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계를 넘나드는 문화 유목민
제21회 부산문화대상 수상
음악평론가 정 두 환
[예술에의 초대 2020년 7월호]
음악은 뭘까. 소리일까, 경계를 뛰어넘는 그 무엇일까. 본지 편집위원인 정두환 음악평론가가 올해 부산문화대상을 받았다. 부산문화방송과 부산은행이 한 해 한 번 주는 상이다. 정두환 평론가는 음악을 인문학, 나아가 실천의 영역으로 확장한 공로로 문화예술 부분 대상을 받았다. 수상 기념 대담 내내 든 생각이 ‘음악은 무엇일까’였다.
“음악은 상상력이며 관계죠. 함께하는 거고요.” 정두환 평론가 이력은 이채롭다. 음악에 입문한 이후 줄곧 경계를 넘나들었다. 사람이 가진 상상력에 경계가 없듯 상상력에 바탕을 둔 그의 음악 역시 경계가 없다. 음악 안에서 경계를 헐었으며 음악 안과 밖의 경계도 헐어내었다. 나의 경계를 허물고 당신에게 나아가듯. 당신과 나, 그리고 우리. ‘공유’는 정 평론가가 추구하는 가치다.
음악 안에서도 그렇고 음악 바깥에서도 그렇다. 그가 추구하는 공유는 소유의 대척점에서 비롯한다. 예술은 결코 소유할 수 없다는 인식이 확장하면서 비로소 경계는 허물어질 수 있었다. 음악은 하나가 아니고 하나 이상이며 하나 이상의 그 모두를 아우른 거였다. 그 방점이 공유였다.
“고교 다닐 때 합창반 했어요. 삶의 돌파구처럼 그냥 좋았어요.” 정두환 평론가의 음악 인생은 다채롭다. 고교 합창단원에서 시작해 연주가, 작곡가, 지휘자, 평론가, 강연이며 음악방송 진행자 등등의 길로 나아갔다. 그냥 좋았다. 엔간한 사람은 하나도 해내기 버거운 전문 분야를 ‘그냥 좋아서’ 거침
없이 ‘하이킥’ 해왔다.
‘놀자! 문화야!’ 정 평론가는 현직 교사다. 대학 강의도 한다. 그가 거쳐 가는 중·고교, 그가 강의를 맡은 대학은 하나같이 주목을 받는다. 3년을 지낸 사하구 다송중학교도 그랬다. 한 달 봉급보다 ‘훨씬’ 많은 돈을 들여 을숙도문화회관을 통째로 빌렸고 대규모 음악회를 네 차례나 열었다. 제대로 된 문
화에서 멀찍이 떨어졌던 학생들을 문화와 놀게 하자는 취지였다. 중학교 주최 대규모 음악회는 전국에서 처음이었다.
정 평론가에게 ‘처음’은 한둘이 아니다. 뜨겁고 아이디어가 넘친다는 방증이다. 을숙도교향악단, 해외환경음악회, 폐건전지와 동전 티켓. 정 평론가의 ‘처음’에 등장하는 아이콘이다. 을숙도교향악단은 한국 최초로 노동부와 협력해 예술청년 실업 해소에 기여했으며 을숙도교향악단을 이끌고 호주시드니 타운홀에서 제1회 해외환경음악회를 열었으며 생태 환경운동의 하나로 폐건전지와 쓰지 않는 동전을 음악회 입장표로 받았다.
“아파서 입원해 있다가도 화요일이면 링거 뽑고 나왔습니다.” 화요음악강좌와 정두환 음악평론가는 동격이다. ‘정두환의 좋은음악 & 좋은만남’이란 이름으로 2000년 3월부터 매주 화요일 시민을 대상으로 무료로 진행하는 이 강좌의 처음과 끝이 정 평론가다. 올해 3월 20주년을 맞았고 코로나 때문에 미룬 20주년 기념 강좌를 지난 6월 9일 열었다. 매주 화요일? 사람인 이상 아프기도 하고 타지에 볼일도 있을 테지만 아무리 아파도 화요일이면 열었고 아무리 멀리 갔어도 화요일이면 돌아왔다. 그게 차곡차곡 쌓여 20주년을 맞았고 20주년 기념 740회 강좌를 열었다.
음악이 다가 아니었다. 음악 강좌를 표방했지만 음악을 매개로 한 인문학 강좌였고 삶의 본질이랄지 가치를 찾아가는 철학 강좌였다. 부산 음악계를 대표하는 독서광답게 동서를 아우르고 고금을 아우르는 정두환 강좌는 중독성이 강하다.
얼마나 강한지 한 번 들은 사람은 한 번 듣는 것으로 그치지 않는다. 20년 전 첫 강의를 들은 시민이 아직도 들을 정도다. “나눔이 아니라 동행한다고 생각합니다.” 정 평론가는 좀 까칠한 편이다. 다르게 표현하면 직설적이다. 실제로 까칠해서가 아니고 실제로 직설적이라서가 아니라 속 깊은 마음을 감추려는 은폐 본능 때문이다. 속 깊은 마음은 ‘동행론’에서 단적으로 드러난다. 나눔은 가진 자가 안 가진 자에게 베푸는 의미라면 동행은 동등한 사람이 함께 가는 것. 그런 마음으로 음악 강좌를 20년 해왔고 그런 마음으로 음악 안팎을 넘나들었다.
문화 유목민. 정 평론가를 아는 이들은 그를 ‘문화 유목민’이라 부른다. 어느 한 분야에 안주하지 않는 정 평론가에게 딱 들어맞는 말이다. 그의 유목민 성향은 나보다 당신, 그리고 우리에 대한 배려다. 그러한 배려에서 시작한 게 시민을 대상으로 한 음악 강좌였고 사람을 바탕에 둔 예술인문학이었으며 이웃과 함께하는 실천적 삶이었다.
음악가에서 인문학자로, 그리고 실천하는 지식인으로. 부산문화대상은 후보자 추천을 받는다. 정 평론가를 추천한 단체는 특이하게도 부산적십자사다. 음악으로 봉사를 실천하는 정 평론가를 높게 본 까닭이다. 넓은 의미에서 정 평론가 음악 활동이 ‘우리’를 맨 앞에 둬서 그런 것도 있겠지만 실제로 정 평론가는 맨 앞에서 자원봉사를 실천해 온다. 현재 부산자원봉사포럼 공동대표다. 인터넷 검색창에 ‘자원봉사’를 치고 ‘정두환’ 이름 석 자를 치면 기사가 수두룩하게 뜬다.
“열심히 살았던 사람으로 기억되고 싶습니다.” 훗날 어떤 사람으로 기억되고 싶을까. 유목민이 이동하는 건 자기를 위해서가 아니라 양을 위해서라는 말도 하고 자신이 해오는 일이 타인에게 위안이 됐으면 한다는 말도 한다. 악보 읽는 것보다 어려운 건 악보 이면을 읽는 것. 우리에게 정두환 이름 석 자를 보여주려고 이면에서 기울였을 그의 노고와 열정은 오죽했을 것인가. 열심히 살아온 정두환 음악평론가에게 박수를 보낸다.
동길산 시인, 본지 편집위원장
http://www.bscc.or.kr/01_perfor/?mcode=0401060000&mode=2&no=5561&page=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