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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수진 시집 {산굼부리에서 사랑을 읽다-특수학교 교사의 일기} 출간
1987년 중학교 특수학급에서 장애학생을 지도하기 시작하여 약 30년간 교직생활을 하고 있으며, 시집으로는 시집 {눈꺼풀로 하는 대화}(전자책 출간)가 있고, 현재는 서울 수락중학교에 재직 중이다. 공무원 문예대전 우수상 수상, 중랑신춘문예 장원 수상, {월간문학} 신인상 수상했고, 동서커피 문학회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박수진 시인의 두 번째 시집인 {산굼부리에서 사랑을 읽다-특수학교 교사의 일기}는 지난 30년 동안 정신과 지능으로 온전하지 못한 아이들, 신체로 온전하지 못한 아이들을 가르쳐온 특수학교 교사의 일기이며, 나태주 시인의 말대로, ‘감동을 넘어선 감동’의 시집이라고 할 수가 있다.
장애학생을 지도하는 30년 동안 무수한 벽 앞에 부딪혔고 여러 문제를 만났다. 어떤 문제는 잘 해결 했거나 형편없이 해결하기도 했다.
특수교사로 산다는 것은 어렵고 힘든 일에 맞닥뜨릴 수 있는 상황에 자주 노출되는
것이다. 그러한 상황을 이겨내는 방법으로 감정 코칭 연수도 받았고 많은 책을 가까이 하려고 노력 했다. 시를 가까이 하는 길도 하나의 방법이기도 했다. 시를 기다리듯 삶도 인생도 기다리는 것이다. 지루하고 남루하지만 견디는 일이다.
내가 아프면 세상이 싫어지고 힘든 특수교육을 감당 할 수도 없다. 상처가 있는 사람은 상처를 꼭 주게 되어 있다. 본인이 아파도 아프다는 말을 못하고 가시 돋친 말로 상대에게 상처를 주기도 하기 때문이다. 복잡다단한 이해관계로 얽힌 현대의 사람들은 너 나 없이 상처와 화가 많다. 그 와중에 더 위로 받아야 할 장애인과 장애인 학부모님들은 더 깊은 상처를 가지고 있는데도 표현 할 곳이 없고 심지어 특수학교 하나 짓는 일에도 방해 받는 모습을 태연하게 보고 있어야만 했다. 잘못된 모습을 보고도 무력하게 입을 다물고 있었다. 특수교사는 교사대로 일반 학교에서 “섬에서 일하는 것 같다”는 말을 한다. 사람은 살아야 할 때와 증언해야 할 때가 있다고 까뮈가 말했던가? 나는 시인으로 세상에 나가서 장애인과 장애인 학부모님들께 관심을 가져 달라고 증언 할 수 있는 길을 선택한다. 학부모님, 특수교사들에게도 힘내자고 말을 건네고 싶다. 각자도생이 아니라 더불어 살면서 더 많이 행복 했으면 하고, 오늘도 내일도 그 마음으로 시를 쓰겠다.
특수학급으로 시작한 교사 생활, 자진하여 정민 특수학교, 정인 특수학교 근무를 했고 그 이후 고등학교 특수학급을 거쳐 복지관 파견 학급까지 다양하게 경험을 했다. 많은 중증 장애 학생들의 신변 처리도 했고 파견학급 학생의 장례도 치러 봤다. 부족하지만 그 자리에 함께 있었다. 개인적인 사연이지만 혼자서 자식을 키운 엄마의 삶도 나에게 영향을 주었다. 엄마의 삶이 거울이 되어 나도 이 길을 이만치 걸어 올수 있었다.
종은 누군가 쳐야만 소리가 난다. 노래도 누군가 불러야 노래가 된다. 종은 자기의 몸을 세게 치는 만큼 그만큼 청아한 소리가 날테지만 나는 개인적인 성향도 없지 않아 상처 받는 일에 멘탈이 약했다고 고백 한다.
