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생 보은으로도 안 되는 이런 사랑 어떡하나 !
솔향 남상선 / 수필가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새벽빛 와 닿으면 스러지는
이슬 더불어 손에 손을 잡고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노을빛 함께 단 둘이서
기슭에서 놀다가 구름 손짓하면은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아름다운 이 세상 소풍 끝내는 날
가서 아름다웠더라고 말하리라. 귀천 / 천상병
요즈음 며칠 사이로 천상병 시인의‘귀천’이란 시구가 머릿속에 진을 치고 있다.
떠날 생각을 않는 것으로 보아 단단히 마음먹고 자리 잡은 것임에 틀림없다.
아마도 울 아버지께서 세상 소풍 끝내시고 선종하신 연세가 내 나이쯤이 되어서인지도 모르겠다.
‘아름다운 이 세상 소풍 끝내는 날’이 맴도는 걸로 보아 필시 무슨 준비를 시키느라 그러는 것 같다.
죽음이 두려운 건 아니지만 때가 가까워지면 평상시 않던 생각까지 한다더니 나도 모를 일이었다. 아름다웠던 추억들이 스크린 돌아가듯이 날 울컥하게 하고 있다. 아마도 세상 소풍 끝나는 날이 가까워졌는지도 의심을 해보아야겠다.
최 근일부터 여러 해 전의 일까지 반추하고 있으니 판도라 상자 같은 내 운명인지도 모르겠다.
수일 전 대천 정지식 제자의 초대를 받아 전민동‘해원 횟집’을 간 일이 있었다. 80년대 충고에서 담임했던 이상보 제자가 운영하고 있는 횟집인데 나는 그날 일을 잊을 수 없다. 낯가림을 하는 술이지만 기분 좋은 자리라서 소주 맥주 가미한 폭탄주를 2잔이나 마셨다. 정성을 다해 만든 희귀어 활어회에다 임금님 수라상에나 오른다던 옥돔 정식을 2차로 먹고, 비싸다고 하는 참치회로 마무리를 했다. 그 자리엔 충고 3학년 때 담임했던 부국건설 정지식 대표를 비롯해서 이상보 사장, 광주 국민은행 신승훈 본부장, 계룡시 국민은행 조남선 본부장이 자리를 함께 했다.
귀가할 때 불러준 콜택시 속엔 눈시울을 붉히게 하는 해원 횟집 이상보 부부의 정성과 사랑이 날 울리고 있었다. 정갈하고 큼직한 플라스틱 통 2개에는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사랑이 숨 쉬고 있었다. 우족에 방골과 사골을 고아 만든 몸보신 사골 곰탕이 자릴 하고 있었다, 손수 농사지은 무공해 연한 열무김치도 제자 부인 맛집 아낙의 음식 솜씨를 자랑하고 있었다. 3년 전에도 사골 곰탕으로 다 먹을 때까지 눈시울을 붉히게 하더니 이번에도 울컥하는 마음으로 맥질하고 있었다.
따뜻한 가슴으로 선하게 베풀고 사는 천연기념물 같은 제자 부부에게 느꺼운 마음을 전한다.
대천서 그날 제자가 올 때에도 스티로폼박스 3개를 가져왔다. 2개의 박스에는 오이김치, 열무김치, 배추김치, 가지 무침, 생채, 고추김치, 고구마 줄기 무침, 멸치 볶음, 감자 양념 요리, 산나물 무침, 쇠고기 장조림이 그릇 그릇에서 사랑싸움을 하는 듯했다, 또 한 개의 스티로폼박스에는 몸보신에 좋다는 전복 특상품 한 상자가 날 울리고 있었다.
강산이 세 번이나 바뀌고서도 남는 세월 속에서도 예나 지금이나 변함없는 제자 부부들의 사랑에 어떻게 보은을 해야 할지 모를 일이었다. 물심양면으로 받은 사랑과 격려 위로는 이루 말로 형언할 수가 없었다.
내 주변에는 따뜻한 용광로 가슴과 천사 가슴을 가진 사람이 너무나 많다. 천하의 무엇으로도 바꿀 수 없고, 값어치 환산을 할 수 없는 보물들이 주변을 에워싸고 나에게 사랑의 세례를 퍼붓고 있다. 그러기에 나는 세상 제일가는 부자가 된 셈이다. 분수를 조금 알아서인지 노자의 도덕경에 나오는 지족상락(知足常樂)으로 늘 감사하며 살고 있다. 제자 부부의 훈훈한 사랑의 체취가 채 가시기도 전에 일이 생겼다. 말복 전날 저녁에 김복숙 여사가 보신용 삼계탕을 끓여온 것이었다. 마늘에, 인삼에, 좋다는 건 다 넣고 끓인 삼계탕으로, 이 울보의 눈시울을 뜨겁게 하고 있었다. 숨겨놓은 염기 있는 액체를 양 눈을 통해 짜내고 있는 것이 분명했다.
