 스님은 68살이었다. 월남에서 60년을 살다가 홍콩을 거쳐 미국에 건너와 자리를 잡기까지 8년, 68살이 된 와이콴 스님은 스승인 관징 스님 덕분에 단 한 번도 가본 적이 없는 조국을 가보게 된 것이다. 그것도 승려의 신분으로 아직은 자본주의 국가와는 교류가 없는 대륙을 가서 이름만 듣던 불교의 성지들을 방문한다는 것은 전에도 꿈도 꿔보지 못한 일이 아닐 수 없었다. 출가한 지 2년 밖에 되지 않은 새내기 스님으로서는 말년이지만 출가자로서 새롭게 태어나는 아주 중요한 계기가 되는 성지순례였다.
중국을 방문한 두 스님은 먼저 관징 스님이 주지로 있던 세 절을 차례로 찾았다. 셴여우현의 산휘사와 마이셰옌사를 들리고, 이어서 남핑의 카이핑사를 찾았는데, 기념사진에 이렇게 기록되어 있다.
푸졘성 난핑시 카이핑사 주지 관징 법사와 제자 와이콴
미국에서 돌아와 본사 방문기념 1984년 6월 19일
와이콴 스님은 중국의 현황을 자세히 보고, 아울러 앞으로 관징 스님과 어떻게 함께 일할 것인가 그 기반을 다졌다고 볼 수 있다.
관징 스님은 와이콴 스님과 함께 자신이 옛날 행각 생활을 할 때 돌아다니던 큰절들을 차례로 방문하였다. 현재 가지고 있는 사진 자료에 따르면 당시 우타이산, 쥐화산, 푸퉈산 같은 중국 4대 불교 성지 가운데 3군데를 다녔고, 또 한 군데 난화사 육조탑 앞에서 찍은 사진이 있다. 관징 스님은 사진 위에 방문한 날짜와 함께 사진을 찍은 스님들의 직함과 이름까지 꼼꼼하게 써놓아 그 사실을 쉽게 알 수 있다. 다만 쥐화산을 방문한 날짜는 없지만 가장 먼저 우타이산 갔다가 1달이 지난 뒤에야 푸퉈산을 간 것을 보면 그 사이에 쥐화산에 들렸다고 본다. 위치상 그렇게 일정을 잡을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관징 스님과 와이콴 스님이 푸퉈산을 찾은 것은 특별한 의미가 있다. 바로 두 사람이 LA에 세운 절 이름이 보타산 관음보살사이기 때문이다. 물론 현재 월남에도 보타산 관음보살사가 있기 때문에 처음에 그 절을 본떴다고 할 수 있지만 LA에 세운 보타산 관음보살사는 관징 스님이 모든 바탕을 만들어주었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두 스님이 함께 관음보살의 현신처인 성지를 찾은 것은 각별한 의미가 있었을 것이다. 한편 푸퉈산 푸지선사에서도 미국의 보타산 관음선사에서 온 두 스님은 특별한 손님이 아닐 수 없었을 것이다.
난화사 육조탑
관징 스님과 함께 난화사를 들린 것도 특별한 의미가 있다. 관징 스님의 스승인 쉬윈 화상이 6조 혜능의 도량이라고 해서 중수했던 절이고, 관징 스님이 바로 이 절에서 쉬윈 화상으로부터 구족계를 받았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중국 선종의 족보를 찾으려면 반드시 이 절에 와서 혜능을 기리는 육조탑을 참배해야 하고 쉬윈 ⭢ 관징 ⭢ 와이콴으로 이어지는 법맥의 현장을 체험하기 위해서라도 꼭 와 봐야 할 곳이었던 것이다.
위에서 본 전체적인 일정을 보면 관징 스님과 와이콴 스님은 6월부터 8월까지 3개월쯤 중국을 방문해서 관징 스님이 주지로 있던 절을 찾아보고 명승고찰을 참배했다는 것을 알 수 잇다.
