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의 세계
인간이 자신의 사상이나 정서를 표현하는 가장 강력한 도구는 물론 언어일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빙산의 일각일 뿐 수많은 대화들이 언어의 힘을 빌지 않고 이루어지고 있다.
대부분의 동물들이 가장 단순한 언어인 울음이나 외마디 소리만으로
대화한다고 생각하면 곤란하다.
갓난 아기와 어머니가 수많은 무언의 대화를 나누는 것을 우리는 안다.
우리는 침묵 속에서도 자신과 숱한 대화를 나누고
묵상 속에서 옛 성현이나 조상의 가르침을 듣고 배운다.
엄연히 존재하면서도 육안으로 보이지 않는 존재가 있고
청각이 포착할 수 없는 소리가 있다.
우리는 이러한 세계를 간과하고 살 수는 없는 것이다.
직관의 세계, 느낌의 세계 혹은 형이상학의 세계, 道의 세계라고도 할 수 있는
이러한 불가지의 영역은 우리를 에워싸고 있으며
人間生活의 대부분을 지배하고 있다.
그러한 세계에 대한 관심이 내 그림의 첫 걸음이다.
많은 형상있는 존재와 형상있는 소리 즉, 언어가 나의 감각기관을 통해 드나들고 있고
그 과정을 통해 하나의 화학반응을 일으켜서 타인과는 좀 다른 결과물을 드러내 놓는다.
그것은 나를 표현하는 것으로서 글이나 그림, 말이나 노래일 수 있다.
그 중에서 나는 그림을 통해서 대중에게 감각경험을 전달하고 공유해 볼 기회를 몇 번 가졌었다.
이번에 가지는 소박한 전시회에서는 문학적인 요소나 객관적 리얼리티를 많이 배제하고
회화 고유의 영역이라고 말해지는 행위성이나 색채의 자율성을 근간으로 해서
자연의 이미지를 추상적으로 재구성해 보았다.
쉽게 파악해 낼 수 있는 단순한 image에 단순한 세계지만 이면에는 무한한 세계가 펼쳐져 있음을
느끼면서 하나의 motive 즉, 부분을 통해서 전체상을 제시하고자 했다.
그 전체상이란 곧 우리가 속한 세계다.
거기에는 물질이 있고 허공이 있다.
빛이 있고 어둠이 있으며 생명이 있고 죽음이 있다.
드러나서 보이는 것이 있고 가리워져 숨은 것도 있다.
그래서 그 안에는 모든 것이 있다.
모든 것은 곧 하나이다.
새 소리가 무엇을 노래하며 무엇을 울음 우는지 알 바가 없어도
간혹 넋을 놓고 귀 기울일 때가 있다.
이 때의 새 소리는 한 편의 시다.
시가 이해되기 전에 읽혀지는 것이듯 새 소리 역시 우리에게 그저 들려올 뿐이다.
새 소리 사철 끊이지 않고 들려오는 아름다운 옥계에서 몇 점 그림을 이루었다.
새는 쉽사리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그의 아름다운 노래소리만 귓가에 여운을 남겨주지만
수목의 의연한 자태와 기암절벽과 팔각산의 정기와 어우러져
여기 깃들여 사는 사람들에게 어떤 위안과 힘을 불어 넣어주고 있는 듯하다.
그런 새 소리 같은 그림을 그리고 싶었다.
무심하여 더 없이 깨끗한, 항상스러워 가슴에 아로새겨지는,
그리하여 듣는 이의 마음을 정화하고 욕망을 분쇄시켜주는
깊은 밤 소쩍새 소리같은 그런 그림을 그리고 싶었다.
- 옥계에서
- 제4회 개인전 작가노트에서
새로 지은 팬션에서 내려다 본 팔각 산장
아름다운 통나무 목조 팬션
팔각산 등산로 입구에 자리했다.
잠이 참 잘 온다.
봄이 이미 문턱에 왔다.
한국적인 정감이 넘치는 조경.
단란한 아침 한 때...관세음 보살님 닮은 어머니와 두 아들 동빈 경빈, 그리고 미남형의 아버지 이민석...한 시를 한 백 수쯤은 외우신다.
내가 질항아리에 밑그림을 그려주고 민석형님이 새긴 부처님 상
기와에 새긴 달마도, 팔각산장주 이민석 형님의 작품이다.
토종닭 백숙과 미인도가 비치는 사발에 부어 마시는 동동주가 일품이다.
팔각산 지킴이라 자처하는 이민석 형님의 동동주 그릇에 드릴로 새긴 누드 드로잉과 권주시.
과거에 낙방한 청의거사... 바로 이민석 자신의 모습이기도 하다.
봉오리 맺힌 매화.
매화일생한 불매향이라...
더넓은 주차 공간
수려한 주변 경관
팔각산장 앞마당
보름달이 걸리면 더욱 아름다운 앞산.
메아리지는 기암절벽
얼짱으로 훌쩍 커버린 둘째아들 경빈이...
덕과 재주를 겸비한 큰아들 동빈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