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물단지
이 남 순
문자가 왔다. 우수 고객 생일 케이크를 보냈으니 앱 업그레이드 후 확인할 수 있단다. 업그레이드는 로그인 접속을 해야 한다. 아이디도 패스워드도 아리송하다. 겨우 접속해 패스워드 새로 정하고 보내온 모바일 상품권을 확인했다.
연락할 일이 있어 전화를 들었다. 화면에 “비밀번호를 치세요.” 문자가 뜬다. 비밀번호를 치고 쳐도 전화가 열리지 않는다. 이것저것 해보지만, 사용할 수가 없다. 긴급 전화로 지정해 놓은 차남과 며느리 전화가 화면에 뜬다. 아들 전화를 눌렀다. 전화 받는 아들은 웬일인지 묻는다. 안부만 묻고 끊었다.
전화는 역시 먹통이다. 도리 없어 구매한 KT 대리점에 갔다. 일요일이라 문을 열지 않았다. 근처 문 열린 휴대전화 가게로 갔다. 비밀번호를 모르면 서비스점에 가서 서비스받으란다. 난감하다.
머릿속이 하얗다. ‘긴급 연락처’를 생각하며 망설이다. 할 수 없어 아들 전화를 눌렀다. 일 없이는 잘하지도 않던 전화를 연이어서 하니 무슨 일이냐며 다그친다. “전화가 잠겨, 쓸 수 없어.” 사실대로 말했다. “전화가 잠겼는데, 어떻게 전화했어요.” “응. 너와 너 형수를 긴급 연락처로 정해뒀지.” “그런 것도 할 줄 알면서… 일단 해결해 봅시다.” 한다.
마침 컴퓨터 앞에서 일하는 중이라며 KT 아이디와 비밀번호를 말하란다. “으음, 오늘 아침에 비밀번호 다시 정했군요. 비밀번호 치고 열어 봐요. 그러면 될 것 같은데.” 비밀번호를 치고 또 쳐 보았지만 열리지 않는다. “안 되네, 안 열리는데.” “그래요, 그럴 리 없는데.”
“그럼 차근차근 어떻게 접속하는지 말해보세요.” “응, 화면에 생성된 창에 비밀번호를 치고 끝에 있는 눈 모양을 쳤지.” “아하. 그 눈 모양은 지우는 기능입니다. 계속 쓰고 지우고 했네.” “자, 다시 해봅시다. 비밀번호 넣어요. 그리고 엔터키 쳐요.” “보자, 엔터키 없는데,” “완료. 치세요.” 완료를 친다. 전화 화면이 활짝 열린다. “아들 됐어!” 소리 질렀다. 지나가는 사람들이 쳐다본다.
이렇게 간단한 것을, 능력의 한계인가, 한심스러운 생각이 든다. 아들과 이런 일로 통화하는 것을 보는 집 양반 쓴소리를 지레짐작하고 대리점에서 돌아오다 집 뒤 텃밭에서 이 노릇을 하고 있다. 등신짓이 민망스러워 여길 오길 잘했다 싶다.
“너 엄마 이래 멍청해서 우야노! 큰일이다.” “엄마, 그만하면 잘하고 있어요, 그 긴급 전화 어떻게 설정했지요.” “그것 어느 수필 회원이 쓴 글에 의료 정보와 긴급 연락처에 관한 내용이 들어있어서 유용할 것 같아 작자에게 배웠지.” “아이고. 할매, 그만하면, 잘하고 잘 살아 있네, 더 잘하려는 것은 객기요.”
아들은 전화로 인한 개인 정보 유출로 낭패를 당하는 경우가 있다며 잠금은 꼭 해야 한단다. 확실하게 잠그고 편하게 여는 방법을 설정케 하고는 몇 차례 연습시킨다. “이제 다 된 것 같네요. 어무이! 의기소침하지 말고 아들 자주 부리소.” 늘 끝내는 말로 “아버지께 좀 잘하고요.” 전화 끊는다. ‘언제는 내가 저 아버지한테 못 하나 뭐, 녀석들 꼭 저런다니까.’ 혼자 구시렁거린다.
벌어진 일들을 생각하니 절벽에 떨어지다가 구출된 느낌이다. 잠시 전화를 쓸 수 없는데, 세상 일부분이 단절된 듯 먹먹했다. 단순하게 전화 기능만 있다면, 이랬을까? 메모장, 은행일 일거수일투족이 손안에 드는 기기 속에 있으니….
정보 통신 대란이란 뉴스에서만 나오는 일은 아닌 듯하다. 인터넷 세상이다. 인터넷 서점에서 책을 산다. 내 인터넷 책장에 저장해 두고 꺼내 읽고, 그 도서관에서 도서를 대출 반납, 대출 연장도 한다.
화사한 봄옷을 쇼핑몰 찾아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세계를 누벼 종일 찾아다니며 살 수 있다. 은행 가지 않아도 적금, 대출, 송금, 출금 다 한다. 웬만한 일은 핸드폰에다 손가락 부려서 할 수 있다. 그 편리함에 점점 길이 들여지고 있었나 보다.
이 물건을 편하게 부리려고 담아둔 것에 스스로 제어 당해 주객이 어느 쪽인지, 내가 주인인지, 기계가 주인 되어 나를 부리고 있는지…, 한 치 벗어남도 용납하지 않는 야속함에 오히려 상실감마저 든다.
나날이 현란하게 달라지는 디지털 시대 변화 그 물살 따라 흘러가기가 버거운 감도 없지는 않다. 한나절에 일어난 일이 까마득하게만 느껴진다.
어줍은 생각일까. 아직도 끈적하게 친근감 있는 아날로그에 머무는 게 좋다. ‘딱 맞는 옷보다, 좀 여유 있으면 편하다. 사람 또한 더러는 빈틈 있어 넉넉한 사람에 마음이 끌린다. 나를 얼떨떨하게 한 손에 들린 전화기가 왠지 서먹한 느낌이다.
변화 적응에 아둔하여 위축된 자신감은 사리 분별에 어색한 이방인 같다. 상대적 박탈감일까, 스스로 위로일까. 뜬금없이 가슴에서 피어나는 동경의 세계-. ‘산그늘 지면 앞 냇물에 달 뜨고, 댓돌에 벗어놓은 흰 고무신에 하얀 달빛 가득 담기는….’ 뜻은 텅 비어 마음 가는 곳 없고 마음 가더라도 다다르는 데를 알지 못하는 무하유지향無何有之鄕* 그곳을 노닐고싶다.
꿈같은 생각 깨어나기 전에 전화기가 진동한다. 화상 통화, 귀한 두 손자 얼굴이 활짝 웃으며 “할머니!” 하며 손을 흔든다. 나절 단상斷想을 다 녹인다.
핸드폰 소동이 멋쩍기도 하다. 웃고 울리는 이 애물단지 가까이하기도 멀리하기도 어려운 것인 듯….
* 《장자(莊子)》소요유(逍遙遊)·응제왕(應帝王)·지북유(知北遊) 등 여러 곳에 나오는 말이다. ‘있는 것이란 아무것도 없는 곳’이란 말로, 이른바 무위자연(無爲自然)의 도가 행해질 때 도래하는, 생사가 없고 시비가 없으며 지식도, 마음도, 하는 것도 없는 참으로 행복한 곳 또는 마음의 상태를 가리킨다.
서양에서 말하는 유토피아도 결국은 어느 곳에도 없는 땅이라는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