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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상복 목사
사람이 하나님의 주신 바 그 일평생에 먹고 마시며 해 아래서 수고하는 모든 수고 중에서 낙을 누리는 것이 선하고 아름다움을 내가 보았나니 이것이 그의 분복이로다. 어떤 사람에게든지 하나님이 재물과 부요를 주사 능히 누리게 하시며 분복을 받아 수고함으로 즐거워하게 하신 것은 하나님의 선물이라 저는 그 생명의 날을 깊이 관념치 아니하리니 이는 하나님이 저의 마음의 기뻐하는 것으로 응하심이라.
여러분 중에 행복하게 살기를 워하시는 분이 있다면 오늘 잘 오셨습니다. 사람이 행복하게 사는가, 그렇지 않은가에는 선천적 요인과 후천적 요인이 있습니다. 미국 위스콘신 대학의 감성 신경 연구소에 근무하는 과학자들의 연구결과에 따르면, 행복하게 사는 사람은 태어날 때부터 뇌의 앞부분, 즉 전두엽대퇴피질(prefront of coretex)이 발달했다고 합니다. 그렇게 태어난 사람이 훨씬 더 적극적이고 낙천적이고 긍정적으로 산다는 것입니다.
제가 만나본 사람들 중에 가장 낙천적인 분은 저보다 나이가 두어 살 많은 하와이 태생의 여자 분인데, 체격이 저의 세 배쯤 되고 아주 건장합니다. 그런데 그분은 길에 다닐 때도 발에 스프링이 달린 것 같아요. 그 분이 시무룩한 것을 제가 본 적이 없습니다. 식당 일을 하면서도 늘 노래하면서 즐겁게 합니다. 태어날 때부터 앞이마가 많이 발달한 분이지요. 그 분의 뇌 속에 프로그램이 되어 있어서 모든 것을 긍정적으로 즐겁게 보는 것입니다.
그러면 전두엽대퇴피질이 발달하지 않은 사람도 많은데, 그들은 다 우울하게 살아야 하는 것일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행복은 꼭 그것만으로 결정되는 것이 아닙니다. 행복은 마치 우리가 태어날 때부터 몸속에 지니고 있는 콜레스테롤과 같습니다. 어떻게 먹고, 얼마나 운동을 하는가에 따라서 그 수치가 높아지기도 하고 낮아지기도 하는 것입니다. 인생도 우리가 어떻게 어떤 태도로 살며, 각종 일들에 어떻게 반응하는가에 따라서 행복하게, 또는 보통으로, 또는 불행하게 살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행복을 돈으로 살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어떻게 하든지 돈을 많이 벌어 자녀에게 남겨주면 자녀들이 행복하게 살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좋은 차를 사면 행복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더 큰 집을 사서 이사하면 행복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도움이 되기도 합니다. 그런데 아무리 좋은 차도 1년만 타면 그 차가 그 차입니다. 아무리 좋은 집에 이사를 가도 조금 지나면 익숙해져서 별로 행복에 도움을 주지 못합니다. 우리는 행복한 삶을 위해 어떻게 살아야 할지를 심사숙고하면서 스스로 훈련해야 합니다. 행복한 사람들을 인터뷰한 결과 몇 가지 특징이 나타났습니다.
첫째는 독립심입니다.
자신의 행복을 다른 사람에게 의존하지 않는 것입니다. 저 사람이 나에게 잘하면 행복하고, 잘못하면 불행하다는 식이 아닙니다. 나의 행복을 다른 사람의 태도나 환경이나 여건에 맡기지 않습니다. 독립심을 가지고 자기의 행복을 독자적으로 개척합니다.
둘째는 자신감입니다.
하나님이 함께 계셔서 나를 사랑하시고, 돌보시고, 인도하시니까 언제나 마음속에 든든함이 있습니다.
셋째는 좋은 대인관계입니다.
누구를 만나도 관계를 잘 개발해서 늘 좋은 관계 속에서 삽니다.
넷째는 자존감입니다.
사람은 누구에게나 장단점이 있게 마련입니다. 장점은 키워가려고 노력하고, 단점도 감사하면서 겸손하게 받습니다. 단점 때문에 두려워하고 불안하고 싫어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만드신 자신의 모습을 그대로 수용해서 자신에 대해 자유하다는 것입니다.
