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 24일 아침, 프랭크 로이드 라이트 가이드 투어에 참여하기 위해 오크 파크로 왔다.
오크 파크(Oak Park)는 시카고 근교에 있는 중류 계층의 한적한 주택가이다.
미국 여행을 떠난 2011년,
돌이켜보면 몇 가지 선명하게 떠오르는 일들이 있다.
한 해 전 가을 심장판막수술 후 요양차
5개월간 우리집에 머무르시던 시어머니가
2011년 2월 초에 다시 목포로 내려가셨다.
어머님이 우리 집에 계실 때는
내가 뭔가 집중해서 해야 할 일이 있어서였을까
사람들의 '고생이 많다'는 인사가 무색하리만큼
"며느리 마음날씨 맑음!" 이었는데,
막상 어머님이 떠나시고 난 이듬 해 봄과 여름 동안
다시 또 무기력증이 도져 시들시들하게 지냈다.
[오크 파크에서 가장 유명한 건축물일 것 같은 프랭크 로이드 라이트 홈&스튜디오]
시들한 와중에도
대안학교 이우학교에 유진이를 입학시켜 볼까 싶어
6월엔 학교설명회도 찾아가고
입학 전형에 응시하느라
20대에도 써보지 않던 자기소개서(학부모로서)를 쓰기도 했다.
여름에는 보라카이로 여행을 갔다가 충격적인 사실을 알았다.
언제나 감각적으로 나에게 거슬리는 것들을 제거하며 사느라
물건 정리와, 사사로운 문제해결에 하루하루를 보내는 나는
3박5일의 짧은 보라카이 여행에서도
여전히, 똑같은 패턴의 행동방식으로 놀고 있었다.
아무리 눈부시게 아름다운 곳으로 여행을 와도
나의 모든 습성, 감정의 표현, 행동방식은 여전하다는 사실에
마음이 먹먹했져서 해변에 앉아 있던 내 모습이 떠오른다.
별 문제 없이 생활하고 있는 거 같으면서도
딱히 하고 싶은 것도 없고,
매사가 심드렁한 가벼운 무기력증 와중에도
결혼 후 4년만에 첫 이사를 앞두고,
이사하고 나면 정리본능이 발동해서 다시 기운이 나겠지 싶었다.
아니나 다를까,
9월 8일 이사일을 즈음해서
매일매일 정리정돈과 새집 꾸미기에 정신이 팔려
자다가 새벽5시에 눈이 떠지면 또 무언가 정리를 하고,
밥도 먹는둥 마는둥 식음을 전폐하고 이사 후 집 만들기에 몰두했다.
생전 처음 이사 후 가구배치 상담도 받아보고,
기홍씨가 혼자 살 때부터 쓰던 2인용 침대는 칠이 떨어져 보기 흉했는데,
남은 도장을 벗겨서 반광택 블랙으로 다시 도색하는
이른바 "가구 리폼"까지!
내가 계획한 대로 진행되어 가는 재미에 빠져
두 달여간 집 만들기에 몰두하던 중
어느새 사춘기에 진입한 유진이를 발견했다.
지금 생각하면 지극히 자연스러운 일들이지만,
체제에 순응적이고 소심한 아이가
수업이 끝나도 연락도 없이 30분, 1시간 늦게 들어오더니,
어느날은 말도 없이 잠실까지 나가서 놀다 왔다.
지금도 그해 10월 중순엔가
학교 수련회를 다녀와서 여진을 가라앉히지 못한 채
상기된 얼굴로 저녁을 먹는둥 마는둥 하던 유진이 얼굴이 떠오른다.
아, 이게 말로만 듣던
사춘기 성호르몬의 시작이구나
싶을 정도였으니까.
집 만들기와는 달리
자식 키우는 것은 내 뜻대로 안된다는 것을
지난 3년간도 꽤 느끼고 경험했다고 생각하나
어제도 오늘도 내일도 계속 안된다는 것을
절감하며 사는 날들이 계속될 줄이야.
그렇게 가을을 보내고 나니,
어렵게 되찾은 상승모드가 다시 하강곡선을 타기 시작했다.
그런 분위기로 여행을 떠났으니
제 아무리 비행기 타고 다른 나라에 온들...
