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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광주대교구 꾸르실리스따 원문보기 글쓴이: 이선정스테파노
2025년 1월 17일 금요일
[(백) 성 안토니오 아빠스 기념일]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오늘 전례
안토니오 성인은 3세기 중엽 이집트 중부 코마나의 부유한 가정에서 태어났다. 그는 어느 날 “네가 완전한 사람이 되려거든, 가서 너의 재산을 팔아 가난한 이들에게 주어라.”(마태 19,21)라는 예수님의 말씀에 감화되어, 자신의 많은 상속 재산을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고 사막에서 은수 생활을 하였고, 많은 사람이 그를 따랐다. 그는 세상의 그릇된 가치를 거슬러 극기와 희생의 삶을 이어 갔으며, ‘사막의 성인’, ‘수도 생활의 시조’로 불릴 만큼 서방 교회의 수도 생활에 큰 영향을 주었다. 전승에 따르면, 그는 356년 사막에서 세상을 떠났다.
말씀의 초대
히브리서의 저자는, 믿음을 가진 우리는 안식처로 들어간다며, 불순종의 본을 따르다가 떨어져 나가는 일이 없도록 힘쓰자고 한다(제1독서). 예수님께서는 중풍 병자에게, 죄를 용서받았다며 일어나 걸어가라고 하신다(복음).
제1독서
<우리 모두 저 안식처에 들어가도록 힘씁시다.>
▥ 히브리서의 말씀입니다. 4,1-5.11
형제 여러분, 1 하느님의 안식처에 들어갈 수 있다는 약속이 계속 유효한데도,
여러분 가운데 누가 이미 탈락하였다고 여겨지는 일이 없도록,
우리 모두 주의를 기울입시다.
2 사실 그들이나 우리나 마찬가지로 기쁜 소식을 들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들은 그 말씀은 그들에게 아무런 이득이 되지 못하였습니다.
그 말씀을 귀여겨들은 이들과 믿음으로 결합되지 못하였기 때문입니다.
3 믿음을 가진 우리는 안식처로 들어갑니다.
그것은 하느님께서 “그리하여 나는 분노하며 맹세하였다.
‘그들은 내 안식처에 들어가지 못하리라.’” 하고 말씀하신 그대로입니다.
안식처는 물론 하느님께서 만드신 것들은 세상 창조 때부터
이미 다 이루어져 있었습니다.
4 사실 일곱째 날에 관하여 어디에선가 이렇게 말하였습니다.
“하느님께서는 하시던 일을 모두 마치시고 이렛날에 쉬셨다.”
5 또 여기에서는, “그들은 내 안식처에 들어가지 못하리라.” 하였습니다.
11 그러니 그와 같은 불순종의 본을 따르다가 떨어져 나가는 사람이 없게,
우리 모두 저 안식처에 들어가도록 힘씁시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복 음
<사람의 아들이 땅에서 죄를 용서하는 권한을 가지고 있다.>
✠ 마르코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2,1-12
1 며칠 뒤에 예수님께서 카파르나움으로 들어가셨다.
그분께서 집에 계시다는 소문이 퍼지자,
2 문 앞까지 빈자리가 없을 만큼 많은 사람이 모여들었다.
예수님께서는 그들에게 복음 말씀을 전하셨다.
3 그때에 사람들이 어떤 중풍 병자를 그분께 데리고 왔다.
그 병자는 네 사람이 들것에 들고 있었는데,
4 군중 때문에 그분께 가까이 데려갈 수가 없었다.
그래서 그분께서 계신 자리의 지붕을 벗기고 구멍을 내어,
중풍 병자가 누워 있는 들것을 달아 내려보냈다.
5 예수님께서 그들의 믿음을 보시고 중풍 병자에게 말씀하셨다.
“얘야, 너는 죄를 용서받았다.”
6 율법 학자 몇 사람이 거기에 앉아 있다가 마음속으로 의아하게 생각하였다.