다섯째는 적응력입니다.
어떤 형편에서도 잘 적응해 냅니다. 융통성이 있어서, 좋을 때는 좋게, 나쁠 때는 나름대로 순화해서 물 흐르는 듯이 살아간다는 것입니다. 그것을 거부하면서 원망하고 저주하는 것이 아니고, 인생의 되어지는 일들을 그대로 잘 수용하면서 적응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는 것입니다.
여섯째는 작은 행복을 날마다 누린다는 것입니다.
조금 전의 성가대 찬양이 참 좋았지요? 그런데 어떤 사람은 그것이 좋았는지도 잘 모릅니다. 성가대가 찬양을 하고 오케스트라가 연주를 하면 그 찬송 속에 내가 들어가서 그 찬송을 내가 엔조이(enjoy)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작은 행복들을 계속적으로 누릴 줄 아는 사람이 행복한 사람입니다. 성경도 “네게 주신 복을 세어보라”고 하였습니다. 자신에게 축복이 있는지 없는지는 찾아보아야 압니다. 생각이 없으면 자신의 행복을 모릅니다.
오늘 본문에 보면 행복은 “사람이 주신 바 그 일평생에 먹고 마시며 해 아래서 수고하는 모든 수고 중에서 낙을 누리는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낙’은 그저 먹고 마시는 것입니다. 우리가 습관적으로 해 온 것이고 평생 하는 것입니다. 별거 아닙니다. 그래서 음식도 그냥 꿀꺽 삼키고 마시는 것이 아니라 음미하며 그 맛을 누릴 줄 아는 것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작은 행복들을 날마다 누리며 사는 것보다 더 좋고 아름다운 것이 없다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은 행복하게 살기 위해서는 생각을 해야 한다고 가르칩니다. 인생을 무작정 살지 않고 작은 것들을 보면서도 생각을 하며 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특별히 어떤 생각을 하며 살아야 할까요?
첫째로, 인생이 너무 짧다는 생각을 해야 합니다.
그래야 올지 안 올지도 모르는 큰 행복을 기다리지 않고 날마다 모든 상황 속에서 행복을 찾으려고 노력하게 됩니다. ‘내가 결혼을 하면 행복할 것이다’ 하는데, 정말 행복한 사람은 결혼하기 전에 이미 행복해 있습니다. 불행한 사람이 ‘결혼을 하면 행복해질 것이다’라고 하지요. 결혼한다고 행복해 집니까? 절대로 그렇지 않습니다, 착각이지요. 결혼 전부터 행복을 아는 사람이 결혼을 해서도 행복한 것이지요. ‘큰 집을 사야 행복해진다, 좋은 자동차를 가져야 행복해진다’ 하는 사람들은 그게 될지 안 될지도 모르고, 또 있다가도 없어질 덧없는 것들인데, 그것을 집착하며 사는 것입니다. 인생은 짧기 때문에, 매일 순간순간마다 행복을 찾아서 헤아려 보면서 감사하면서 찬송하면서 사시기 바랍니다. 큰 행복을 기다리며 살기에는 인생이 너무 짧고, 또 큰 행복은 자주 오질 않기 때문에 그것만 바라보며 산다면 행복하게 살 수 없을 것입니다. 미래의 행복을 바라며 그저 턱을 고이고 앉아 기다릴 시간의 여유가 없습니다. 사실 인생은 우리의 행복을 위협하는 시련들로 가득 차 있거든요.
둘째로, 인생은 수고의 연속이라는 생각을 해야 합니다.
잠시 잠깐 지나가는 인생이지만 그나마 힘든 일의 연속이라는 것이지요. 본문에 나오는 “해 아래서”라는 표현은 인생이 짧음을 암시합니다. 해는 아침에 떴다가 저녁이 되면 집니다. 왔다가 그냥 가버리는 겁니다. “해 아래서 수고하는 모든 수고 중에서”라고 하였는데, 이는 수고가 한두 가지가 아니고 아주 많다는 것입니다. ‘수고’라는 단어는 히브리어로 ‘라아’인데, ‘악하다’(evil), ‘재난’(disaster), ‘불행’(misfortune)' 등을 의미합니다. 즉 인생은 나서부터 죽을 때까지 계속적으로 힘든 일이 있다는 것입니다. 모두 울면서 태어나잖아요. 그리고 아기가 자라면서 얼마나 병치레를 많이 합니까? 저도 아이들을 키울 때 감기만 걸려도 어쩔 줄을 몰라 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수고가 많은 거지요. 옆 분에게 “수고 많으십니다” 라고 해보세요! 우리 한국인은 “수고가 많습니다!” 라는 인사를 많이 하는데, 아주 성경적입니다. 짧은 인생에 고통과 시련이 얼마나 많습니까!
