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수산(文殊山600.1m)~남암산(南巖山 544.3m)
1.소 재 지: 울산 울주군 청량읍 율리, 범서읍 천상리, 언양읍 둔기리
2.개 요
문수산(文殊山600.1m)
문수산(文殊山600.1m)은 울산 울주군 청량읍 율리와 범서읍 천상리에 걸쳐 있는 산이다. 울산광역시 중앙부에 자리하고 있으며 흙과 바위가 적절히조화를 이루고 있는 산이다. 전체적인 산세는 능선이 동쪽과 남쪽으로 뻗어 각각 영축산(靈鷲山 352.1m)과 남암산(南巖山 544.3m)으로 연결되어 있으며, 문수산(文殊山)은 신라와 고려 때 주로 ‘영축산’이라 불리던 산이다. ‘영축’은 불교를 따라 우리나라로 이동하여 온 것으로 보이며 축령들이 산에 있으므로 이름을 붙였고 조선시대에 와서는 ‘문수산’이라 하여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울산에 ‘고을 서쪽 25리에 있다. 망해사, 청송사 모두 문수산에 있다‘고 기록에 나타난다.
문수산은 문수보살이 이곳에 머물렀다고 하여 유래한 지명이다. 전형적인 노년 산지로 대체로 급한 사면을 보이고 있다. 문수산 주변으로 산지가 발달해 있으며, 남쪽으로는 남암산(南巖山543m)으로 이어지다가 노방산(老房山)·큰비알산·작은서산 등 해발 300m 이내의 낮은 산지들이 이어져 있으며, 산과 산 사이에는 크고 작은 하천들이 흐르고 있다. 동쪽으로는 영축산(350m)과 산자락이 이어지다가 동쪽의 낮은 평야 지대가 형성되었다. 서쪽으로는 대암호가 크게 자리 잡고 있으며 문수산에서 발원한 물줄기가 서쪽으로 문수천을 이루고, 동쪽으로는 작은 하천이 흘러 두현저수지를 이루고 청량천(靑良川)으로 흘러들고 있다. 일명 청량산(靑良山)이라 부르기도 하며, 청량(靑良)은 신라 선덕여왕 때 자장율사가 당나라 청량산에서 수도하다 문수보살을 만나 진신 사리와 석가여래가 입었던 가사를 가지고 돌아와 이곳에서 수도하였다는 데서 나온 이름이다. 문수산에서 발원하는 작은 물줄기가 태화강(太和江)과 회야강(回夜江)의 지류를 이루고 있다. 남쪽 사면에 문수암과 보물 제382호 울주 청송사지 삼층석탑(蔚州靑松寺址三層石塔)(1963년 1월 21일 지정)과 울산광역시 유형문화재 제3호 청송사지 부도(靑松寺址浮屠)(1997년 10월 9일 지정)가 있다.
남암산(南巖山 544.3m)
남암산(南巖山544.3m)은 울산 울주군 청량읍 율리와 웅촌면 대복리에 있는 산이다. '남암산(南巖山)’이라는 지명은 옛날 남암이라는 절이 있어 부르게 되었다. 또한 남암산을 ‘김신기산’이라고도 부르는데 이는 신라 경순왕(敬順王)의 둘째 아들 범공이 신라가 망하자 이곳 남암산으로 들어와 김신암이라는 절을 짓고 머물렀다는 곳이 있어 붙은 지명이라고도 한다. 율리 김신암터는 현재 성불암 일원으로 알려져 있다.
울산광역시 울주군의 동쪽에 위치하며 북쪽으로 문수산(文殊山600.1m)과 맥을 같이 하고 있어 마치 같은 산의 형제봉 같다. 문수산과 남암산만이 중심에 우뚝 솟아 있고 남쪽으로는 노방산(老房山)·큰비알산·작은서산 등 해발 300m 이하의 산지들이 자리 잡고 있으며, 대부분 낮은 평야 지대가 형성되어 있다. 남쪽의 작은서산과의 사이에는 대복천(大福川)이 흐르고 양산에서 발원하여 흐르는 회야강(回夜江)으로 유입한다.
영취산(靈鷲山352.5m)
영취산(靈鷲山352.5m)은 울산시남구 무거동과 청량읍 율리에 소재한 산이다. 영축산이란 이름과 혼용돼 알려져 있다. 영취산(靈鷲山)은 석가모니가 최후로 설법한 인도의 영취산에서 그 이름이 유래됐다고 한다. 독수리 서식지인 이곳을 독수리 취(鷲)자를 써 영취산으로 불렀다는 것이다. 영취산의 불교식 이름이 바로 영축산이다.
문수산과 남암산은 영남알프스 주능선에서 바라볼때 마치 쌍둥이처럼 보인다. 시가지와 인접해 있을 뿐 아니라 클라이머들의 꿈과 희망을 키우는 암벽이 있으며, 망해사와 문수사 등 천년고찰이 자리하고, 늘 많은 시민들로 북적거리기 때문에 울산의 산이라 할 만하다. 그러나 문수산에서 남쪽으로 3㎞ 가량 떨어져 있는 남암산은 문수산의 명성에 가려서인지 비교적 조용한 편이었다. 또한, 문수산은 낙동정맥 가지 줄기의 하나인 남암지맥 상에 솟아있다. 이 지맥은 정족산 0.5㎞ 지점에서 북동쪽으로 뻗었는데 운암산~남암산~문수산~영취산~함월산 등을 거쳐 태화강 하구에서 그 맥을 다한다.
