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년 4월 5일 수요일 비다운 비
봄비, 비가 온다. 기다리고 기다렸던 반가운 비가 온다.
게다가 하루 종일 온다고 하니 기대가 크다.
버섯밭에 가니 비오는 소리에 놀랐는지 버섯들이 깨어 일어나 있다.
기지개를 켜면서 늘어났는지 딴 날보다 수확이 늘어 반갑다.
아침부터 택배가 왔다. 요즘 택배는 부지런하기도 하다.
박스를 건네주면서 택배비 6천원을 달래네. 택배비가 본인 부담이라고 한 적이 없는데.... 속은 기분이었는데 금방 풀렸다.
매실 11주, 옻나무 10주를 주문했는데, 매실 묘목 3주, 옻나무 1주를 더 보냈다. 매실이 한 주당 2천원, 옷나무가 1500원이니까 7500원이다.
택배비 6천원을 제해도 1500원이 남으니 수지 맞았다.
택배비 대신 묘목 몇 주를 더 주니 누이 좋고 매부 좋은 격이 아닌가.
묘목상을 하려면 머리가 좋아야 하겠다. 아무나 할 일이 아니다.
황매실 14주, 옻나무 11주, 25주의 묘목이 박스 안에서 살그머니 고개를 내민다. 내 주인이 누군가 궁금한가 보다.
“얘들아. 잘 왔다. 내가 주인이야. 잘 심고 정성껏 키워줄 테니까 무럭무럭 잘 자라거라. 응. 어이구 내 새끼들”
비가 오는 날 묘목을 심으니 이건 100% 성공이 틀림 없다.
우비를 걸치고 묘목을 심기 시작했다.
마른 날에 일하기보다 거추장스럽고, 질척거려 힘은 더 든다.
그러나 모처럼 비오는 날, 다른 일도 아니고 묘목을 심게 되니 힘이 난다.
불당골 입구부터 심어 나갔다. 백일홍 5주, 산딸나무 3주, 애기사과 5주를 심었다. 내 농장으로 들어가는 입구가 꽃으로 환하게 둘러싸이면 얼마나 예쁠까 ? 나무를 심어놓고 저만치 떨어져서 눈을 지긋이 감고, 이 나무들이 다 자라서 환하게 꽃을 피운 광경을 상상해 본다. 2년, 3년만 기다려 봐.
비에도 젖고, 우비 안에서는 땀으로 젖고, 온 세상도 젖었다.
불당골 개울가를 빙 둘러가며 꽃나무를 심으면서 행복이 피어 올랐다.
개울가 버려진 땅, 칡넝쿨, 가시나무 등 잡다한 식물로 뒤엉킨 곳을 가꾸려면 뭔가 소중한 것을 심어 놓아야 손이 한 번이라도 더 가게 된다.
‘이 개울가를 ’에덴의 동산‘처럼 만들고 싶다. 시간이 걸리겠지만....
오후에도 비가 오는데 빗줄기가 굵어지기 시작한다.
이제 남은 매실과 옻나무를 심어야 한다.
젖은 옷을 그대로 걸치고, 우비를 입고 나선다.
저건너 매실밭과 이어진 대나무 숲을 없앤 언덕에 매실을 심어야 한다.
그런데 대나무는 없앴지만 땅이 파지지 않는다.
속을 헤쳐 보니 대나무 뿌리들이 그대로 살아있었다.
3년 동안에 대나무를 베어내고 뿌리까지 죽으라고 근사미를 뿌렸건만 아직도 땅 밑에서 시퍼렇게 살아 있다. 정말 독하다.
어른들 말씀대로 포크레인으로 한 번 뒤집어엎을 걸 그랬다. ‘어른 말을 들으면 자다가도 차 시루떡을 먹는다’고 했는데.....
억지로 파다가 한 삽은 날이 찢어지고, 다른 삽은 자루기 부러지더라.
그래도 독하게 맘 먹고 매실을 다 심었다.
앞으로 관리할 일이 문제다. 대나무 뿌리를 없애야 하는 데....
남은 묘목을 심기 위해 삽을 사러 정산을 나갔다.
“튼튼한 걸로 주세요” “예 조경용 삽으로 드릴 게요” 황금색 삽을 준다.
“이 삽으로 일을 하면 돈 많이 벌겠네요” “왜요” “황금색 이잖아요” 웃는다.
비가 하루 종일 내리니 눈앞이 뿌옇다. 먼 산에 안개구름이 덮여 불당골 산이 잘 보이지 않는다.
차창에 흐르는 빗물 때문에 동네 가로등 불빛이 “망월요”하며 돌리는 불빛처럼 망월놀이를 한다. 참 별일이다.
오늘 모두 82주를 심었다. 하루 종일 비를 맞으면서.....
그래도 기쁘다. 한 건을 마무리 했으니까. 희망을 심었고.....
모두가 꿈나라로 여행을 떠난 깊은 밤에 창밖의 비 내리는 소리만 들리고, 밤비 따라 내 님이 온다는데 우리 마누라 전화는 아직까지 없다.
아파트에는 비오는 소리가 들리지 않아서 그런가 ?
첫댓글 👌비오니 맘도 잔잔해지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