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의 봄
최용현(수필가)
2023년 12월 13일 오전 9시 40분, 천만 관객 돌파를 눈앞에 두고 있는 ‘서울의 봄’을 보러 아내와 함께 신도림테크노마트 12층으로 올라갔다. 평일 조조(早朝)인데도 영화관 앞에는 학생들로 가득 차 시끌벅적했다. 인근의 OO중학교 학생들이 단체관람을 온 것이었다.
‘서울의 봄’은 1979년 10.26사태로 18년간의 절대 권력자가 없어진 상황에서, 군사반란이 일어난 12월 12일 밤 9시부터 13일 새벽 6시까지 9시간 동안 하나회를 중심으로 한 반란군과 수도경비사령부를 중심으로 한 진압군의 상황을 시시각각으로 보여주는 영화이다. ‘비트’(1997년), ‘감기’(2013년)의 김성수 감독의 작품이다. 러닝 타임은 2시간 21분.
계엄 하에서 중앙정보부장의 공백으로 합동수사본부장을 맡게 된 보안사령관 전두광 소장(황정민 扮)은 우리나라의 모든 정보를 독점했다. 그는 차관들을 보안사령관실로 불러 보고를 받기도 하고, 청와대 비밀금고에서 나온 9억 원을 임의로 나누어주는 등 월권행위를 자행하고 있었다.
전 소장은 계엄사령관 정상호 육군참모총장(이성민 扮)이 자신을 동해경비사령관으로 전보(轉補)시키려 한다는 정보를 입수하고 선수(先手)를 치기로 한다. 그는 육사 시절부터 친구인 노태건 소장(박해준 扮)에게 10.26사태 당시 정 총장이 중앙정보부장과 함께 궁정동 안가에 있었던 점을 빌미로 정 총장을 체포하여 조사하겠다고 말한다. 그 시각, 정 총장은 갑종장교 출신 이태신 소장(정우성 扮)을 총장 공관으로 불러 수도경비사령관을 맡아달라고 요청한다.
다음날, 전 소장은 하나회 장교들과 친한 선배 장성들을 자택에 불러놓고 정 총장 체포계획을 밝힌다. ‘실패하면 반역, 성공하면 혁명 아닙니까.’ 하면서 작전명을 ‘생일잔치’로, 거사일을 12월 12일로 정한다. 이들은 걸림돌 3인방인 수도경비사령관 이태신 소장, 특전사령관 공수혁 소장, 헌병감 김준엽 준장을 당일 고급요정에 초치(招致)하여 붙잡아놓기로 한다.
12월 12일 밤, 최 대통령(정동환 扮)을 독대한 전 소장은 정 총장을 구속 수사해야 한다며 재가를 요청하지만 대통령은 내일 국방장관과 함께 오라며 재가를 거부한다. 그 시각, 보안사 요원들은 총장 공관에서 총격전 끝에 정 총장을 납치하여 보안사로 향하는데, 근처 국방부장관 공관에 거주하던 오 장관(김의성 扮)은 총소리가 나자 가족들과 함께 택시를 타고 미8군 영내로 도망친다.
한편, 연희동의 고급요정에서 전 소장을 기다리던 3인방은 정 총장이 납치됐다는 보고를 받고 각자 부대로 돌아간다. 보안사의 소행임을 알게 된 이태신 소장은 반란군 본부인 30경비단에 전화를 걸어 ‘정 총장을 다시 육본으로 모시고, 수경사 단장 등 반란 가담자들을 원대 복귀시켜라,’고 호통 치지만, 이들은 오히려 이 소장을 회유하려 한다.
전 소장은 도 준장에게 2공수여단의 서울출동을 지시하고, 노 소장에게도 전방 9사단의 서울출동을 요청한다. 그러자 이 소장은 서울과 가까운 8공수여단을 출동시킨다. 이에 놀란 전 소장은 참모차장 민 중장에게 2공수여단과 8공수여단을 동시에 회군시키자는 제안을 한다. 이는 전 소장의 기만전술이었으나, 민 중장은 이를 믿고 진압군에게 복귀 명령을 내린다. 8공수여단이 물러나자 2공수여단은 약속을 어기고 행주대교로 진입하는데, 이 소장이 다리 한복판에서 혼자 막아서지만….
한편, 반란군 4공수여단이 쳐들어오자 특전사령관 공 소장은 휘하 장교들에게 항복하여 목숨을 보전하라고 지시한다. 그러나 비서실장 오진호 소령(정해인 扮)은 사무실 가구들로 바리케이드를 치고 끝까지 남아서 총격전을 벌이다가 전사한다. 부상당한 공 소장은 반란군에게 끌려간다.
서울에 진입한 2공수여단은 육군본부에서 헌병감 김 준장을 체포한다. 이제 3인방 중에서 혼자 남은 이 소장은 휘하 여단장들이 반란군에 가담하는 바람에 직접 지휘할 수 있는 병력이 전차 4대와 장갑차 4대, 그리고 행정병, 취사병까지 총 104명뿐이었다. 이 소장은 이들과 함께 광화문으로 출동한다.
진압군은 겹겹이 세워진 바리케이드를 사이에 두고 반란군과 대치한다. 이때, 국방부 청사 지하에 숨어 있다가 반란군에게 잡혀온 오 장관이 마이크를 잡고 사격금지를 명한다. 이 소장이 반란군에 대한 체포명령을 요청하자, 오 장관은 오히려 이 소장을 직위 해제시킨다. 이 소장은 부하들에게 원대복귀 명령을 내리고 혼자 바리케이드를 뛰어넘으며 전 소장에게 다가가 ‘넌 군인으로서도 인간으로서도 자격이 없어.’라는 말을 내뱉고 반란군에게 체포된다.
반란군 지휘부는 오 장관을 앞세워 대통령의 사후재가를 받아낸다. 이들은 자축파티를 열고 단체사진을 찍는다. 그 시각, 부상당한 공 소장은 병원에 실려 가고, 보안사 서빙고 분실에서는 정 총장과 이 소장, 김 준장이 고문당하며 취조(取調)에 시달리고 있었다.
반란에 성공하여 정권을 장악한 신군부는 1980년 봄에 요원의 불길처럼 타오르던 대통령 직접선거의 꿈을 짓밟고, 광주에서 벌어진 5.18 민주화운동은 공수부대를 투입하여 무참히 진압했다. ‘서울의 봄은 그렇게 끝났다.’는 자막과 함께 영화도 끝이 난다.
영화관을 나오면서 화장실에서 들었던 중학생들의 대화 ‘저거 진짜로 있었던 일이야?’ ‘응, 100% 실화라던데….’가 귓전에 생생하다. 생각건대 이 소장이 행주대교에서 혼자 탱크를 막아서는 장면과 막판에 바리케이드를 뛰어넘으면서 전 소장에게로 가는 장면만 픽션이고 나머지는 실화가 아닌가 싶다.
실존인물 전두환과 장태완을 실제 이상의 악인과 의인으로 그려 좌파의 입장을 충실히 대변했다는 비판도 있지만, 44년 전 그날 밤의 상황을 누가 이보다 더 군더더기 없는 전개와 연출로 드라마틱하고 실감나게 되살려낼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다.
첫댓글 황정민 배우의 연기는 참 대단합니다. 실제 인물이 했을 법한 표정을 스크린에서 보여주어서 관객의 가슴을 출렁이게 하니깐요.
네, 동감입니다. 황정민이 제대로 메쏘드 연기를 보여주었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