창세기 3장에 “네가 이마에 땀을 흘려야 먹으리라” 하였습니다. 먹고 산다는 것이 그렇게 힘이 드는 것이지요. 직장은 달라도 직장인들의 고민은 마찬가지입니다. 아이들이 10대가 되면 갑자기 귀신들린 것 같아집니다. 어디서 저런 아이가 나왔는지, 그런 상태로 몇 년씩 갑니다. 도저히 희망이 보이지 않아서 부모들이 안달을 합니다. 중년과 장년의 어려움들, 노년의 두려움들. . . 계속해서 인생은 수고로 가득 차 있습니다. 그래서 요한계시록 14장 13절에 보면 죽는 것을 보고 “수고하던 데서 쉰다”라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사실상 이런 상태로 영원무궁토록 살라고 한다면 그것은 저주입니다. 죄와 고통과 눈물과 한숨과 질병과 죽음이 없는 곳에서 영원히 살라고 한다면 그것은 축복이지만, 지금 이 땅의 수고와 아픔과 슬픔과 괴로움들을 가지고 영원무궁토록 살라고 한다면 저는 “No, Thank You!"입니다. 이 세상에서 그저 칠팔십년 살게 해 주시니까 감사한 것이지, 그걸 영원히 살라고 한다면 어떻게 하겠습니까? 영원히 사는 것은 하나님의 나라에서입니다. 우리 인생의 수고가 끝날 때 하나님의 나라에서 영원한 쉼을 누리게 될 것입니다.
셋째로, 하나님은 우리에게 주신 수고의 열매들을 생각해야 합니다.
이 열매들을 즐기는 것이 중요합니다. 하나님이 허락하신 열매인지도 모르고, 축복인지도 모르고, 은혜인지도 모르고 그냥 넘어가 버리는 사람은 행복하게 살 훈련이 되어 있지 않은 것이지요. 그래서 “일생의 먹고 마시는 것,” 즉 이런 작은 것들을 즐기며 살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열심히 일해서 돈을 벌었으면, 그것이 하나님께서 주신 열매이기 때문에, 그것을 가지고 사 먹을 때에도 즐겁게 하라는 것입니다. 정말 행복하게 사는 사람은 작은 행복을 10개, 100개, 1000개씩 모으며 살아갑니다. 그래서 나중에 인생을 돌이켜볼 때 참 즐거운 인생이었음을 기억할 수 있습니다. 아침 공기를 마시면서도 ‘기분 좋다!’ 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잠시 걸으면서도, 책을 읽으면서도, 기도하면서도, 예배를 드리면서도, 우리 삶의 모든 분야에서 작은 것들의 의미를 늘 발견하며 즐깁니다. 그런 행복한 인생에는 후회가 없지요. 만일 여러분이 지금까지 재미없게 살았다면 작은 행복을 보는 눈이 없었고 그것을 누리는 훈련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인간에게 수고의 열매로 재물과 소유를 주셨습니다. 내 부모든지 자식이든지, 내 몸이든지 마음이든지 영혼이든지 물건이든지, 누구를 막론하고 무엇을 막론하고 하나님이 내게 주신 모든 것을 즐기며 살겠다는 기본적인 태도가 필요합니다. 작은 것에서 행복을 찾지 않으면 큰 행복을 누릴 수가 없지요. 저는 종종 결혼주례를 하면서 “사랑이란 작은 친절이다”라고 말하기를 좋아합니다.