7 ‘이자가 어떻게 저런 말을 할 수 있단 말인가? 하느님을 모독하는군.
하느님 한 분 외에 누가 죄를 용서할 수 있단 말인가?’
8 예수님께서는 곧바로 그들이 속으로 의아하게 생각하는 것을
당신 영으로 아시고 말씀하셨다.
“너희는 어찌하여 마음속으로 의아하게 생각하느냐?
9 중풍 병자에게 ‘너는 죄를 용서받았다.’ 하고 말하는 것과
‘일어나 네 들것을 가지고 걸어가라.’ 하고 말하는 것 가운데에서
어느 쪽이 더 쉬우냐?
10 이제 사람의 아들이 땅에서 죄를 용서하는 권한을 가지고 있음을
너희가 알게 해 주겠다.” 그러고 나서 중풍 병자에게 말씀하셨다.
11 “내가 너에게 말한다. 일어나 들것을 들고 집으로 돌아가거라.”
12 그러자 그는 일어나 곧바로 들것을 가지고,
모든 사람이 보는 앞에서 밖으로 걸어 나갔다.
이에 모든 사람이 크게 놀라 하느님을 찬양하며 말하였다.
“이런 일은 일찍이 본 적이 없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또는, 기념일 독서(에페 6,10-13.18)와 복음(마태 19,16-26)을 봉독할 수 있다.>
오늘의 묵상
오늘 복음은 중풍 병자의 치유 이야기만이 아닙니다. 예수님께서는 중풍 병자를 낫게 하실 뿐만 아니라 죄까지도 용서해 주십니다. 예수님께서 그에게 죄의 용서를 말씀하신 까닭은 그를 죄의 멍에에서 풀어 주는 것이 그에게 무엇보다도 필요하였기 때문일 것입니다. 당시 유다인들은 병이 곧 죄의 결과라고 생각하였습니다(요한 9,2 참조).
몸이 마비되어 이전에 누리던 자유를 빼앗긴 채 죄인으로 낙인찍히는 고통은 상상만 해도 끔찍합니다. 자신의 병고를 조금은 동정해 주는 듯하면서도 죄인으로 낙인찍고 수군덕거리는 주변의 시선은 무시하려고 해도 점점 그의 내면을 파고들었을 것입니다. 그러기에 자기혐오에 허우적거리면서도 자신을 단죄한 이웃과 세상을 향한 미움과 분노도 심상치 않았을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그를 들것에 싣고 와서는 지붕을 벗기고 구멍을 내 예수님 앞에 이르게 한 네 사람의 믿음을 보시고 중풍 병자에게 말씀하십니다.
“얘야, 너는 죄를 용서받았다”(마르 2,5). 그 말씀과 행위로 당신께서는 신성 모독자로 낙인찍히시면서도 그를 해방시키시어 온전한 몸과 마음으로 되돌려주십니다. 네 사람은 중풍 병자를 구세주께 데려다주었고, 그는 몸과 마음을 회복하였습니다. 그에게 세상은 다시 눈부시게 빛났습니다. 우리에게도 주님과의 깊은 만남의 시간, 나를 지탱해 준 소중한 가족과 동료들, 새로 만나게 된 감사한 세상에 대한 구원의 추억이 있을 것입니다. 구원의 추억과 은총을 빼앗기지 말고 삽시다.(김동희 모세 신부)
오늘 우리에게는 아픈 동료를 향한 측은지심이 조금이라도 남아있는지?
양승국 스테파노 신부님
“병자는 네 사람이 들것에 들고 있었는데.” 이 간단한 표현 안에 한 가련한 인생의 길고 고통스럽고 슬픈 스토리가 담겨 있습니다.
환자의 상태는 깊어질 대로 깊어졌습니다. 오랜 병고의 종착점을 향해 달려가고 있었습니다. 그는 스스로 힘으로 걷기는커녕 몸도 일으키지 못하는 중증 장애인이 되었습니다. 몸을 제대로 가누지 못하다 보니 매사에 누군가의 도움을 받아야만 했습니다.
