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핵균이 우리 몸에 감염되는 새로운 기전이 발견돼 오랫 동안 인류를 괴롭혀온 이 질병에 대한새 치료법이 나올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결핵을 일으키는 결핵균(Mycobacterium tuberculosis, Mtb)은 지금까지 호흡을 통해 우리 몸에 들어와 폐 세포를 감염시킴으로써 발병하는 것으로 생각돼 왔다. 그러나 미국 텍서스 사우스웨스턴대 과학자들의 최근 연구에 따르면 기도(氣道)나 점막에 있는 미소주름 세포(M-cell)의 염색체 전좌(轉座)가 전에는 알려지지 않은 새로운 감염 기전이라는 사실을 발견해 지난 21일자 ‘셀 레포츠’(Cell Reports) 온라인판에 발표했다.
결핵은 19세기에 ‘백색 페스트’로 불릴 정도로 사망자가 많았고, 한동안 ‘잊혀진 질병’처럼 인식됐으나 지금도 해마다 800만명 이상이 감염되고 150만명이 사망하는 세계에서 가장 치명적인 감염병의 하나로 꼽힌다. 미국 질병관리본부(CDC)는 세계 인구의 3분의 1 정도가 결핵균에 감염돼 있는 것으로 보고 있다. 물론 이 가운데는 증상을 일으키지 않는 비감염성 보균자도 있다.
우리 나라는 OECD 회원국 중 결핵 발생률이 가장 높아 한 해 3만5000명(2014년)의 환자가 발생하고 사망자도 2300명에 이르는 것으로 집계된다. 2주 이상 기침이 계속되고 체중감소, 발열, 잠 잘 때의 식은 땀 등이 나타난다면 진단을 받아볼 필요가 있다. 일단 결핵으로 확진되면 6개월 이상 약을 먹어야 한다.
결핵균 침범으로 인한 인체 발병 증상. ⓒ Wikipedia / Häggström, Mikael. “Medical gallery of Mikael Häggström 2014″. Wikiversity Journal of Medicine
미소주름 세포 통과해 림프절 거쳐 몸 안 이동
이번 연구의 주 대상이 된 미소주름 세포는 기도나 점막 표면에 있는 알갱이들을 세포 아래의 격실로 운반하는 특화된 상피세포들이다. 연구팀은 이런 운반과정을 통해 결핵균이 우리 몸에 침투한다고 보고 있으며, 이것은 결핵 예방을 위한 새로운 치료법 개발에 중요한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연구를 이끈 마이클 실로(Michael Shiloh) 내과학 및 미생물학 조교수는 “현재의 질병 모델은 결핵균이 우리 몸에 흡입되면 폐의 말단 부위인 허파꽈리에 도달하고 이 때 침범한 박테리아를 삼켜서 죽이는 대식세포에 의해 차단된다”며, “이번 연구에서는 일단 결핵균이 흡입되면 기도 조직에 있는 미소주름 세포를 통해 바로 인체에 들어올 수 있고, 이어 림프절을 거쳐 몸 안을 돌아다니게 된다”고 말했다.
그는 “이 점이 폐포의 대식세포 방어막이 막을 수 없는 결핵 발병이 가능하다는 것과, 결핵 발병의 원인에서도 또한 중요하다는 점을 시사하는 연구의 핵심”이라고 강조했다.
결핵균의 전자현미경 사진(왼쪽)과 발병 과정 (CDC / Wikipedia)
실로 교수는 결핵균을 이동시키는 미소주름 세포의 매개 기전을 매우 오래된 질병인 연주창(림프샘의 결핵성 부종인 갑상선종이 헐어서 터지는 병)에서 살펴볼 수 있다고 말했다.
연주창에서는 결핵감염이 폐에서 증상이 나타나지 않고 목의 림프절에서 병을 일으킨다.
더 진전된 연구가 필요하지만 이번 연구 결과는 결핵균이 미소주름 세포를 통해 침범하는 것을 막는 치료법이나 약을 개발하는데 활용될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실로 교수는 예를 들어 결핵균의 단백질에 반응하는 백신을 만드는 것과 같이 결핵균이 미소주름 세포 표면 수용체에 부착하는 것을 차단한다면 결핵균의 침입이나 감염, 다른 장기로 퍼지는 것을 막을 수 있다는 것이다.
연구를 수행한 실로 교수(왼쪽 두번째)와 연구원들(맨 오른쪽이 논문 제1저자인 비디아 네어 박사. 사진은 Dr. Shiloh Lab / UT Southwestern
“다른 기도 감염 질병들에도 적용 가능할 것”
실로 교수팀은 현재 결핵균이 미소주름 세포의 염색체 전좌를 일으키는데 관여하는 인체 세포표면 수용체를 발견하는 것과 함께, 미소주름 세포가 어떻게 결핵균을 세포 표면으로부터 바닥으로 이동시키는가에 대한 정확한 기제를 확인하는데 연구력을 모으고 있다.
염색체 전좌란 잘려진 염색체 단편이 다른 염색체에 부착되거나 두 염색체가 서로 염색체 단편을 교환하는 현상을 말한다.
논문의 제1저자이자 내과 박사후과정 연구원인 비디아 내어(Vidhya Nair) 박사는 “결핵균 이동과정에 관여하는 이 균의 유전자와 단백질들을 확인하기 위해 여러 가지 실험을 하고 있다”고 밝혔다.
연구팀은 또 결핵 이외에 급성 세균성 폐렴을 일으키는 다른 중요한 기도 병원균들도 미소주름 세포를 이용해 심각한 질병을 일으킨다는 자료를 확보하고 있어 관련 연구 범위를 넓혀가고 있다.
실로 교수는 “인체 실험을 통해 이 기전을 확실히 이해하면 백신이나 치료약으로 결핵균의 이동을 막을 수 있고, 이것은 궁극적으로 기도 감염 질병의 예방과 치료를 위한 새로운 길을 열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