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걷고 싶은 길 가고 싶은 거리] “낙후된 마을 살리자” 주민들이 직접 붓칠… 화합의 마법이 통했다 <10> 고양시 화전동 벽화마을
[저작권 한국일보]19일 오전 경기 고양시 화전동 벽화마을길. 마을 담벼락마다 벽화로 물들어 있다. 홍인기 기자
[저작권 한국일보]19일 오전 경기 고양시 화전동 벽화마을길. 홍인기 기자 도시 재생은 쇠퇴한 도심에 활력을 불어넣는 마법과도 같다. 막대한 예산을 쏟아 부어야 하는 사업 특성상 지방자치단체를 비롯한 관에서 주도하는 식이 대부분이다. 정작 주민은 들러리로 취급 당하기 일쑤다. 이런 점에서 경기 고양시 덕양구 화전동의 ‘벽화마을 향기길’은 확연한 차이가 있다. 주민들이 자발적으로 힘을 모아 낡고 퇴색한 골목길을 아름다운 풍경의 벽화 거리로 새롭게 단장해 변화를 이뤄냈다는 점에서다. 지난 19일 영하 5도가 넘는 강추위 속에 찾아간 ‘화전동 벽화마을 향기길’. 추위 탓에 인적은 드물었지만, 골목 사이사이 담벼락마다 생동감 넘치는 벽화가 반갑게 눈앞에 펼쳐졌다. 마을 초입에 자리한 한 군부대의 외벽에도 병영생활을 주제로 한 그림들이 그려져 있어 이곳이 ‘벽화마을’임을 알 수 있게 했다. 발길이 처음 닿은 곳은 벽화마을 달맞이길이다. 2012년 벽화거리로 꾸민 뒤 올해 색이 바래거나 벗겨진 부분을 덧칠해 새 단장한 곳이다. 화전동에서 가장 높은 곳에 있는 마을(13통)이라 가는 길이 가팔랐다. 시멘트 담을 두른 옛 집들이 다닥다닥 붙어 있었고, 회색 빛의 돌계단도 놓여 있었다. 마치 1980년대에서 시간이 멈춘 듯 예전 달동네의 풍경을 연상케 했다. 좁은 골목골목을 따라 걸으며 마을 풍경을 만끽해봤다. 이름 모를 꽃들과 커다란 눈망울의 소 한 쌍 등 아기자기한 벽화가 곳곳에 눈에 들어왔다. 벽화를 보며 걷는 재미가 제법 쏠쏠하다. 자칫 삭막해 보일 법한 골목엔 벽화 덕분에 생기가 돌고 있었다.
[저작권 한국일보]19일 오전 경기 고양시 화전동 벽화마을길. 삭막한 회색 담벼락이 알록달록한 벽화로 물들어 있다. 홍인기 기자
[저작권 한국일보]19일 오전 경기 고양시 화전동 벽화마을 내 런닝맨 촬영장소인 동네 슈퍼. 홍인기 기자 달맞이길에서 차로 3분 거리에 있는 동화길로 발걸음을 옮겼다. 길에 다다르자 담벼락에는 이름값을 증명하듯 동화 속에 나오는 꽃과 나비, 동물, 달맞이하는 아이들의 그림들이 연이어 펼쳐졌다. 전래동화에 등장하는 고양시의 유래를 표현한 벽화부터 숨은 물건을 찾아보는 그림까지 낡은 담벼락이 순박한 느낌의 예술로 물들어 있었다. 벽화마다 옆에는 이해를 돕는 작품 설명서도 붙여 있었다. 고(故) 박철현(1939~2001) 화백의 작품을 옮긴 ‘100명의 천국의 아이들’은 벽화마을의 최고 걸작품으로 꼽힌다. 고양시에서 가장 개발이 더딘 화전동이 벽화마을길로 크게 변신할 수 있었던 것은 도시재생사업의 효과다. 화전동 벽화마을길 사업은 2011년 주민 주도로 첫발을 뗐다. 화전동주민자치위원회에서 ‘낙후된 마을을 확 바꿔보자’고 제안했고, 이에 주민들이 힘을 합치면서 불가능할 것 같던 일이 현실이 됐다. 주민들이 모여 어떤 그림을 그릴지 논의를 거쳐 결정하면 전문가가 밑그림을 그리고, 주민이 벽에 색을 칠하는 방식으로 벽화사업은 마을을 형형색색 채워갔다. 70대 어르신부터 중학생, 인근 군부대 장병까지 너나 할 것 없이 힘을 보탰다. 통상 300~700m에 달하는 벽화길 하나 만드는데 30명이 한 달 가까이 작업에 몰두해야 했다. 모두 대가 없이 묵묵히 붓칠을 했다. 지저분한 담벼락을 깨끗하게 청소하는 일도 주민 몫이었다. 2011년부터 벽화사업을 앞장서 추진해온 강대석(61) 전 화전동주민자치위원장은 “40년 넘게 개발제한구역(그린벨트)으로 묶여 동네가 상당히 낙후되고 침체돼 있었다”며 “주민들이 침울한 동네 분위기를 바꿔보자는데 의기투합하면서 힘든 줄 모르고 벽화 작업을 해왔다”고 당시를 회고했다. 지금의 멋진 벽화거리가 만들어지기까지 보수기간 2년을 더해 8년이 걸렸다. 매년 색이 벗겨지고 퇴색한 벽화들을 새로 칠하고 보수를 해야 하는 마을벽화사업은 현재도 진행형이다.
