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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춘객(賞春客)
표준대국어사전은 이 단어를 “봄을 즐기러 나온 사람”이라고 설명한다.
봄을 즐기러 나오면 꽃을 찾게 마련이지만,
꽃놀이가 봄놀이의 전부는 아니다.
봄이 무르익어야 비로소 맛이 드는 제철 음식이 있어서다.
눈이 즐거워야 봄이라지만, 입도 즐거워야 봄이다.
봄이 제철인 식재료는 산과 들과 바다에 지천으로 널렸다.
냉이·두릅·고사리 같은 봄나물도 좋고, 딸기처럼 새콤달콤한 과일도 좋다.
그러나 오늘 일타강사는 바다에 주목한다.
봄은 바다로부터 왔다가 바다로 가기 때문이다.
육지에 봄이 오면 만물이 소생하듯이, 봄 바다에도 겨우내 안 보이던 온갖 것들이 뛰쳐나온다.
💬 목차 : 일타강사가 차린 봄날의 밥상 도다리쑥국의 주인공은 도다리가 아니다 주꾸미 알을 꼭 먹어야 할까? 강굴, 섬진강에 벚꽃 흩날리는 계절의 별미 반짝 TIP : 바지락·백합·키조개… 봄 조개 스페셜 해수부가 선정한 4월의 수산물 해물찜의 미더덕? 저런, 당신이 먹은 건 OOOO다 |
목차를 찬찬히 보시라. 도다리쑥국부터 미더덕까지 다 있다.
혹자는 저런 하찮은 걸 먹으러 남도 끝까지 가야 하느냐 따져 물을 수 있겠다.
그러나 일단 믿어보시라.
일타강사는 봄마다 저런 하찮은 것 먹으러 쫓아다니다 봄날을 보냈다.
어떤 식재료든 당일 배송이 가능한 시대 아니냐고 또 따지실 수 있겠다.
서운한 말씀이시다.
집에서 아무리 좋은 식재료를 받아 먹어도 산지에서 먹는 맛을 따라올 순 없다. 예술에만 ‘아우라’가 있는 게 아니다.
어부가 배에서 갓 잡은 바닷것을 먹으면서 “이 맛에 배 탄다”고 자랑하듯이, 여행기자는 제철 음식 찾아 먹으며 직업의 보람을 찾는다.
무엇보다 잘못 알려진 봄 별미가 너무 많다. 이번 강의에서 하나하나 바로잡을 터이니 외우시라.
이를테면 같은 도다리쑥국도 경상도(통영)와 전라도(여수), 충청도(서천)의 도다리쑥국이 죄 다르다.
맛을 기준으로 한다면, 대한민국은 결코 작은 나라가 아니다.
도다리쑥국의 주인공은 도다리가 아니다
도다리쑥국은 봄날 남해안에서 많이 먹는 음식이다. 섬 쑥과 산란기 지난 도다리가 만나 환상적인 맛을 빚어낸다.사진은 경남 통영 해원횟집에서 맛본 도다리쑥국. 백종현 기자
사철 먹거리 풍성한 남해안에서도 3, 4월 딱 두 달 주인공 행세를 하는 음식이 있다. 도다리쑥국이다. 맛여행 매니어는 봄이 무르익으면 제대로 끓인 도다리쑥국 한 그릇을 찾아 경남 통영이나 전남 여수까지 기꺼이 달려간다. 도다리는 어느 바다에나 흔한 생선이고 쑥은 아파트 정원에도 보이는 뻔한 풀인데, 그러니까 흔하고 뻔한 것들끼리 만났는데 이 난리들이다.
먼저 도다리에 관한 상식부터 정리하자. 우리가 도다리라고 통칭하는 생선은 사실 다양하다. 서해안에 서식하는 ‘돌가자미’, 양식산이 대부분인 ‘강도다리’, 남해안과 서해안에서 두루 잡히는 ‘문치가자미’를 다 합쳐 도다리라 부른다. 쑥국에 들어가는 도다리는 대부분 문치가자미다. 국립수산과학원은 문치가자미를 “가을에는 서해 쪽에 살다가 겨울이 되면 남해로 내려오며, 산란기인 12월부터 이듬해 1월까지가 금어기”라고 설명한다. 남해안 지역 식당이 2월부터 문치가자미를 넣은 도다리쑥국을 메뉴에 올리는 이유다.
