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의 독서일지 (2024.06.04~06.25)*
-8일차 : 6월 13일 목요일
바로 이곳이 신세계(新世界)다
-스티븐 킹, 피터 스트라우브 작, 《부적·1》을 읽어나가며
-문유석의 《쾌락독서》를 읽고
-이선영의 시집 《60조각의 비가》를 틈틈이 읽으며
1
문유석의 지금껏 독서경험을 쓴 책 《쾌락독서》는 제목에서 처음 느꼈던 이미지와는 달리 별다른 흥미는 찾아보기가 어려웠다. 대신 말미에 쓴 <습관이 행복한 사람이 행복한 사람>이라는 꼭지에는 일부 애정이 갔다.
제목인 ‘쾌락독서’처럼 독서를 생의 오랜 친구인 습관으로 삼고 그 독서습관에서 행복을 느낄 수 있다면 그 생은 충분히 행복한 삶이 된다는 내용이다.
결국 저자가 하고자 한 말은 말미에 씌어진 이 부분이 아닐까 싶다. 그 앞에 속도감 있게 씌어 진 내용들은 그의 화려하고 흥미로운 독서편력에 다름 아닐 터다.
2
시인 ‘이선영’의 시집 《60조각의 비가》는 천천히 다가왔다. 시인들은 ‘흔히 시는 쓰는 것이 아니라 시가 내게 다가온다’라고 말한다. 이 시집도 내게 그렇게 다가왔다. 저번 주 화요일(6월 4일) 도서관에서 빌려온 시집은 손종호의 《뿌리에 관한 비망록》, 손나래의 《지구 특파원 보고서》, 이소호의 《캣콜링》의 시집 3권을 포함해서 모두 4권이었다. 그 외 소설, 희곡, 산문 등을 합해 읽을 책은 모두 17권이었다.
어찌어찌 손에 잡히는 대로 읽다보니 이선영의 시집은 빌려온 시집 중에서 맨 나중이었는데, 그나마 때가 되어 시집을 펼쳐들고 읽었지만 <감나무 비가>로 시작되는 첫 ‘비가’부터 마음에 들어오지 않아 읽다 그만 덮고 말았다. 그리고 일주일 정도 흐른 후 거실 테이블에 놓여 있던 시집을 오늘 점심 식사 전 잠시 읽었는데 마음에 조금씩 들어차기 시작하더니 ‘비가’라고 붙은 제목의, 대부분 초반부에 수록된 시는 다 읽게 되었다.
시가 많은 부분 감성과 정서적 이미지에 호소한다면 여러 형태의 이미지로 조합된 시구들이 뇌리에 나름 호소력 있게 각인되기 시작한 것 같았다. 즉, 무슨 의미인지 이해가 되며 해석이나 설명을 요구하면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어떤 경우에든 시가 마음속으로 들어오지 않으면 이해불가인 경우도 흔하기 때문이다. 그것은 시인의 감성 코드와 어느 정도 맞아떨어져야 한다는 이야기다.
제목에서는 ‘60조각의 비가’라고 붙여졌지만 시집 안의 시들은 초반부 <감나무의 비가>를 포함한 7수만 시 제목에서 ‘비가’라고 따라붙고 나머지는 ‘비가’라는 시어가 따라붙지 않지만, 시집 제목이나 시어에서 알 수 있듯 ‘비가(悲歌)’적 의미가 녹아들어든 작품들이 대부분(시집에 수록된 시는 모두 ‘60수’다)이라는 것을 유추해 볼 수 있다.
감나무 비가
-이선영
저 나무가 감나무였구나, 감이 무르익었구나, 알아챈 날이 있다면
그날은 감나무를 바라볼 날이 얼마 남지 않은 가을의 하루였으리라
어느새 감나무 아래 감을 몽땅 사서 집집마다 골고루 나누시는
아래층 할머니의 바지런한 손길이 고마우면서도 야속한 건 왜?
감을 따자마자 감나무는 황급히 감나무이기를 멈춘다
감이 열리는 나무임을 알려 주던 감이 떨어지기 무섭게
감나무는 앙상하지만 단단한 가지의 밀도 속으로 감겨들어 간다
감은 퍼뜨리는 열매가 아니라
감나무를 짙은 흑연의 침묵 속으로 잠겨 들게 하는 열매였음을
감나무는 알고도 붉은 심장 켜 단감을 빚어낸 것일까
오래 달고 있으면 제 몸에서 썩어 들어갈 감이라
가지 늘어질 새 없이 빼앗기고도 한마디 말 못하는
한 그루 감나무여, 그닥 눈썰미 있지는 않지만
이 가을 그대가 달았던 감의 마지막 관객이 있었다면 위로가 될 텐가
그대의 감이 빚은 빛나는 순간에
그대의 감을 써는 쓸쓸함을 함께 맛봐야 했던
<斷想> 세계의 안과 밖이 모두 연결된 ‘뫼비우스의 띠’를 통해 ‘생(生)의 숨겨진 비밀(秘密)’을 내밀하게 엿보기라도 할 태세의 시인이다.