---[시인의 말]에서
서운한 생각이 드는 건/ 내가 마음을 다했다는 거/ 내가 조금 더 아파 봐서/ 내가 조금 더 어둠속에 있어 봐서/
내 손을 너에게 빌려줬다/ 깜깜한 길을 더듬더듬거리며/ 걸어와 봐서/ 내가 아끼지 않고/ 나의 등잔을 들어 보였을 뿐/ 오래토록/ 아니/ 평생을 어둠 속에 있었던/ 다친 날개를 가진/ 장애 엄마에겐 졸업은/ 등잔을 들어줄/ 다른 사람을 찾으러 가야 하는/ 이민자이거나 디아스포라이다
― 「졸업」 전문
시집의 1부에 실린 시편들 모두가 이런 비극적인 경험에 바탕한 시들인데 이 시도 그런 시 가운데 한 편입니다. ‘졸업’ 그것은 무엇인가 과업을 마치는 일이고 즐거운 일이고 마땅히 축하해야 할 일입니다. 그런데 그것이 결코 즐거운 일, 축하할 일이 아니고 ‘등잔을 들어줄/ 다른 사람을 찾으러 가야 하는/ 이민자이거나 디아스포라’ 라니?
그래서 읽는 사람의 마음이 짠하고 아픈 것입니다. 비단 이 시 한 편뿐이겠습니다. 상당히 많은 시편들이 이런 범주에 들어가는 시편들입니다. 그러한 시편들에는 주인공이 여러 사람 등장합니다. ‘대중이’(「불편한 묵도」), ‘재동이(「진짜 애인」)’, ‘효성이 (「효자」)’, ‘송이(「아름다운 엄마」)’, ‘김경수 교장 선생님 (「교장 선생님」)’. 모두가 한세상의 강물을 아프게 아름답게 건너간 사람들입니다.
더 이상 말할 것이 어디 있겠습니까. 가장 좋은 방법은 시집에 실린 시편들을 찬찬히 마음을 기울여 정성껏 읽어보는 수밖에 없습니다. 그 길이 가장 좋은 방법입니다. 그거야말로 시인과 독자의 직거래입니다. 중간상인의 중개문서라 할 수 있는 이런 글보다는 직접 시인의 집을 방문하여 그와 대면, 이야기 나누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이란 말씀입니다.
같은 길을 가는 사람 입장에서 말해 본다면 부탁의 말씀은, 앞으로 박수진 시인이 더 좋은 삶을 살아가고(아니 지금처럼 그렇게 뚜벅뚜벅 살아가고), 그런 삶을 바탕으로 좋은 글을 계속해서 써나가는 일입니다. 그러한 글, 생의 자취들로 하여 이 땅에 사는 많은 다른 사람들, 마음이 아프고 몸이 아프고 살기 힘든 사람들에게 힘이 되어주는 일입니다. 위로가 되고 축복이 되고 기도가 되고 응원이 되고 동행이 되는 일입니다. 나 또한 그런 의미에서 박수진 시인의 한 동행임을 자처하고자 합니다.
6번 출구에서 기다리네/ 내가 기다리는 학생은 지금 뛰어오네/ 나를 기다리는 전철은 지금 지나가네/ 미리 온 학생은 다른 선생님과 보내고/ 혼자 기다리네/ 어느 현장학습이건 꼭 한 명은 늦게 오는 법/ 샤워까지 하고 말갈퀴 머리 날리며 달려오네/ 출근길의 개찰구는 고양이 눈빛/ 사람들이 복수를 결심한 듯/ 휙휙 사라지네/ 어깨를 툭툭 부딪히고 달리네/ 사람들이 달리네/ 갑자기 텅 빈 광장/ 인생 뭔가 허전한데 이런 것이었어/ 뛰어가네/ 시간보다 더 먼저 뛰어가네/ 인생이 뛰어가네
― 「학생을 기다리며」 전문
이 작품 역시 좋은 마음이 들어있는 시입니다. 특수학교 선생님으로서 아이들과 했던 경험을 축으로 하면서 도시 생활의 번잡함을 노래하고 있고 또 그것을 발전시켜 인생의 무상함까지 노래하고 있군요. 시의 후반부를 좀 보십시오. ‘시간보다 더 먼저 뛰어가네/ 인생이 뛰어가네’. 아, 이런 표현. 무릎이 탁 쳐지지 않습니까! 후반부의 반전과 쾌재. 이것이 또한 좋은 시의 한 조건입니다.
1부 그 뒤편에 나오는 시편들도 좋습니다. 드물게 시가 좋습니다. 왜 그런가요? 시의 문장 안에 진심이 들어가 있기 때문입니다. 어느 세상에서든 어떤 사람들에게든 진심보다 더 좋은 마음은 없습니다. 진심이야말로 가장 힘이 센 마음입니다. ‘심복(心腹)’이란 단어가 있습니다. ‘가슴’과 ‘배’라는 뜻이고 ‘심복지교(心腹之交)’란 말을 줄인 단어입니다.
