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걸이
밤새 내린 눈이 주차장까지 점령을 하고야 말았다. 바람도 사납고 길도 위험한데 외사촌 동생부부가 예고도 없이 우리 집을 찾아왔다. 동생은 이름만 얘기하면 알 수 있는 시인이다. 마당에 주차를 하고 거실로 들어온 동생을 보니 지나간 날들이 어제인 듯하였다. 오랫동안 만나지 못한 탓에 동생과 나눈 얘기는 날이 새도 모자랄 지경이었다.
나는 초등학교 때부터 외할아버지 제사 때만 되면 어머니의 심부름을 도맡아 했다. 어머니가 정성스럽게 챙겨주신 제사 음식을 들고 외가에 가면 고사리 같은 내 손을 만져주시며, 방앗잎전을 부쳐주셨던 외할머니의 모습이 지금도 주마등처럼 스친다. 9남매나 되는 자식 뒷바라지하느라 한시도 편할 날이 없으셨던 숙모님. 3대의 살림을 몸으로 실천하며 사셨는데, 지금은 요양원에서 쓸쓸한 노년을 보내신다고 했다. 우리가 옛이야기를 나누는 동안에도 창밖에는 눈이 내렸다. 동짓달 긴 밤이 짧기만 했다.
내년 봄에 다시 오겠다며 길 나서는 올케의 표정이 어두워 보였다. 결혼할 때 친정어머니에게 받은 목걸이를 잃어버렸다는 것이었다. 어딘가에 떨어져 있을지 모르니 꼭 한 번만 더 찾아보라며 간곡한 부탁을 했다. 그들이 쉬었다 간 방을 치우면서 눈을 부릅뜨고 찾아보았지만, 목걸이는 보이지 않았다. 내가 큰 잘못을 저지른 것도 아니어서 금세 올케의 마음을 흘려버렸다. 그들이 돌아간 후로도 눈은 계속 내렸다.
어느새 해가 바뀌었다. 꽁꽁 얼어붙은 마당은 삼월이 다 가도록 풀리지 않았다. 개나리가 꽃눈을 내민 4월에야 앞마당에 봄이 내려왔다. 마당은 눈 내리기 전에 떨어졌던 나뭇잎이며 각종 잡동사니들로 지저분했다. 앞마당에 쌓인 쓰레기를 치우려고 비를 들었다. 비질을 하다 유난히 반짝거린 물체가 눈에 들어왔다. 자세히 살펴보니 반짝거린 광채는 목걸이에 달린 자그마한 펜던트였다. 그제야 까맣게 잊고 있던 올케의 간곡한 부탁이 떠올랐다. 그러나 보석에 관심이 없었던 나에게는 한 낱 액세서리에 지나지 않아 다음에 만나면 전해주기로 하고 서랍장에 넣어두었다.
따뜻한 햇살이 앞마당에 노란 꽃물을 들이기 시작했다. 문득 서랍 속에 넣어 둔 목걸이 생각이 나 꺼내 목에 걸고 슬며시 거울 앞에 가 비쳐보았다. 반짝거리는 펜던트 때문이었을까 내 목이 한결 예뻐 보였다. 아름다움에 대한 여성의 욕망은 살을 깎는 고통도 감수한다는 얘기를 실감했다. 보석에 대한 관심은 아름다움과 비례한 모양이다.
지난해에 다녀간 외사촌 내외가 불쑥 찾아왔다. 과일을 먹으면서 동서의 눈빛을 내 목을 유심히 바라보는 것 같았다.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지난해 겨울 집을 나서며 울먹였던 올케의 표정이 떠올랐다. 나는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내 목에 잠시나마 호사를 선사했던 목걸이를 올케에게 돌려줬다. 잃어버렸다 찾은 목걸이를 손에 쥔 동서가 안도의 숨을 쉬는 것 같았다. 나에게는 깃털만큼이나 가벼운 액세서리였는데, 그녀에게는 세상에 단 하나밖에 없는 어머니의 유산이었음에 확실했다. 다이아몬드는 많은 여성들의 사랑을 독차지하는 값비싼 보석이었으니 말이다.
선뜻 목걸이를 건네준 나에게 올케는 고맙다는 인사를 거듭하고 돌아갔다. 얼마 후 연예인들이 즐겨 찾는 하려한 목걸이를 올케에게서 선물로 받았으나, 평소 나의 마음을 자상히 읽어주는 친구의 목에 걸어주었다.
나는 결혼할 때도 그 흔한 알반지 하나 받은 적이 없었다. 친정 부모님이 극구 반대를 하셨기에 둘 만의 결혼식을 치른 탓이다. 아이가 첫돌이 되어서야 친정집에 발을 들여놓았다. 친정 나들이를 나선 나에게 시어머니가 당신 손에 끼고 있던 비취반지를 내 손에 끼워주셨다. 결혼을 상징하는 증표가 아니었나 싶다.
5년도 훌쩍 지난 결혼기념일에 목걸이와 반지 세트를 남편한테서 선물로 받았다. 특별한 날 아니면 착용할 일이 없어 서랍장에 넣어 두었는데, 얼마나 지났을까 옆 마을에 사는 친구와 통화를 한 후 남편의 표정이 불편해 보였다.
짐짓 통화하는 소리를 옆에서 듣고 있었던 나는 아들 첫 돌에 받은 축하 반지와 뒤늦게 받은 폐물세트를 팔아서 친구를 돕자고 했다. 큰돈은 아니었지만 훗날 아들에게 돌려주고 싶었던 반지를 처분한다는 게 쉽지 않았다.
그 후로 한동안 소식이 없던 친구가 상당한 시간이 지나서야 우리 부부를 찾아왔다. 밝은 표정을 보니 마음이 놓였다. 근교에 나가 자연산 장어를 배불리 먹었다. 그동안 고마웠다며 보약 한 제 지어먹으라며 두툼한 봉투 하나를 내 손에 쥐어줬다. 그 후로 폐물에 대한 기억은 나의 뇌리에서 연기처럼 사라져 버렸다. 아무리 값비싼 보석을 보아도 호기심이 발동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