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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 남산 함월사 우룡 스님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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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룡스님은 禪敎를 겸수하시고 법문 잘 하시는 것으로 제방에 이름이 높으신 큰스님이십니다. 언젠가 해인사에서 학인스님들에게 법문하시는 것을 지나다 들었는데 사뭇 감동적이었습니다.
스님을 뵈려고 울산 학성선원으로 연락드렸더니 경주 함월사에 계신다 하여 그리로 찾아뵈었습니다. 경주 남산 삼릉 부근에 서향으로 자리한 함월사가 있었는데, 불사 중이었습니다. 10여 년 전 허름한 민가를 구입하여 절로 조성하는데 지금은 50여 평이 넘는 법당 불사를 마무리하고 있었습니다.
스님께 삼배의 예를 올리니 스님께서도 맞절을 하셨습니다. 종단 포교원에서 왔으며, 공부 이야기를 여쭙고 들어 알리려 한다고 말씀드리니 “포교원이라면 어디 포교원이냐 ?”하시며 다시 물으셨습니다. “조계종 총무원 포교원입니다”하니 “아 포교원이라는 기구도 있어요? 나는 처음 들어요.”하시며 새삼스러워 하시어 놀랐습니다. 전국에서 설법 잘하시기로 이름 높으신 법사스님께서 조계종 포교원이 있다는 사실을 모르셨다니…. 포교원이 제대로 역할을 못해서 이름도 알려지지 않았나보다, 그렇게 생각하니 포교원 직원의 한 사람으로 부끄러웠습니다.
스님께서는“나는 세속으로 말하면 이미 은퇴한 사람이고, 종단 주변으로 물러난 지도 오래되었는데, 나 같은 사람에게 뭘 듣는다고 해요”라며 겸양의 말씀을 하셨습니다. “스님 공부에 대하여 여쭙고 배우기 위한 것이니 부디 사양치 않으셨으면 좋겠습니다. 공부에 관하여 격의 없이 이야기하는 것은 좋은 일 아니겠습니까?”라 말씀드리니 처음으로 슬며시 미소를 지으셨습니다.
□ 스님 요즘 자주 법문하시는 주제가 있으신지요?
-- 나는 신도님들에게 그렇게 이야기합니다. ‘절은 불공을 하거나 제사를 지내기 위해서 오는 자리가 아니다. 이 자리는 남녀노소 할 것 없이 가슴의 응어리를 풀기 위해서 오는 거다.’
불교에서는 그렇게 이야기를 하지요. 이것을 ‘나’다 라고 인식을 하는 것 자체가 잘못이다. 불교에서 三性(삼성)이라는 방법으로 비유를 하는데 제일 뿌리가 圓成實性(원성실성)이라고 해요. 원만하게 이루어져 있는 실다운 성품을 원성실성이라고 하고, 거기에서 잘못 파생되는 걸 遍計所執性(편계소집성)하고 依他起性(의타기성)이라 하죠.
그래서 옛 노스님들이 비유를 할 때 원성실성을 짚에다가 비유를 해요. 짚단이지요. 의타기성은 짚을 가지고 만든 새끼에 비유를 해요. 그리고 변계소집성이라고 하는 것은 환경과 여러 가지 여건 때문에 잘못 봐서 새끼줄을 보고 ‘뱀이다’라고 착각하는 이런 식을 변계소집성이라 해요. 그걸 변계소집성이라고 하는 겁니다. 그러니까 새끼줄을 ‘뱀이다’라고 착각할 때부터 갖가지 연극이 다 벌어지는 거지요. 이걸 ‘나다’라고 할 때부터 시작해서 이게 모든 일의 주춧돌이라고 착각할 때, 모든 게 계산이 잘못 빗나가서 갖은 연극이 다 벌어진다는 것이죠.
그래서 내가 말합니다. “이 자리는 부처님에게 절을 하거나 불공을 하거나 제사를 지내기 위해서 오는 자리가 아니고 각각 가슴의 응어리를 풀러 오는 자리다. 살아있는 분들이 한 가족 사이에도 가슴의 응어리가 있으면 집안에 불화가 생기고, 거기에 싸움이 생기면서 온 집안의 일이 흐트러지고 무너져 깨지는 사건이 벌어진다. 내 아들, 내 손자, 내 증손자가 사업이든 아무것도 안 된다. 그렇게 무서운 게 가슴의 응어리인데, 이 자리는 그런 가슴의 응어리를 풀러 오는 자리다.
이 자리에 모이신 분은 선배, 후배, 남녀노소 할 것 없이 서로 가슴의 응어리 얽힌 거 터놓고, 어떻게 하면 풀어질까, 그런 대화를 나누는 자리다. 그래서 나는 어떻게 해서 풀어 봤어, 당신도 풀어 봐라, 이런 이야기를 주고 받아서 가슴의 응어리를 푸는 자리다. 가슴의 응어리가 다 풀어진 사람을 해탈한 사람, 벗어난 사람이라고 할 수 있다. ”만약 가슴의 응어리를 풀지 못하면 우리 자신도 벗어날 수 없고, 또 내 아들, 내 손자가 절대 편하지 못해요. 스님에게도 의논해 보고 마지막에 부처님의 경이라고 하는 것을 의지하는데, 부처님의 경이 결국 응어리 푸는 걸 이야기했지 않았나 하고 말을 바꾸지요.
근본 無明(무명) 때문에 망상으로 업이 생긴다고 이름을 붙이지만, 결국 그게 가슴의 응어리다, 이거예요. 그래서 화엄경이다, 원각경이다, 금강경이다, 능엄경이다, 다 가슴에 응어리 푸는 걸 이야기 한 것을 불교 경전이라고 합니다. 그 불교 경전처럼 무슨 경에서는 가슴의 응어리를 어떻게 풀라고 했다, 무슨 경에서는 가슴의 응어리를 이렇게 풀라고 했다, 이런 대화를 나누어서 가슴의 응어리 푸는 자리가 이 절이라고 하는 자리고 법당 자리입니다. 이 자리는 어떻게든 가슴의 응어리를 푸는 자리입니다. 그걸 이름을 바꾸어서 마음이라고도 하지요. 그리고 이 옷 벗어버린 사람을 영가라고 하고요. 가슴의 응어리 때문에 괴롭게 하면 영가라는 이름도 안 붙이고 귀신이라고 부르지만, 이게 다른 거 아니잖아요. 하나를 가지고 이름을 다르게 부르잖아요.
단 거기에 때가 낀 사람하고 때가 조금 덜 낀 세계가 차이점은 있지만, 결국 가슴의 응어리가 전부 모든 잘못을 만드니까, 이 자리는 가슴의 응어리를 푸는 것을 서로 대화하는 자리라는 것이죠. 가슴의 응어리가 수십 가지 수백 가지가 되는데 막상 이걸 제거하려고 생각하면 물질처럼 보이는 것도 아니고, 어디에 담겨있는 것도 아니고, 제거할 방법이 없다 이거예요. 제거할 방법이 없으니까 결국 절에 오면 부지런히 염불하십시오, 주력이라도 부지런히 하십시오, 화두를 부지런히 하십시오, 하는 겁니다.