그 뜻은 ‘마음을 터놓고 지낼 수 있는 친구’입니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이 말을 ‘心僕’ ‘心服’으로 바꾸어 읽고 싶어 합니다. 아닙니다. 절대로 아닌 것입니다. 우리는 서로가 심복(心腹)이 되어야 합니다. 가슴이 아플 때 그 아픈 가슴을 알아주고 배가 고플 때 그 배를 채워주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그런 심복의 시가 박수진 시인의 시집에 들어있다는 말씀입니다(나태주 시인).
사랑이 뭔지 아니/ 심장이 고장이 나는 거야/ 그래서/ 심장을 150그램씩 떼 주는 거야/ 두 명에게만 나눠 주는 거야/ 봐/ 첫사랑, 마지막 사랑/ 사랑에도 이름이 있는데/ 사랑에도 분량이 있는데/ 사랑이 과열되면/ 산굼부리처럼 터지기도 해
--[산굼부리에서 사랑을 읽다 1 --세계 유일의 평지분화구] 전문
박수진 시인의 [산굼부리에서 사랑을 읽다 1]은 가장 독특하고 이채로운 사랑의 시라고 할 수가 있다. 심장은 인간의 중심기관이며, 심장이 고장난다는 것은 아주 중대한 사건이라고 할 수가 있다. 만일, 심장이 고장나는 것이 사랑이라면 사랑은 심장으로 시작해서 심장으로 끝난다는 뜻일 것이다. 따라서 사랑에는 첫사랑과 마지막 사랑이라는 두 종류만 있게 되고, 이 사랑이 과열되면 산굼부리에서처럼 폭발을 하게 된다.
첫사랑도 암수 하나이고, 마지막 사랑도 암수 하나이다. 사랑은 서로가 서로에게 자기 자신의 심장을 150그램씩 떼어주는 것이다. 첫사랑과 마지막 사랑은 하나의 과정이며, 따라서 이 과정에 다른 사랑이 개입되면 그것은 반드시 산굼부리에서처럼 폭발을 하게 된다.
사랑이란 진실이 없으면 살 수가 없지만, 이 진실이 넘쳐나면 폭발한다. “첫사랑, 마지막 사랑/ 사랑에도 이름이 있는데/ 사랑에도 분량이 있는데/ 사랑이 과열되면/산굼부리처럼 터지기도 해”라는 시구가 그것을 말해준다. 나르시소스의 수선화, 히야신스의 히야신스, 아도니스의 아네모네가 그토록 붉디 붉은 핏빛으로 물든 것은 그들의 사랑이 평지 폭발했기 때문일 것이다.
박수진 시인의 [산굼부리에서 사랑을 읽다 1]는 가장 새롭고 독창적인 ‘사랑의 시’라고 할 수가 있다. 사랑은 심장이 고장나는 것이라는 충격, 사랑은 서로가 서로에게 심장을 150그램씩 떼어주는 것이라는 충격, 첫사랑과 마지막 사랑에 다른 사랑이 개입하면 산굼부리에서처럼 평지 폭발한다는 충격----. 이 충격이 박수진 시인의 [산굼부리에서 사랑을 읽다 1]의 새로움이고 독창성이라고 할 수가 있다.
자기 자신의 언어와 목소리로 모든 사건과 현상들을 연출하고, 가장 멋진 신세계를 창출해냈다는 것이 박수진 시인의 [산굼부리에서 사랑을 읽다 1]의 기적일 것이다.
삶을 경건하게 살고/ 삶을 죽음처럼 살고/ 삶을 전쟁처럼 사는 사람들 앞에/ 시부리지 말아라/ 손가락 마디에 손바닥에.../ 시줄 보다 더 함축된 언어를 품은/ 사람들 앞에 시시한 소리는 하지 말아라/ 과잉 감성에 들떠 노래교실쯤/ 되어 버린 시인학교/ 시를 위해 목숨을 버리고/ 조국을 위해 시를 버리고/ 사랑을 위해 시를 안는/ 삶을 시인처럼 살아야 시인이다/ 사람들 앞에 알아듣지도/ 못할 시시한 소리는 하지 말아라/ 얼굴 고랑에 시어를 심은 사람들 앞에 / 덧 쓴 모자 쓰고/ 어려운 말이랑 글이랑 뿌리지 마라
--[죽은 시인의 사회] 전문
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시인의 삶이란 어떠한 것일까? 그것은 두말할 것도 없이 ‘시가 삶이 되고, 삶이 시가 되는’ ‘예술품’ 자체가 된 삶일 것이다. 삶을 경건하게 산다는 것은 자기 자신의 몸과 마음을 단정히 하고 고귀하고 위대한 길을 간다는 것을 말하고, 삶을 죽음처럼 산다는 것은 언제, 어느 때나 단 하나뿐인 목숨을 걸고 너무나도 외롭고 정직하게 산다는 것을 말하고, 삶을 전쟁처럼 산다는 것은 모든 불경과 군더더기와 그 모든 장애물들을 다 제거해낸다는 것을 말한다. 경건하게 산다는 것, 죽음처럼 산다는 것, 전쟁처럼 산다는 것은 박수진 시인의 ‘삶의 철학’이며, 이 예술품 자체의 삶을 살아가는 시인 앞에서는 함부로 시부리지(씨불이지) 말아야 한다.