도다리쑥국은 문치가자미 금어기만 피하면 1년 내내 먹을 수 있는 음식 같지만, 그렇지도 않다. 음식의 맛을 책임지는 주재료가 도다리가 아니기 때문이다. 도다리쑥국의 주인공은 의외로 쑥이다. 초봄 강렬한 향을 내는 쑥이 도다리쑥국의 맛을 좌우한다. 통영과 여수의 도다리쑥국이 유명한 건, 해풍 맞고 자란 섬 쑥의 맛이 특별해서다(쑥이라고 다 똑같은 쑥이 아니다. 섬 쑥은 가격도 비싸다). 통영은 한산도, 여수는 거문도에서 쑥을 대량으로 재배하고 그 품질은 국내 최고로 통한다.
도다리쑥국에 들어가는 생선은 도다리가 아니라 문치가자미다. 작은 문치가자미는 뼈째 썰어서 회로 먹고 조금 큰 녀석을 국거리로 쓴다. 최승표 기자
제대로 끓인 도다리쑥국의 맛은 한동안 잊기 힘들다. 진한 향을 내뿜는 쑥은 억센 구석이 전혀 없다. 산란을 마친 봄 도다리는 맛이 형편없다는 사람도 있는데, 꼭 그런 것도 아니다. 숟가락으로 살점을 떠낼 수 있을 만큼 보드랍고 담백하다. 어차피 도다리쑥국의 주인공은 쑥이니, 조연 역할로 부족할 게 없다. 통영 ‘팔도식당’의 탁성호 사장은 “도다리쑥국을 찾는 사람이 부쩍 늘어 요즘은 6월에도 도다리쑥국을 팔지만 3, 4월 여린 섬 쑥으로 끓인 국에 비하면 맛과 향이 훨씬 못 미친다”고 말했다.
레시피는 식당마다 조금씩 다르다. 쌀뜨물을 쓰거나 된장을 푸는 집이 있는가 하면, 맹물에 소금만 넣고 맑게 끓이는 집도 있다. 일부 지역에서는 들깻가루를 넣기도 한다. 요즘에는 충남 보령·서천 같은 서해안에서도 도다리쑥국 파는 식당이 보인다. 한데 우리가 알고 있던 그 음식이 아니다. 쑥·도다리 외에도 팽이버섯·양파·쑥갓 따위의 채소를 듬뿍 넣은 전골이 나온다.
주꾸미 알을 꼭 먹어야 할까?
충남 서천 홍원항의 한 횟집 수족관에서 촬영한 주꾸미..이맘때 산란기를 앞둔 주꾸미는 크기가 낙지만 하다. 중앙포토
“주꾸미는 3~4월이 제철이다. 산란기를 앞두고 알이 꽉 들어찬 것은 특히 맛이 좋다. 가을에도 잡히지만, 알이 없기 때문에 맛이 떨어진다.”
국립수산물품질관리원의 설명을 인용했다. 정부 기관의 설명처럼 주꾸미는 산란기를 앞둔 봄이 제철로 통한다. 사실 모든 바닷것이 산란기를 앞뒀을 때 제일 맛있다. ‘제철 수산물’이란 단어가 산란기 앞둔 수산물이란 뜻이다.
하여 주꾸미 축제도 봄날에 열린다. 충남 서천 주꾸미 동백꽃 축제(3월 16~31일), 보령 무창포 주꾸미 도다리 대잔치(3월 23일~4월 14일)가 대표적인 주꾸미 축제다. 서해안 갯마을의 동백꽃이 뚝뚝 떨어질 때 서해 바다 주꾸미는 살이 차오른다. 축제가 열리면 통통하게 살 오른 주꾸미를 먹겠다고 전국에서 수많은 인파가 몰려든다. 특히 알 밴 주꾸미는 없어서 못 먹는다. 축제장 어시장과 식당에는 “알 주꾸미를 더 달라. 이것 먹으러 여기까지 왔다”고 목소리 높이는 관광객이 수두룩하다.