그런데 사실 목적이 거기에 있는 게 아니고, 가슴의 응어리를 푸는 데 목적이 있는 겁니다. 염불 쪽으로든지 주력으로든지 화두로든지 집중해서 똘똘 뭉쳐나갈 때 나도 모르는 사이에 내 가슴의 응어리가 하나씩 둘씩 어느 틈에 풀어지고 녹아져 버리고 없어지는 겁니다. 그래서 염불하십시오, 주력하십시오, 화두 하십시오, 하는 소리 자체가 거기에 목적이 있는 게 아니고 가슴의 응어리를 풀기 위해서 그렇게 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이걸 권하는 겁니다.
옛 노인분들이 묘한 비유를 하셨어요. 불교의 수행은 잃어버린 비단 짐을 찾기 위해서 망부석을 두들기는 것과 같다, 그러시거든요. 지금은 없습니다만 옛날에는 등짐장수가 있었죠. 그 중에 비단장수 한 사람이 겨울을 보내고 따뜻해진 봄날 장에 가다가 나른해졌는데, 시간도 여유도 있고 해서 부드러운 풀밭에 조금 쉬어간다고 드러누웠어요. 누구든지 건드리면 표가 나게 등과 목에다 메었는데 깜박 잠이 들었다 이 얘기지요. 놀래서 깨보니까 비단 짐이 없어진 겁니다.
전 가족의 생명이 붙었는데 놀라고 답답했겠죠. 그래 고을 원님에게 가서 진정서를 낸 거지요. “아무개 사는 비단장사입니다. 비단 짐이 가족의 생계인데 아무개 동네 쪽에서 드러누워 깜박 잠이 들어 비단 짐을 잃어 버렸습니다. 찾아주세요. 내 가족의 생명이 붙었습니다.” 하자, 고을 원님이 슬기로웠든지 “그래, 네가 거기에 드러누울 때에 먼발치에서 누가 본 사람이 없느냐?” “없었습니다.” “사방 다 둘러 봤느냐?” “사방 다 둘러 봤습니다. 사람은 없었습니다.” “그러면 무엇이 있느냐? 개도 한 마리 없더냐? 소도 없더냐? 염소도 없더냐? 그러면 나무 가지에 까막까치도 없더냐?” “그래도 없었습니다.” 따지다가 “곁에 먼발치에 이정표 망부석이 하나 서 있었습니다.” 그러니까 고을 원님께서 “그러면 됐다. 그놈이 도적놈이다.”
그래서 밑에 부하를 시키면서 “동네 곁에 망부석을 비단 도적놈으로 체포한다. 가서 붙들어 오는데 도적놈이니까 도망가면 안 되니까 꽁꽁 묶어서 잡아 오너라.” 하니 밑에 포졸들도 불평을 할 거 아니에요. 막 이 소리가 바깥으로 퍼져나가면서 갖은 풍문이 벌어지지요. 그러니까 출발할 때부터 말이 생기고 돌을 묶어 오는데 전부 쳐다보고 사또가 미쳤다, 저게 무슨 도적질을 하겠느냐, 하고 말들이 많았어요.
고을 원님은 이에 개의치 않고 “묶어서 가져온 돌을 옥에 두어라, 그리고 고을의 가장 번화한 번화가에서 잃어버린 비단 짐에 대한 재판을 할 테니까 그렇게 알라.” 하고 공고문을 붙었지요. 비단장수가 비단을 잃어버렸는데 범인으로 망부석을 잡아놓고 공개재판을 한다, 이 자체가 모두 괴상하니까, 많이 모인 거지요. 처음에 비단 잃어버린 사람을 불러서 심문을 하고 난 뒤에 범인이라고 해서 돌을 잡아놓고 이름을 대라 주소, 성명을 대라고 하니까 대답을 합니까? 아무리 고을 원님이 소리쳐봐야 대답을 안 하지요. 이렇게 돌덩어리 두드리면 두드리는 사람 손이 아프지요. 그런데 세게 치라고 하고 그 재판 자체가 괴상하니까 구경꾼이 호기심으로 모였고, 돌덩어리 두드리는 사람은 조금 세게 쳐라, 조금 세게, 더 세게 쳐라, 이렇게 하니까 두드리는 사람 손만 아팠지 별 수 없잖아요.
곁에 사람들이 전부 다 비웃고 큰 소리 치고 웃고 하니까, 법정 모독죄라고 해서 웃은 사람을 다 체포하여 가두라는 날 벼락이 떨어졌지요. 남자도 갇히고 여자도 갇히고 아이도 갇히고 어른도 갇히고…. 그래서 집집마다 사또에게 우리 집 아무개가 갇혔는데 그런 나쁜 짓 한 사람이 아닙니다. 보석해주세요, 풀어주세요, 했답니다. 사또는 그 사람들을 방면시키려면 비단 한 필씩 가져와라, 하고 부하에게 갖고 온 비단에 이름과 주소를 적은 꼬리표를 달아 놔라, 아무개 있는 누구가 누구를 보석시키기 위해서 비단을 가지고 왔다고 적어둬라, 했답니다.
그러니 비단 수십필이 들어왔지요. 비단장수를 불러서 말합니다. 네 비단과 남의 비단을 구분을 할 수 있느냐? 구분이 됩니다. 여기에서 가려내라. 이건 제 것 아닙니다. 이것도 제 것 아닙니다. 이게 제 비단입니다. 비단에 누가 갖고 왔다는 단서를 붙여두었으니까 그 사람을 쫓아서, 그러면 이 비단을 어디에서 구했느냐 하다보니까 비단 도적놈이 잡혔다 이거예요.
그래서 불교의 수행방법이 염불이다 화두다, 참선이다, 기도다, 이게 결국은 잃어버린 비단 찾기 위해서 망부석 두들기는 짓이다 이거예요. 참선하는 자체도 엉뚱한 짓이고, 염불하는 자체도 엉뚱한 짓이고, 기도니 주력이니 하는 것도 엉뚱한 짓인데 목적은 제3의 다른 데 있다 이거예요. 잃어버린 비단 짐을 찾듯이 결국 깨달음의 나라로 가는 것이죠.
때문에 가슴의 응어리가 전부 풀어지고 벗어나는 길을 가기 위해서는 화두다, 염불이다, 기도다, 주력이다, 또 절이라도 이렇게 해야 가슴의 응어리가 풀어지지, 다른 방법 가지고 가슴의 응어리를 풀 방법이 없다. 그러니까 이걸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게 목적은 아니라는 거지요. 목적은 제3의 세계에 있습니다. 아까 말대로 벗어나기 위해서, 해탈을 하기 위해서, 말을 바꾸면 깨우쳐서 부처되기 위해서지요. 하지만 뿌리는 결국 우리의 가슴의 응어리니까, 가슴의 응어리를 풀기 위해서 그렇게 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 스님, 그러시면 포교란 결국은 쉽게 말해서 가슴의 응어리를 풀어주는 것이라는 것이네요. 그걸 우리가 일반적으로 말할 때는 깨달음으로 나아가는 수행을 통해서 응어리를 풀어주는 것이라는 말씀이군요.
