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 1-9
도피성
♠ 서론
옆에 있는 분들과 인사하시기 바랍니다. "그리스도께 피합시다." 하나님께서 모세를 통해 주신 명령입니다. '도피성을 만들어라.' 본문에도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주셨던 말씀을 여호수아에게 또 줍니다. '이스라엘 자손에게 고하여 이르되 내가 모세로 너희에게 말한 도피성을 택정하여'(2절) 도피성은 히브리말로 이르 미클라트라고 하는데, '받아들이는 곳'이라는 뜻입니다. 살인자, 죄인을 받아들이는 곳입니다. 도피성 제도는 영적으로 피난처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예표하는 것입니다. 구약의 모든 사건과 문제는 그리스도를 설명하는 것인데, 도피성 예수 그리스도께 피하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교회가 도피성입니다. 교회는 모든 상처받은 사람, 실패한 사람, 병든 사람, 세상에서 버림받은 사람, 손가락질 받는 사람이 모여 있습니다. 어려움을 당할 때 하나님 앞에 나오는 것이 정상입니다. 인생을 살다가 감당하기 힘들고 어려운 고통이 닥치고 한계를 느낄 때 가장 안전한 품이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들으면서 안정을 되찾고 평안을 회복하는 것을 도피성이라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1. 도피성 제도의 목적
도피성의 제도는 구약 시대에 인간의 생명을 귀중히 여기기 때문에 만들어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곤경에 빠진 인간을 구하기 위한 방편인데, 하나님은 사람이 사람을 해치는 것을 용서하지 못합니다. 심지어 부모에게 욕하면 돌로 쳐죽이라고 했습니다. 사람을 고의로 죽이면 죄에 대한 대가를 받습니다. 그런데 과실치사인 경우는 그렇지 않습니다. 무서운 율법 시대에도 생명에 대한 복수심에 당하지 않도록 하나님이 보호해 주라고 도피성에 대해서 말했습니다. 민35장에도 자세하게 기록했고, 신4,19장에도 제도를 설명하고 장소까지 언급하고 있습니다. '부지중 오살한 자를 그리로 도망하게 하라 이는 너희 중 피의 보수자를 피할 곳이니라'(3절) 당시에 재판장이 죽으면 무조건 면제를 받았습니다. 도피성에 숨어 있다가 대제사장이 죽으면 석방입니다. 대제사장이 죽으면 죄인들이 석방되었습니다. 대제사장은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예수님의 죽으심으로 해방된 것인데 구약에서 신약을 정확하게 설명하고 있습니다.
2. 도피성과 예수 그리스도
도피성은 피난처입니다. 도피성과 피난처는 같은 말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첫째, 도피성은 어떤 곳에서부터도 쉽게 도달할 수 있는 곳에 정하라고 했습니다.
6개 성을 지정했는데 가나안 동편에 세 곳(베셀, 라못, 골란), 서편에 세 곳(게데스, 세겜, 헤브론)을 세웠다. 가나안, 이스라엘 어디에서나 도망갈 수 있습니다. 몇 시간이면 충분히 도달할 수 있는 곳으로 정하도록 했습니다. 신19장에는 도피성을 지을 때 쉽게 갈 수 있도록 도로를 닦아주라고 했습니다. 편하게 도망가서 숨게 했습니다. 마찬가지로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는 것도 어려운 것이 아닙니다. 예수 그리스도께 나오는 것이 너무 쉽습니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을 만나서 구원 얻는 길은 너무나 쉽습니다. 그런데 사람들이 어렵게 생각을 합니다. 힘들게 교회를 다니는 사람이 많이 있습니다. 열심히 회개하고 봉사하고 전도하고.. 이것을 종교라고 합니다. 열심의 정도가 아니라 생명을 바쳐야 합니다 그러나 힘들게 하는 것이 아니라 기쁨으로 찬송 부르면서 감당하는 것입니다. 차원이 다릅니다. 마음에 감격해서 되어지는 찬양과 헌신을 말하지, 억지로 하는 것은 종교입니다. 기독교를 오해했습니다. 되어지면 하고 안되어지면 하지 마세요. 헌신도, 봉사도, 충성도 주시면 하고 안주면 못하는 것입니다.
예수 믿는 것이 피난처입니다.
어머니의 품에 안기는 것과 같습니다. 예수 믿는 것이 너무 쉬우니 안 믿는 것입니다. 너무 구원의 길을 쉽게 만들어 놓으니 도리어 불신앙 해 버립니다. 부처 앞에 늘 기도하는 사람이 예수를 믿었는데 실감이 안 갑니다. 눈에 보이는 형상이 있는 종교는 수준이 낮은 것입니다. 판단 기준이 잘못되어 하나님이 아닌 내가 중심이 되어 교회를 다니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아닌 내가 중심이 될 때 구원이 없습니다. 주인이 그리스도로 바뀌는 것이 영접입니다. 내가 주인인 사람은 절대로 구원을 못 받습니다.
바울의 신학은 은혜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는 공짜로 주는 것입니다. 일방적 축복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볼 때 약점이 없는 사람은 없습니다. 완전한 자는 없습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모든 죄에서 가리움을 받게 됩니다. 그래서 의롭다고 했습니다. 그리스도 안에서만 의로운 줄 믿으시기 바랍니다. 예수님은 건강한 자에게는 의원이 필요 없고, 죄 많은 곳에 은혜가 더 많다고 했습니다. 죄를 많이 지으라는 말이 아니라, 약점이 많은 사람일수록 하나님의 사랑이 필요합니다. 약할수록 하나님의 은혜가 더 큽니다.