[저작권 한국일보]19일 오전 경기 고양시 화전동 벽화마을길 동화길. 아기자기한 그름의 벽화가 눈에 들어온다. 홍인기 기자
[저작권 한국일보]19일 오전 경기 고양시 화전동 벽화마을길 동화길. 삭막한 회색 담벼락이 벽화로 물들어있다. 홍인기 기자 벽화향기마을길은 현재 2011년 만든 꽃길(500m)을 시작으로 동화길(700m), 힐링길(300m), 무지개길(350m), 달맞이길(950m), 이야기길(350m) 등 6개 테마의 코스에 박철현 화백의 작품을 전시한 골목갤러리(950m)까지 총 4.1㎞로 조성됐다. 각 코스마다 20분정도 걸으며 감상할 수 있다. 2012년 조성한 고양시 탄생 600주년 기념벽화(90m)도 색다른 볼거리로 손꼽힌다. 삶의 터전이 새 옷으로 갈아입으면서 주민 반응도 뜨거웠다. 이곳에서 20년 넘게 산 정영주(46)씨는 “때가 많이 묻은 시멘트 담벼락에 그림을 입힌 이후 동네가 다 환해졌다”며 “다른 지역 사람들까지 구경하러 올 정도”라고 만족해했다. 16년째 마을 슈퍼에서 일하는 유연자(63)씨는 “벽화를 보려 사람들이 찾아오면서 동네에 활력이 생겨났다”고 웃어 보였다. 주민들의 헌신적인 노력에 고양시도 움직였다. 시는 벽화사업이 3년차에 접어들던 2014년 화전동 벽화마을을 ‘고양시 마을 특화사업’으로 선정했다. 시는 이후 벽화마을길사업에 매년 2,200만원 가량의 예산을 지원해주고 있다. 지원금은 새로운 벽화를 그리거나 색이 바래거나 벗겨진 벽화를 보수하는 비용 등으로 쓰인다. 고양시 관계자는 “대부분 지자체가 주도해 진행하는 마을 재생사업과 달리 화전동 벽화거리는 주민의 힘으로 성공한 아주 특별한 사례”라고 박수를 보냈다. 주민 화합은 덤이었다. 새롭게 변신한 마을길을 기념해 2012년부터 주민들이 힘을 모아 매년 벽화페스티벌을 열고 있다. 주민들이 직접 각종 문화공연과 벽화사진전, 페이스페인팅, 티셔츠에 그림 그리기 등 다양한 프로그램을 진행하면서 화합의 장을 열게됐다. 화전동 벽화거리는 어느덧 고양의 명물로 이름이 났다. 미디어와 사회관계망서비스(SNS) 등을 통해 입소문을 타면서 많지는 않지만 중국인들까지 관광을 위해 방문할 정도라고 한다. 2013년 5월 방송된 SBS ‘런닝맨’에 벽화마을길과 이 마을 슈퍼 등이 소개되면서 더 유명해졌다. 화려하거나 아름다운 자연경관을 지닌 관광지는 아니지만 옛 골목길을 걸으며 벽화를 감상하는 소소한 재미가 대중에게 어필되고 있다는 반증이다.
[저작권 한국일보] 19일 오전 경기 고양시 화전동 벽화마을길에 대해 설명하는 강대석 화전동 전 주민자치위원장. 강 위원장은 홍인기 기자/그림 8[저작권 한국일보]19일 오전 경기 고양시 화전동 벽화마을길 동화길. 담벼락에 아이들의 눈길을 끄는 동화속 그림들이 그려져 있다. 홍인기 기자
마을 대변신에는 성공했지만, 과제도 산적해있다. 벽화거리가 한 단계 도약하기 위해선 카페나 공용화장실, 주차장 등의 편의시설 확충이 필요한데, 막대한 예산 문제로 해결책 마련이 쉽지 않아서다. 고양시가 2018년부터 화정동을 활성화하기 위한 ‘도시재생뉴딜사업’에 시동을 걸긴 했다. 화전동 226-13일원 14만4,399㎡가 사업 대상이다. 시는 낙후된 화전역 일대에 활력을 불어 넣기 위해 상권활성화와 마을공간개선, 문화콘텐츠 도입 등의 각종 재생사업을 진행 중이다. 화전동에 있는 항공대와의 연계사업으로 드론앵커센터 건립도 추진 중이다. 화전동 도시재생 뉴딜사업에는 국비 100억원 총 437억원의 사업비가 투입된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벽화길이 있는 마을은 사업 구역에서 빠져 있다. 역세권 위주로 사업이 추진되면서, 주거 밀집지역인 벽화거리는 제외된 것으로 알려졌다. 최남영 화전동장은 “화전동 벽화거리 활성화를 위해 관광객들이 편히 즐길 수 있는 먹을 거리와 각종 편의시설 확충이 절실하다”며 “주민 모두 특단의 대책이 마련되기를 희망하고 있다”고 말했다.
[저작권 한국일보] 화전동 벽화마을 향기길 코스 - 송정근 기자 [출처] [걷고 싶은 길 가고 싶은 거리] <10> 고양시 화전동 벽화마을|작성자 원심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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