3) LA 보타산 관음보살사 창건
1984년 중국에 다녀온 두 스님은 좁은 공간을 멋어나 버젓한 절을 짓기 위해 노력하는 한편 와이콴 스님에게 불교에 대한 지식과 절을 운영하는 방법 같은 것을 꾸준히 지도하였다. 그리고 드디어 1년 반 뒤인 1986년 4월 새로운 불사를 시작한다. 이때 와이콴 스님은 이미 나이 70살이 되었다.
새로운 불사를 일으키면서 부지 설정에 설계까지 관징 스님이 모두 했지만 이미 미국 시민이 된 와이콴 스님이 늘 주체가 되고 자신은 철저하게 뒤로 물러나 명예주지라는 이름만 가졌다.
관징 스님이 미국을 다녀온 뒤 중국과 동남아에서 활동을 할 때 가장 중요한 직함은 바로 앞에서 보았던 미주불교회와 이번에 세우는 보타산 관음보살사였다. 미주불교회는 미국에서 가장 역사가 깊은 불교단체이고, 관음보살사는 제자와 함께 직접 세운 절이기 때문에 미국에서 자신의 위치를 나타내는 대표적인 단체와 절이기 때문이다. 초빙장에서 ‘자선을 베푼 석관징 화상을’이라고 한 것을 보면 정신적인 면에서뿐 아니라 경제적으로도 어느정도 도움을 주었던 것으로 보인다. 와이콴 스님이 비록 관징 스님보다 4년쯤 먼저 미국에 와서 자리를 잡았다고는 하지만 베트남 이민자로서 완전히 자리를 잡기에는 너무 짧은 기간이다. 이 점은 1984년 중국의 카이핑사를 다녀온 뒤 나중에 와이콴 스님이 150달러를 보냈다는 데서도 알 수 있다. 작은 돈이라도 보시를 하고자 했던 정성이 크지만 그것은 동시에 와이콴 스님의 경제적 상태를 잘 보여주는 보기라고 할 수 있다. 이런 배경을 보았을 때 와이콴 스님은 아직 절을 운영할 수 있는 전문 지식이 없기 때문에 하나에서 열까지 모든 것을 전수하며 사실상 함께 새로운 절을 세웠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명예 주지를 맡아 물심양면으로 도와주었지만 철저하게 제자를 내세우고 자신은 행각승에 머물렀다.
불사가 끝나고 새로운 보타산 관음보살사가 자리를 잡자 어머니도 1988년 LA 시라이사에서 계를 받고 출가하시므로 해서 우리집은 부모님이 모두 말년에 부처님 제자가 되었다. 와이콴 스님은 그 뒤 10년쯤 활동하시다 1995년 80살에 입적하셨고 어머니도 몇 년 전에 왕생하셨다.
현재 관징 스님과 와이콴 스님이 세운 LA 보타산 관음보살사는 고향이 차오저우인 장웬 주지 스님과 고향이 홍콩닌데 당가 외이정 스님을 비롯하여 모두 4~5명의 스님이 일하고 있고, 주뀌롄 보살이 절의 모든 사무를 맡아서 하고 있으며, 나는 시간 나면 가끔 나와서 돕고 있다. 보타산 관음보살사의 신도들은 베트남 화교들이 주를 이루고 미얀마 라오스 캄보디아 그리고 홍콩의 화교들이다. 비록 창립한 두 스님이 입적하셨지만 그 뜻이 잘 이어져 아주 활발하게 운영되고 있다.
이제 내 나이도 70을 바라보고 있다. 그 동안 거의 잊어버리고 있던 우리 절 창건 초기 이야기를 2012년 10월 한국의 서길수 교수 부부와 대만의 초 차오밍 교수가 와서 여러 자료를 내놓고 함께 되돌아보는 시간을 가지며 오히려 내가 몰랐던 사실을 더 많이 알게 되었다. 나는 법당에 올 때마다 불보살상 옆에 와이콴 스님의 사진을 보며 처음 절을 세울 때 관징 스님과 함께 어렵게 불사를 하셨던 생각을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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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불 하세요...
감사합니다
무량공덕 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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