이 북새통이 여행기자는 불편하다. 어획량 때문이다. 명태 흔하다고 코다리부터 싹 잡아먹다가 명태 씨가 마른 꼴을 되밟으려는 것인지 진심으로 걱정된다. 실제로 주꾸미 어획량은 급감하고 있다. 2023년 주꾸미 어획량은 2203t(낚시 포획 제외)으로, 3년 새 반 토막이 났다. 악착같이 찾아 먹어야 할 만큼 주꾸미 알이 맛있는지도 솔직히 모르겠다. 충남 보령 ‘해마루횟집’의 김홍영 사장도 “손님들이 알 주꾸미를 찾지만 정작 남기는 경우가 많다”고 털어놨다.
정근영 디자이너
주꾸미가 옛날처럼 많이 잡히지 않는 원인을 놓고 어민과 낚시꾼의 의견이 팽팽히 맞선다. 어민은 “낚시꾼이 9월에 어린 개체를 남획하는 게 문제”라고 주장하고, 낚시꾼은 “봄에 알배기 주꾸미를 많이 먹어서”라고 반박한다. 주꾸미 어획량이 가장 많은 건 3~4월이고, 주꾸미 낚시 최대 성수기는 9월이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2018~2019년 주꾸미 금어기를 3~8월로 늘리자는 청와대 국민청원까지 올라왔었다. 주꾸미 생산량이 급감하자 해양수산부가 2018년 금어기를 지정했다. 금어기는 5월 11일부터 8월 31일까지로, 이 기간에 주꾸미를 잡으면 최대 2000만원의 벌금을 내야 한다.
주꾸미 샤부샤부. 주꾸미는 살짝 데쳐서 먹으면 더욱 쫄깃쫄깃한 식감을 즐길 수 있다. 임현동 기자
산란기를 앞둔 암컷 주꾸미는 사진처럼 쌀밥 같은 알을 배고 있다. 최근 들어 알배기 주꾸미를 찾는 사람이 늘고 있는데 알배기 주꾸미 선호가 주꾸미 어획량 감소를 부추긴다는 비판도 나오고 있다. 프리랜서 김성태
흔히 주꾸미는 매운 양념을 해 볶음이나 구이로 먹는다. 삼겹살과 함께 ‘쭈삼(주꾸미삼겹살)’으로 먹기도 한다. 양념이 매워 계란찜을 곁들이고 마지막엔 밥을 볶아 먹는다. 이런 음식에 쓰이는 주꾸미는 대부분 베트남·말레이시아 등 동남아산이다.
충남 해변이나 인천 같은 주요 산지에서 주꾸미를 먹는 방법은 조금 다르다. 산 주꾸미를 회 쳐 먹는 탕탕이, 채소·바지락 넣고 끓인 육수에 주꾸미를 살짝 데치는 샤부샤부, 미나리 같은 채소와 함께 매콤하게 버무린 주꾸미 무침을 주로 먹는다. 이렇게 먹으면 탱글탱글하고 보들보들한 주꾸미 고유의 식감이 도드라진다. 자극적인 볶음이나 구이를 먹을 때와 아예 다른 어종을 먹는 기분이다. 다시 강조하지만, 주꾸미는 알이 없어도 맛있다.
강굴, 섬진강에 벚꽃 흩날리는 계절의 별미
섬진강의 봄은 강굴의 계절이다. 강굴은 그냥 먹어도 좋지만 구워서 먹으면 더 좋다. 중앙포토
굴은 겨울 해산물이다. 김장철이 시작하는 11월 말부터 나오기 시작해 1~2월에 맛이 절정에 이른다. 경남 통영이나 충남 보령 같은 이름난 굴 산지도 겨우내 북적대다가 3월이 되면 썰렁해진다. 그러나 꽃 피는 봄에 찾아 먹는 굴도 있다. 우리가 아는 참굴보다 갑절이나 크고 담백한 ‘강굴’이다.
강굴은 이름처럼 강에서 사는 굴이다. 원래는 낙동강·영산강 같은 큰 강 하류에 두루 서식했는데, 산업화 이후 씨가 말라 지금은 섬진강 하류 기수역에만 산다. 국립민속박물관에 따르면, 섬진강은 한국의 5대 강 중에서 유일하게 하구언(河口堰, 바닷물의 하천 유입을 막기 위하여 쌓은 댐)이 없는 강이다.