저도 몇 년 전 심각한 목 디스크, 허리 디스크 증세가 겹쳐 죽을 고생을 한적이 있습니다. 삶의 질이 그야말로 심각히 떨어지더군요. 평소 식은 죽 먹기던 샤워하는 일, 옷 입는 일, 걸어다니는 일이 언제나 큰 숙제가 되었습니다.
미사를 봉헌할 때, 양손을 들어 올리는 일조차 버거워서 정말이지 우울했습니다. 고속도로 휴게소 주차장에서부터 화장실까지 불과 100미터도 안되는 거리를 다녀오는데 10분이 더 걸렸습니다. 그때 저는 장애를 안고 살아가는 이웃들이 일상적으로 겪는 고통이 얼마나 심각하고 다양한 것인지를 온몸으로 실감했습니다.
오늘 복음에 등장하는 환자도 마찬가지였을 것입니다. 병세가 심각해지다보니 돌아눕는 것조차도 누군가의 도움을 받아야만 했습니다. 식사하는 일, 용변보는 일까지 누군가의 도움을 받으니, 얼마나 부끄럽고 자존심이 상했을까요. 하루하루 살아가는 일이 너무나 버겁고 참담했을 것입니다.
이렇게 암담한 상태에서 하루하루 죽음을 향해 걸어가던 그에게 하루는 기쁜 소식이 전해졌습니다. 치유자 예수님에 대한 소식입니다. 그분 옷자락에 손을 대기만 하면, 그분 옆에 가까이 다가가기만 하면 그 어떤 불치병 환자이든 상관없이 그 자리를 훌훌 털고 일어난다는 데...
그러나 그는 사지가 마비되어 예수님 계신 곳을 찾아갈 방법이 없었습니다. 그때 기적같은 일이 그에게 벌어집니다. 누군지는 모르지만, 평소 그를 가엾이 여긴 네 사람이 그를 찾아옵니다.
네 사람은 즉석에서 그를 위한 간이침대를 만들었습니다. 긴 막대기 두 개 사이에 천을 대고 묶었습니다. 들것 위에 환자를 눕힌 네 사람은 보조를 맞추어 예수님께서 계시는 곳을 향해 부지런히 발걸음을 옮겼습니다.
환자와 함께 먼길을 걸어온 네 사람이 현장에 도착해보니, 산 너머 산이라고 난감한 일이 생겼습니다. 예수님께서 머무시는 집 안팎은 그분 소문을 듣고 온 사람들로 인산인해를 이루고 있었습니다. 완장을 어깨에 차고 질서 유지를 하고 있던 사도들이 번호표를 나눠주었는데, 순번에 따르면 이박삼일을 기다려야 했습니다.
고민을 거듭하던 네 사람 가운데 한 사람이 기발한 아이디어를 하나 제안했습니다. 정문, 후문이 모두 봉쇄되었으니, 지붕 쪽을 공략하기로. 네 사람은 환자와 함께 지붕으로 올라갔습니다. 다행히 유다인들 가옥의 지붕은 개폐식이었습니다.
어렵사리 예수님께서 앉아계시는 공간의 지붕을 연 네 사람은 환자의 들것 네 귀퉁이에 긴 끈을 매달아 조심스럽게 환자를 예수님 앞으로 내려보냈습니다. 해도해도 너무한 그들의 기상천외한 방법에 화가 날 법도 한데, 예수님께서는 환자를 향한 그들의 적극성과 예수님을 향한 강한 믿음을 높이 평가하시고 치유의 은총을 선물로 주십니다.
오늘 복음은 인간의 비참함과 인간의 위대함을 동시에 묵상하도록 초대합니다. 네 사람은 구원자 예수님에 대한 확고한 믿음을 지니고 있었습니다. 동시에 환자를 향한 따뜻한 마음, 강한 연민의 마음을 지니고 있었습니다.