-- 그렇지요. 깨닫게 하기 위해서 염불도 시키는 거지요. 그런데 힘든 것은 여태까지 안한 것을 그걸 부지런히 해야 되는데 잘 안 하고, 안 하니 안 되죠. 부지런히 하면 됩니다.
-- 해봐야지 안 하고는 안 된다 이겁니다. 불교인들이 모두 단어 몇 개 익혀놓고 절에 왔다 갔다 하면서 불 교인이라고 하고 책 조금 들여다보고 이야기 듣고 불교를 아는 척 하지만 실제 목적하고는 다르다 이겁니다.
한 가지 예를 들어서 울산에서 사셨던 어떤 억센 할머니가 계셨습니다. 이분은 누구에게든 이겨야 돼요. 그래서 옛날에 모시를 세탁 빨래 해가지고 풀을 해서 다리미로 다려서 입고 오는데, 절에 오셔서 염불을 하시든 주력을 하시든 모기가 붙어서 피를 빨다가 빨다가 배가 터져서 피가 흐르면, 그 피가 다려 입고 온 모시옷에 떨어져도 손 하나 대지 않고 기도하는 그런 독한 할머니였었어요. 어쨌든 이 할머니 남편이 울산 쪽에 유지였는데 성당에 갔어요. 그래 언젠가 스님들이 남편한테 “너희 집은 그런 집이 아니고 지금 네 안 사람도 절에 다니는데 네가 왜 성당에 가느냐?” 했죠. 그러자 “나는 부처님의 가르침이 싫어서 가는 게 아니다. 내 마누라하고 떨어져 있고 싶다. 10분이라도 내 마누라하고 떨어져서 있고 싶다. 그래서 내가 마누라가 가는 절에 안 가고 성당에 왔다. 불교가 싫거나 부처님이 싫은 게 아니고 나는 내 마누라 곁에 떨어져 있고 싶다.”하는 겁니다.
그렇게까지 하신 할머님인데 아들은 없었고 따님이 둘 있었어요. 나이 80이 넘어서 울산 쪽에서 혼자 지내시기 불편하니까 서울에 계시는 따님이 모시고 갔는데 어디든지 가서 판을 쳐야지…. 남에게 질 수 없는 할머니니까. 서울에 가서 딸집에서 가장 가까운 조계사에 가겠다고 딸에게 여비를 달라고 그러니까 딸이 “엄마! 엄마는 절에 다닐 자격이 없습니다. 엄마가 수십년 절에 다녔는데 마음가짐이 고쳐졌느냐? 행동이 고쳐졌느냐? 말이 고쳐졌느냐? 엄마 같은 사람이 절에 다니면 불교인 전체를 모독을 해. 엄마 같은 사람 절에 갈 자격이 없어. 엄마가 다른데 놀러간다면 내가 얼마든지 차비를 다 드리겠는데 엄마가 절에 가신다고 하면 나도 차비 일전도 못 드려요.” 했답니다. 그렇게 80까지 남에게 져본 일이 없는 할머니가 딸에게 가서 수십년 절에 다녔다는 사람이 성격 하나 못 고치고, 행동 하나 못 고치고, 나 하나 못 고치고, 그렇게 절에 다니면 뭐하느냐. 불교인 전체를 모독하는 행동이 된다. 그래서 엄마가 절에 다닐 자격이 없다는 말을 들은 겁니다.
이렇듯이 불교인은 힘이 들어도 자그마한 일이라도 해야 되는데 전부 말로만 다 해버리지 실천하는 사람이 없어요. 내가 한평생 부탁하는 소리가 법당에 와서는 무릎을 안 꿇어도 되는데, 내 가족한테 삼배씩을 하라고 한 평생 권하고 있어요. 그리고 차라리 법당에 와서 삿대질을 하고 고함을 지르고 욕을 해라. 법당에 와서 조심하면서, 우리 집이라는 법당에 계시는 내 가족에게 고함을 지르고 짜증을 내고 신경질을 내고 삿대질을 하느냐. 거기에 가서는 하지 말아라. 차라리 법당에서 고함을 지르고 삿대질을 하고 부처! 내가 어떻게 했는데 나한테는 내 원 안 들어주느냐고 달려 들어봐라. 그러나 우리 집이라는 법당에 계시는 내 가족이라는 부처님 앞에서는 그렇게 하면 안 된다고 내가 늘 부탁을 해요.
불교인이라고 하면 고마움을 생각해야 합니다. 어디에 가서 밥을 먹어도 하루 세끼 밥을 먹으니까 밥 먹기 전에 그 밥에 담겨있는 은혜에 감사하는 뜻으로 합장하고, 밥 먹고 난 뒤에 감사합니다. 이 은혜 꼭 보답하겠습니다. 하는 뜻으로 합장하고 이거 실천해야 되지 않느냐. 내 가족 앞에 아침, 저녁으로 내가 당신에게 잘못한 거 참회 드립니다. 용서하십시오. 그리고 당신이 건강하시고 당신이 바라고 원하는 모든 일이 순탄하십시오. 하는 축원을 하면서 삼배씩 하고, 밥상머리에서 하루 세끼 밥 먹을 때 합장하고, 불교인이라고 하면 최하이건 기본 실천해야 될 거 아니냐, 이거 하나 실천 못 하는 사람이 무슨 경 읽었다, 어떤 절에 가서 어떤 스님 법문 들었다가 무슨 소용이냐. 이 자그마한 일이라도 해라. 밥 한 그릇 쌀알 하나 생길 때 하늘과 땅의 은혜가 있고, 수십명의 땀방울 흘린 노력의 공이 거기에 있는 것입니다. 그 밥알 하나 거기에 담긴 은혜도 그런데 밥상에 한 그릇 밥에 더 말할 것도 없죠. 전부 따지면 그 밥상에 하늘과 땅의 은혜 수십명의 땀방울이 맺힌 은혜가 담겨있는 여기에 고마움을 못 느끼는 사람이 무슨 부처님의 고마움을 생각하고 무슨 부처님의 가피력을 바랄 수 있느냐.
불교인은 잘했든 못했든 이 자그마한 이거부터 실천을 해야 된다. 이거 하나도 못 하는 사람이 무슨 경 읽었다, 어떤 책 읽었다, 어떤 스님 뵈었다, 어떤 스님 무슨 법문 들었다가 소용이냐. 다 쓸데없는 짓이지 않느냐. 당신에게 도움되는 게 뭐냐. 나는 그런 소리를 하면서 신도들을 자극하고 못되게 꾸지람을 하는 소리를 하고 살아요.
