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아버지, 당신에게 인생을 묻습니다
― 이근후의 필사 노트 110
가득 찬 유리병에는 새로운 구슬을 담을 자리가 없다.
사람의 마음도 그런 것인지 모른다. 내가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 아버지의 모습으로 마음이 가득 차 있으면, 정작 눈앞에 있는 한 사람의 진짜 모습은 보이지 않을 때가 있다.
『아버지, 당신에게 인생을 묻습니다』(예띠, 2026)는 바로 그 마음의 빈자리를 찾아가는 책이다.
정신과 의사이자 작가인 아버지 이근후의 글을, 천문학자이자 과학 저술가인 아들 이명현이 골라 엮었다. 아버지가 평생 인간의 마음속 깊은 곳을 들여다보았다면, 아들은 밤하늘의 별과 은하를 바라보며 인간이 살아가는 우주의 자리를 탐구해 왔다.
한 사람은 인간의 내면을 향했고, 다른 한 사람은 우주의 바깥을 향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두 사람이 바라본 곳은 멀리 떨어져 있지 않다.
마음의 우주와 우주의 마음
정신분석학은 인간의 의식 아래 숨어 있는 무의식의 세계를 탐구한다. 눈에 보이는 의식의 표면 아래에는 우리가 미처 알지 못하는 거대한 마음의 세계가 존재한다.
천문학 역시 그렇다. 우리가 밤하늘에서 보는 별과 은하는 우주의 전부가 아니다. 보이는 것 너머에는 아직 인간이 알지 못하는 광대한 공간과 수많은 상호작용이 존재한다.
정신과 의사는 마음의 심연을 들여다보고, 천문학자는 우주의 심연을 바라본다. 하나는 가장 가까운 곳에서 가장 깊은 것을 찾고, 다른 하나는 가장 먼 곳에서 가장 근원적인 것을 찾는다. 그래서 아버지 이근후와 아들 이명현의 만남은 어쩌면 한 가족의 이야기를 넘어선다.
한 사람은 인간이라는 작은 우주를 연구했고,
다른 한 사람은 인간을 품고 있는 거대한 우주를 연구했다.
그 두 세계가 아버지와 아들이라는 인연으로 한 권의 책 안에서 만난 것이다.
아버지를 이해하기 위하여
이명현은 이 책을 엮기 위해 아버지의 책 70여 권을 다시 읽었다고 한다. 그리고 그 가운데 일곱 권에서 마음에 오래 남은 문장들을 골라 110개의 필사 노트로 엮었다.
그 시작에는 죽음에 대한 두려움이 있었다. 아들이 급성심근경색으로 쓰러져 생명이 위태로운 고비를 넘겼을 때, 여든을 바라보던 아버지는 아들에게 함께 지나온 삶을 이야기해 보자고 제안했다.
두 사람은 약 6개월 동안 삶과 가족, 부모와 자식에 대해 솔직한 대화를 나누었다. 그리고 2014년, 아버지와 아들, 3대가 함께 네팔 여행을 떠났다.
아들은 녹취록과 노트북을 들고 갔다. 여행길에서 아버지와 못다 한 이야기를 나누고 원고를 완성할 생각이었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한 줄의 원고도 쓰지 못했다.
아버지를 이해했다고 생각하는 순간에도 아버지에게 품었던 기대와 실망, 사랑과 서운함이 여전히 마음을 붙잡고 있었기 때문이다. 어쩌면 우리는 부모를 이해하는 데 너무 오랜 시간이 걸리는 존재인지도 모른다. 그리고 어느 순간 깨닫는다.
부모를 이해한다는 것은 부모가 완벽한 사람이었다는 사실을 확인하는 것이 아니라,
부모 역시 한 생을 힘겹게 살아온 한 사람에 불과했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는 것임을.
자식이 부모를 놓아드려야 할 때가 있다. 부모가 자식을 놓아주듯이. 부모에게 품었던 이상적인 기대를 내려놓고, 서툴고 부족했던 한 인간으로서의 부모를 바라볼 때 비로소 자식도 부모의 그늘에서 벗어나 자기 인생을 살아갈 수 있다.
이명현에게 『아버지, 당신에게 인생을 묻습니다』는 아버지의 책을 다시 읽는 일이면서 동시에 아버지라는 인간을 다시 만나는 일이었을 것이다.
그렇다면 이 책의 주인공인 이근후는 어떤 사람인가. 그를 단순히 정신과 의사라고 부르기에는 그의 삶은 너무 넓다. 그는 한국 정신의학의 발전에 중요한 발자취를 남긴 정신과 의사였다. 폐쇄적인 정신병동을 개방병동으로 전환하고, 사이코드라마를 치료에 도입하는 등 환자를 바라보는 새로운 시선을 실천했다.