오늘 우리 공동체를 바라봅니다. 오늘 우리에게 네 의인이 지니고 있었던 아픈 동료 인간 존재를 향한 측은지심이 조금이라도 남아있는지 모르겠습니다. 이런저런 병고에 시달리는 이웃을 어떻게 하면 치유시키고 구원으로 인도하고픈 열정이 어느 정도인지 반성합니다.
조재형 가브리엘 신부님
한국에서 신부님 두 분이 왔습니다. 두 분 모두 ‘교구청’에서 함께 근무했었습니다. 한 분은 선교와 전례 담당 사목을 하였고, 다른 한 분은 직장인 사목을 하였습니다. 당시 저는 ‘교육 담당 사목’을 했습니다. 2002년의 일이니, 어느덧 23년이 지났습니다. 40대 초반의 우리는 열정과 힘이 넘쳤습니다. 교회의 현실과 미래에 관해서 밤을 새워 토론했습니다. 우리의 힘을 한 곳으로 모으기 위해서 성격 유형 검사를 받기도 했고, 강화도로 연수를 가기도 했습니다. 한 분은 그 뒤 2013년에 교구청에서 저와 함께 일했습니다. 저는 성소 국장으로 일했고, 신부님은 해외 선교 사목 국장으로 일했습니다. 공자께서는 “멀리 벗이 찾아와서 함께 하니 이보다 더 좋은 일이 없다.”라고 말했습니다. ‘죽마고우가 이 먼 곳까지 찾아주었으니 얼마나 기쁜가, 같이 밤새도록 술잔을 주고받으면서 살아온 이야기를 나눠야지’라는 뜻이 아닙니다. 그것은 내가 중시하는 가치를 똑같이 중요하게 여기는 사람을 만난 기쁨에 관한 것입니다. 살아가는 방식이 같은 동행자, 같은 길을 걷는 도반, 또는 같은 뜻을 가진 동지를 뜻합니다. 예전처럼 열정과 힘이 넘치지는 않지만, 예전에는 미처 갖추지 못했던 덕과 온화함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신부님들은 지구장으로 사목하면서 교구장님을 도와드리고 있습니다.
작년 12월 3일 ‘비상계엄’이 선포되었습니다. 전시와 내란 상황이 아니었습니다. 국가적인 재난이 발생하지도 않았습니다. 대통령은 국회가 말을 듣지 않아서 조금 겁을 주려고 계엄을 선포했다고 했습니다. 상식적이지 않은 비상계엄, 국민의 주권을 심각하게 침해할 수 있는 비상계엄을 쉽게 선포되어서도 안 되고, 그런 비상계엄은 또 다는 헌법기관인 ‘국회’만이 해제를 결의할 수 있습니다. 비상계엄은 선포한 지 3시간이 안 되어서 해제되었습니다. 헬기가 국회의 마당에 내렸고, 무장한 군인이 국회에 난입했습니다. 그럼에도 비상계엄이 해제될 수 있었던 것은 잘못된 비상계엄을 해제하려고 위험을 감수하면서 국회로 돌아온 국회의원들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부당한 진압 명령을 거부한 양심적인 군인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탱크와 총구를 맨몸으로 막아선 깨어있는 시민들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비상계엄의 부당함을 당당하게 알린 언론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비상계엄을 선포했던 대통령은 이제 조사를 받고 있습니다. 법은 만민에게 평등하게 적용된다는 점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인간은 사회적인 동물이라고 합니다. 사회는 조직이 필요합니다. 그런 조직은 책임자가 있기 마련입니다. 오늘은 신앙인이라면 갖추어야 할 삶의 모습을 함께 나누고 싶습니다. 첫째는 원칙입니다. 북극성은 움직이지 않기에 방향을 결정하는데, 도움을 주었습니다. 상식과 원칙이 지켜지는 사회는 희망의 불이 켜지기 마련입니다. 예수님의 원칙은 하느님을 사랑하는 것이었습니다. 하느님을 사랑한다는 것은 눈에 보이는 형제를 사랑함으로써 드러난다고 하셨습니다. 내가 원하는 것을 상대방에게 하라는 것이었습니다. 하느님께서 자비하시니, 우리도 자비로운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둘째는 소중한 것을 먼저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 소중한 것은 하느님 나라를 선포하는 것이었습니다. 사람들에게 복음을 선포하는 것이었습니다. 베드로 사도에게 소중한 것은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것들을 전하는 것이었습니다. 바오로 사도에게 소중한 것은 복음을 온 세상에 전하는 것이었습니다. 재물, 명예, 권력도 중요합니다. 그것들이 채워줄 수 있는 것들이 많기 때문입니다. 믿음, 희망, 사랑은 소중한 것입니다. 이 세상에서 이미 하느님 나라를 살 수 있도록 해 주기 때문입니다.