이야기가 엉뚱한 쪽으로 갔는데, 돌아가서 아까 말씀드린 대로 불교는 가슴의 응어리를 푸는 것이다. 이 자리는 부처님에게 절을 하고 불공하고 제사 지내는 자리가 아니고, 가슴의 응어리를 푸는 자리다. 그런 엉뚱한 소리를 하면서, 힘이 들어도 해야 된다고 합니다. 하지 않고서는 이걸 내 양식으로 내 살림으로 만들 수가 없다. 그러니까 힘이 들어도 해야 되고 함으로 해서 이쪽 효력이 나타나니까. 어쨌든 불교는 말보다는 힘이 들어도 실천이 앞서야 된다. 그런 억지소리를 하고 살지요.
□ 스님, 그러니까 어떤 조그마한 거라도 소중하게 생각하고 그걸 늘 실천하도록 신도님들에게 가르쳐야 하는데 그런 것을 안목 있는 스님이 하실 경우에는 가능한데, 적지 않은 절에서는 그냥 염불 기도하고 불공해드리고 이렇게 해서 절에 열심히 다니라고 그러지 않습니까?
-- 스님 자체가 책도 덜 봤고 수행이 덜 되었다는 것이 가장 큰 문제예요. 자꾸 불교를 이상한 쪽으로, 뭘 얻으려고 하는 쪽으로 이야기를 하는데 스님 자체가 반성해서 고쳐야지요. 그리고 스님이 부지런히 하면서 체험을 해보면 ‘아! 이렇구나.’ 이런 체험이라도 있어야 신도들에게 “하세요.”라고 할 수 있고, “하면 이렇게 될 거다.”하고 안내해 줄 수 있는데…. 이게 필요한데 스님 자체가 말에만 의지했고, 당신들이 책에 의지해서 쉽게 익힌 중노릇을 가지고 하니까 일반 신도들에게 그만큼 감흥이라고 해야 할까, 감화를 못 주고 있는 겁니다.
당신 자신이 체험을 하면 그만큼 자신이 생겨서 신도들에게 한마디씩 일러줘도 자신이 붙는데 당신 자신이 안 해놓으니까 자신이 없고, 신도들에게 대할 자신이 없으니까 신도들에게도 실천 씨앗을 심어주지 못하게 되는 겁니다. 신도들에게 자신을 못 심어주는 거 이게 결국은 스님의 잘못이지요.
□ 스님! 그걸 지금 나이 들고 주지 맡으시고 여러 가지 대소사로 바쁘신 분들에게 공부해라, 체험해 보라, 이렇게 하기에도 늦은 감도 있지 않습니까?
-- 그런데 그분들이 다시 반성해야지요. 열반하신 광덕스님이 자기 상좌들에게 늘 하루에 머리를 두 번씩 오전에 한번 오후에 한번 머리를 쓰다듬어 보라고 시켰답니다. 머리를 쓰다듬어 보면 내가 머리를 깎은 중이라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이고, 내가 이 머리 깎은 만큼 중노릇을 하고 있느냐를 반성하는 계기가 됩니다. 스님께서는 하루 오전에 한 번 오후 한 번씩 머리를 쓰다듬어 보면서 반성을 하라고 꾸지람을 하셨답니다. 그렇게라도 자기가 자기를 채찍질을 해야 하는데 너무 안일하게 넘어가 버려요.
그리고 내가 보는 조계종단의 가장 큰 문제는 견제 세력이 없다는 겁니다. 일제 때에 조선불교 사찰령법이라고 하는 법규에 의지해서 대처승이라는 스님들도 주지 삼직을 투표를 했거든요. 말사 삼직은 모르겠는데 본사 삼직은 투표제입니다. 그러면 스님들이 총무하고 재무하고는 절대 주지스님 편 사람을 안 뽑아줍니다. 반대 세력에 의해서 총무, 재무는 반대세력에서 붙들고 교무스님은 주지스님 편 임무를 해주긴 해도 견제세력이 있었어요. 그리고 욕을 듣든 말았든 대처승이라는 그 분들은 어려서부터 절에 들어와서 어른들의 꾸지람 속에 중의 행동을 익혔고, 중의 마음가짐을 익혔고, 부처님 앞에 재산은 어떻게 간수한다는 것을 익혀온 분들이에요.
이제는 대(代)가 바뀌어서 그쪽 집안도 모르겠습니다만, 조계종단의 한 가지 단점이 비구·대처 싸울 무렵에 학교 졸업도 못하고 갑자기 머리를 깎아 중의 몸가짐과 사상물이 안 들은 사람들이 있다는 거예요. 그래서 절집안의 재산은 어떻게 간수해야 된다는 꾸지람을 못 들었어요. 그 분들이 지금은 모두 어른이 되었어요. 그 분들이 어른이니까 거기에서 아랫대는 전부 똑같은 물이 들어서 마구 흘러가지요. 그런 점이 조계종단에서 가장 고쳐야 될, 항상 돌이켜서 고쳐야 될 문제입니다. 옛날 스님들은 무섭게 하셨어요.
지금 통도사에 있는 능엄경, 기신론, 금강경, 원각경 경판이 천성산 쪽에 있던 어느 절의 경판이에요. 그 절에 스님이 경판을 처음 만들기 위해서 친구들하고 사방으로 뛰어서 자금을 조달을 했지요. 그래서 돈을 가지고 지리산에 들어가서 경판을 새길 나무를 대충 장만을 해가지고 천성산에 와서 경판을 만들려고 하는데 총모금을 다 하고 났을 때 나라에 흉년이 들었어요. 그래서 그 돈을 그쪽으로 다 써 버렸어요. 두 번째 경판을 만들기 위해서 모금을 했는데 그때도 수해인가 나서 경판 한다고 고생해서 모은 돈을 그쪽으로 다 써 버렸어요. 세 번째 모금을 해서 만든 경판이 지금 통도사에 보관되어 있습니다. 처음에는 그 경판이 웅천에 있는 절에 있었습니다. 절 이름이 안 떠오르네요. 그런데 그 절의 경판이 그 절이 망하면서 지금 통도사에 가게 된 겁니다. 그 경판을 만들 때 그 스님들이 동서남북으로 여름, 겨울 그렇게 고생하시면서 만든 돈을 전부 국민들의 고통을 건지는데 다 써버렸다는 기록이 있거든요.
지금 우리는 그런 것을 본받아야 해요. 그런 것을 본받아서 누가 시키기 전에 일반 사회에 경제력이든지 모든 걸 이렇게 돌려드릴 수 있어야 하고, 일반 사람들을 도와줘야 되는 게 불교인인데 오늘날 스님들이 잘못 가는 게 아닌가, 이게 참 많아요. 불교의 근본 목적은 그런 데 있지 않고 남을 도와주는 데 있습니다. 입으로는 보살행 무슨 경에 보살이 어떤 행을 했다 하는 소리는 다 잘하면서 막상 내 자신이 실천을 못하는 거, 우리 조계종 종단의 가장 단점이라고 해야 될까요. 잘못이라고 해야 될까요.