내 2010년도에 아내를 잃은 고분지통(鼓盆之痛: 아내가 죽은 슬픔)으로 인생 비관도 많이 했지만 난 이런 분들로 인해 행복했었다. 아내를 잃은 상실감과 외로움으로 어려운 세월이기도 했지만 따뜻한 가슴을 가진 그 고마운 분들 덕분에 용기와 희망으로 열심히 살 수 있었다.
친구를 비롯한 지인, 선배, 후배, 제자들이 숱하게 많았기에 난 그 덕분에 재기할 수 있었다.
나는 지금까지 눈물겨운 사랑과 격려와 위로를 받는 행운아로 살아왔다. 고맙고 존경스럽고 감사한 분들이 내 주변에서 희망을 갖게 하고 용기를 낼 수 있게 해주었기에, 내 엉뚱한 생각으로 인생을 포기하고 싶었어도 포기할 수 없었다. 나는 평생 보은으로도 다하지 못할 존경스럽고, 자랑스러운 분들이 너무나 많다. 일일이 열거하기엔 그 수가 너무 많아 친구들 거론은 생략하겠다. 모두가 평생 잊을 수 없는 분들이지만 그 중에서 특기할 분들만 떠올리며, 감사를 드리려 한다.
내가 성공적인 교사로, 작은 거인으로 성장할 수 있게 해주신 이용만 선배. 고분지통으로 힘들어 하고 식사를 못할 때 점심시간이면 밥을 먹이려고 양팔을 끌고 가시던 그 당시 유성고 홍상순 교장님, 전용우 교감님, 아내 잃은 절망감에 사로잡혀 인생을 포기하려던 때 발신인 없는 택배 한방보약 한 상자로 희망과 용기를 갖게 했던 70년대 대전여고 제자 정길순 수석교사, 대천에 전원주택을 지어주겠다며 현재까지 사궁지수(四窮之首)의 밥반찬을 제공해 주고 있는 충고 80년대 제자 정지식과 그 부인 한창숙 여사, 아내 없이 반찬 걱정으로 전전긍긍하는 못난이에게 근 8년이나 반찬이며 김장을 해 주셨던‘자미지미’한정식집 남성문 여사님, 아내 이상으로 이 것 저 것 챙겨 주시고 곁에 계신 것만으로도 위로가 되고 있는, 하늘이 내린 또 다른 천사 김순자 부장님, 축하받을 큰일이나 애사에는 영락없이 나타나 축하와 위로의 메시지를 주었던 충고 80년대 정세훈 제자, 수필가 등단에 눈을 뜨게 해서 글을 쓰게 해주셨던, 엄기창 선생님괴 김용복 형님을 어찌 잊을 수 있으리오! 거기에 혼자 사는 늙은이의 건강을 걱정하여 공진단 보약으로 건강을 챙겨 주었던 보성 한의원 충고 80년대 제자 오용진 원장, 간간히 건강을 챙기라며 몸보신 우족 방골 사골 곰탕에 김치까지 담아 주셨던 80년대 충고 이상보 제자와 그 부인 김미애 여사님, 창궐하는 코로나와 건강을 염려하는 마음으로 마스크와 손 소독제를 수백 리 길 인천에서 보내 주었던 충고 80년대 하철옥 제자와 건강식품을 보내 주었던 충고 80년대 송재영 제자, 외모 차림새까지 신경을 써서 화장품까지 보내 주었던 정감이 있는 70년대 대전여고 안상호 제자,수시로 만든 보양식에 별미음식, 양념 절이김치, 김이 모락모락 나는 뜨끈뜨끈한 물만두에 찐 옥수수를 문고리에 수시로 걸어놓는 옆 라인의 김종복 여사님의 그 따듯한 가슴과 사랑을 어찌 잊을 수 있으리오!
이밖에도 크고 작은 감사해야 할 일들로 보은해야 될 분들이 많다. 또 평생 내 사랑이, 내 가슴이, 필요한 분들이 많아 아름다운 소풍 길 인생 끝내지를 못하는 거다. 내 가슴이 좁아 평생 보은으로도 안 되는 사람이라면, 온혈가슴을 가진 몇 사람을 꿔다가라도 보은하는 길을 챙기고 싶다.
내 살아야 할 이유 중 하나는 나와 내 사랑이 필요한 사람이 있어 그들을 챙겨야 하기 때문이리라.
평생 보은으로도 안 되는 이런 사랑 어떡하나 !
좁은 가슴이지만 평생 따뜻한 가슴으로 챙겨야겠다.
음수사원(陰水思源)하는 마음으로 베풀고 배려하며 사랑해야겠다.
아니, 사람답게 사는 사람 냄새로 평생 보은(報恩)의 길을 걸어야겠다.
첫댓글 그런 분들이 계시기에 세상 외롭지 않은겁니다. 그 많은 고마운 분들. 어찌 잊으리오. 저도 그 분들께 감사하렵니다. 내 친구 남상선 교사를 외롭지 않게 해주어서 고맙다고.
훌륭하신 주변분들을 보니 선생님께서 얼마나 열정적으로 근무하셨었는지 느껴지네요. 인품이 훌륭하시니 사람들이 따르고 챙겨드리고 즐거움과 아픔을 함께하는게 아닐까요? 더 건강하셔서 그분들과의 사랑과 우정을 나누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