오늘 우리는 중풍 병자를 들것에 옮겨서 예수님께 데리고 간 이웃들의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4명의 이웃이 중풍 병자를 들것에 실어서 예수님께 데려갔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그들의 따뜻한 마음, 이웃에 대한 배려를 보시고 비상계엄처럼 사람의 존엄을 침해했던 중풍을 깨끗하게 고쳐주셨습니다. 중풍이라는 비상계엄을 해제해 주셨습니다. 그 이웃들은 이웃을 사랑하는 것이 하느님을 사랑하는 것이라는 원칙을 알았고, 실천하였습니다. 그 이웃들은 예수님의 사랑으로 중풍 병자는 치유될 것이라는 믿음이 있었습니다. 그 이웃들은 중요한 일들이 있었지만 소중한 일을 먼저 하였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그들의 믿음을 보시고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얘야, 너는 죄를 용서받았다.” 2025년 1월을 지내고 있습니다. 올해는 결심한 것을 끝까지 실천하면 좋겠습니다. 우리는 교회라는 구급차를 타고, 신앙에 목마른 사람들, 영적인 치유가 필요한 사람들을 구원자이신 예수님께 안내하는 따뜻한 이웃이 되면 좋겠습니다.
<땅 위의 그대 하느님의 사람아>
상지종 베르나르도 신부님
“하느님을 모독하는군.
하느님 한 분 외에 누가
죄를 용서할 수 있단 말인가?”(마르 2,7)
“이제 사람의 아들이
땅에서 죄를 용서하는 권한을 가지고 있음을
너희가 알게 해 주겠다.”(마르 2,10)
하느님 한 분 외에
아무도 할 수 없는 일을
하느님께서 기꺼이
그대에게 맡기셨으니
땅 위의 그대
하느님의 사람아
하느님께 미루지 말고
오롯이 믿으시게나
하느님 한 분 외에
아무도 할 수 없는 일을
하느님께서 기꺼이
그대에게 맡기셨으니
땅 위의 그대
하느님의 사람아
하느님께 미루지 말고
마음껏 희망하시게나
하느님 한 분 외에
아무도 할 수 없는 일을
하느님께서 기꺼이
그대에게 맡기셨으니
땅 위의 그대
하느님의 사람아
하느님께 미루지 말고
뜨겁게 사랑하시게나
하느님 한 분 외에
아무도 할 수 없는 일을
하느님께서 기꺼이
그대에게 맡기셨으니
땅 위의 그대
하느님의 사람아
하느님께 미루지 말고
가득히 빛나시게나
하느님 한 분 외에
아무도 할 수 없는 일을
하느님께서 기꺼이
그대에게 맡기셨으니
땅 위의 그대
하느님의 사람아
하느님께 미루지 말고
어엿이 거룩하시게나
하느님 한 분 외에
아무도 할 수 없는 일을
하느님께서 기꺼이
그대에게 맡기셨으니
땅 위의 그대
하느님의 사람아
하느님께 미루지 말고
한없이 자비로우시게나
하느님 한 분 외에
아무도 할 수 없는 일을
하느님께서 기꺼이
그대에게 맡기셨으니
땅 위의 그대
하느님의 사람아
하느님께 미루지 말고
죽도록 살리시게나
오늘의 성인
성 안토니오(Anthony)
신분 : 수도원장, 수도승
활동지역 : 이집트(Egypt)
활동연도 : 251-356년
같은이름 : 안또니오, 안또니우스, 안소니, 안토니우스, 앤서니, 앤소니, 앤터니
성 안토니우스(Antonius, 또는 안토니오)는 수도 생활의 창시자로 공경을 받는다. 왜냐하면 그가 처음으로 은수자들을 한데 모아서 다소 산만한 형태이긴 하지만 처음으로 공동체 생활을 시작하였고, 그들에 대하여 어떤 권위를 행사하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자신은 고독하고 한적한 독수 생활을 오랫동안 계속하였다.
