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추석 연휴 마지막 날, 서울서 귀성한 친구들과 이기대 해안길을 걸었다. 갈맷길 2-2코스 시작점인 오륙도 유람선선착장에서 만나 동생말까지 느릿느릿 발걸음을 옮기며 회포를 나눴다. 청명한 가을, 부산의 하늘과 바다는 모두 에메랄드빛으로 빛났다. "부산, 참 멋지다!" 고향에 이런 곳이 있었냐며 들뜬 모습을 보니 흐뭇했다. 실컷 눈요기를 즐기게끔 했다. 그날 오후 늦게 경부고속도로 위 귀갓길에서 찬란한 부산의 풍경이 눈에 어른거렸을 것이다.
명절에는 반가운 만남이 이어진다. 다만, 해후가 기쁘다고 술추렴으로 일관할 수는 없는 노릇. 게다가 기름진 음식 탓에 켜켜이 쌓이는 칼로리는 어쩔 건가? 적절히 소모할 방도를 찾아야 하는 것이다. 성찬의 행진을 멈추고 '못 먹어도 고(go)!'하는 게 지혜로운 선택이다. 연휴 하루쯤은 그리운 사람들과 야외로 나가 보자. 트레킹도 좋고, 등산도 좋다. 부산 시내의 산을 대중교통으로 다녀올 수 있다면 더할 나위가 없다. 주차나 체증을 신경 쓸 필요도 없으니!
나들이 기분 느끼고 암릉 오르고
인근 철마산·일광산 산행은 덤
산&산에서는 명절 산행으로 추억과 감성이 새록새록 돋는 당일치기 기차여행을 다녀왔다. 기장군 일광면에 있는 달음산(達陰山·588m)을 골랐다. 나들목은 동해남부선 좌천역이다. 오랜만에 동해남부선 간이역의 추억을 더듬을 수 있는 데다 명절 기름기도 쫙 뺄 수 있으니 '더도 말고, 덜도 말고' 딱 좋다.
■동해남부선 타고 떠나는 추억 산행
달음산은 기장군의 중심부에 우뚝 솟아 있다. 거대하고 제법 험하기까지 한 바위 정상은 매가 아래를 굽어보는 형상이라 취봉(鷲峰) 또는 수리봉으로 불린다. 이 주봉 아래에 삐죽삐죽 날카롭게 뻗은 게 옥녀봉이다.
과거 달음산은 부산의 산꾼들에게 보배로운 산이었다. 근교로 나들이 가는 느낌도 살리고, 암릉을 뚫어내는 재미를 즐기면서 인근의 아홉산, 철마산, 일광산으로 종횡무진 내달릴 수 있어서다. 예전 달음산의 출입구 역할은 항상 동해남부선의 좌천역이 도맡았다. 역에서 내려 2㎞ 정도 달음산 자락의 옥정사까지 걸어야 산행이 시작됐다. 지금은 제 차로 어디든 갈 수 있는 세상이 되었으니 간이역에서 내려 먼지가 풀풀 이는 비포장길을 터벌터벌 걸어 입산하는 풍경은 까마득한 옛일이 되어 버렸다.
올 추석 명절 산행으로 그 추억을 일깨워 보고 싶었다. 산&산에서는 좌천역을 기·종점으로 삼되 광산마을, 옥정사를 거쳐 달음산에 올랐다가 동남쪽의 월음산(424m)을 거쳐 상리마을로 하산하는 코스를 꾸며봤다.
좌천역에 내리면, 또는 '좌천초등학교' 버스정류소에 하차하면 길이 시작된다. 지금은 옥정사까지 널찍한 도로가 뚫렸다. 산행은 옥정사 위 등산로에서 시작한다. 갈미산 고개~달음산~산불감시초소~월음산을 거쳐 상리마을로 내려오는 길은 사각형 궤적을 그린다. 여기서 좌천역까지 더 걸어 원점회귀를 완성했다. 8.8㎞를 4시간 30분 만에 걸었다. 이 중 산길은 4㎞ 남짓이라 차로 접근하면 시간은 훨씬 짧아진다.
달음산 정상 직전 이정표에서 기도원으로 내려가거나, 월음산 직전 갈림길에서 왼쪽으로 내려서면 광산마을로 원점회귀하게 되니 탈출로로 활용할 수 있다.
차로 접근한다면 옥정사 주차장이 편리하지만 상리마을로 하산할 경우 차량 회수가 번거롭다. 광산마을로 가기 직전 상리마을과 갈라지는 삼거리 도로에는 '무궁사' 표석이 서 있는데 주변 갓길에 주차하면 발걸음을 줄일 수 있다.
달음산 길은 뚜렷해서 헛돌이를 할 우려는 거의 없지만 최근의 물난리로 일부 이정표와 길이 훼손된 곳이 있기 때문에 산&산 리본을 잘 살펴야 한다.
■한반도에서 햇귀가 가장 먼저 닿는 곳
오랜만에 부전역에서 출발하는 동해남부선 무궁화 열차에 올랐다. 신설되는 수영과 센텀시티역 승강장은 마무리 공사가 한창이다. 좌천역은 강산이 몇 번이나 흘렀건만 간이역의 정취를 여전히 간직하고 있었다.