□ 그런 분들을 바른 이해와 실천으로 이끌기 위해서는 교육이 중요하지 않습니까? 출가해서 교육과정을 거쳐서 그런 행동거지 기틀을 다지자 그러는데 스님께서는 강사도 오래하셨는데 지금 현재 조계종 승가교육의 개선 방향이랄까요. 강조하실 게 있으면 평소 생각을 들려주셨으면 좋겠습니다.
-- 주춧돌부터 잘못되었으니까 무얼 어떻게 시작을 해야 될지 모르겠어요. 처음부터 내가 죽어야 된다는 無我(무아)라는 걸 배우면서 스님 개개인의 자존심, 고집이라고 해야 될까 너무 강합니다. 그 분들이 처음부터 부처님의 이야기를 배우면서 뭘 익혔는지 조차도 의심스러울 만큼 부처님의 가르침, 조사스님의 가르침하고 동떨어진 길을 간다 이겁니다. 그러니 여기에는 희생자가 나와야 돼요. 중생교화를 위해 석가모니, 싯다르타라는 희생자가 나왔듯이, 또 고려조에 큰 호화스러운 생활 속에서 보조국사라는 희생자가 나왔듯이 희생자가 나와야 해요.
당신을 죽여 버린 희생, 남을 위해서 내 몸 하나 내 공부 희생하는 그런 희생자가 나와야 해요. 남에게는 無我(무아) 無我(무아)라고 하고 재산 그거 모아서 뭐 하느냐, 다 잊어버려라, 던져 버려라 소리를 하면서 스님들이 당신 절 하나 얼마나 붙들고 늘어집니까. 이것부터 근본 머리를 깎을 때부터 벌써 배운 거, 쳐다본 거, 익힌 거 자체가 잘못되어 나왔다는 이야기예요.
□ 그런데 지금 우리 종단의 승가교육체계에서 보면 스님 말씀하신 無我(무아), 자존심이나 자기 相(상)을 버려야 되는 것으로 가르치는데 현실에서는 일부 스님들을 보면 사실은 굉장히 相(상)이 강하고 권위적이고 그런 면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래서 그런 부분들이 교육과정과 교재에서 無我(무아)나 緣起(연기)나 空(공)에 대한 가르침이 젖어들 수 있도록 해야 하는데 지금 교재나 교과 과정에 無我(무아)를 강조하는 그런 것은 별로 없지 않는지요, 너무 禪宗(선종) 위주로 교과가 짜여진 것은 아닌지요?
-- 금강경 자체가 ‘나를 죽여라’이지 않습니까, 나 때문에 생기는 게 결국은 아상, 인상, 중생상, 수자상 전부 나 때문에 생기잖아요. 금강경이 처음부터 끝까지 나를 버려라 나를 죽여라 하는 이야기이지 않습니까. 그런데도 거기에서 가르치는 분이 어떻게 가르치느냐 받아들이는 분이 어떻게 받아들이는지 이게 안 이루어진다는 이야기예요. 그러니까 가르치는 분이 좀더 강하게 또 가르치는 자체가 무언가를 체험해 보면 아! 그런 것 아니다 하면서 가르치는 사람에게 굉장히 강요, 강조해서 부탁, 부탁, 부탁하는 말이 나와야 되는데 이게 체험이 없으니까 그 간절한 부탁이, 애절한 부탁이 안 나온다는 이야기예요.
□ 좋은 말씀이십니다. 스님께서는 일관되게 자기 체험이 필요하다, 그러면 변한다, 이렇게 계속 강조하셨잖아요. 그런데 체험이라는 게 이른바 참선이나 염불, 기도를 간절히 해보라는 말씀이시죠?
-- 그렇지요.
□ 그러시다면 후학들을 위해 스님께서 젊은 시절에 체험 얘기를 들려주신다면 큰 도움이 될 것 같은데요.
-- 한 가지 예를 들면 열반하신 일타스님이 비구·대처 싸움 무렵에 선봉에 서서 싸우셨지요. 그리고 엄격히 따지면 비구승은 무법으로 교권을 쟁취한 단체거든요. 이대통령이라고 하는 분이 우리나라에는 중 장가가는 법이 없었다, 중 장가가는 것은 일본법이다, 그래서 혼자 사는 중을 밀어주라는 이 말 뿐이지 법적인 근거는 없었잖아요. 대통령이 비구승 밀어주라는 이거 때문에 후대에 성공한 것이 조계종단이거든요. 이런 과정에서 사건이 벌어지면서 그 무렵에 어른들의 꾸지람도 한번도 들어보지 못하고 숫자를 모으다 보니까 엉뚱한 쪽으로 갔죠. 그 분들이 일단락 끝난 다음에 재교육을 했어야 되는데 어른들이 이 사람들을 못 누른 거지요. 거기에서 가장 무슨 잘못된 게 도화선이 되어서 그 다음은 그 사람들이 모두 높은 자리에 있으니까 이게 수습이 한번도 안 되어 버린 거지요. 그게 결국은 가장 뿌리부터 잘못이라는 거지요.
일타스님이 비구·대처 싸움의 선봉장에 나와서 싸우셨거든요. 일단락이 된 다음에 일타스님, 열반하신 종정 혜암스님 등 일곱 분이 우리 싸움하느라고 중노릇을 잘못하고 죄도 지었으니까 오대산 적멸보궁에 가서 참회를 하고 나와서 본래의 수행의 길로 가자. 그래서 일곱 분이 약속을 하고 들어갔어요. 하루 3천배씩 일주일 절을 하고 나오기로 했어요. 일타스님이 첫날 3천배를 하고 두 손을 들어 버렸어요. 나 절 못 하겠다, 나는 절을 못 하겠다, 절하는 데서 빠지겠다, 그 대신 내가 공양주를 하겠다, 했답니다. 그래서 스님들 뒷바라지 공양주로 밥상 차려놓고 오대산 적멸보궁 밑 사자암에서 지고 올라갔습니다. 일타스님은 공양주로 빠져서 스님들 뒷바라지를 한다고 해놓고 당신은 그래도 저 사람들에게 져서는 안 된다는 용맹심으로 죽어라 노력이 따랐겠지요. 그래서 반야심경의 五蘊(오온) 空(공)의 세계를 체험을 한 겁니다.