둘째, 도피성은 이스라엘 백성 뿐만 아니라 이방인과 다른 거주자들에게도 개방되었습니다.
'이는 곧 이스라엘 모든 자손과 그들 중에 우거하는 객을 위하여 선정한 성읍들로서 누구든지 부지중 살인한 자로 그리로 도망하여 피의 보수자의 손에 죽지 않게 하기 위함이며 그는 회중 앞에 설 때까지 거기 있을 것이니라'(9절)
살인한 자는 죽이게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죽기 전에 도망시키라는 것입니다. 도피성 제도는 하나님이 정한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의 보편적 사랑을 알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헬라인이나 유대인이나 이방인 모든 족속에게 구원자라는 뜻입니다. '성경에 이르되 누구든지 저를 믿는 자는 부끄러움을 당하지 아니하리라 하니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차별이 없음이라 한 주께서 모든 사람의 주가 되사 저를 부르는 모든 사람에게 부요하시도다'(롬10:11-12) 절대로 교회 안에서 차별이 없습니다. 하나님이 쓰시는 달란트는 다 다르지만 절대 차별이 없습니다. 차별이 있다고 생각하는 자체가 죄입니다. 그것은 착각입니다.
셋째, 도피성의 문은 항상 열려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 나아가는 복음의 문은 항상 열려 있습니다.
'성령과 신부가 말씀하시기를 오라 하시는도다 듣는 자도 오라 할 것이요 목마른 자도 올 것이요 또 원하는 자는 값없이 생명수를 받으라 하시니라'(계22:17) 믿음으로 값없이 하나님의 자녀가 된 것을 감사하시기 바랍니다.
넷째, 도피성에 사는 살인자도 그 사건 당시의 대제사장이 죽으면 피해 받은 사람이 복수를 못하게 되어 있었습니다.
대제사장의 죽음은 속죄적 죽음입니다.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라'(롬8:2)
대제사장이 죽으면 모든 죄수나 살인자나 피해본 사람이나 다 해방시켜 주었습니다. 이제는 죄와 사망의 법이 관계없고 생명과 성령의 법 아래 있습니다. 이것을 법적 해방이라고 합니다. 예수를 믿고 구원받아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는 말이 무슨 말인지 아십니까? TV를 리모콘으로 조종하는데 하나님은 우리를 리모콘으로 조정하지 않습니다. 주님이 리모콘을 사용해서 우리를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우리 안에 들어와 직접 역사하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은 시공을 초월합니다.
다섯째, 도피성과 예수 그리스도는 한가지의 차이가 있습니다.
도피성은 실수로 살인한 사람들만 가야 합니다. 고의적인 죄가 없는 사람이 가는 곳이 도피성입니다. 그러나 고의적으로 죄를 지은 사람도 다 용서하시고 받아주시는 도피성이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죄와 사망의 법에서 우리를 해방시켰다는 말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은 대충 죄를 넘기지 않습니다. 죄의 대가는 받아야 합니다. 대제사장이 죽든지, 예수 그리스도 십자가의 피의 희생이 있어야 합니다. 그래서 구약에는 대제사장, 신약에 대제사장이신 예수 그리스도가 십자가에서 대속하셨습니다. 대신 속죄하셨습니다.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은 해방 받은 사람입니다. 죄에서 해방 받을 뿐만 아니라 죽음에서 해방되었습니다. 크리스챤이 죄책감이 불신자보다 더 많습니다. 사죄의 확신이 없기 때문입니다.
고행을 해서 구원을 받는다고 착각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수녀들 중에 처녀 때 실수를 많이 해서 양심상 결혼을 못해 수녀가 된 사람이 많이 있습니다.
위대한 과학자 아인슈타인이 노후에 기독교로 개종을 했는데, 유명한 고백을 했습니다.
‘나는 평소 젊을 때 교회를 무시했다. 그러나 내 조국이 어두워지고 나치의 핍박의 아래 있을 때 교회는 우리 민족의 유일한 소망이었고 안식이었다. 그리고 노후에 나는 교회 이외에 내 영혼의 위로를 경험할 수 있는 장소를 찾지 못했다. 나는 이제 교회로 다시 돌아온다.'
교회는 영적인 안식처입니다. 교회 나올 때마다 안식을 누리시기 바랍니다.
♠ 결론
어려울 때 하소연하고 도움을 청할 수 있는 사람이 필요합니다. 사람을 통한 도움은 한계가 있습니다. 영원히 피할 수 있는 분, 영원히 도움을 받을 수 있는 분이 참안식의 주인되신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마11:28)
교회에 나와서 모든 짐을 다 내려놓으시기 바랍니다.
걱정, 염려하면 하나님께 실례입니다. 장래를 걱정하는 것이 불신앙입니다.
짐을 다 내려놓으라고 하는데 주기도문 끝나고 또 지고 갑니다. 기쁨과 감사와 희망과 소망을 가지고 하나님 앞에 나오시기 바랍니다. 여기는 외로운 자, 가난한 자, 병든 자, 실패한 자의 피난처입니다. 주님이 여러분을 위해서 희생했습니다. 예수님이 하나님과 인간의 손을 잡아 연결해 주고 죽으셨습니다. 그래서 이젠 대가가 필요하지 않습니다. 우리 인격, 수준이 필요하지 않습니다. 속지 마시기 바랍니다. 도피성인 그리스도, 교회, 복음 안에서 마음껏 누리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출처:은혜목회정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