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아름다운 금강송 천년 숲에는·②
세계 최초로 혼례 치른 미인송
준경묘역 ‘준경미인송’을 찾아가는 길은 1시간의 거리이다. 급경사 포장길을 돌아 오르다 보면 쬐금은
힘들다 할때 쯤 호젓하고 운치 있고 편안한 숲길에 닿는다. 이 일대는 우리나라에서 100~200년 된 아
름드리 금강송이 빼곡히 들어차 있는 <아름다운 천년의 숲>이다. 수령이 오래된 금강송 군락지로, 나
라와 문중에서 숲을 관리한 탓에 나무 원형이 잘 보존돼 있고, 소나무 혼례식도 있을 수 있었다.
2001년 5월 8일 ‘소나무 혼례’가 열였다. 주인공은 삼척 준경묘역의 금강송 숲에 있는 ‘준경미인송’이
다. 신랑은 조선시대 세조가 벼슬을 내린, 충북 보은 정이품송이다. 수령이 600여 년에 이르려 많이 노
쇠해지고 폭설과 비바람에 가지가 부러지면서 기력을 잃어감에 혈통보존을 위해 혼례를 치뤘다.
세계 최초의 소나무 혼례식을 치룬 ‘준경미인송’ 친정은 삼척 준경묘역 금강송 숲이다. 준경묘역 들머
리 야트막한 비탈면에 올곧게 자란, 한국 최고의 미인송 보호수 앞에 도착했다. 세계 최초의 <소나무
전통 혼례식>은 전통혼례의식에 따라 주례는 신순우 산림청장이, 신랑은 보은 삼산초 6년 이상훈 군
이, 신부는 삼척초 6년 노신영 양이, 신랑 혼주는 보은군수가, 신부 혼주는 삼척시장이 맡아 진행됐다.
혼례식에 이어 바로 합방의 예는 나무를 잘 타는 청년이 정이품송에서 채취한 화분을 허리춤에 차고
맨손으로 32m 높이의 미인송 꼭대기로 올라갔다. 붓으로 수술 화분을 찍어 미인송의 암술에 묻히는
작업을 한 후 주변 나무의 꽃가루가 넘보지 못하도록 비닐포장지를 씌웠다. 이렇게 세계 최초로 혼례
식을 치른 소나무는 한국기네스에 등재되었다.
후일담으로 세계 최초로 혼례를 치른 미인송 자손목 소식이다. 장자목長子木 200여 그루 중 생육상
태가 좋은 58그루를 DNA검사로 최종 남은 것은 34그루이다. 34그루 중 10그루는 서울올림픽공원 외
9곳에 분양되고, 24그루가 수원국립과학원 혈통보존원에서 자라고 있다.
가장 아름다운 금강송 천년 숲에는·③
조선왕조의 뿌리 준경묘·영경묘
‘용비어천가龍飛御天歌’의 첫 용, 목조가 살던 옛집 터가 삼척시 미로면 활기리 재실 앞 강가 산자락
에 지금도 남아 있다. 조선 태조의 4대조인 목조 이안사의 부모 묘가 삼척에 존재하게 된 것은 전주지
방의 유력한 토착세력이었던 목조가 향촌사회를 붕괴시키는 수령의 악정과 당시 집권세력에 대한 불
만 때문에 170가구 추종 세력을 거느리고 외가가 있는 삼척으로 이주한 것이 계기가 됐다. 목조는 삼
척에 17년 동안 머물었다. 이 기간 중에 부모가 모두 사망해 삼척에서 장례를 치렀다. 조선조 개국설
화 '백우금관'의 전설에 장례 내용이 재밋다. 그리고 마을 이름을 임금의 조상이 살던 곳이라 하여 '황
기皇基'라 부르고 집터를 '왕대王垈', 양묘를 '능陵'이라 불렀다.