그러나 그의 삶을 이해하는 데 학문적 업적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그는 전쟁과 가난을 겪었고, 젊은 시절에는 시대의 격랑 속에서 감옥을 경험하기도 했다. 의사가 되고 교수가 된 뒤에도 삶의 굴곡은 끊이지 않았다.
노년에는 시각장애와 당뇨, 고혈압, 관상동맥질환, 허리디스크 등 여러 질병과 함께 살아가며 몇 차례 죽음의 문턱을 넘었다. 그런데도 그는 병을 삶의 적으로만 여기지 않았다. 병과 동행하면서도 삶의 유쾌함을 잃지 않는 것. 그것이 그가 자신의 삶으로 보여준 노년의 태도였다.
76세의 나이에 사이버대학에 입학해 공부했고, 네팔에서 오랫동안 의료봉사를 이어갔다. 퇴임 후에는 가족아카데미아를 세워 청소년과 부모, 노년을 위한 교육 활동을 펼쳤으며, 오랜 기간 보육원 아이들을 돌보았다. 3대의 대가족(13명)이 함께 살아가는 일상 속에서도 그는 거창한 행복보다 작은 기쁨을 발견하려 했다.
그러나 내가 생각하는 그의 가장 큰 힘은 따로 있다.
그는 환자를 자신의 스승으로 생각했다. 정신과 의사로 평생 사람의 마음을 들여다보았지만, 자신이 환자를 가르쳤다고 말하기보다 환자를 통해 자신이 삶을 배웠다고 말하는 사람, 바로 그 겸손함이 이근후의 글을 읽는 중요한 열쇠라고 생각한다.
그의 문장은 거창한 철학에서 출발하지 않는다. 병원에서 만난 사람에게서, 가족에게서, 늙어가는 자신의 몸에서, 그리고 매일 반복되는 평범한 생활에서 삶의 진실을 길어 올린다. 그래서 그의 문장은 평범하면서도 오래 남는다.
아버지가 건네는 110개의 문장
이명현이 고른 책은 아버지가 쓴 70권의 방대한 책 중에서 다음 일곱 권이다. 아들은 일곱 권의 책 속에서 정수가 되는 110개의 문장을 필사 노트로 엮어 냈다.
『나는 죽을 때까지 재미있게 살고 싶다』
『인생에 더 기대할 게 없다는 생각이 든다면』
『어차피 살 거라면, 백 살까지 유쾌하게 나이 드는 법』
『당신은 괜찮은 부모입니다』
『오십부터는 단순하게 사는 게 좋다』
『마음대로 안 되는 게 인생이라면』
『오늘은 가장 젊은 날입니다』
책의 왼쪽에는 이명현이 아버지의 책에서 가려 뽑은 문장이 원문의 페이지와 함께 실려 있고, 오른쪽에는 독자가 직접 그 문장을 필사할 수 있도록 노트가 마련되어 있다. 눈으로 읽는 책이면서 동시에 마음과 육필로 쓰는 책이다.
나는 이 책을 받아 들고 문득 한 가지 생각이 들었다.
이 책을 읽는 것으로 끝내지 말고, 경전을 필사하듯 직접 써보자.
그래서 110개의 문장을 한 자 한 자 옮겨 쓰기 시작했다. 나는 뇌출혈로 쓰러진 아내를 24시간 곁에서 간병하고 있다. 하루 종일 병실이라는 좁은 공간에서 아내의 몸을 돌보고, 때로는 지치고, 때로는 마음이 무너지는 시간을 보내면서 하루에 한 쪽씩 필사를 했다.
필사는 나에게 단순한 독서가 아니었다. 그것은 작은 수행이었다.
필사하면서 특히 오래 손이 머문 문장이 있었다.
자식에게 부모는 하나의 벽이다.
벽의 보호를 받으며 성장한 자식은
성인이 되어서도 습관처럼 벽을 의식한다.
벽은 보호막도 되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자식의 앞길을 막아서는
걸림돌이 되기도 한다.
이 문장을 쓰면서 나는 부모와 자식의 관계를 곰곰이 다시 생각해 보았다. 부모는 자식을 보호하기 위해 벽이 되어준다. 그러나 자식이 자라면 그 벽을 넘어야 한다. 부모에게서 독립한다는 것은 부모를 버리는 일이 아니다. 오히려 부모를 한 사람의 인간으로 바라보는 일이다.
나 역시 자식을 바라보며 많은 기대했고, 때로는 그 기대가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자식의 삶에 벽이 되었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이 문장을 쓰면서 나 자신에게도 묻게 된다.
나는 자식을 사랑한 것인가,
아니면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내 뜻을 관철하려 한 것인가.
또 한 문장 앞에서는 한참 동안 펜을 내려놓았다.