나는 반야심경 풀이를 엉뚱하게 하거든요. 관자재보살은 관세음보살을 이야기하는 게 아니고 여러분 개개인을 지칭한다, 나는 그렇게 풀이를 해드려요. 관자재보살은 슬기로운 여러분들이요, 지혜로운 여러분이요, 하는 소리다. 여러분이 끝없이 전진하고 향상하고 발전하는 길로 가려고 하면 나는 반야심경 풀이를 그렇게 해요. 신도님한테 끝없는 전진, 향상, 발전의 길을 가려고 하면 照見五蘊(조견오온) 해야 된다. 五蘊(오온)의 세계가 무모하고 쓸데없고 믿을 수 없는 세계라는 것을 조견해야 한다. 조견한다는 소리는 철두철미하게 규명을 하거나 체험을 해야 된다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반야심경 풀이하기를 슬기로운 여러분들이요, 여러분이 끝없는 전진, 향상, 발전의 길을 가려고 하면 오온이 허무하고 믿을 수 없고 이슬처럼 허무하다 하는 것을 조견해야 한다. 조견해야 체험을 하거나 철두철미하게 규명해서 확신이 서고, 실제 물질의 세계가 필요 없다는 것을 확실히 규명을 해야 한다. 그래서 오온 때문에 파생되는 苦(고), 괴로움, 고통, 고민, 걱정 등의 고액, 물질 때문에 파생되는 액마, 재해, 횡액 등의 고액을 넘어갈 수 있느니라. 이 소리가 度一切苦厄(도일체고액) 한다는 소리다. 그러니까 여러분들이 끝없이 전진하고, 향상하고, 발전의 길을 가려고 하면 제일 첫 경험으로 물질로 구성된 세계가 허무하다는 거 이걸 조견해야 오온 때문에 파생되는 고와 액을 건너갈 수 있느니라. 나는 반야심경을 엉뚱하게 그렇게 풀이도 해주거든요.
말로는 조견오온개공 도일체고액 소리를 하는데 우리가 오온 물질의 세계가 쓸데없다든지 믿을 수가 없는 세계라든지, 허무하다는 것을 생각이나 해보느냐, 이거부터 먼저 기초를 나아야 할 것 아니냐. 그럴 때 물질과 물질 속에서 파생되는 일체의 고민, 걱정, 고통과 그 물질 때문에 파생되는 액난을 건너갈 수 있느니라. 이 말씀을 먼저 체험을 해야 될 거 아니냐. 우리가 염불을 하든지 주력을 하든지 기도를 하다보면 오온 공의 세계를 체험을 하게 됩니다. 물질이 필요 없는 세계, 그러니까 내 몸이 필요 없는 세계를 체험하게 됩니다.
그래서 일타스님께서 기도 중에 절 기도는 못하겠으니까 공양주를 하다가 그 사이에 오온 공의 세계를 체험을 하신 거예요. 오온이 필요 없다는 거 물질이라고 하는 거 필요 없다, 내 몸도 물질이니까 필요 없다는 세계를 체험을 한 거예요. 그래가지고 마지막 날 법화경 속에 보면 소신연비, 분신연비 소리가 나오잖아요. 일타스님이 거기에서 기도 회향날 온 몸 덩어리에 불을 질러서 소신공양을 올리겠다고 설친 거예요. 돌아가신 종정 혜암스님하고 그 무렵의 사람들이 그럴 수는 없다 말려서 겨우 손가락 네 개를 태웠지요.
우리가 염불을 하든지 화두를 하든지 이것을 부지런히 하다보면 오온 공의 세계를 체험할 수가 있습니다. 물질이라는 것은 아무 소용이 없다는 거, 물질은 필요 없는 거고 아무 소용이 없다는 세계를 체험하게 됩니다. 그러니까 일본이든지 중국이든지 우리나라든지 선을 하든 염불을 하든 주력을 하다가 오온 공의 세계를 체험하면서 성급하게 생각 잘못해서 자살을 하는 분들이 많거든요. 오온 공의 세계가 물질의 세계가 필요 없는 내 몸 덩어리조차 필요 없다는 세계를 체험하게 되니까 그때 자칫 잘못하면 그런 잘못된 세계가 벌어지지요. 그래서 오온 공의 일타스님이 체험하고 난 다음에 기도 마지막 날 분신 몸을 소신공양을 올리겠다고 했는데 그 때 돌아가신 혜암스님이든지 모두 말려서...
그 후에 혜암스님이 통도사 극락암 선원 경봉스님 회상에 와 계시면서 어떤 계기에 그 이야기가 나와서 “그때 내가 말린 게 잘못이었다, 그대로 둘 걸 내가 말린 게 잘못이었다.” 라는 이야기를 한 것을 내가 귀 담아 들은 일이 있습니다. 혜암스님께서 극락암 선원 입승하셨을 때 그렇게 말씀하셨나 보군요? 근일스님도 그때 첫 안거를 났다고 하신 그 때인가 보네요. 내가 말린 것을 잘못했다는 말씀의 뜻은 그때 그런 희생자랄까 소신공양의 헌신자가 나와서 정화과정의 상처와 오욕을 치유했었어야 했다 이런 말씀으로 해석해도 되겠습니까? 어쨌든 혜암스님이 어떻게 생각하셨는지 몰라도 극락암에서 우연히 한 때 이야기를 하시면서 그 때 일타스님이 소신연비를 하려고 할 때 내가 말린 게 잘못이었다, 그 때 말리지 말았어야 했는데 내가 말렸다, 잘못이었다, 그런 말씀을 하신 것을 들은 적이 있습니다. 혜암스님은 어떤 관점에서 그렇게 이야기를 하셨는지 몰라도 일타스님이 오대산에서 손가락 네 개를 연비한 것은 혼자 다른 사람처럼 기도를 못하고 뒤떨어져 있으면서 마음의 정립이라고 해야 될까, 이걸 채찍질하고 부채질 해가지고 오온 공의 세계를 완전히 체험하면서 물질의 세계는 필요 없다는 거 이걸 체험을 한 거예요.
그런데 우리가 하다보면 오온 공의 세계, 물질의 세계가 비워버린 세계, 없어진 세계를 체험을 할 수가 있습니다. 어떤 힘이 들어도 부지런히 행하면 최하 그런 세계가 체험을 하든 안 그러면 법화경 보문품에 관세음보살을 지극정성으로 염하면 물에 빠져도 빠지지 아니하고 불에 들어가도 타지 않는다라는 그런 거라도 체험하고 나면 내 확신이 정확하게 서면서 부처님의 이야기, 불교 경전의 이야기가 헛된 이야기가 아니라는 것이 체득됩니다. 그러지 못하니까 불교 경을 보면서도 전부 화엄경의 이야기나 법화경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회의를 느끼거든요. 자기들이 직접 안 해보니까 그 세계가 이해 안 되니까 회의를 느끼고 의심을 내고 이럴 수가 있느냐, 이건 전부 엉뚱한 소리라고 꾸며낸 소리처럼 잘못하는 게 자기의 신심이 안 서 있고 자기가 그 노력을 안 해봐서 그 세계를 쳐다보지 못하니까 그런 사건이 생겨나게 되지요.
그래서 스님들은 특히 본사나 말사 주지스님으로 나가시는 분은 한번씩 그렇게 목숨을 걸어놓는다고 할까 꼭 화두여야 된다는 소리를 안 합니다. 화두를 하든 주력을 하든 염불을 해서 이런 부처님의 경의 이야기가 거짓말이 아니고 헛된 말이 아니라는 것을 체험을 하든 그렇게 해야 부처님의 말씀에 대한 신심도 생기고 자기 확신이 정립이 되고 신심이 생기면서 신도들에게 자신있게 딱딱 내가 체험해 보니까 어떻더라, 당신들도 해봐라 해라 해야지 안 하고는 안 된다가 강조가 될 수가 있지요. 자신이 부처님의 경에 대해서 부처님의 말씀 옛 어른들의 말씀에 확신이 안 서니까 자신이 없고 남에게 신도들에게 권한다는 이야기를 할 때 확신이 안 서지요. 그러니까 어떻든 힘이 들어도 해봐야 돼요.
