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간 1
(버스 안)
웅웅거리는 엔진 소리. 덜컹거리는 커다란 버스의 뱃속에서 책가방을 안고 눕듯이 의자에 기댄다. 언젠가 내린 비바람을 이겨내고 얻은 빛바랜 훈장을 감출 생각 없는 창, 너머로 옅은 분홍의 꽃잎들이 아련히 흩날린다. 갈바를 알지 못하고 흩어지는 작은 분홍의 점들 사이로 그보다 큰 작은 사람들이 걸어다닌다. 이내 치익- 공기 빠지는 소리를 내며 멈춰선 버스가 다시 움직인다. 움직이는 것들과 움직이지 않은 것들이 한데 섞여 스쳐 지나간다. 한 시간의 여유다. 꾸불꾸불하게 꼬인 검정 이어폰을 풀어 귀에 꽂은 뒤 눈을 감는다.
ㆍㆍㆍ
공간 2
(지하철 역)
우르르 쏟아져 내리는 인파 안에 섞여 지하철을 탄다. 진한 검정색이었을 에스컬레이터의 기다란 고무 손잡이가 조금 거칠다. 상층에서 지상으로, 이제 지하로 내려가면 밝은 조명과 함께 빵집이 나온다. 빵 하나에 1,000원. 크게 적힌 현수막이 시선을 사로잡는다. 먹을까 말까, 먹을 생각이 없음에도 전시된 빵들을 힐끔댄다. 시계가 가리키는 시각은 6시, 서두르면 집에서 따뜻한 밥을 먹을 수 있을 시간이다. 꿀꺽, 마른 침을 삼키곤 이내 걸음을 재촉한다.
ㆍㆍㆍㆍ
공간 3
( 지하철 -> 집 )
이번 역은 --- . 번뜩 눈을 뜨고 비척비척 줄을 선다. 열리는 문은 오른쪽, 분명 문은 많을 터인데 유독 이 문의 줄이 길다. 쉽고 빠르게 귀가하고 싶은 사람들로 모인 줄이다. 터벅터벅 걷는 것이 지루해질 때쯤 집이 보인다. 주차된 차들 중 몇몇이 하얀 비닐로 포장되어 있다. 아까 본 소금빵이 떠오른다. 늦은 아쉬움을 뒤로하고 검정의 아스팔트 도로를 지나 계단을 오른다. 훅 폐 안 깊숙히 들어오는 강한 페인트 냄새에 무심코 손을 올렸다. 밝은 회색과 하얀색으로 깔끔하게 단장한 복도 벽. 책가방과 겉옷을 감싸 안고 괜히 힘을 준다. 은색으로 반짝이는 버튼을 누른다. 오돌토돌한 손끝의 감촉이 오늘따라 괜히 마음에 들어, 결대로 따라 더듬어 본다. 띵- 하는 소리와 함께 문이 열린다. 어둑해진 하늘과 건물의 빛나는 창문 빛들. 이제 정말 하루의 끝이다. 철컥, 문을 연다.
-
공간 1 학교 | 공간 2 7790버스 | 공간 3 집근처 지하철역
|
| 길에 벚꽃이 많이 펴있지만 급하게 강의실로 가는 학생들 | 각자의 일정을 끝내고 피곤해하고 더워하는 사람들 | 각자의 휴대폰에 집중하던 사람들이 한강이 보이자 밖을 보는 모습 |
학교를 나와 집으로 향하는 지하철에 몸을 실었다. 객실 안은 조용했지만, 사람들의 어깨에는 젖은 외투처럼 하루의 피로가 무겁게 걸려 있었다. 모두 고개를 숙인 채 휴대폰 화면이라는 작은 상자 속에 스스로를 가둔 듯했다. 그때 창밖으로 한강이 느리게, 숨을 고르듯 흘러가기 시작했다. 몇몇 사람들이 약속이라도 한 듯 화면을 내리고 창밖을 바라보았다. 물 위에 번지는 빛은 금이 간 마음 사이로 스며드는 온기처럼 잔잔히 퍼졌다. 굳어 있던 얼굴이 조금씩 풀리고, 멈췄던 숨이 다시 흐르는 듯했다. 나 역시 그 장면을 따라 바라보며, 사람들을 다시 살아가게 하는 힘은 거창한 것이 아니라 이렇게 스쳐 가는 짧은 풍경 하나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결국 사람은 작고 조용한 아름다움으로 하루를 견뎌낸다.
| ✍ 나의 한 문장 |
| 결국 사람은 사소한 아름다움으로 버텨낸다. |
-
수업이 끝나고 인문관을 나온다. 가방을 메고 평소처럼 기숙사 쪽으로 걸음을 옮긴다. 해는 아직 남아 있고, 벚꽃은 길가에 그대로 붙어 있다. 바람이 불 때마다 몇 장씩 떨어진다.
학생회관 사거리를 지난다. 사람들은 각자 속도로 움직인다. 눈에 들어오는 얼굴들이 있지만 오래 보지는 않는다. 지나가면서 스쳐간다.
오르막이 시작된다. 속도를 조금 늦춘다. 숨이 약간 가빠지지만 멈추지는 않는다. 뒤쪽은 자연스럽게 멀어진다.
중간쯤에서 고양이 한 마리가 보인다. 늘 비슷한 자리에 있다. 오늘도 그 자리에 앉아 있다. 가까이 가지 않고 그대로 지나친다. 고양이는 움직이지 않는다.
계속 올라간다. 음대 건물을 지나면 주변이 조금 조용해진다. 특별한 소리는 없다. 바람 소리만 들린다.
기숙사가 보인다. 건물 앞까지 걸어간다. 뒤를 돌아보지는 않는다. 올라온 길은 그대로 있고, 사람들은 계속 오간다.
문을 열고 들어간다. 하루가 끝난다.
-
수업이 끝나자 강의실 안이 조금씩 시끄러워진다. 노트북을 덮고 가방을 챙기는 소리와 의자를 끄는 소리가 여기저기서 이어진다. 가방을 챙긴 사람들은 서로 인사를 건네며 하나둘 흩어진다.
종합강의실 건물을 나오자, 꽃잎이 다 떨어지고 푸른 잎사귀가 돋아난 벚나무들이 줄지어 서 있다. 인문대 건물을 지나 보이는 정문 앞 버스정류장에는 이미 사람들이 모여 있다. 몇몇은 수다를 떨고 있지만, 대부분은 고개를 숙인 채 휴대폰을 보고 있다. 그 모습을 잠시 서서 바라보다가 돌아선다.
정문을 벗어나 골목으로 들어서자 주변이 조용해진다. 익숙한 오피스텔 건물 안으로 들어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