정식 명칭은 강굴이지만, 섬진강변에서는 벚굴이 더 익숙하다. 벚꽃 필 때 맛있다고 해서다. 물속에서 입을 벌리고 속살을 드러낸 모습이 벚꽃을 닮아 벚굴이 됐다는 말도 있다. 강굴은 강바닥 바위에 붙어 자란다. 수하식이나 투석식으로 양식하는 참굴과 달리 100% 자연산이다. 종패도 뿌리지 않는다. 잠수부가 수심 10m 아래 바닥까지 내려가 일일이 굴을 딴다. 아무나 딸 순 없다. 섬진강을 마주 보는 전남 광양과 경남 하동 사람만 가능하다. 두 지역을 합쳐 딱 11명만 어업 허가를 갖고 있다.
섬진강 강굴. 서해나 남해 굴보다 월등히 몸집이 크다. 백종현 기자
강굴은 어획량이 들쭉날쭉하다. 양식을 하지 않아서다. 지난해에는 5㎏ 가격이 11만원까지 치솟았는데, 4월 중순 현재 가격은 4만5000원 수준이다. 약 30년간 망덕포구에서 강굴 조업을 하는 ‘청아수산’의 이성면 선장은 “굴이 해거리하는지 올해는 물량도 넉넉하고 굴 상태도 아주 좋다”며 “전국에서 벚꽃이 질 때쯤 판매량이 줄어드는데 5월까지도 주문을 받는다”고 말했다.
강굴은 껍질 크기가 어른 손바닥만 하고 30㎝가 넘는 것도 있다. 알도 통영 굴보다 갑절 이상 커 몇 개만 먹어도 배부르다. 참굴보다 짠맛과 비린 맛이 덜하고 감칠맛이 강하다. 포구 식당에서는 회를 팔기도 하는데, 찜이나 구이로 먹는 게 일반적이다. 이성면 선장은 “튀김이나 굴죽으로 먹어도 별미”라고 소개했다.
💬 반짝TIP : 바지락·백합·키조개…봄 조개 스페셜 봄은 ‘조개의 계절’이다. 『생선 바이블』을 쓴 어류 칼럼니스트 김지민씨도 다음과 같이 말했다. “봄은 조개 대부분이 맛난 계절이어서 요리 용도에 맞게 선택하면 됩니다. 모래가 씹히는 게 싫다면 깐 조개를 사 먹어도 좋습니다. 조개 껍데기가 특별한 맛을 내는 건 아니니까요.” 봄이면 아무 조개나 다 맛있다는 뜻이다. 전북 고창 하전 마을에서 맛본 바지락 음식. 제철 맞은 봄 바지락은 통통하고 달다. 최승표 기자 한국인이 가장 많이 먹는 조개는 바지락이다. 산란기인 여름을 앞둔 지금이 가장 맛있을 때다. 국과 찌개뿐 아니라 전·칼국수·파스타 등 여러 요리에서 두루 쓰인다. 바지락은 크게 두 종류로 나뉜다. 갯벌에서 캔 참바지락과 남해안 깊은 바다에 사는 물바지락. 물바지락이 채취가 더 어렵고 알이 커 가격이 비싸다. 국내 최대 바지락 생산지는 전북 고창 하전갯벌이다. 하전마을에 가면 다양한 바지락 음식을 맛보고 트랙터 타고 갯벌로 들어가 바지락 캐기 체험도 할 수 있다. 바지락 서식지에는 동죽도 산다. 요즘에는 바지락과 함께 종패를 뿌려 양식한다. 크기는 바지락보다 작지만 단맛이 더 강하다. 찌개나 해물탕, 칼국수, 파스타에 잘 어울린다. 서해와 남해에 바지락이 있다면 동해에는 개량조개가 있다. 명주조개 또는 노랑조개라고도 한다. 바지락보다 큼직하고 감칠맛이 강해 고급 조개로 통한다. 육수용으로도 좋지만, 조개가 주인공인 요리에 어울린다. 부산에서는 갈미조개라고 하는데, 삼겹살과 함께 구워 먹는 ‘갈삼구이’가 인기다. 인천 볼음도 영뜰해변에서 백합을 잡는 모습. 볼음도에선 그 귀하다는 백합을 잡을 수 있다. 손민호 기자 볼음도에서 손수 잡은 백합들. 백합은 생으로 먹을 수 있는 몇 안 되는 조개다. 