색즉시공 공즉시색 (色卽是空 空卽是色)
물질적인 세계와 평등 무차별한 공(空)의 세계가 다르지 않음을 뜻함. 원문은 “색불이공공불이색(色不異空空不異色) 색즉시공공즉시색(色卽是空空卽是色)”이며, 이는 “색이 공과 다르지 않고 공이 색과 다르지 않으며, 색이 곧 공이요 공이 곧 색이다.”로 번역된다.
그리고 범어(梵語) 원문은 “이 세상에 있어 물질적 현상에는 실체가 없는 것이며, 실체가 없기 때문에 바로 물질적 현상이 있게 되는 것이다. 실체가 없다고 하더라도 그것은 물질적 현상을 떠나 있지는 않다. 또, 물질적 현상은 실체가 없는 것으로부터 떠나서 물질적 현상인 것이 아니다. 이리하여 물질적 현상이란 실체가 없는 것이다. 대개 실체가 없다는 것은 물질적 현상인 것이다.”로 되어 있다.
이 글을 읽으면서 나는 플라톤의 이데아를 공(空)의 자리에 놓아보았다.
존재자는 있는데 오히려 존재는 없음아닌가 하는 하이데거의 존재 자리에 공(空)을 넣어 보았다.
색즉시공은 동양의 존재론이다. 또한 존재론의 정수이다.
그러므로 쉽게 이해 할 수 없다.
어느 수준에 맞춰 설명해야 하는 것인가?
누군가 정령 이해하고자 하는 이가 있다면 고정관념에서 잠시 벗어나 스스로 따져보고 스스로 짚어보고 스스로 추궁해 가면서 글쓴이가 말하고자 하는 바가 무엇인지를 따라와 보기 바란다.
우선 색즉시공을 이해하기 위해서 제일 먼저 하여야 할 것은 색(色)은 무엇이고 공(空)은 무엇인가를 정확히 정립 하는 것이다.
이에따라 색(色)이란 무엇인가에 대해 살펴본 후에 공(空)에대해 살펴보기로 하자.
색(色)이 만물이나 만물을 만들어 내는 현상들을 의미한다는 것은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을 것이다.
따라서 우주내의 만물이나 이러한 만물을 만들어 내는 모든 현상들이 색(色)인 것이다.
그런데 어찌하여 색(色)이라는 단어가 만물이나 만물을 만들어 내는 현상들을 의미하는 단어로 쓰인 것인가에 대해서는 사람들이 의문을 같지 않는것 같다.
색(色)이라는 것은 음양의 결합 또는 음양의 결합물을 의미한다.
우리가 보통 갓 시집온 여인을 새색시라 하는데 이때 새색시라는 말의 뜻은 음양의 결합을 새롭게 시작하는 여인이라는 뜻이다.
또한 음탕한 사람을 가르켜 색기가 넘친다고 할 때 이 말의 뜻은 음양을 결합하고자 하는 기운이 넘친다는 뜻이다.
또한 색이란 글자에는 빨강, 노랑과 같이 색깔의 의미도 가지고 있다.
이렇게 색이란 글자가 색깔의 의미를 가지게 되는 것은 음양이 결합할 때 발생하는 열기의 상태에 따라 색깔(꼴)이 결정되어 지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현대에 색(色)이라는 글자는 색깔이라는 의미가 대표적으로 쓰이지만
색즉시공 공즉시색에서 쓰이는 색(色)의 의미에는 음양의 결합, 또는 결합물이라는 뜻이 담겨져 있다.
다음으로 공(空)에 대하여 알아보자.
공(空)이라는 단어를 이해하기 위하여 먼저 공간(空間)이라는 단어를 살펴보자.
공간(空間)이란 공(空)의 사이를 말한다.
우리는 하늘과 땅 사이의 공간에서 살고있다.
그렇다면 공(空)이란 하늘과 땅을 의미하는 것이고 이는 양(하늘)과 음(땅)을 의미하는 것이다.
다른 예를 살펴보자.
원자의 핵을 농구공만한 크기로 크게 확대하면 탁구공 만한 크기의 전자가 대략 30km밖에서 핵을 돌고 있다.
그 사이 즉 전자와 핵의 사이가 전부 공간이다.
(블랙홀은 이러한 공간이 없는 상태 즉, 전자와 핵이 모두 붙어있어 아무런 공간이 없는 상태를 말한다.)