251년 이집트 중부 코마나(Comana)의 부유한 그리스도교 가정에서 태어난 성 안토니우스는 20세 되던 해에 부모가 사망하였는데, 하루는 부자 청년에 관한 복음 말씀을 듣고 하느님께 자신을 온전히 봉헌할 결심을 하게 되었다.
그래서 우선 자기에게 남겨진 유산을 팔아 가난한 이들에게 나누어 준 다음 남부 이집트의 고향 근처 산을 찾아다니면서 은수자의 지도를 받으며 독수 생활을 시작하고, 기도와 연구 및 자급자족을 위한 노동을 했다. 그러다가 그는 맹렬한 영적, 육적인 유혹으로 한 동안 고생하였으나 끝내 이를 극복한 뒤에 그 주위에 제자들이 모여들었다고 전한다.
312년에 그는 마을에서 멀리 떨어진 산기슭에 있는 빈 무덤 동굴에 거처를 마련하고 15년 동안 노동과 기도 그리고 성서 읽기에 전념하며 엄격한 독수 생활을 했다. 그 후 나일 강 끝에 자리한 피스피르(Pispir) 산에 들어갔다가 텅 비어 있는 성채를 발견하고, 입구를 막아 찾아오는 사람을 만나지 않고 약 20년 동안 또다시 독수생활을 했다.
이 때 그의 뛰어난 성덕과 수많은 기적에 관한 소문을 듣고 여러 가지 소망을 지닌 사람들이 성 안토니우스를 찾아와서 충고를 청하고 또 어떻게 사는지 살피러 왔다. 제자가 되기를 원하였던 많은 사람들에 의해 은수자들의 집단이 여러 곳에 생겨났는데, 그 중 니트리아(Nitria)와 스케티스(Scetis)가 유명하다. 이들은 공동체 생활을 하지 않고 각자 움막에서 살면서 주일이나 축일에 성체성사를 거행하고 영적 스승인 성 안토니우스에게서 지도를 받았다.
그러나 성 안토니우스는 독수자로서 더욱 충실한 삶을 살기 위해 홍해 근처에 있는 콜짐(Kolzim)이라는 높은 산으로 들어가 은둔소를 정하고 기도와 수덕 생활에 열중하였다. 성 안토니우스는 아리우스주의(Arianism)에 대항하여 정통 교리를 옹호해 달라는 알렉산드리아의 주교 성 아타나시우스(Athanasius, 5월 2일)의 청을 받고 알렉산드리아로 간 일 외에는 죽을 때까지 그곳을 떠나지 않았다. 만일 전승이 옳다고 한다면 그는 356년 105세의 나이로 사망하였다.
성 안토니우스에 대한 생생한 이야기가 전해진 이유는 그를 개인적으로 잘 알고 지내던 성 아타나시우스가 기록한 “안토니우스의 생애”(Vita Antonii)가 전해 내려오기 때문이다.
이 책을 보면 사막의 은수자들이 환상이나 혹은 무모한 짓을 저지르는 사람들이 아니라, 지혜로우며 영적인 사람임과 동시에 학문이 뛰어났으며 하느님을 섬기는 생활이 엄격하였다고 한다.
