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서지방을 근거지로 한 숙신 등 전고조선기 이후 여러 나라로 갈라져 후고조선기 즉 열국시대에 들어선 것으로 보인다.
그중에서도 숙신은 발식신(發息愼)으로 표기되기도 하였으며 이시기에 이르러 발족과 숙신족의 연합체가 이루어진 것으로 판단된다.
이러한 숙신은 주무왕이 상걸왕을 공격할 때 전쟁무기를 공급하고 주 성왕때 그 공으로 책명을 받은 기록이 있으므로 BC11세기까지 존재하였을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숙신에 대하여 민족의 원류를 밝힌 연구를 고찰하면 안정복은 동사강목에서 숙신에서 진번의 진(眞)으로 이어지고 여진이 진번을 따른 것으로 보았고 숙신은 요·순시대부터 상·주시대를 거치면서 진·한때 진번이라고 하였으며 진국(辰國)은 조선의 직통으로 이후에 변인(弁人)과 색인(塞人)등이 서쪽에서 유입되어 융합되었다.
여기서 놀랄만한 기록은 숙신이 송나라 효무제(AD459)에게 고구려와 함께 활과 노를 바쳤다고 하여 수천년간 국가로서 명맥을 유지하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또한 오래된 부족인 맥족(貊)에 대한 중국사서의 정의는 북적(北狄)으로 예맥고지에 있었다고 한다. 예맥고지는 우리가 알고 있는바와 다르게 현재의 하북승덕 일대로 적봉(赤峯)과 멀지않은 곳이다.
또 다른 표현으로 이아(爾雅)에서는 흉노와 예맥은 북적이라 하고 있는데 적(狄)은 융(戎)과 다르게 중원을 기준으로 북쪽지방인 하북·산서·내몽골지방에서 활동하던 고대 종족으로 맥(貊)과 별차이가 없어 보인다. 이와 다르게 융(戎)은 근동지방에서 동쪽으로 이동하며 활동한 흉노의 다른 표현으로 보인다.
가장 오래된 중국지리서로 평가받는 산해경에는 맥(貊)의 위치가 기록되어있다 즉, 동호(東胡)는 대택의 동쪽에 있고 이(夷)는 동호의 동쪽에 있으며 맥국은 한수(漢水) 동북에 있고 전국시대 연나라와 가깝게 있다가 망했다고 한다.
한서 기록에 맥(貊)은 곰을 토템으로 하는 부족이고 예(濊)는 호랑이를 토템으로 한다고 기록하여 단군신화에 보이는 곰과 호랑이 부족이 실제로 존재하였음을 출토 유물은 말해주고 있다.
삼국지 동이전에도 부여국왕을 예왕으로 기술하였고 전통적으로 예(濊)족으로 보았기 때문에 단군의 고조선 개국설화 등장하는 곰과 호랑이관련 설화는 결국 홍산문명의 주체인 고동북계열의 맥족(貊)과 서방으로부터 선진적 청동기와 철기를 가지고 유입한 예족(濊)과의 경쟁으로 해석될 수 있다.
이는 결국 요서지방에서 오래된 문명을 이루고 내려온 고동북 계열이 조선을 이루었다는 사실을 말해주는 것이다. 예족이 진입한 때는 전기고조선이 해체된 시기와 일치하는 것으로 파악되며 이에 대한 설명은 부여편에서 서술할 것이다.
위의 기록에서 동호는 대택인 현재의 산서북부 대동(大同)지역에 있었음을 표현하였고 이는 현 하북북부 연산지역으로 추정된다. 이와달리 맥국은 한수(漢水)동북과 연나라와 가깝게 있다하는데 통설대로 맥국이 동북지역에 있었던 것으로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또 춘추시대 기록인 관자 소광(小匡)편에는 제나라 환공이 북으로 정벌하면서 영지를 제어하고 산융과 예맥을 거처 고죽국을 복속시키니 구이가 제나라의 의견을 듣고 복속하기 시작하였다고 하였다.
이와 관련하여 리지린은 맥족이 요동과 요서에 있다가 BC10세기이전 그 일부가 서쪽지방으로 진출하여 난하상류와 연과 노나라 북쪽까지 진출하였다고 하였으나 그가 언급한 연과 노나라 중심지가 통설대로 하북과 산동지역은 아니었다.
이와 관련하여 필자의 의견은 전국시대 연나라는 소왕(昭王: BC335~BC279) 시기에 하남 무양현을 중심으로 하다가 이후 세력을 팽창하여 현 북경 남부로 확장하였기 때문에 당시 맥국이 하남에서 하북지역에 있지 않으면 성립될 수 없는 기록이다.
이러한 맥인(貊人)이 BC3세기말 한고조 유방(劉邦)이 항우와 경쟁하며 전쟁을 치룰 때 기병을 동원하여 도와주었다는 사실이 기록 되어있다. 따라서 맥국은 하북지역과 그 동북부를 근거로 하였음이 타당하다고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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