손민호 기자 백합도 빼놓을 수 없다. 통통한 식감과 달큰한 맛이 일품인 고급 조개다. 백합을 상합(上蛤)이라고도 한다. 으뜸인 조개란 뜻이다. 서해안 갯벌이 주요 산지이지만 생산량이 많지 않다. 시중에는 중국산이 많이 유통되고 있다. 맑게 끓인 백합탕은 해장용으로 그만이고, 백합죽은 고소하고 든든하다. 전남 장흥 특산물인 표고버섯과 한우, 키조개를 한 번에 먹는 장흥삼합. 임현동 기자 곡식을 까부를 때 쓰는 키를 닮은 키조개도 맛이 잔뜩 올랐다. 서해와 남해에서 주로 채취한다. 여느 조개와 달리 두툼한 관자가 맛의 핵심이다. 회로도 먹고, 구이로도 먹는다. 전남 장흥에서는 ‘장흥삼합’으로 먹는다. 장흥 특산물인 표고버섯·한우·키조개의 합이 좋다. |
해수부가 선정한 4월의 수산물
해양수산부는 올해 4월의 수산물로 멍게(우렁쉥이)와 키조개를 꼽았다. 멍게는 3~7월이 제철이다. 나머지 계절에도 멍게를 먹지만 수확량이 적다. 멍게는 주요리보다 생선회를 먹을 때 몇 점 곁들이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멍게 산지에 가면 다르다. 멍게가 주인공인 밥상이 나온다.
경남 통영 영운항에서 멍게를 수확하는 모습. 사진 통영 멍게수협
멍게는 바닷속 바위에 붙어 사는 무척추동물이다. 우리가 먹는 멍게 대부분은 밧줄에 매달아 바다에서 키우는 양식 멍게다. 경남 통영과 고성, 거제 앞바다가 수온이 낮지 않고 파도가 세지 않아 멍게 양식에 적합하다. 통영시 산양읍 영운항이 최대 집산지다. 이맘때 고깃배들이 시뻘건 멍게를 주렁주렁 매달고 항구로 들어오는 진풍경을 볼 수 있다.
제철 멍게. 질 좋은 멍게는 몸집이 크고, 붉은색이 선명하고, 뿔이 고루 발달했다. 백종현 기자
통영의 대표적인 멍게 음식은 멍게 비빔밥이다. 서울 같은 도시 식당에서 멍게 비빔밥을 주문하면 멍게 회를 얹고 초고추장을 듬뿍 뿌려주는데, 멍게 산지에서는 이렇게 먹지 않는다. 고추장을 안 쓴다. 멍게 맛을 집어삼키기 때문이다. 통영음식문화연구소 이상희 대표는 『통영백미』에서 이렇게 썼다.
“손질한 멍게를 콩알 크기로 잘게 다진 뒤 멸장(멸치젓을 거른 맑은 장)과 실파, 다진 마늘, 깨를 넣고 무친다. 양념한 멍게는 숙성할수록 맛이 좋다. 일주일까지 숙성해도 좋다.”
경남 거제에서 맛본 멍게 비빔밥. 비빔밥 양념에 고추장 대신 숙성한 멍게 양념을 넣는다. 백종현 기자
통영 항남동의 멍게 요리 전문점 ‘멍게가’에서 맛본 비빔밥이 바로 이랬다. 흰 쌀밥 위에 어린 잎채소와 달걀 지단, 해초·김·오이 그리고 숙성한 멍게 양념이 한 줌 얹어져 있었다. 쓱싹쓱싹 밥을 비벼 한 숟갈 떴다가 깜짝 놀랐다. 멍게에서 은은한 바다 향이 전해졌다. 나머지 재료도 어느 것 하나 튀지 않고 묘하게 궁합을 이뤘다. 연신 놀라면서 숟가락을 들었고, 그릇이 깨끗하게 비워지기까지 긴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비빔밥이 멍게 요리의 전부는 아니다. 통영에서는 멍게로 전골도 끓이고 젓갈이나 김치도 담는다. 멍게는 호불호가 극명하게 나뉘는 어종이다. 그러나 통영에서 제철 멍게 밥상을 받아보면, 싫다는 사람도 생각을 고쳐 먹으리라 자신한다.
