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흥김씨가 포산 산전면 내동에 자리잡은 것은
2013년 기준으로 력산해서 355년전으로 잡으면 대략 1658년으로 나온다.
중국연호로 보면 청나라가 愛新覺羅 현업康熙, 윤진雍正, 홍력乾隆 전성기에 접어드는 길목인 淸 복림順治15년,
한국년간으로 보면 병자호란 뒤인 鳳林大君 淏9년에 해당한다.
당시 국제판도상 구체적 실현가능성 거의 없던 북벌을 생각했지만
강성한 청의 요구로 나선정벌에 나서야만 했던 그 비운의 시기다.
일본은 에도바쿠후 조닌(江戶幕府 町人)들이 등장하여 성장하며 네덜란드로부터 알짜정보를 배우고 깨닫고
메이지혁명(明治革命) 토대를 닦던 시기.
유럽은 17C 주요국 모두 참전한 첫 유럽대전 30년전쟁을 종식한 Peace of Westfalen 10주년으로 한참 근대국가로 발돋음하면서 18C 제2차유럽대전·America식민지대전과 19C 나폴레옹대전·제국주의AsiaAfrica식민지쟁탈전을
준비하던 시기.
(그 당시 프랑스 루이XIV는 선대의 뜻을 거스르고 낭트칙령(Nantes 勅令)을 폐지하고 그 뛰어난 위그노를 탄압하여
전 유럽으로 내쫒아버림으로써 향후 엄청난 재정손실을 겪게 한다. 현대에 와서 프랑스는 스위스와 네덜란드 등
유럽 각지에 흩어진 Huguenot인들에게 사과하고 그들의 뿌리가 프랑스인임을 인정하였다)
서흥김씨 일파일족은 내동으로 가기 전에는 현(풍현)남 갈산지역(곽천지역,니동재)에 있었다.
초기에는 갈산서 내동으로 옮겨 가는 중간지대인 현(풍현)남 묘동(면) 발산지역(응암지역)에도 퍼져 있었던 것 같다.
나중엔, 결국 내동을 중심으로 집결해서 세거지를 형성했던 것으로 보인다.
어쨌든 시간 흘러,
1911년 10월 2일 경상북도령 제8호에 의거
묘동면 일원을 구지면 일부로 ,
오설면 일원, 산전면 일원을 오산면 일원으로 선 통폐합 한 후
1914년 4월 1일 조선총독부령 제111호에 의거 부, 군, 면, 동 폐합에따라
현풍군 구지면, 오산면 일원을 달성군 구지면 일원으로 재차 통폐합하여 현재의 행정구역으로 만들어 졌다.
면사무소 력사 안내에는
1 구지면의 장동, 내동(현 구지면 내리 지역으로 산전면 내동 지역과 다른 곳), 외동, 성산동, 세암동, 노곡동, 태암동, 신당동, 고방동, 도야동, 월산동, 목단동, 유산동의13개동과
2 묘동면의 소고봉, 대고봉, 예현, 응암, 대포, 덕곡, 평촌, 태정의 8개동,
3 오설면의 도동, 사동, 송림, 담동, 내동, 외동의 6개동과
4 산전면의 수리(산전면소재지), 안동, 장동, 지정, 현동, 창동, 내동, 암동, 화산, 태동, 신평, 접곡(나부실)의 12개동,
5 비입지인 경상남도 창녕군 합산면의 이방동 일부를 병합하여 구지면이라 하고 창동, 응암, 고봉, 평촌, 예현, 유산, 목단, 대암, 내동, 화산, 수리, 징동, 오설, 도동 등 14개동에 1941년 유가읍의 가천동을 편입해 15개동을 관할하였다
라고 되어 있다.(비입지는 월경지를 말한다. 현풍은 낙동강에 접한 논공과 고령 영역이 월경지였다)
여러 사료들에 등장하거나 예전 지도에 나타나는 모습을 살펴 본다.
玄風郡 山田面 內洞 衛星寫眞
마을입구
마을진입전경
마을모습 우측 위에서 아래로 차례대로 백호등 증현등 청룡등
마을 진입후 한가운데서 백호등 방향
구지면 일대 (논공 후속 달성 둘차 산업단지 개발 당시) 국가산단대로가 아직 없을 때 안산이 살아 있었다
산전내동 우측으로 응암1리 덕골마을, 응암2리 신기·매방마을도 보인다. 응암3리 대포동은 가려 있다.
향후 응암4리가 될 창리 암동 뒷산 앞 첫 아파트촌은 아직 건설되기 전이다.
국가산업단지 개발도(낙동강,대니산,한훤고택있는 지동 등이 보이고 저 멀리 달(성)창(녕)저수지와 낙동강을 연결하는 차천 건너 유가읍(인구가 늘자 유가면에서 승격) 테크노폴리스는 살짝 가려져 있다)
달성 둘차 산업단지 개발때 면사무소 登 뒤엔 최초로 아파트가 들어 섰고 산전내동 앞에 놓여 있는 (마을 앞산의 통상적 명칭인) 안산 登 일대엔 산단대로(처음엔 과학대로였다)와 빌라촌이 들어섰다.
일제가 통폐합 하기전 오설면, 구지면, 묘동면과 함께 山田面도 보인다
대니산 위 도동서원과 대니산 아래 산전면
http://blog.naver.com/PostView.nhn?blogId=kdncrc&logNo=40181399363
http://www.kdcrc.com/
https://issuu.com/kdcrc/docs/130816_______________-_________
아, 그런데, 저 곳에 鐵道軌間을 놓는다.
로선 확정 되면 다시 매칭해 보자
(구지일대는 지상아니라 지하화한다고 하는데...)
인구가 늘면 구지면도 유가처럼 구지읍으로 승격할 것.
더더욱 늘면 面에서 邑으로가 아니라 區가 되어야 할 듯.
그러면, 무슨 구, maybe 達成區
불가하다. 안된다. 일제가 만든 명칭이다.
인천의 경우 흔한 방위성 명칭 남구를 미추홀구로 바꾸었다.
참 괜찮은 아이디어였다. 주민투표로 결정했다고 한다. 절차도 참 좋다.
그렇다면 달성군 전 명칭으로 돌아가서, 玄風區or 苞山區가 어떨까
첫댓글 개인적으로 촬영하여 소장한 고을 모습중 철거와 개간직전 1년부터의 모습은 3천여장으로
사라지기 직전모습은 특히 많다.
거의 탐사수준으로 그리고 아쉬움에 곳곳을 살뜰하게 많이 찍어 두었다.
아마 공식적인 기록으로서의 관공서 개발전 보존 촬영분보다는 월등히 많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