시는 시줄보다 더 함축된 언어들을 품은 사람들에 의해 씌어지는 것이지, 시정잡배들의 시시한 소리에 의해 씌어지는 것이 아니다. 시는 “시를 위해 목숨을 버리고/ 조국을 위해 시를 버리고/ 사랑을 위해 시를 안는” 사람들에 의해 씌어지는 것이지, “과잉 감성에 들떠 노래 교실쯤/ 되어버린 시인학교”에 의해서 씌어지는 것이 아니다. 시는 사치와 허영도 아니고, 시는 어려운 말과 글들을 뿌려내는 말장난도 아니다. 시는 절제, 즉, 최단의 행로를 좋아하고, 시는 또한, 변화가 필요할 때에도 논리적인 비약을 좋아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인생은 단 한 번뿐이고, 사회 역사적 현실을 떠나서는 그 어떠한 노래도 존재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
시는 사상의 꽃이고, 사상은 시의 열매(씨앗)이다. 시를 쓴다는 것은 사상을 꽃 피운다는 것이고, 사상을 꽃 피운다는 것은 사랑의 실천이 된다. 시는 사상이고, 사상은 사랑이다. 시와 사상과 사랑은 삼위일체三位一體이며, 요컨대 시를 쓴다는 것은 인류의 행복과 평화를 위한 것이지, 그 무슨 영광의 월계관을 쓰기 위한 것이 아니다. 시인은 눈앞의 이익을 보면 전체의 이익을 생각하고, 시정잡배는 눈앞의 이익을 보면 자기 자신의 행복만을 생각한다.
시는 사상의 꽃이고, 사상은 시의 열매이다. 오늘날, 이 21세기에, 시를 위해 목숨을 걸고, 조국을 위해 시를 버리고, 사랑을 위해 시를 쓰는 시인이 있다. 박수진 시인의 [죽은 시인의 사회]는 예술품 자체가 된 시이며, 박수진 시인의 시인정신이 ‘사상의 꽃’으로 활짝 피어났다고 하지 않을 수가 없다.
온전히 내가 엄마의 딸로 살았던 때/ 그때 하늘은 온전히 나의 것/ 다 익은 사과가 통째로 나의 것이었던 그때/ 뒷동산의 풀들이 자유로이 유영 할 때 그때/ 무지개 놓인 다리를 달릴 때/ 나도 그때가 있었지// 어느날 무면허로 엄마가 되고/ 길 위에서 길을 찾느라 심장이 아팠지/ 허둥지둥 헤매었지/ 부엌 모퉁이에서 새소리를 듣고/ 가끔 숲으로 가서/ 나뭇잎 같은 소리로 흐느끼기도 했지// 엄마처럼 살지 마라 나처럼 살지 마라/ 등 뒤에서 엄마 목소리 들려도/ 엄마처럼 야위고 엄마처럼 아프네/ 하루에도 몇 번씩 딸이 되었다가/ 엄마가 되어야 하네/ 뒷걸음질 치면 더 크게 느껴지는 엄마
― 「엄마가 되어도 엄마가 그립다」 전문
오늘 내가 살아 있다는 것은/ 하늘이 나를 버리지 않아서입니다/ 오늘 내가 웃을 수 있다는 것은/ 형제들이 먼저 행복하기 때문입니다/ 오늘 내 마음의 씨앗불을 먼저 살피는 것은/ 그 씨앗불로 세상으로 나아가야 하기 때문입니다/ 오늘 내가 웃을 수 있다는 것은/ 땅에 사는 선한 친구들이 있기 때문입니다
― 「오늘」 전문
박수진 시집, {산굼부리에서 사랑을 읽다 }, 도서출판 지혜, 값 9,000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