목조의 옛집 터를 보고, 아름다운 천년 숲 금강송림길을 걸어 준경묘역에 도착했다. 키 큰 금강송 숲
의 나무들이 묘역을 향해 경배하는 준경묘와 전각과 홍살문이 눈에 들어왔다. 준경묘와 영경묘는 조
선을 건국한 태조 이성계의 5대조인 이양무 장군과 그의 부인 이씨의 묘이다.건국 초기부터 4대조 목
조,그리고 익조, 도조, 환조의 능과 함께 왕실에서 보존 관리해온 조선왕조의 뿌리라는 가치를 지니고
있다.
양묘는 외침 등 나라의 수호가 약화되었을 때는 고을 백성들이 충심으로 정성껏 수호해 왔다. 고종대
인 1899년 조칙詔勅을 내려 묘소 전담기구 영건청營建廳을 설치하고 대대적인 수축공사를 했다. 「준
경濬慶」, 「영경永慶」이란 묘호墓號를 내려 국능으로 공식 추봉했다. 이때 기록된 영건청의궤營建廳
儀軌는 2016년 국가보물 제1901-9호로 지정되었다.
가장 아름다운 금강송 천년 숲에는·④
숭례문 복원 금강송 그루터기
금강송을 베어낸 그루터기에는 왕실의 문화와 불에 타 소실된 숭례문 복원의 역사가 서려 있다. 당
시 화재로 소실된 숭례문崇禮門[국보 제1호 조선시대 서울 성곽의 정문,남대문]으로 전국민이 안타
까워 했다. 그리고 준경묘역에서 숭례문 복원 금강송 벌채가, 당시 소나무 영혼을 달래는 고유제와
산신제 후 “어명이요!” 시범벌채 모습이 지금도 생생히 기억이 된다. 당시 첫 번째 베어진 나무를 검
정한 결과 흉고직경 74cm, 나무높이 30m에 달하는 110년 생으로 판명 됐다. 2008.12.10. 삼척 준경
묘역 인근에서 2008.2월 화재로 소실된 숭례문 복원과 광화문에 쓰일 금강송 벌채를 위한 고유제와
산신제를 지낸 후 벌목한 그 나무의 그루터기는 지금도 그자 리에 있다. 금강송은 곧은 데다 워낙 단
단해 잘 트거나 잘 썩지 않는다. 예부터 궁궐이나 절집에 쓰였다.
흉고직경 70~80cm 크기의 금강송 20그루 벌채를 지휘한 숭례문 복원 대목장은 당시 “흉고직경이
70~80cm에 달하는 금강소나무 20그루를 한꺼번에 만날 수 있는 곳은 전국에서 오직 삼척의 준경묘
역 뿐”이라 말했다. 또한 “송진이 가득 차 비를 맞아도 부식이 안 되고, 넘어져도 부러지지 않는 최고
의 목재”라고 평가를 했다. “숭례문과 광화문 복원에 조선왕조의 개국전설이 깃들어 있는 삼척 준경
묘역의 황장목이 사용됐다는 역사 문화적 의미를 상량문에 담아 후손에게 전하겠다”고 당시 문화재
청 최병선 과장의 말이였다. 삼척의 금강송이 숭례문 및 광화문 복원 대들보로, 추녀로, 기둥 등 중요
목재로 사용 되였다. 소나무 특히 금강송은 이름이 몇개 더 있다. 나무 속 기둥이 누런창자 같다고 해
황장목黃腸木이라 하고, 금강석처럼 단단하다고 해 금강송金剛松이라 하고, 미인처렴 날씬하여 미인
송美人松이라 불리운다.
가장 아름다운 금강송 천년 숲에는·⑤
강원도관찰사 봉심奉審 재현
매년 4월 20일에 삼척에서 준경묘·영경묘 봉심奉審행사가 열린다. 봉심이란 사당이나 능소에 나아
가 사초와 수목, 건물과 기물 등을 직접 그 상태를 살펴보는 것이다. 조선왕실의 뿌리 봉심의식은 국
왕의 명을 받아 중앙관서에서 파견된 책임자가 묘역의 상태를 살피고 임금에게 보고하는 충성과 효
심이 담긴 의식이다. 전주이씨 청명대제淸明大祭와 함께 진행한다. 당시의 복장과 의식 등이 장소와
어우러져 특별한 볼거리 이고, 그 행사를 보면 충忠과 효孝가 보인다.