내가 생각하는 가장 인간적인 죽음은
솔직한 죽음이다.
‘아, 정말 무섭다. 두렵다’ 하면서
죽음을 맞는 것은 전혀 부끄러운 일이 아니다.
죽음 앞에서 두렵지 않은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죽음을 초연하게 받아들이는 것이 위대한 것이 아니라, 두렵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이 오히려 인간다운 것인지도 모른다.
불교에서는 무상을 말한다. 모든 것은 생겨나고 사라진다. 그러나 무상을 안다고 해서 죽음이 두렵지 않은 것은 아니다. 오히려 죽음을 삶의 일부로 받아들일 때, 오늘이라는 시간이 얼마나 귀한지를 깨닫게 된다.
나이 팔십이 된 나에게 또 다른 문장이 마음속에 깊이 꽂힌다.
75세가 넘으면 겨울이다.
자연의 모든 빛나는 것들이 쇠락하는 계절이다.
비로소 모든 것에 자유로워지는 시간이다.
사계절을 아름답게 여기듯,
당신이 지금 어느 단계를 지나고 있든지,
우리는 가장 빛나는 황금기를 살고 있다.
노년을 겨울이라고 부르는 것이 처음에는 쓸쓸하게 느껴졌다. 그러나 다시 생각하면 겨울은 죽음의 계절만은 아니다. 겨울에는 잎이 떨어진다. 그러나 나무가 죽은 것은 아니다. 오히려 잎을 내려놓았기 때문에 나무는 자신의 가장 본질적인 모습을 드러낸다.
젊음이라는 잎을 내려놓고, 욕망이라는 잎을 내려놓고, 명예와 체면이라는 잎을 하나씩 내려놓을 때 인간은 비로소 자기 자신에게 가까워지는지도 모른다. 그래서 노년은 빼앗기는 시간이 아니라 내려놓음으로써 자유로워지는 시간인지도 모른다.
용서에 대한 가슴 울리는 진솔한 문장도 있다.
남을 용서하면 반푼어치 용서다.
내가 나를 용서해야 명실상부한 온전한 용서다.
온전한 용서란 곧 자유로움이다.
내가 나를 속박했던 원한으로부터 온전히 풀려나는 것.
이 문장을 쓰며 나는 오래된 기억을 떠올렸다. 우리는 남에게 받은 상처를 오래 기억한다. 그러나 때로는 남을 미워하는 마음보다 그 사람을 미워하고 있는 나 자신이 더 오랫동안 나를 붙잡고 있다는 사실을 알지 못한다.
용서는 상대를 위한 선물이 아니라 나 자신을 묶고 있던 사슬을 푸는 일일지도 모른다. 그래서 용서의 마지막 대상은 결국 타인이 아니라 자기 자신인지도 모른다.
그리고 마음속에 가장 따뜻하게 다가온 문장이 있다.
슬픔을 나누되 유머가 있다면 더욱 좋다.
“먼저 가서 자리 맡아 놓을 테니 천천히 오렴.”
죽음을 당하는 이가 보여주는 마지막 여유는
가족에게 따뜻한 슬픔을 남겨 주지 않을까.
죽음의 문턱에서도 농담 한마디를 건넬 수 있는 사람. 그것은 죽음을 가볍게 여기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죽음을 알기에 가능한 여유일 것이다. “먼저 가서 자리 맡아 놓을 테니 천천히 오렴.” 이 한마디에는 죽음과 이별, 사랑과 기다림이 모두 들어 있다. 떠나는 사람은 떠나지만 사랑하는 사람의 마음속에는 자리를 하나 마련해 놓고 간다.
읽는 것은 지나가고, 쓰는 것은 머문다.
나는 오래전부터 불교 경전인 『반야심경』과 『금강경』을 필사해 왔다. 반야심경 한 글자를 쓰고 한 번 절하는 수행도 해보았다. 티베트를 여행하며 순례자들의 뒤를 따라가며 삼보일배의 수행도 해보았다.
티베트의 순례자들이 경전이 새겨진 마니차를 돌리고, 길 위에서 온몸을 낮추어 삼보일배를 하듯, 한 글자를 쓰고 한 번 절하는 일 역시 몸과 마음을 함께 움직이는 수행이었다.
그래서 이번 필사는 나에게도 특별했다. 아내를 간병하는 무문관 같은 병실에서 하루 한 페이지씩 이근후의 문장을 옮겨 적는 수행은 많은 것을 내려놓게 해주었다.
한 글자를 쓰고, 다음 글자를 쓰는 동안 마음속에 쌓아 두었던 욕망을 하나씩 내려놓게 되었다. 병실의 소음도, 내일에 대한 걱정도, 지나간 일에 대한 후회도 잠시 멀어졌다. 그리고 붓끝에 마음을 모으자 세상이 잠시 멈추었다.