‘동전의 양면’이라고도 볼 수 있을 이분법적으로 세상 이치를 들여다보기, 좀 더 쉽게 말해 본다면 ‘음지와 양지’나 ‘빛과 어둠’과 같은 흔히 사용되어지는 이분법적으로 세상과 세계를 일반적으로 나누어 보지만 엄밀한 의미에서 그 두 세계는 뫼비우스 띠처럼 연결되어 긍극적으로는 하나의 세계로 합일된다는 입체적 사고를 연상시킨다.
‘감이 빚은 빛나는 순간’과 ‘감을 써는 쓸쓸함’이 그렇고, ‘알아챈 날이 있다면’과 ‘얼마 남지 않은 가을의 하루’가 그러하다. 이런 대비되는 시구는 전 연을 통해 계속 반복되어 나타난다. 그래서 ‘비가(悲歌)’는 결코 ‘비가(悲歌)’인 슬픈 노래만 끝나지 않고 아름다움으로 승화될 수 있을 여지를 남겨둔 것처럼 여겨진다.
그런 시각은 우리 앞에 전 생(生)을 통해 펼쳐지는 생의 어떤 이면을 슬픈 감정을 넘어 차분하게 들여다보게 할 수도 있을 것 같다. 시인의 이런 자세와 의지는 앞서 읽은 시집 초반부의 7수(<감나무 비가>, <이불 비가>, <피아노 비가>, <주머니 비가>, <남현동 비가>, <4월 비가>, <구름 비가>) 전체에서 뚜렷하게 지속적으로 감지되고 있다.
3
‘잭 소여’는 ‘마법 주스’를 통해서 이쪽의 ‘현실세계’와 저쪽의 아직 알 수 없는 ‘비현실적 동화 같은 환상적 세계’ 사이를 순간이동하며 왔다 갔다 한다. (‘스티븐 킹’은 이번 작품에서 ‘피터 스트라우브’라는 작가와 공동 창작하기로 결정한 것 같다. 어디까지가 스티븐 킹의 상상적 영역이고 어느 부분이 또 다른 작가의 기타 영역인지 독자는 알아내기가 어렵다.)
스티븐 킹 작가(또 다른 작가 피터는 편의상 생략)가 창의력 짙은 상상으로 빚어낸 새로운 세계를 잠시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잭이 ‘마법 주스’를 마시고 순간이동해간 세계에서는 퓨마를 닮은 말이 마차를 이끌고 있다. 블루베리를 닮은 거대한 과일이 있어 얼른 따먹어 봤는데 매우 달고 맛있다. 두 개만 따 먹어도 배가 부를 정도다. 그리고 그들이 사는 영역은 정해져 있어 그 밖으로 나간 사람이 없다. 그 세계에 사는 사람들 표현으로는 하느님조차 그 밖으로는 나간 일이 없다고 한다.
이 세계는 잭이 사는 현실 세계와 일대 일로 영혼들이 연결되어 있어 한 쪽 세계의 영혼에게 어떤 일이 벌어지면 다른 쪽 세계의 영혼도 어떤 식으로든 시간의 차이는 다소 있지만 영향을 받게 되어 있다. 잭의 현실에서 잭의 어머니는 불치병에 걸린 상태로 입원해서 치료받아야 한다는 병원의 진단을 무시하고 잭과 함께 도피적 여행을 다니지만, 순간이동해간 저쪽 세계에서 잭의 어머니는 병상에 누운 채 눈을 감은 채 곧 죽음을 맞이할 태세다.
문학 작품은 일단 몰입해서 읽어야 한다. 우리가 몸담고 있는 이 현실의 자질구레한 일상을 한동안 잊을 정도로 작품 속에서 펼치는 세계로 빠져들어야 한다. 그런데 스티븐 킹과 같은 작품을 읽으려면 독자는 그런 몰입의 문(門)을 적어도 2개나 거처야 한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스티븐 킹의 상상세계에서 영영 못 헤어 나올 수도 있다. 그래서 난 작품 속에서 순간이동을 가능하게 하는 주인공 잭이 가지고 다니는 ‘마법 주스’를 주문처럼 언제나 현실 세계에서 챙기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