삼척 양묘兩墓의 봉심은 1899년 왕명에 의해 제정된 수호절목守護節目에 ‘관찰사는 매년 한차례 봉
심한 후에 이상유무를 장례원과 종정원에 보고하여 등문登聞할 수 있도록 할 일’이라고 규정되어 강
원도관찰사가 매년 정기적으로 봉심하였다. 2013년부터 시작한 준경묘 관찰사봉심의식 재현은 양묘
를 600여 년간 지켜온 삼척사람들의 정성과 충심과 효심을 저력에 담았다.
준경묘 봉심의 관찰사 행열 인원은 53명이다.선두기-선두군관-의장기수-집사관-관찰사-삼척군수
-육방관속-유생-수호군-나졸 순이다.행열이 홍살문 앞에 당도하면 관찰사 숙배를 하고,능상으로 올
라가 무너진 곳이 없는지 살피는 능상봉심을 하고, 비각으로 내려와 비각 안팎의 상태와 청결상태를
확인한다. 정자각에 도착하여 정자각 안팎의 상태와 청결상태를 확인하고, 제기를 점고한다. 봉심 마
지막으로 수호군과 수봉관, 수복이 정자각과 비각을 청소하면서 강원도관찰사 봉심은 마무리 된다.
가장 아름다운 금강송 천년 숲에는·⑥
준경묘 청명대제淸明大祭
청명대제淸明大祭는 청명제례 봉행이다. 청명淸明이란 일 년 중 날이 가장 맑다는 24사절기의 하나이
다.예로부터 한 해의 농사를 시작하는 중요한 날로 여겼고, 또한 조상의 묘소를 살피거나, 새 봄을 맞아
야외에서 음식물寒食을 먹으며 보내는 좋은 날이다.
매년 4월 20일에는 준경묘·영경묘에서 전주이씨 청명대제가 강원도관찰사 봉심과 함께 열린다.양묘의
제향은 조선 초기부터 국가차원에서 행해져 왔고 나라 정세에 따라 중단과 수호를 반복하다가 1899년
묘 수축과 국능 추봉 이후 부터는 왕실에서 정한 청명제 의례절차가 확립되었고, 1981년 부터는「준경
묘영경묘봉향회」가 청명대제를 전승하고 있다.
왕실의 무덤인 능원묘陵園墓를 살펴본다. 능陵은 왕·왕비, 원園은 세자·세자빈·사친, 묘墓는 그 외의 왕
실 무덤인데, 준경묘와 영경묘가 묘墓에 해당된다.추존追尊이란 돌아 가신 뒤 직위를 높여 드린다는 의
미로 전례에 따라 왕이 아니었던 분을 왕으로 올려드리는 것은 추숭追崇,직을 높여 드리는 것을 추증追
贈이다. 조선시대 추존追尊된 분[추존을 일으킨 왕]은 목조·익조·도조·환조 등 아홉 분이다.
준경묘 제향은 죽은 자와 산자가 만나는 공간이다. 죽은 자가 머무는 봉분이 있는 능침, 죽은 자와 산자
가 만나는 정자각,산자가 제례를 준비하는 진입 부분으로 나뉜다. 홍살문이 죽은 자와 산자가 만나는 바
로 그 경계다. 홍살문에서 정자각으로 이어지는 길에 박석을 깔아놓은 참도가 있다.참도 가운데, 오른쪽
보다 약간 높은 곳이 향로가 들어가는 길을 향로라 하고,오른쪽 낮은 곳이 임금이 다니는 어로이다.청명
대제를 참관하면 준경묘 명당 중 명당의 '진응수眞應水'를 꼭 마실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