어찌되었건 이날 오전,
프랭크 로이드 라이트 투어를 하는 내내
가장 많이 들은 단어는
그가 주창한 건축 철학, Organic Architecture(유기적 건축)이다.
'주택은 다만 거주를 위한 기계이다'라는
기능주의 건축과 대립되는 입장으로
'건축은 자연을 지배하거나 변형시키는 것이 아니라
그 속에 함께 스며들어야 한다'
는 라이트 자신의 말처럼 천연재료를 사용해 자연환경과 어울리는
유기적인 건축물을 만든 것으로 유명하다.
동양 건축에 자극을 받으면서 대지의 수평선에 동화한 듯한 외형,
공간의 목적과 자연스럽게 어울리며 움직임을 만들어내는 특징
(그의 유작이자 걸작인 구겐하임 미술관을 떠올리면 된다.)
을 나타내는 건축을 많이 만들어냈다.
하늘과 잔디밭과 어우러진 4년 전 사진을
찬찬히 들여다보고 있으면
유기적 건축이라는 말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겠다.
1867년에 위스콘신에서 태어난 프랭크 로이드 라이트는
15세때 아버지가 행방불명되어 대학을 고학으로 졸업했다.
위인들은 어찌나 이렇게 다 불우했는지,
고통이 인내를 낳고, 인내가 소망을 이루게 한다는 성경말씀은
오늘에도 통하려는지.
1887년 건축을 배우기 위해 시카고로 온 곳이 바로
근대건축의 선구자로 불리는 설리반의 설계사무소였다.
이 집은 그가 22살이었던 1889년에 직접 설계하여 지었고,
이후 20년동안 여기에서 살았다고 한다.
1898년에는 작업 스튜디오도 짓고 본격적으로 활동하며
그의 기념비적인 건축들을 설계했다.
스튜디오 내부는 사진을 찍을 수 없지만,
6명의 자녀들을 위한 놀이방은 물론
도서관과 제도실을 갖춘 스튜디오는 긴 방들과
자연채광, 스테인드 글라스, 바람이 잘 통하는 둥근 천장으로 지어져 있어
그의 건축철학인 유기적 건축의 의미를 확인할 수 있다.
물론 이런 사실들은
4년 전 가이드 투어에서 들었던 내용을 기억하는 건 아니고,
'프랭크 로이드 라이트 건축 투어'를 검색해서
나오는 내용들 중에 기억나는 내용들을 정리하고 있는 것이다.
사실, 그날 투어에서 영어를 제대로 알아들은 것은 더더욱 아니다.
내 영어공부의 실용적인 목적은
외국여행에서 가이드 투어를 알아듣는 것이건만,
유의미한 단어가 3개 이상 연속되면 뜻이 엉키면서
순식간에 멘붕이 되는 전형적인 초보수준이라
대략 알아듣는 척하면서,,,
도슨트에게 무려 질문까지 하는 원영이 남편을 부러워할 뿐이다.
이렇게 일천한 영어실력을 벗어나지 못하면서
왜 그리 오랫동안 영어학원에 다녔느냐,
타고난 소통과 언어재능이 자극되면서
호기심많은 성격이 충족되는 분야가 그나마 외국어공부라 그랬던 거 같다.
지금도 우디 키우기와 족저근막염만 아니면 당장 다니고 싶다.
이렇게나 맑은 겨울하늘이 담긴
오크파크의 건축 사진들을 보고 있노라니...
라이트의 집들이 실은 딱 내 취향인데,
그저 원영이 부부에게 오늘의 일정을 다 맡긴 채
아직 가시지 않은 긴장감으로 유진이가 노는 모습을 지켜보던
내 모습이 떠오른다.
첫댓글 앞글에 반짝반짝 6학년 유진이 .. 언제 이렇게 자랐을까요 ^^
아니, 쓰다가 만 이것은 뭐란 말인가!
그러게요. 더 크게 성토해주세욧!
어찌됐건, 2편은 여기에서 마무리.. 추억은 미화되는 법이건만 참 아득하게 쓸쓸하기만 하구나.
짝짝짝 감축!
유진이의 미국여행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