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담 이야기
속담은 오랜 생명을 가지고, 우리 생활 속에서 뭇사람들의 지혜로 갈고 닦이어 온 언어의 정수(精粹)로서, 그 속에 인생 체험의 미묘한 기지와 신랄한 해학과 엄정한 교훈을 담고 있는 구비 문학의 한 갈래이다.
촌철살인(寸鐵殺人)이란 말이 있다. 간단한 경구로 어떤 일의 급소를 찔러, 사람을 감동시키는 것을 비유할 때 쓰는 말이다. 이 말은 바로 속담의 기능과 쓰임을 단적으로 대변하는 말이라 할 수 있겠다. 천언만사(千言萬辭)의 장황한 설명보다는, 간결한 속담 한 마디가 강한 설득력을 발휘하는 경우를 우리는 흔히 본다.
속담이란 용어는 우리나라와 일본에서 쓰이는 것으로 중국에서는 쓰이지 않는 말이다. 중국에서는 속어(俗語)라는 말을 쓰고 있다. 이 속담이란 말이 우리나라 문헌에 나타나기는 선조 때 유몽인이 쓴 어우야담(於于野談)이 처음이다. 그런데 이 속담이란 것은 앞에서도 지적했다시피, 뭇사람들 즉 집단을 전제로 하여 생성되고 통용되는 특성을 갖는 것이기 때문에, 속담에는 자연 그 집단의 사회성과 역사성이 담기게 된다.
그러므로 어느 나라, 혹은 어느 민족의 속담을 이해하려면 먼저 그 나라나 민족의 사회적, 역사적 문화 형식을 이해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다.
영국 속담에 ‘구르는 돌에는 이끼가 끼지 않는다. (A rolling stone gathers no moss)’라는 것이 있다. 이끼란 더러운 것으로 관념하는 문화권에 살고 있는 우리들은, 이 속담의 의미를 ‘흐르는 물은 썩지 않는다.’의 뜻으로 받아들이기 쉽다. 그러나 그쪽 사람들은 이끼를 우리와 같은 의미로 생각하지 않기 때문에, 이런 뜻으로 사용하는 것이 아니다. 그들은 ‘지속성이 없고 변덕을 잘 부리는 자는 얻는 것이 없다.’ 라는 뜻, 즉 우리 속담의 ‘새가 앉는 곳마다 털 빠진다.’와 같은 뜻으로 사용하는 속담이다.
조선조 때 홍만종(洪萬宗)이란 이가 쓴 순오지(旬五志)에는, ‘고려공사삼일(高麗公事三日)’이란 속담을 다음과 같이 풀이하고 있다.
‘우리나라 사람은 일관성을 유지하지 못하고 정책에도 변함이 무상하다. 삼일이란 것은 그 오래가지 못함을 비유한 것이다.’라고.
고려(高麗)는 바로 우리나라를 지칭하는 말이요, 공사삼일(公事三日)은 정령이 사흘이 멀다 하고 일관성 없이 자주 뒤바뀐다는 것을 비유하는 것이니, 이 ‘고려공사 삼일’이란 속담은 지난 날, 우리나라 위정자들이 조령모개식으로 정책을 변개시킨, 일관성 없던 정치적 실상을 그대로 담고 있는 것이다. 우리의 달갑지 않은 역사적 일면을 보는 것 같아 입맛이 씁쓸하다.
우리가 흔히 쓰고 있는 ‘같은 값이면 다홍치마[同價紅裳]’란 속담도 이러한 문화적 배경을 깔고 생성된 것이다. 이 속담의 진정한 배경담을 모르는 이는 ‘같은 값이면 흰 치마보다 붉은 물감을 들인 물색 치마가 낫다.’라는 뜻에서 이 속담이 나온 줄 알겠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 우리나라 부녀자들의 전통적 의상 색깔을 이해하지 않고서는, 이 속담의 생성 근원을 알 수가 없다. 우리나라 부녀자의 전통적 의상 빛깔을 보면, 양가집 규수는 녹의홍상(綠衣紅裳)이라 하여 녹색 저고리와 붉은색 치마를 입었고, 과부나 기생 등은 청상(靑裳) 즉, 푸른색 치마를 입었다. 그러므로 동가홍상(同價紅裳)이란 이 속담은 ‘같은 값이면 과부를 데려오기보다는 처녀를 데려오는 것이 낫다.’라는 뜻에서 유래한 속담임을 알게 된다.
속담에는 이와 같이 그 속담의 생성 배경이 되는 문화적 요인이나 근원설화가 존재하는 것이 많다. 이러한 배경담을 가지고 있는 우리 나라 속담 몇 가지를 소개해 보겠다.
우리가 흔히 쓰고 있는 ‘꿩 대신 닭’이란 속담의 유래를 더듬어 보자.
이 속담은 자기가 쓰려던 것이 없으면, 그와 비슷한 것을 대신 쓰는 경우에 쓰는 속담이다. 이 속담 또한 이담속찬이란 책에 ‘꿩이 잡히지 않으면 닭을 준비함이 가하다.’ 라고 기록되어 있는데, 이 말의 출처는 주례(周禮)에서 비롯되었다 한다.
옛날에는 남과 교제할 때 반드시 선물을 보내었다. 처음에는 선물의 구별이 없었는데, 주례에 이르러 이를 제한하였다.