□ 스님, 아까 오대산 그 일곱 분 얘기는 혹시 태백산이 아니고 오대산이 맞습니까?
-- 오대산에서 그렇게 하셨다고 들었습니다.
□ 일타스님 소지공양은 태백산에서 했다는고 들었는데….
-- 오대산에서 적멸보궁 앞에서 일곱 분이 기도하다가 마지막 회향날 당신이 오온 공의 세계를 체험하고 분신자살을 하려고 했는데 곁에서 말려 못했다고··· 오대산에서 하셨답니다.
□ 외람됩니다만, 스님, 스님의 젊은 시절 공부 이야기를 들려주시면 더 생생하게 후학들에게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
-- 그저 앞도 뒤도 없이 부지런히 뭘 했어요. 화두는 안 했고 주력하고 염불 쪽으로 부지런히 하면서….
□ 주력은 어떤 주력을 하신 겁니까?
-- 그 무렵에는 육자 주력을 했지요. “옴마니반메홈” 여섯 글자.
8. 15 해방 직후에, 6. 25사변 그 무렵만 하더라도 해인사 예불은 각 전각 예불하는 분들이 따로따로 했어요. 지금처럼 대웅전에 한 데 모여 한 게 아니에요. 해인사 대웅전 예불은 큰 노전스님하고 노전스님 시자들이 두세 분이 아침, 저녁 예불하고 사시마지를 했지, 대중은 전부 자기가 거처하는 방에서 예불하는 그런 풍속이 있었어요. 조선조 말 일제 때부터 시작해서 6. 25사변 직전 직후 무렵까지 그런 풍속이 있었어요.
그러니까 해인사를 얘기하면 관음전 큰방에서 예불하고 대중공양도 하고 또 현당방에서 예불하고 공양하고 했어요. 또 무슨 커다란 행사 4월 8일, 백중이라든지 그런 큰 행사 때에는 모두 양쪽 방이나 대웅전에 모여서 예불을 하기도 했어요. 그런 풍속이 있을 무렵이었어요.
나는 그 때 현당방, 지금 강원방 있지요. 거기에서 거처를 하면서 아침, 저녁으로 예불을 법당마다 돌아다니면서 예불을 드렸습니다. 아침에 선방에서 예불하고 나오면, 마당에 탑부터 대웅전으로 장경각으로 삼성각으로 지장전으로 전부 돌면서 예불하고 저녁에도 그렇게 하고 했어요. 몇 달 했다는 것은 기억이 안 나고요. 새벽 3시에 일어나서 강원이 있는 현당 큰방에서 예불을 마치고 대웅전, 장경각에 예불하기 위해 대웅전 계단 층위에 올라섰는데, 하늘과 땅이 없습니다. 물질세계가 없어요. 몇 천만리 그저 억대로 표현하면 훤한 세계가 보입디다. 그러니까 내 눈앞에 대적광전하고 그 앞쪽으로 가려진 산도 없고 들도 없고 아무 것도 없어요. 몇 천만리 그저 훤한 옅은 황금색처럼 밝은 평야처럼 느껴졌어요. 평야처럼 느껴졌는데 그 평야에 수천 마디 끝에서 빨갛게 “옴마니반메홈”이라는 여섯 글자가 지평선에 걸쳐서 솟아오르는 것이 보였어요.
□ 태양같이 빨갛게요?
--“옴마니반메홈”이라는 여섯 글자를 앞뒤 아무 생각도 없이 쳐다봤어요. 그랬는데 어둡다는 것도 모르겠고 앞에 산도 없고 아무 것도 없어요. 수천만 리 환하게 트인 평야세계이고 약간 옅은 황금색의 황량의 세계처럼 그렇게 느껴진 그 끝에서 “옴마니반메홈”이 여섯 글자가 빨갛게 올라가지고 공중에 걸쳤는데 내가 그걸 쳐다보고 있었어요. 그러니까 시간도 공간도 잊어버리고 딱 떨어져 버린 세계예요.
그런데 나는 그 시간이 굉장히 긴 시간으로 느껴졌는데 불과 얼마 안 된 것 같아요. 내가 거기에서 서서 있는데 내 다음에 친구가 올라오면서 내 등을 치면서 "왜 우두커니 법당에 예불하러 안 들어가고 뭐 하냐"고 하여 내 본 정신으로 들어오니까 깜깜한 세계에 이쪽에 대웅전도 있고 저쪽에 산도 있고 들도 있고 집도 있고…. 그게 결국은 어떻게 이야기하면 공의 세계를 체험했다고도 할 수 있을까요 ?
□ 주력을 그렇게 하는 순간, 대웅전 계단을 올라서는 순간에 체험하신거네요?
-- 그런 현상이 나타난 겁니다. 그런 걸 체험하면서 또 한번은 그 무렵이에요. 산에 불이 났는데 그 때만 해도 산에 불이 나면 스님들이 밤이고 낮이고 직접 산 현장에 가서 불을 끌 무렵이에요. 한번 불이 나서 산에 불을 끄러 갔어요. 지금 해인사 들어 가다보면 새로 지은 길상암이라는 암자가 있는데 그 암자 뒤 오른 쪽에 썩은 나무들을 모아 놓은 곳이 있습니다. 그 근처에 불이 나 불을 끄러갔어요.
그 때는 어려서 산에 경험이 없고 산불에 경험이 없으니까 앞서서 불을 끈다고 뛰어 가다가 밑에서 바람이 올라와 내가 불 중간에 선 채 불꽃 속에 빠져 버렸지요. 그리곤 바위에 기대다가 못 견뎌서 거기에서 손을 놓고 굴러 떨어졌어요. 썩은 나무들이 불에 타다가 불이 붙으니까 전부 숯 덩어리 숯 바닥인데 거기에 내가 떨어져서 몇 바퀴 굴렀어요. 그러고 나서 불 속에서 이쪽에서 저쪽으로 건너갔는데 어른스님들이 "아이가 죽었다, 불이고 뭐고 아이를 찾아야 된다, 아이 죽었다", 하는 소리를 지르시고 계셨어요. 그때 내가 저쪽에서 "나 괜찮습니다, 불 끄십시다, 나 괜찮습니다", 소리를 지른 그런 기억이 있어요.
다른 데는 다친 데가 없고 이쪽 손 여기가 불에 대어서 약 한달 고생한 기억이 있습니다. 그 불길 속에서 그 무렵에 해인사 약수암 비구니 노스님들이 "아이가 안 죽고 살았다, 저것은 다른 아이보다 신심이 있어 부처님을 믿는 신심이 있으니까 아이가 그 속에서 안 죽고 살았다", 그런 이야기를 해 주시고, 네가 참 다행히 신심이 있어서 그 때 네가 안 죽고 살았다, 앞으로도 신심을 놓치지 말고 부지런히 하라는 격려를 들은 적도 있었습니다.