성 안토니우스는 생전이나 사후나 큰 영향을 끼쳤으며, 그에 대한 공경은 단순한 호기심이나 일시적인 사건이 아니라 지금까지도 계속되는 하느님의 종에 대한 사랑 때문이다.
성 안토니우스는 '사막의 교부', '모든 수도자들의 원조', '은수자들의 아버지'로도 불린다. 그의 휘장으로 묘사되는 그림은 돼지와 종이다
성 술피치오 (Sulpicius)
신분 : 주교
활동지역 : 부르주(Bourges)
활동연도 : +647년경
같은이름 : 술피치우스 술피키오 술피키우스
프랑스 파리(Paris)에 있는 성 술피스 신학교는 오늘 기념하는 성 술피키우스(또는 술피치오) 성인의 이름을 딴 것이다.
성 술피키우스는 624년 성 아우스트레지실루스(Austregisilus, 5월 20일) 주교를 계승하여 아키텐(Aquitaine) 지방 부르주의 주교가 되었다.
그는 한없이 자애롭고 너그러웠던 만큼 신자들로부터 한없는 사랑과 존경을 받은 이상적인 목자였다.
또한 그는 메로빙거 왕조 왕들의 폭정에 대항하는 국민들의 유일한 방파제 역할을 했던 국민적 영웅이었다.
성녀 로셀리나 (Roseline)
신분 : 동정녀
활동지역 : 빌르너브 (Villeneuve)
활동연도 : 1263-1329년
같은이름 : 로쎌리나 로셀린
카르투지오회 수녀인 성녀 로셀리나(Roselina)는 하느님께 봉헌한 삶을 살기 전에 부모로부터 강력한 반대를 받았다.
그녀는 성녀 클라라회 수녀들로부터 교육을 받았으나 자신은 카르투지오회에 대한 성소를 느끼고 있었다.
아마도 그녀는 25세 때에야 비로소 도피네(Dauphine) 지방 알프스(Alps)의 베르토(Bertaud)에 있는 카르투지오회 수녀원에 들어간 것 같다.
성녀 로셀리나는 모든 음식물을 일체 먹지 않고 일주일씩 단식하기가 예사였고, 스스로 더욱 엄격한 규율을 만들어 순종했고 하루에 3시간 이상 잠을 자지 않았다.
성녀 로셀리나의 제자들이 그녀에게 어떻게 하는 길이 천국으로 오르는 제일 빠른 길이냐고 물었을 때 “그대 자신을 아는 것”이라고 대답했다고 한다.
그녀는 자주 환시와 탈혼에 빠졌고, 다른 사람의 마음을 읽는 은혜도 받았다.
성녀 로셀리나의 유해는 죽은 후에도 살아 생전처럼 아름다웠고, 부패의 조짐이 전혀 보이지 않았던 것으로 유명하다. 5년 뒤까지도 생전의 모습 그대로 보존되어 만인의 공경을 받았다.
성녀 로셀리나는 로살리나(Rosalina) 또는 로솔리나(Rossolina)로도 불리며, 1851년 그녀에 대한 공경이 승인되었다.
교회미술에서 성녀 로셀리나는 흔히 치마에 장미꽃을 담고 있는 모습으로 그려진다.
이는 그녀의 어린 시절에 일어난 일에 근거한 것이다.
즉 성녀 로셀리나는 어린 시절부터 가난한 사람들에 대한 특별한 사랑을 갖고 있었다. 그래서 집안의 양식을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눠주곤 했는데, 어느 날 그 광경을 본 집안사람이 그녀의 아버지에게 이 사실을 알렸다.
어느 날 평소처럼 성녀 로셀리나가 자신의 치마에 빵을 가득 담고 나가다가 아버지를 만났다.
아버지는 그녀의 치마에 담긴 것이 무엇이냐고 물었고, 성녀는 놀라서 장미꽃이라고 대답했다. 아버지가 어린 로셀리나의 치마를 펼쳤을 때 그 안에는 실제 장미꽃으로 가득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