천자는 가죽으로 꾸민 비단으로 하고, 경(卿)은 염소로 하고, 대부는 기러기로 하고, 사(士)는 꿩으로 하고, 서인은 따오기로 하고, 최하 계급인 상공은 닭으로 주도록 폐백을 규정하고 있다.
신분의 순서에 따라 피백(皮帛), 염소, 기러기, 꿩, 따오기, 닭의 순서로 규정하였다. 사(士)의 폐백으로 사용되는 꿩이 없을 때는 하위 계급의 폐백으로 쓰는 닭을 쓸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다음으로 근래에 생긴 속담 하나를 보기로 한다.
계산이 틀리거나, 맡은 일을 제대로 정확히 처리하지 못하는 사람을 가르켜 ‘마산 상고 나왔나’라는 말을 쓰는 경우를 자주 본다.
그런데, 이의 유래담을 잘 알지 못하는 이들은 마산 상고를 상당히 오해하기까지 한다. 마산 상고가 전국의 상고 실력 경시 대회에서 꼴찌를 한 일이 있어서, 이런 말이 생겨났다는 이야기를 하는 사람도 있다. 그러나, 사실은 이와 전혀 다르다. 마산 상고는 그 지방의 명문교로서, 야구도 잘 하는 전국 굴지의 상업 고등학교이다.
이 속담의 유래는 일반 사람들이 알고 있는 것과는 반대로, 마산 상고가 바로 이런 명문교였다는 사실에 있다. 명문교인 마산 상고에 어느 해 대화재가 발생하여 건물이 전소한 일이 있었다.
그 학교 졸업생의 호적부라 할 생활기록부도 물론 다 타버렸다. 그런데 세상인심은 고약한 것이어서, 마산 상고 출신이 아닌, 2류 3류 출신은 물론이고, 어중이떠중이 같은 못난이까지 모두가 마산 상고 졸업생 명부가 없어진 것을 기화로, 자기도 마산 상고 출신이라고 우겨대는 것이었다.
실제 마산 상고 출신은 그렇지 않을 것인데, 이 가짜 마산 상고 출신은 실력이 부족한 까닭에, 매사에 실수 투성이었던 것이다. 그래서 이런 속담이 생겨난 것이다.
근래에 발생한 속담 얘기를 했으니, 잇달아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 좀 덧붙여야겠다. 허례허식이 우리 사회를 병들게 한다 하여, 가정의례준칙이란 것이 나와 이런 폐습이 좀 뜸해지는가 싶더니, 요즈음 와서는 또 호화 혼례식이란 게 사람들의 화제 거리로 오르고, 과다한 혼수 이야기가 우리를 우울하게 한다.
결혼은 사람과 사랑으로 하는 것인데, 혼수의 많고 적음이나 세칭 열쇠의 개수를 가지고 결혼 여부의 조건으로 삼는 사람이 있다고도 들리니, 이런 사람들은 처음부터 삶의 출발을 잘못하고 있는 것이라 하겠다. 좀 심한 말로 표현한다면, 이런 사람들은 참된 삶의 자격을 소유할 수 없는 자들이라 하겠다.
세상만사가 다 그러하듯이, 내실이 없거나 자신이 없는 사람은 원래 형식적인 겉치레를 많이 하는 법이다. 혼수를 호화롭게 장만하려 하는 자도 바로 이런 부류에 속하는 못난 자들이다.
옛날에도 혼수는 힘겨운 것이었기에 많은 일화를 남기고 있다. 오동나무를 키워 장롱을 만들어 보내겠다고 딸 둔 집에서 오동나무를 심던 습속이나, 밥 한끼 지을 때마다 쌀 한 줌씩 떠내어 혼수감 준비를 위해 비축하던 습속 등이 그것이다.
나이가 차도 혼수감이 없으면 시집을 못 가는 처녀들도 많았다. 가난 때문에 꽃 같은 나이를 눈물 속에 보내야 하는 일들이 벌어진 것이다. 이와 같은 애틋한 사연을 역사적 배경으로 하여 생겨난 속담이 있으니, 그것이 바로 ‘청산․보은 처녀 눈물 흘리듯’ 하는 속담이다. 청산과 보은은 예부터 대추가 많이 나는 곳이라, 이 대추를 팔아 혼수를 장만했던 것이다. 그래서 혼기를 앞둔 처녀들은 대추 농사가 잘 되기를 기다리게 되었다. 그러나 비가 오면 대추 농사는 망치게 되는 것이다.
특히 복날에 비가 오면 그 해의 대추 농사는 흉작이 된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복날에 비가 오면 청산․보은 처녀들은 눈물을 흘렸다. 시집갈 혼수를 장만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이와 같은 배경을 깔고 생성된 ‘청산․보은 처녀 눈물 흘리듯’이란 속담은, 그러기에 ‘말은 못하고 속으로 흘리는 눈물, 특히 혼기를 앞둔 처녀가 아무 준비도 안 되어 있는 상태에서 흘리는 눈물’을 가리키게 되었다.
속담은 집단 속에서 생성되고 소멸하는 것이기 때문에, 인간이 사회를 이루고 이 땅에 존재하는 한, 속담은 없어지지 않을 것임은 물론이려니와, 그 시대와 사회에 맞는 새로운 속담이 자꾸 생겨날 것이다.
그러나, 세계로 웅비하는 우리에게, 이제 보은 처녀 눈물 흘리는 속담이나, 사촌 논 사면 배 아프다는 그런 속담만은 하루 빨리 없어지고 더 생기지 않았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