해물찜의 미더덕? 저런, 당신이 먹은 건 OOOO다
미더덕 비빔밥. 미더덕 산지에서는 미더덕을 찌개에 넣지 않는다. 속살만 발라 밥에 비벼 먹는다. 봄날 미더덕 산지에서만 먹을 수 있는 별미다. 임현동 기자
미더덕은 억울하다. 비슷하게 생긴 오만둥이가 미더덕 행세를 하고 있어서다. 사실 오만둥이의 정식 명칭이 주름미더덕이니 사촌뻘이라 할 수 있지만, 엄연히 다른 종이다. 무엇보다 맛이 다르다. 오만둥이가 젖소 앞다리살이라면, 미더덕은 ‘투뿔 한우’ 살치살이다.
미더덕에 관한 오해는 더 있다. 울퉁불퉁하게 생긴 미더덕을 통째로 먹고 있어서다. 미더덕은 껍질을 까고 먹어야 한다. 껍질째로 미더덕을 씹으면 입속에서 물이 톡 터진다. 이 물의 정체는 바닷물이다. 정확히 말하면 개흙 섞인 바닷물이다. 그것도 모르고 미더덕은 터뜨리는 맛이라느니, 입속에서 바다가 춤춘다느니 떠든다. 미더덕은 겉껍질 까고 속껍질까지 벗겨낸 뒤 속살을 깨끗이 씻어 먹는 해산물이다. 산지에서는 미더덕을 찌개에 넣고 끓이지 않는다. 날것을 그냥 먹는다. 멍게보다 더 쫄깃쫄깃한 식감이 난다.
미더덕은 오만둥이보다 훨씬 귀하고 비싼 고급 수산물이다. 가격이 세 배는 비싸다. 미더덕은 서울로 올라오기도 전에 갯마을에서 소진될 정도로 아는 사람은 알아서 찾아 먹는 귀한 식재료다. 이따금 서울 노량진수산시장에 소량 입고되기도 한다지만, 진짜 미더덕을 맛보고 싶다면 남해안으로 내려가야 한다.
미더덕은 오만둥이와 자주 헷갈린다. 왼쪽부터 미더덕, 겉껍질을 깎은 미더덕, 오만둥이. 임현동 기자
미더덕 회는 속껍질까지 까서 초장에 찍어 먹는다. 고소하고 싱그러운 바다 맛이 난다. 임현동 기자
국내 최대 미더덕 산지는 경남 창원 고현마을이다. 올망졸망 작은 섬이 앞바다에 떠 있는 작은 어촌에서 국내 미더덕의 80%가 생산된다. 그래서 다들 고현마을을 ‘미더덕마을’이라 부른다. 마을 주민 90%가 미더덕 양식업에 종사한다. 미더덕은 양식이지만 자연산이라고 불러도 무방하다. 고현마을 앞바다에 그물 걸어놓고 기다리면 봄마다 미더덕이 주렁주렁 올라온다. 사료를 주는 것도 아니고 약을 치지도 않는다. 그저 바다가 미더덕을 다 키울 때까지 기다리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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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최대 미더덕 산지인 경남 창원 고현마을의 잔잔한 바다. 임현동 기자
고현체험마을식당은 갓 잡은 미더덕으로 만든 요리를 맛볼 수 있는 곳이다. 고현마을에서 최고로 치는 미더덕 요리는 미더덕 회다. 사과 껍질 까듯이 칼로 미더덕 껍질을 벗겨낸 뒤, 탱글탱글한 미더덕 배를 갈라 바닷물과 개흙을 턴다. 민물에 살랑살랑 씻어 먹으면 그게 바로 미더덕 회다. 미더덕을 손질할 때 끝부분의 껍질을 남겨 씹는 맛을 더하는 게 포인트다. 오도독오도독 미더덕 회를 씹으면 입안에 달곰한 향이 퍼진다.
고현마을에서는 미더덕 회를 초장에 버무린 미더덕 무침, 미더덕 속살만 모아 뜨거운 밥에 올린 미더덕 비빔밥, 미더덕 살을 숙성해 만든 미더덕 젓갈도 맛볼 수 있다. 특히 미더덕 젓갈은 옛날 마산 앞바다로 불렸던 남해 갯마을에서만 먹을 수 있는 별미 중 별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