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 동네만 알고 있는 소심한 자연보호주의 인상파 좀생이의 눈으로 볼 때, 켄싱턴리조트(Kensington Resort) 충주는 단연 뇌물이 오간 삶의 PD 수첩 현장이다. 산중턱을 확 깎아내고 제집인 양 떡 하니 올라서 있는 저 우람한 건물은 도대체 뭐야? 여기가 홍콩(Hong Kong)이야? 홍콩에서 산정상을 싹둑 잘라내고 얄밉게 서 있는 집들을 보며 느꼈던 생소함이 켄싱턴리조트 충주에서 그대로 느껴졌다. 전에도 한 번 이 근처를 지났나 보다. 그 때 꽂았던 눈총이 아직도 9 층짜리 우람한 건물에 박혀 있었다. 이 일대 저변에 흐르는 지역개발에 대한 큰 그림과 복안들을 내 어찌 알 수 있겠냐 마는 그저 저 켄싱턴리조트가 이 일대 자연을 아작 내는 전초기지가 되지 않기만 바랄 뿐이다.
콘도(Condominium)였다. 그런데 왜 이렇게 고급스럽지? 로비(Lobby)와 건물 내 식당 등을 볼 때 이건 완전 최고급 호텔(Hotel) 수준이었다. 로비 한 켠에 마련된 열린도서관(Book Café)에서는 반경 5 Km 내의 최고의 문화공간이고자 하는 욕심까지 엿보였다. 실제 리조트로 들어가는 동안, 그리고 나오는 동안 살펴본 주변 풍경을 생각해 볼 때 반경 5 Km 내에서는 단연 독보적인 문화공간이 아닐까 생각한다. 하지만 리조트라는 이름을 붙이기엔 좀 그랬다. 내가 둘러본 곳이… 보자… 1 층에 있는 고품격 식당 [그 구름(The Cloud)], 1 층 로비 옆에 있는 열린도서관, 지하에 있는 목욕탕 [그 나무(The Tree)], 그 옆에 있는 보통 편의점, 9 층에 있는 큰 연회장 [그 토론회(The Forum)], 그 맞은편에 있는 [그 소기업(The Soho)], 아침 산보로 다녀온 뒷산이었는데 전체적으로 볼 때 리조트라 하기에는 부족한 부분이 없지 않아 있었다. 리조트보다는 최고급 호텔과 콘도의 좋은 점만 따다 놓은 특이하고 괜찮은 숙박시설이자 업무 공간이라고 하는 편이 좋을 것 같다.
1 박 2 일의 2 일째 아침, 콘도 여기저기를 돌아본 후 뒷산에 올랐다. 원래 산다운 산이었겠지만 거대한 콘도가 산중턱에 자리잡다 보니 그 뒤의 나머지 산봉우리는 그저 야트막한 언덕이 되어버렸다. 실제로 무슨 뒷동산 산보하는 기분이 들었다. 산 이름이 뭘까? 너도 참 불쌍하다. 산책로의 시작은 콘도에서 진입로를 따라 조금 내려가다 오른쪽에 있었다. 콘도를 만들기 위해 깊이 파낸 땅에 콘도가 들어서고, 손대지 않은 곳의 가장자리를 따라 산책로가 나 있다 보니 콘도보다 높지는 않지만 그래도 꽤 높은 위치에서 콘도를 바라볼 수 있는 특권이 산책로에 있었다. 뒷산에 오르기 전에 콘도 안 여기저기를 돌아다니다 최고층인 9 층에 올랐었다. 거기서 바라본 앞쪽 풍경이야 그야말로 가슴을 후련하게 만드는 시원한 풍경이었지만 뒤쪽 풍경은 너무 급한 비탈을 깎아서 세운 콘도라 그런지 9 층이나 되는 높이인데도 코앞까지 산이 다가서 있어 많이 답답했었다. 우리가 묵었던 방이 앞쪽이라 참 다행이다.
산책로를 따라 오르는데,
“앗! 이외수다.”