읽으면 지나가지만,
쓰면 머물고,
반복해서 쓰면 마음에 새겨진다.
그래서 필사는 일종의 움직이는 명상이다. 한 글자를 쓰는 것은 한 생각을 내려놓는 일이고, 한 문장을 쓰는 것은 한 마음을 돌아보는 일이며, 한 권의 필사를 끝내는 것은 결국 자신의 마음을 한 번 깊이 들여다보는 일이다.
인터넷과 휴대전화에는 하루에도 수없이 많은 정보가 쏟아진다. 우리는 너무 많이 보고, 너무 많이 듣고, 너무 많이 생각한다. 그러나 많이 안다고 해서 반드시 깊어지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너무 많은 정보가 마음을 지치게 할 때가 있다.
필사는 그 반대편에 있다. 천천히 쓴다. 한 글자씩 쓴다. 다음 글자를 쓰기 전에 앞의 글자를 바라본다. 그 과정에서 생각은 자연스럽게 한곳으로 모인다.
필사의 효력은 특별한 신비에 있는 것이 아니다. 집중하고, 멈추고, 되돌아보고, 다시 생각하는 그 과정 자체가 마음을 닦는 수행이기 때문이다.
쓰는 것은 글자가 아니라 마음이고,
지우는 것은 글자가 아니라 번뇌다.
그래서 필사는 기도이면서 명상이고, 명상이면서 수행이다.
이 책의 제목은 『아버지, 당신에게 인생을 묻습니다』이다. 그러나 110개의 문장을 직접 필사하고 나니, 나는 이 질문이 꼭 아들에게만 해당하는 것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도 묻고 싶었다.
아버지, 인생이 무엇입니까?
늙는다는 것은 무엇입니까?
자식은 언제 놓아주어야 합니까?
죽음은 어떻게 맞이해야 합니까?
용서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사랑하는 사람을 떠나보내고도 어떻게 살아가야 합니까?
그런데 110개의 문장을 한 자 한 자 쓰고 나니 조금씩 답이 보이기 시작했다. 인생은 정답을 얻는 일이 아니라 질문과 함께 살아가는 일인지도 모른다. 젊을 때는 답을 찾으려고 했지만, 나이가 들수록 질문을 품고 살아가는 법을 배운다.
아버지 이근후가 평생 환자들에게서 삶을 배웠듯이, 나 역시 이제는 삶의 모든 사람과 사건을 스승으로 바라보아야 할 것 같다. 아픈 아내도 나의 스승이고, 자식도 나의 스승이며, 늙어가는 내 몸도 나의 스승이다. 그리고 죽음마저도 마지막 스승인지 모른다.
생각해 보면 이 책은 참 묘하다.
아버지는 인간의 마음이라는 작은 우주를 평생 들여다보았다. 아들은 별과 은하라는 거대한 우주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아들은 마침내 아버지의 책 속에서 인간의 삶을 다시 발견했다. 어쩌면 가장 먼 우주를 여행한 사람만이 가장 가까운 사람의 마음으로 돌아올 수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수십억 광년 떨어진 별을 바라보던 천문학자가 마지막에는 아버지의 한 문장을 오래 들여다본다. 그리고 그 문장 속에서 자신의 어린 시절과 가족, 사랑과 죽음, 그리고 한 인간의 생을 만난다.
나는 이 책을 다시 받아 들고 하루 한 쪽씩 필사했다. 아내가 누워 있는 병실에서. 내가 살아온 시간과 앞으로 남은 시간을 생각하면서. 한 글자를 쓰고, 한 문장을 쓰고, 한 페이지를 넘겼다. 그렇게 110개의 문장을 따라가다 보니 어느 순간 아버지 이근후에게 묻던 질문이 나 자신에게 돌아오고 있음을 느꼈다.
“나는 지금 어떻게 살고 있는가.”
어쩌면 그것이 이 책이 우리에게 던지는 가장 깊은 질문일 것이다. 인생은 결국 누구의 답을 외우는 일이 아니라, 자기 삶으로 그 질문에 답해가는 과정이기 때문이다.

첫댓글 얼마 전 이근후 선생님이 이별을 고하셨지요! 저도 이 책을 사서 필사해 보렵니다!
오랫동안 소식이 없어 궁금하였는데 사모님 병간호를 하고 계시군요!
집집마다 노노케어는 힘들어요! 찰라님의 건강도 잘 유지하시길 빌며!
오랜만이네요~ 제가 존경하는 큰 어른이시자 스승이 별세 하시어 마음이 허전합니다.
평범속에 비범한 내용이 담긴 이근후 필사노트 110을 필사하면서 다시금 그분의 뜻을 새겨봅니다.
늘 건강하시고 행복하세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