또 한 번은 6. 25 사변 때 해인사에 빨갱이라고 하는 사람들이 후퇴하면서 한 달 있었어요. 그 한 달 동안에, 나보다도 나이 어린 사람이 다 붙들려 가고, 나보다 나이 많은 사람이 붙들려 가는데, 그 사람하고 같은 자리에서 같은 농담을 하고 있었던 나에게는 가자고 소리치는 사람이 없고, 끌고 가는 빨갱이가 없었어요. 내 친구나 나보다 어린이들도 그냥 있다가 다 붙들려 가고, 나 혼자 큰방에 앉아 있는데, 쳐다보고 지나가는 빨갱이들은 있어도 따라 오라는 빨갱이들은 없어요. 혼자 우두커니 앉아 있었어요. 있으면서 “관세음보살”을 지극 정성으로 했죠. 그렇게 해보니 뭔가가 있어요. 이런 데에 대한 확신이 섰습니다. 그 무렵부터 내가 도감들에게든지 밑에 사람들에게 굉장히 강조를 하지요. "확신을 갖고 해봐라. 하면 된다. 해봐라 된다. 해라! 해라!" 이 소리를 그 때부터 강조하기 시작했지요.
□ 그 때는 “관세음보살” 염불을 하신 겁니까?
-- 육자 “옴마니반메홈” 진언을 했어요.
□ 당시 해인사에서 스님께서 인민군들에게 겪은 상황은 논리적으로는 잘 이해가 안 되는 거네요. 스님보다 어리고 같은 방에 있어도 인민군이 와서 데려가는데 스님은 건드리지 않고….
-- 부처님 말씀에 “관세음보살”을 지극 정성으로 하면 불에 들어가도 타지 않고 물에 떨어지지 않는다는 그 구절에 확신이 서면서 부처님의 경 이야기가 회의적이거나 의심하는 것이 아니고 틀림없는 말씀이라는 게 확신이 섰습니다.
또 하나 경험은 6 .25 사변 직후 무렵일 거예요. 해인사에서 그러고 있다가 청화(포항) 보경사 서운암이라는 암자로 갔어요. 서운암에서 기도를 하면서 또 이상한 세계를 체험했지요. 그 때는 능엄주를 했어요. 능엄주 100일 기도를 했지요. 그 때는 소금만 가지고 밥을 먹었어요. 거기에서 기도를 하는데 그 때 시간은 딱 8시간만 지켰어요. 새벽 2시간, 오전 2시간, 오후 2시간, 저녁 2시간 하면서 4분 정근을 했지요. 나머지 시간은 좀 자유스럽게 다니면서 마음의 끄나풀은 풀지 않고 했어요. 70일 지나면서 이상한 일들이 벌어지대요.
텔레비전, 라디오가 없는데 30리, 40리 바깥에 동네 일이 눈에 환하게 보이고 집집마다 대화가 내 귀에 들어오고 아침 식전에 아이가 반찬이 없어서 투정부리다가 두들겨 맞는다는 것까지 다 보고 듣고 했어요. 어떤 집에서는 그 때 가난한 시절이었으니까 돈이 없어서 아이가 학교 갈 무렵에 "엄마! 선생님이 돈 갖고 오라고 해", 그러면 엄마는 "어제 이야기 하지 집에 돈이 없다, 오늘 갔다 오너라, 오늘은 엄마가 준비해 놓을께", 하면 아이는 "오늘 가지고 오라고 해", 하고 엄마는 돈이 없어서 "오늘 빌려놓을 테니까 내일 갖고 가라", 하고 아이는 "오늘 가지고 오라"고 하면서 싸움이 벌어지고 두들겨 맞기도 하고…. 이런 현상이 다 보여요. 다 들리고 집집마다 이 모습이 전부 내 눈에 다 비쳐요.
그리고 그 무렵에는 내가 사람들 앞에 서면 플라스틱처럼 그 사람의 몸을 꿰뚫어 봐요. 뼈마디까지 꿰뚫어 봐요. 그러면 저 사람이 어디에서 병의 뿌리가 생겨서 지금 어디가 아프다, 저 사람 지금 어디에 아프다고 생각하는데 병 뿌리는 어디다, 등등 다 보여요. 그리고는 풀이든 나뭇가지이건 씹어서 먹여요. 그러면 "당신 아픈 거 낫소", 그렇게 말하면서 처방도 하고 그랬습니다. 보이니까. 그런 세계가 체험이 됩디다. 그러면서 착각이 벌어지는 거지요. 도인이 이런가 보다, 그래 가지고 앞도 뒤도 모르고 그러니까 기도 전심해야 되는 걸 느끼면서 그쪽에 자꾸 호기심이 갔어요. 그러다보니 본업이 등한시 되어 버리고 70일, 80일을 하고 난 뒤에 100일까지 시간은 갔는데 더 나아가진 못했죠.
그리고 그 다음 해에 자랑하고 싶어 도인이 있다고 알려진 상주 갑장사 금봉스님한테 찾아갔습니다. 그런데 그 도인스님이라고 하는 분이 체험하고 사는 세계가 내가 체험하는 세계보다 못한 거 아니냐고 자랑했더니 글쎄 금봉스님이 죽인다고 달려 들대요. "네가 중노릇을 하는 놈이냐, 천하의 마구니 놈이라고 너 같은 놈 살려두면 너 하나 뿐 아니라 다른 사람 망친다"고 막 칼을 들고 멱살을 잡고 그러셨어요. 그리곤 "내 곁에서 떨어지지 말고 있어야 된다, 떠나지 말라", 그러시고 그거 참 다 버려야 되는데 "네가 지금 집착이 되어서 버리기가 처음 시작할 때보다 죽기보다 안 떨어질 거다, 그쪽에 대한 집착이 안 떨어질 거다", 하고 꾸지람하셨어요. 그래서 100일 동안 거기에 붙들려서 매일매일 식칼이 목에 닿을 만큼 노스님이 호통치시고, " 너 같은 놈은 죽여 버려야 된다, 천하 마구니 놈 새끼", 하며 금봉노스님한테 붙들려 있었어요. 스님께서는 "아무 것도 생각하지 말고, 하지 말아라, 염불이고 하지 말아라", 호통도 들었습니다. 그 때 놓쳐버리고 난 다음에는 지금까지 그냥 못하고 이대로 사는 거예요. 그런 세계가 있었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참 아쉬워요. 그 때 내가 정신을 차리고 금봉스님께 묻고 그랬어야 했는데 내가 도인이 됐다고 착각했으니 참…. 출처 : 월간 "법회와 설법" 105호 |
우룡스님 |
첫댓글 전 개인적으로 우룡스님 글에서 많은 것을 배우기도 하고 자극받기도 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