‘지붕위의 바이올린’이라는 뮤지컬을 아시지요? 거기에 보면 유대인 노부부의 딸이 마침내 결혼을 해서 재미있게 삽니다. 그런데 그 모습을 보고 얼마나 부러운지 남편이 아내에게 묻습니다. “임자, 아직도 나를 사랑해?” 그랬더니 아내가 “당신을 사랑하느냐고? 무슨 말이야? 내가 그동안 밥해 주었지, 빨래해 주었지, 아기 낳아 주었지, 안 해준 것이 없는데, 이제 와서 당신을 사랑하느냐고?” 라고 반문합니다. 그 할머니는 사랑이 무엇인지 알았던 것입니다. 남편과의 작은 관계, 가정의 대소사, 이 모든 것들이 사랑이었다는 것입니다. 그 할머니의 역설적 절규 속에는 인생의 작은 것들이 다 사랑이었다는 의미가 들어있습니다. 우리는 거창한 일을 해 주어야 사랑이라고 생각할 때가 있습니다. 일주일 동안 유람선을 태워주는 것 따위 말이지요. 그런데 일생에 몇 번이나 태워 주겠어요? 우리의 인생에는 하나님이 주시는 수고의 작은 열매들이 얼마든지 있습니다. 그 열매들을 먹으며 즐거워하고 기쁘게 살아야 합니다. 어느 날 갑자기 행복을 얻으려 하는 것이 아니라 날마다 작은 행복을 마음껏 누리며 살 줄 아는 지혜가 있기를 바랍니다. 이 짧은 인생에는 그저 주저앉아 원망, 불평, 비난, 번민, 저주하며 살 시간이 없습니다.
20절에 보면 “저는 그 생명의 날을 깊이 관념치 아니하리니”라고 하였습니다. 무슨 말입니까? 저도 잘 모르겠어서 성경의 다른 부분들을 찾아보고 알았습니다. 이 말의 뜻은, 행복한 사람은 자신의 삶에 대해 지나치게 많이 생각하여 고민이나 번민하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옛날 함께 공부하던 철학과 친구들 중에는 한여름에도 두꺼운 외투를 입고 다니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너무 그러지 말라는 것입니다. 인생을 너무 고민하며 살지 말라는 것이에요. 인생은 너무 짧습니다. 그나마 인생은 고난과 수고의 연속입니다. 그러나 가만히 들여다보면 하나님은 우리의 수고 속에서도 작은 열매들을 많이 주셨습니다. 그것들을 누리며 행복하게 살 수 있습니다. 조금 전에 아기들이 나왔을 때 모두 즐거웠지요? 아기들을 보면 좋아해야지요, “세상에 아이들이 얼마나 많은데” 하며 무관심하다면 비정상입니다. 찬물을 마시면서도 “아 시원하다” 그래야지요. 음식을 먹으면서도 “참 맛있다” 하며 먹어야지요. 좋은 찬송을 들었으면 기쁘게 박수를 쳐주어야지요. 행복이 오지 않는다고 쓸데없이 앉아서 짧은 인생을 원망, 저주, 불평, 번민, 비관하면서 살 일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인생 자체가 어려운데 내가 더 어렵게 만들면 되겠습니까?
다시 말씀드립니다.
수고가 참 많은 인생 속에는 작은 행복의 순간들도 숨어있습니다. 그것들은 잘 찾아보아야만 보입니다. 대충 보면 잘 보이지 않습니다. 작은 행복의 순간들, 기쁨의 순간들이 여기저기에 널려 있거든요. 작은 승리들이 이곳저곳에 깔려 있거든요. 그러므로 내게 주어지지 않은 것들에 대해 불평하며 주저앉아있지 말고, 아스피린 먹은 후 두통이 사라졌으면 “할렐루야!” 외치며 감사하시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 주변에서 수많은 작은 관계들을 꾸준히 가꾸면서 작은 행복들을 쌓아가라는 것입니다. 한 교회 안에서, 한 동네 안에서, 서로서로 좋아하며, 기뻐하며, 도와주는 가운데 작은 행복들이 모여서 행복한 인생이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그동안 어떻게 사셨는지는 모르지만, 사람은 늘 변화하고 있습니다. 인생은 변화의 과정입니다. 계속 변화해 갑니다. 우리가 인생에 대해 어떻게 반응하는가에 따라서 우리의 미래가 변화됩니다. 과거에는 어떻게 했든지 간에 오늘부터의 미래는 하나님이 주시는 수고의 열매들을--작은 행복들을--누리면서 행복하게 사시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