문수사(文殊寺)
문수사는 울주군 청량면 율리 산342번지에 자리잡은 절로 문수산의 이름을 딴 절이다. 이 문수산은 신라와 고려 때는 주로 영축산이라 불려오던 산이다. 천축국왕사성 부근에 있는 영축산의 이름이 불교를 따라 우리나라로 이동하여 온 것으로서 천축의 영축산은 부처님이 설법하시던 곳이며, 신선들이 살았고 독수리가 많이 있으므로 영축산 또는 축두, 축봉, 축대라고도 하였다는 것이다. 또 축령들이 산에 있으므로 이름하였고 혹은 산모양이 수리머리와 비슷하다는데서 온 이름이라고도 한다.
조선조에 와서는 문수산이라 하여 신증동국여지승람에 그렇게 나타난다. 또 이 산을 일명 청량산이 라고 하였는데 산 아래에 있는 청량면은 청량산에서 비롯된 이름인 것이다. 이 산을 문수산이라고 한것은 화엄경 제10법 운지로서 보살들이 살던 곳이어서 문수보살이 응현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한편, 삼국유사 권 5 연회도명 문수점에서 문수대성과 변재 천녀가 응현하여, 무거설화에서도 문수보살이 나타난다. 무거설화를 보면 "경순왕은 백척간두에 선 나라의 장래를 영취산의 문수대성의 계시를 받아 결정키로 결심하고 태자와 둘째 왕자를 거느리고 하곡현의 영취산을 찾아 길을 나섰다. 먼저 태화에 이르러 참배하고 또 길을 나섰는데 중도에서 길가에 한 동자승이 나타나더니 대왕께서 오실 줄 알고 산으로 인도하여 모시고자 왔다고 하였다. 왕은 다행이라 생각하고 크게 만족하여 길을 따랐다. 그러나 삼호 앞에서 태화강을 건너자 얼마가지 아니하여 동자승은 그 자취를 감추어 버렸다. 왕은 직감에 이 동자승이 문수보살임을 느끼고 하늘이 이미 나를 저버리는구나 하여 크게 탄식하며 이제는 할 수 없다고 몇 번이나 되풀이하고는 실의에 빠지고 말았다.
이래서 왕은 발길을 돌려 월성(지금의 경주)에 환궁하여 사방의 땅이 다 타인의 소유로 돌아가고 나라의 힘은 다 쇠퇴하여 다시 일으키지 못함을 통탄한 나머지 고려 태조에게 항복하기를 꾀하였다. 이 탄식한 자리를 '헐수정'이라 하였으며 동자승이 자취를 감춘 속을 무거라 하였다."신라 제 27대 선덕여왕 15년(646)에 자장율사가 이 곳에 절을 세워 문수사라 했다고 한다. 이 문수사가 연대는 알 수 없으나 범어사의 말사가 되면서 사명을 문수암이라 고쳤다가 1989년에 중건하여 다시 문수사라 부른다.
탱화(幀畵)는 사찰의 법당 등에 모셔놓고 예배를 하기 위해 그린 불교회화의 한 형태이다. 문화재로 지정된 문수사 탱화는 모두 3점으로, 석가모니후불탱, 지장탱, 칠성탱이 있다. 이들 3점은 모두 통도사 성보박물관에 위탁보관 중이다.
망해사(望海寺)
한국불교 태고종에 속하며, 〈삼국유사〉 처용랑 망해사조에 의하면 헌강왕(875~886 재위) 때 창건했다고 한다. 즉 헌강왕이 개운포(지금의 울산)에 놀러 나갔다가 돌아오는 길에 갑자기 구름과 안개가 휩싸이니 일관이 아뢰기를 동해룡의 조화이니 좋은 일을 행하면 곧 풀릴 것이라고 하므로 왕은 용을 위해 근처에 절을 세우도록 명했다.
그러자 구름과 안개가 걷히고 동해룡이 7명의 아들과 함께 나타나 임금의 덕을 찬양하고, 아들 1명을 보내 임금의 정사를 보좌하도록 했다는 창건설화가 전한다. 그뒤의 역사는 전하지 않으며 조선 후기에 페허화된 것을 1962년 영암이 중창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현존 당우로는 대웅전·요사채 등이 있으며, 이밖에 망해사지석조부도(보물 제173호)와 파손된 석탑 2기가 있다.
울주 망해사지 승탑
보물 제173호. 동부도 340㎝, 서부도 330㎝. 두 부도는 규모와 건조기법이 같으나 서부도에 비해 동부도의 파손이 심한 편이다. 통일신라시대의 전형적인 양식인 팔각원당형으로 지대석 위에 상·중·하대로 이루어진 기단부가 있다.
이 부도는 파손되었던 것을 1960년에 복원한 것이며, 절의 창건연대와 관련지어 9세기말에 조성된 것으로 추정된다.
성불암(成佛巖)
정조10년 1786년 판 "울산읍지"에 의하면 문수암 남쪽 3리에 김신암이라는 절이 있었다고 기록 되었고, 현 남암산은 김신기산이라고 불렀다고 전해지고 있다. 김신암은 신라 마지막 임금인 경순왕의 둘째 아들인 범공이 신라가 망하자 머리를 깎고 스님이 되어 지었으며, 또 형인 마의태자와 함께 초식으로 생을 마친 곳이다.
지금은 범공 스님이 세수대로 사용했던 석조와 또 신라 천년 사직을 알아보기 위해 이 산에 들렀던 경순왕이 문수산 문수보살에게 제를 지냈다는 김신대가 있다.
성불암은 불타 없어진 김신암 자리에 1968년 고암 스님께서 증명하시어 세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