위의 예들을 통하여 공(空)이란 무엇인가를 살펴보면 공간(空間)이라는 것은 하늘과 땅 또는 전자와 핵의 사이를 말하는 것이므로
공(空)이란 하늘과 땅 또는 전자와 핵 그 자체를 말하는 것이고 이를 음과 양이라고 말 할 수 있겠다.
위의 예에서는 이해를 돕기위해 단순히 음양이라 하였지만 정확하게 하자면 음양이 아닌 음,중,양이라 하여야 할 것이다.
그리고 음,중,양으로 이루어진 음양의 결합물은 삼태극이라 한다.
그런데 여기서 공이라는 것을 음,중,양으로 이루어진 음중양의 결합물 그 자체를 말한다 하였고 동시에 또한 그것을 삼태극이라 하였으니 어떠한 경우에 이러한 삼태극을 공(空)이라 하는지 살펴보아야 하는 것이다.
삼태극을 공(空)이라 하는 경우는 삼태극을 삼태극 내부에서 바라 보았을 때 이다.
지구도 하나의 삼태극이다.
그런데 이러한 지구를 지구 안에서 바라보았을 때에는 그것을 공(空)이라 하는 것이다.
반면 삼태극을 삼태극 밖에서 또는 외부에서 바라보았을 때에는 그것을 "알"이라 한다.
태양계의 시각으로 삼태극인 지구를 바라보았을 때에는 지구인 삼태극을 "알"이라 하는 것이고
삼태극인 지구 안에서 그 자체를 바라 보았을 때에는 그것을 공(空)이라 하는 것이다.
모든 생명체는 알(삼태극)에서 태어난다.
인간 역시 수정란이라는 알에서 태어난다.
다만 인간과 같은 포유류의 경우에는 그 알을 몸안에서 부화시켜 열 달 동안 키워 낸 다음 몸 밖으로 낳는 것일 뿐이다.
난생설화의 대부분은 동북아에 몰려있다.
동북아 즉 한민족의 영웅탄생 설화는 영웅은 알에서 태어난다는 것이다.
이 알은 삼태극을 의미하는 것으로 삼신(삼태극, 삼신할매)이 직접 생명을 부여한 사람이라는 의미를 같는다.
자 여기까지의 개념들이 이해 되었다면 이제 색즉시공 공즉시색의 의미에 대하여 알아 보자.
지금부터는 꽤나 혼란스럽고 복잡 할 것이다. 잘 따라오길 바란다.
색이 곧 공이요 공이 곧 색이다.
공은 삼태극이요 색은 새로운 음중양의 결합물이다.
그런데 삼태극도 음중양의 결합물이다.
그렇다면 이 둘의 차이는 무엇인가?
삼태극은 음중양이 균형을 이루고 있는 상태를 말하지만 색은 음중양이 균형을 이루지 못하고 있는 상태를 말한다.
그러하기에
즉 음중양이 균형을 이루지 못하고 있기에 수 많은 현상들이 일어날 수 있는 것이다.
대기가 균형을 이루고 있다면 아무런 바람도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대기는 부분적으로 불균형하기에 즉 한 쪽은 양의 기운이 강하고 다른 한 쪽은 음의 기운이 강하기에 수 많은 기상현상들이 일어날 수 있는 것이다.
이러한 원리는 기상뿐아니라 모든 만물의 작용에 적용된다.
자 이제 이러한 원리를 염두에 두고
색즉시공의 이치를 이해하기 위해 필요한 원리중 하나인 계(界)의 원리를 살펴보자.
여기에 아직 부화하지 않은 병아리가 있다고 가정해보자.
이 닭알도 하나의 삼태극인 것이므로 이를 밖에서 보게되면 "알"이라 할 수 있겠다.
하지만 아직 부화하지 못 한 병아리의 입장에서는 공(空)이라 할 것이다.
이 부화하지 못 한 병아리가 세상을 정의 한다면 이 병아리는 닭 알 내부의 공간에서 주어지는 정보로만 세상을 정의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 병아리가 알을 깨치고 나오게 된다면 그 곳에는 새로운 이질적인 공간이 펼쳐져 있고 이 병아리는 이 이질적인 새로운 공간에 있는 무수한 새로운 지식들을 통하여 보다 정확하게 세상을 정의 할 수 있게 될 것이다.
이는 인간과 지구에도 마찮가지로 적용된다.
인간이 지구라는 하나의 알을 깨치고 나아갔더니 그곳에는 태양계속 우주공간이라는 새로운 이질적인 공간이 펼쳐져 있었고 그 이질적인 공간을 통하여 수많은 새로운 지식들을 습득함으로서 보다 정확한 우주관을 갖게 될 수 있었다.