좌천역 앞에서 왼쪽으로 좌천초등학교 정류소까지 가니 달음산 이정표가 오른쪽 달음교를 건너라고 일러준다. 부울고속도로 교각 밑 광산마을과 그 위 옥정사 주차장을 거치면 옥정사다. 나무 구름다리를 넘어 입산하는 것으로 산행 시작. 20분쯤 걸어 능선에 올랐다. 갈미산 고개다. 이정표에 정상이 1㎞도 채 남지 않았다니 발걸음이 가벼워진다.
한참을 걷다 보니 이정표도 없는 곳에서 집채만 한 바위가 길을 막아섰다. 오른쪽으로 가면 줄을 부여잡고 가파른 바위를 올라야 한다. 금세 옥녀봉이다. 날카로운 바위에 올라섰더니 좌천역이 뚜렷하고 멀리 고리 원전과 동남권원자력의학원이 눈에 들어온다. 드넓게 펼쳐진 정관신도시와 그 뒤 동래·금정의 아파트 숲까지 아스라하다.
바윗길을 따라 순식간에 정상을 밟았다. 탁 트인 시야를 누리며 동해 바다를 눈에 담았다. 기장 사람들은 한반도에서 햇귀가 가장 먼저 닿는 곳이 달음산이라고 믿었다. 이제야 그 까닭을 알 것 같았다.
하산길은 봉긋하게 서 있는 월음산을 바라보고 가면 된다. 이정표상으로는 '광산마을' 방향이다. 수월한 길을 30분쯤 걸어서 월음산 정상에 닿았다. 존재감을 드러내는 표석도 없고, 근사한 조망도 없다. 발길이 뜸했는지 하산길조차 흐릿해졌다. 수풀을 헤쳐 내려가다 소나무 무덤군(훈증 처리)에 다다르자 길이 제 모습을 드러냈다.
멀리서 차량 굉음이 들리기 시작했다. 내려설수록 소리는 커졌다. 계단이 이어지더니 갑자기 부울고속도로 일광터널이 눈앞에 닥쳤다. 임도로 떨어지면서 산행이 끝났다. 고속도로 아래 굴다리를 뚫어내고, 논둑길과 상리마을을 빠져나오면 출발할 때 지나친 '무궁사' 표석에 닿는다. 산행 문의:라이프레저부 051-461-4095. 전준배 산행대장 010-8803-88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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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떠나는 열차 당일치기 산행이다. 기종점으로 삼은 동해남부선 좌천역은 간이역의 정취가 여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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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동차가 흔치 않고 도로 사정이 나빴던 시절에 기장 달음산을 오르려면 좌천역을 이용할 수 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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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버스로 왔을 때는 좌천역 근처 '좌천초등학교' 정류소가 기종점이 된다. 달음산 이정표를 보고 오른쪽으로 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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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좌천초등학교 옆 달음교를 건너 옥정사 방향 표시를 따라서 넓직한 신설 도로를 걷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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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울고속도로 교각 밑 광산마을을 거쳐 달음산에 올랐다가 왼쪽 상리마을로 하산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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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광산마을까지 기장군마을버스 8돥1번이 운행되지만 2시간 간격이라 시간 맞추기가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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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옥정사 위 나무 구름다리를 넘는 것으로 입산.`달음산 정상'으로 오르는 가풀막이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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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분쯤 땀을 흘렸더니 고갯길에 올라섰다.정상이 1㎞도 채 남지 않았으니,발걸음이 가벼워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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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선택의 갈림길이다.오른쪽은 줄을 부여잡고 가파른 바위를 오르는 길이다.왼쪽은 우회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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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시 갈림길이다.험하다는 오른쪽을 선택하면 날카로운 옥녀봉에 올라 시원스런 동해를 조망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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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옥녀봉에 서서 동해 바다를 눈에 담았다.기장 사람들은 한반도에서 햇귀가 가장 먼저 닿는 곳이 달음산이라고 믿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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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달음산 조망은 파노라마로 펼쳐진다.드넓게 펼쳐진 정관신도시와 그 뒤 동래금정의 아파트숲까지 아스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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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달음산 정상은 우뚝 솟은 거대한 바위다.매가 아래를 굽어보는 모습을 본 따 취봉(鷲峰) 또는 수리봉으로 불렸다.바로 밑이 옥녀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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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달음산 정상 표석을 뒤로 한 채 동해바다를 조망했다. 방금 출발했던 좌천역이 뚜렷하고 멀리 고리 원전과 원자력병원이 눈에 들어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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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월음산으로 가는 도중에 광산마을로 내려가는 갈림길을 만났다.기도원을 거쳐 원점회귀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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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월음산 정상은 쓸쓸하다.존재감을 드러내는 표석도 없고,근사한 조망도 없다.발길이 뜸했는지 하산길조차 흐릿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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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나무 무덤군을 지나자 차량 굉음이 들리기 시작했다.세번 째 계단을 내려가 부울고속도로 일광터널이 보일 때 산행이 끝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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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굴다리를 뚫어내고,논둑길을 따라 상리마을에 들어가 마을회관을 지나쳐 죽 도로를 따라 가기만 하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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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발할 때 지나친 삼거리로 되돌아왔다. 좌천역까지 가려면 1.2㎞ 더 걸어야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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