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막집 봉놋방에 외장꾼들이 쪼그리고 앉아
노름판을 벌였다.
방물장수 민 총각이 판돈이 바닥나
살며시 제 방으로 들어가
새우젓장수 하 영감에게
“영감님, 백냥만 빌려주세요” 하자
하 영감이 민 총각 귀싸대기를 후려치며
“노름판에 처박아 넣으려고
산 넘고 물 건너 뼈 빠지게 장사했어?”
하고 꾸짖었다.
방물장수 민 총각은 아무 소리 못하고
고개를 숙인 채 얼얼한 뺨을 어루만지며
벽을 보고 모로 누웠다.
이튿날 아침,
두사람은 마주 앉아 국밥을 먹고 주막을 나와
발걸음을 재촉했다.
언제부터인가
새우젓장수 하 영감과 방물장수 민 총각이
부자지간처럼 붙어 다녔다.
물살이 센 개울을 건널 때면
두사람은 짐을 서로 바꾸어
민 총각이 무거운 새우젓 지게를 지고
하 영감이 가벼운 방물 고리짝을 지고 물을 건넜다.
고개를 넘을 때도
민 총각이 새우젓 지게를 지겠다 하면
하 영감은 힘에 부쳐 숨이 끊어질 듯해도
단호히 거절했다.
어느 날 단양 나루터 주막에서
하 영감이 청천벽력 같은 말을 했다.
“새우젓장수 그만두려네.”
요즘 하 영감의 심기가 몹시 언짢다는 건
민 총각도 알고 있었다.
단양에 하 영감이 거래하는 집과 경쟁하는 집에서
우 생원을 내세워 새우젓장수에게 반값에 팔도록 했다.
자연히 하 영감 새우젓은 팔리지 않을 뿐 아니라
외상값도 온전히 받을 수가 없었다.
결국 하 영감이 새우젓장수를 접고
고향 도담으로 돌아갈 때
어깨가 축 처져서 떠나가는 하 영감의 뒷모습이 보이지 않자
민 총각은 고갯마루 소나무에 머리를 박고
어깨를 들썩였다.
하 영감을 떠나보내고
홀로 장삿길에 나서니
아버지를 잃은 것처럼 허전해서
저녁마다 술독에 빠졌다.
어느 날 밤 탁배기 한호리병을
저녁 삼아 자작주를 하고 있었다.
“주모, 여기 너비아니 한근에 청주 한병,
민 총각과 겸상시켜주시오.”
뒤돌아보니 우람한 덩치의 우 생원이
싱긋이 웃고 있었다.
민 총각은 우 생원을 본체만체
마지막 탁배기잔을 단숨에 마시고
짠지를 와그작 와그작 씹으며 객방으로 들어가
팔베개를 하고 누웠다.
우 생원이 방으로 따라 들어왔다.
“동생~ 보시게.
나도 사귀어보면 나쁜 사람이 아니여.
내가 오늘 밤 술 한잔 살껴.”
벽을 보고 누웠던 민 총각이
골똘히 생각한 후 발딱 일어나
우 생원 손에 이끌려 평상으로 가
청주에 너비아니 안주로 대작하며
조금 전까지 원수 보듯 하더니
“행님 먼저, 동생 먼저” 하면서
웃음꽃을 피웠다.
새우젓장수 우 생원과 방물장수 민 총각은
장삿길에도 붙어 다녀
외장꾼들은 민 총각을
간에 붙었다, 쓸개에 붙었다 한다고
민들병이라 불렀다.
우 생원은 새우젓장사를 독점하자
값을 세배로 올렸다.
툭하면 새우젓통에 소금물을 부었다.
어느 날 고갯길을 오르던 우 생원이 물었다.
“동생~ 요즘 내 무릎이 시큰거려 죽겠네.
내 새우젓 지게 좀 대신 지고 가면 안될까?”
짐을 바꾸자 우 생원이 웃으며
“방물고리짝을 지고는 백리도 단숨에 가겠네” 하자
우 생원의 새우젓 지게를 지고
숨을 헐떡거리며 고갯마루에 오른 민 총각이
“이건 장사가 아니라 골병들기요.
나는 억만금을 번다 해도 새우젓장사는 못하겠소”
하고 털썩 주저앉았다.
우 생원이 말했다.
“나도 얼떨결에 새우젓장수가 되었지만,
생각이 많네.
얼마 전에는 글쎄 영춘 주막집 주모와
눈을 다 맞춰놨는데
새우젓 냄새가 난다고 퇴짜를 놓지 뭔가.”
민 총각이 무릎을 치며 킬킬 웃었다.
“제가 요즘 돈벌이 주품목이 뭔지 아세요?
목신(木腎)이에요, 목신.
이윤을 세배나 남긴다구요.
향나무로 정교하게 깎은 목신을 보면
여인네들이 미쳐요, 미쳐.
과부고 유부녀고 찌든 집 아낙네고
대갓집 마나님이고 쌍놈 마누라고 양반집 부인이고
목신만 보면 빚을 내서라도 사고요.”
우 생원이 침을 꿀꺽 삼켰다.
“아무리 목신이라도 실물보다야 좋겠어요?
그때 손목을 잡아당기면
백이면 백, 모두 딸려와 내 품에 안기지요.”
추석을 며칠 앞두고 달이 점점 차오르는 어느 날 밤,
고향집 툇마루에 앉아
곰방대를 빨며 달을 쳐다보고 있던 하 영감이
일어서서 마당을 가로질렀다
. 사립문 밖에 민 총각이 서 있었다.
하 영감이 물었다.
“어쩐 일이여? 장사는 어쩌고?”
민 총각이 싱글벙글 웃으며
“방물장사를 우 생원에게 떠넘겼어요.”
“우 생원이 방물장수?”
“지금은 단양 관아에 갇혀 있어요.
단양 최 진사네 안방마님에게
희한한 물건을 팔러 가서 끌어안으려다가
집안이 발칵 뒤집혀
작두에 양물이 잘려나가고 결국 옥에 갇혔어요.”
추석이 지나고
영감님은 새우젓 지게를 지고
민 총각은 방물 고리짝을 지고
영춘 골짜기를 오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