또한 태양계도 하나의 알이므로 태양계를 깨치고 나아가게 되면 은하계라는 새로운 이질적인 공간이 나타나게 되고 그 공간속에는 우리가 인지하지 못했던 수 많은 새로운 지식들이 펼쳐져 있을 것이다.
또한 은하계도 하나의 알이므로 이러한 논리는 우주전체에 이르기까지 계속해서 펼쳐지게 된다.
(신(神)은 누가 만들었는가? 이에대한 답을 구하기 위해서는 적어도 우주라는 계(界)를 깨치고 나아가야만 그 수많은 계(界)를 깨치고 나아가는 과정속에서 얻게 되는 우리가 인지하지 조차 못한 새로운 지식들로 비로서 이 의문에 대하여 궁구해 볼 수 있을 것이다.)
자 여기서 색이 곧 공이요 공이 곧 색이라는 이치의 한 측면을 알 수 있다.
지구 전체는 자체적으로 음중양의 균형을 이루고 있는 삼태극이다.
하지만 태양계라는 보다 큰 계(界)내에서는 지구는 태양계의 일부분에 불과하게 되어 색이 된다.
즉,
자체적으로는 음중양이 균형을 이루고 있는 삼태극이지만 보다 큰 단위의 삼태극으로 넘어가게 되면 그 곳에서는 일부분이 되어 그에 해당하는 쓰임이 있게 되는 것이고 이에따라 음의 쓰임으로든 양의 쓰임으로든 쓰여지게 되므로 색이 되는 것이다.
남자도 하나의 삼태극이요 여자도 하나의 삼태극이다.
다만 남자는 양의 기운을 더 강하게 쓰는 것이요 여자는 음의 기운을 더 강하게 쓰는 것 뿐이다.
이렇듯 쓰임이 일어나게 되면 음양의 균형이 어긋나게 되면서 수 많은 현상들이 일어나게 되지만 그 쓰임을 가라앉히면 다시 그 근원인 삼태극으로 돌아갈 수 있게 된다.
이것이 계(界)의 이치와 더불어 두번째로 이해하여야할 삼태극의 쓰임에 대한 이치이다.
색즉시공 공즉시색은
계(界)의 이치, 즉, 부분과 전체의 관계속에서 색과 공의 관계를 말하고 있는 동시에
쓰임의 변화에 따른 색과 공의 관계를 말하고 있다.
모든 만물의 근원은 "유명 만물지모"인 삼태극이다.
다만 그 쓰임이 다를 뿐이다.
또한 이것이 천부경의 일묘연(一妙衍) 만왕만래(萬往萬來) 용변부동본(用變不動本)의 뜻이기도 하다.
(천부경에서 일(一)은 여러가지 의미로 쓰인다. 여기서는 삼태극을 의미하고 있다.)
"일(一)은 묘하고 연하여 만번가고 만번오지만 그 쓰임이 달라질 뿐 근본은 변하지않는다.
(천부경에서는 묘(妙)하고 연(衍)하다라고 하였고 도덕경에서는 묘(妙)하고 요(徼)하다라고 하였다.)
그러하기에
인심유위하고 도심유미하니 유정유일이라야 윤집궐중하라.
그러하기에 자연무위(自然無爲)하라.
어찌하여 자연무욕이라 하지않고 자연무위라 하여 욕(欲)대신에 위(爲)자를 쓴 것인가?
욕(欲)자는 나만을 위함이라는 의미가 강하다.
그러나 위(爲)자는 나만을 위함과 더불어 나이외의 다른 대상을 위함 또한 포함하고 있다.
즉 위(爲)자는 나와 너 즉, 음양을 모두 포함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 연유로 이러한 음양의 쓰임을 가라 앉히라는 것이 노자가 말한 무위(無爲)의 뜻이다.
천부경과 더불어 민족의 2대 경전인 삼일신고에 허허공공이라는 구절이 있다.
삼태극 내부에는 공의 기운이 강하고 삼태극 외부에는 허의 기운이 강하다.
부화하지 못한 병아리의 경우 닭알 내부는 공의 기운이 감싸고 닭알 밖은 허의 기운이 감싼다.
지구 역시 이와 같다.
공의 기운은 생명창조의 기운이요 허의 기운은 순환의 기운이라.
한민족은 이치의 근원 민족이다.
그러하기에 공자가 종어간 시어간 이라 한 것이다.
한민족에 의해 이치가 펼쳐지고 수렴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