깜짝 놀랐다. 그런데 아니었다. 다름 아닌 이외수를 닮은 우리 일행이었다. 누구시더라… 어젯밤에 술을 너무 많이 마신 겨~ 식전이라 아직 머리가 띵한 겨~. 산책로를 따라 좀더 걷다 보니 드디어 콘도가 시야에서 사라졌다. 이제 남은 건 사람이 거의 다니지 않는 숲길과 나뿐이었다. 진한 송진향이 온몸을 감싸고, 코를 통해 들어와 폐부에 발렸다. 내 몸 안팎으로 막 소독되는 기분이었다. 이 진한 송진향이 가진 의미는 뭘까? 비록 지금은 이렇게 볼품없는 콘도 뒷언덕이지만 지난 날의 기상을 잃고 싶지 않은 대자연의 자존심? 알고 보니 사실 이 송진향은 모두 피비린내였다. 밤사이 벌어진 소나무들간의 치열한 고지 쟁탈전의 결과였던 것이다. 송진향이 아니라 송진비린내라고 해야 할 것 같다. 해가 뜨면 모두 독야청청 말쑥한 모습이지만 밤이 되면 영토싸움으로 서로 넘어뜨리고, 토막 내고, 가지치고, 뿌리째 뽑고, … 난리도 아닌 모양이다. 그렇지 않고서야 어디 이렇게 토막 난 채 나뒹굴고 있는 소나무들을 설명할 수 있을까? 우리 착하디 착하고, 순하디 순한 인간족들이 이런 짓을 벌였을 리 없다. 아무리 산지정화작업이라는 변태가 있다 해도 설마……. 마른 정도로 봐서 쟁탈전은 몇 달을 두고 계속해서 벌어졌나 보다. 군데군데 소나무가 아닌 나무도 꽤 많이 서 있고, 잘려 있었다. 모두 용병이었던 듯하다. 토막들을 살펴 보니 매끄럽게 잘려 나간 모양새가 칼잡이도 보통 칼잡이가 아니다.
주위에서 가장 굵어 보이는 소나무에 등을 대고 앉았다.
“그래… 그래… 알았어… 알았어… 그렇게 할게.”
조심하란다. 천기를 누설했다가는 장작이 될 수 있단다.
[ 나! 이 한 목숨을 초개 같이 버릴 각오로 조심스럽게 이 자리에서만 밝히는 바입니다. 켄싱턴리조트 충주 뒷산은 밤마다 숲 속 나무들 간에 영토전쟁이 벌어지는 치열한 격전지입니다. 이로써 아침이면 진한 송진비린내가 산책로 내내 가시지 않습니다. 인간족들은 이 송진비린내를 피스타치오(Pistachio)라 부릅니다. 아니다, 피스톤치라 부릅니다. 이것도 좀 아닌 것 같네? 음… 잠시만요, 좀 찾아보구요… 아! 피톤치드(Phytoncide)다! 이름부터 벌써 피가 토하고, 치사하고, 더럽지 않습니까? 전쟁이란 원래 이런 겁니다.]
나 이제 무서워서 소나무 옆을 어떻게 지나나… 지금도 소나무 옆만 지나가면,
‘그 동안 너한테 먹인 피톤치드가 아깝다우~다우~다우~다우~다우~다우~’
그러는 것 같다.
숲이 깊은 만큼 풍경은 별로였다. 높다랗게 선 누각이 있는 것도 아니니 보이는 건 모두 나무뿐이었다. 저기 보이는 저곳까지 가면 시야가 좀 트이려나 했지만 똑같고, 저기까지 가면 좀 다르려나 했지만 똑같기를 몇 번, 그렇게 몇 번 오르락내리락하다 보니 어느덧 정상 비슷한 곳이었다. 정상인지 아닌지는 모르겠다. 거기서도 보이느니 온통 나무뿐이었다. 정상 비슷한 곳에 서니 아랫동네로부터 나무 태우는 냄새가 솔솔 올라왔다. 바싹 마른 장작을 태우는지 향이 그윽했다. 하지만 이까지 오는 동안 송진향으로 바르고 채워온 몸이라 기분이 팍 상했다. 쯧쯧쯧, 제발 분수 좀 알아라, 넌 곧 차 매연을 달게 마시며 살아가야 할 놈이야… 쯧쯧쯧, 분수도 모르는 놈…….
다 좋았는데 딱 하나, 약간 그렇고 그런 사건이 있었다. 내가 로비에 있는 동안 목격한 일이었다. 로비에 [탁구를 즐기세요, 1 시간에 5,000 원]이라는 안내판이 서 있었는데 보통 탁구는 공짜 아닌가? 이런 생각을 하고 있는데 어떤 두 남자가 탁구채와 공을 들고 나타나 로비에 있는 직원과 옥신각신하기 시작했다. 가만히 들어보니 자초지정이 이랬다. 5,000 원을 내고 탁구를 치다 공이 깨졌고, 공을 바꾸러 와보니 교환 비용이 1,000 원라나 어쨌다나? 그 분이 황당해서 두세 번 물어보는 모양새가 옥신각신이었다. 진짜일까? 아니겠지? 내가 잘못 들었겠지? 로비에서 공을 교환해 주는 걸 보면 다른 사업자도 아니고 켄싱턴리조트에서 운영하는 탁구장인 것 같은데 맞다면 공 정도는 그냥 교환해 주자! 알라 자지끈티 밥띠기를 띠무라!
*. 마지막 문장은 할머니께서 늘 쓰시던 말씀을 인용한 것입니다.
첫댓글 ㅋㅋㅋ 밥띠기.. 밥때까리...밥풀때기..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