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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인사 산내 암자 보현암 비구스님의 수행 도량에 조용한 발걸음을 한다
1985년 9월 5일 울산 울주군 가지산 석남산에 승가는 물론 세간의 이목이 집중됐다.
한국불교전래 1600여 만에 명실상부한 비구니회가 본격 출범하기 때문이었다.
이미 60년대 말 몇몇 비구니 스님들에 의해 ‘우담바라회’가 구성되긴 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어느덧 활동은 유야무야해진 상태였다.
이날 모임의 초대회장으로 선출된 이가 바로 가야산 보현암 혜춘 스님(慧春, 1919∼1998).
평소 비구니의 사표로 칭송받던 스님이 회장으로 추대된 것은 어쩌면 당연하다.
그동안 알게 모르게 푸대접 받던 비구니들에게 늘 용기와 희망이 되어 주었던 까닭이다.
98년 11월 6일 열반 그 당시 전국비구니회 출범을 앞두고 혜춘 스님은 “승단 안팎의 제반사를 감안해 볼 때 우리 비구니들이 합심단결해서
제자 본연의 자세를 되살리고 불법을 지키는 마지막 보루가 되어야 한다”며 출범의미를 강조하곤 했다.
종회에 비구니 스님들이 참여하고 지난 8월 19일 역사적인 전국비구니회관이 건립될 정도로 비구니 위상이 높아진 데는
스님의 헌신적인 노력이 있었기에 가능했다는것은 아무도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1919년 함경남도 북청에서 태어나 1951년 해인사 약수암에서 창호 스님을 은사로 구족계를 받고 득도했다.
1961년 통도사 자운 스님을 계사로 비구니계 수지 받고 윤필암과 석남사 등에서 36안거를 성만했다.
성철 스님 ‘진짜 중’인가 전국비구니회를 창립한 이후 스님은 1988년과 1999년에 목동청소년회관 관장을 역임하며 정화불사에 혼신을 다했다. 1988년에는 국민훈장모란장을 받기도 했다.
혜춘 스님의 일생에서는 성철 스님과의 인연도 빼놓을 수 없다.
성철 스님을 만나기 위해 일주일 동안 성주사에서 10만 배를 한 뒤 소원하던 만남을 가졌고 스님으로부터 ‘진짜 중’이 될 수 있다는 징표의 법음을 받기도 했다.
또 혜춘 스님의 대쪽같은 성품을 보고 당시 비구니들은 ‘비구니의 선객’이라고 칭하기도 했다.
세납 80세, 법랍 47세. 때는 1998년 11월 6일. 만월(滿月)에 가까운 달이 구름에 가려 희미하게 빛나던 날.
“이렇게 왔다가 이렇게 가는가, 오고감이 한결 같네, 청풍은 만리로다 (如是來 如是去, 來去一如 淸風萬里라). 오늘 날씨가 좋지.” 라는 말을 남기고 입적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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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무지개빛이 내려오는 보현암 부처님께 합장으로 절을 올립니다. _()_
푸른연꽃에 나투신 지장보살님를 참배합니다. _()_
보현암에 높으신 어른스님 혜춘스님이 계셨다는걸 알으켜
주셔서 감사합니다.
많은걸 알게 되었습니다. _()_나무아미타불.....
마하반야바라밀....나무아미타불 _()_
근데 제컴은 그런 사진들이 하나도 안떠요~~
고요한 물결같은 음악은 잔잔히 흐르는데....
무지개빛으로 내려오는 보현암부처님 왜 안보이시나요?
예 혜자돌림 스님이시라
혜조스님을 알고 있는것만해도
황송할뿐이라 생각 되는날도 있겟지요
@햇살 어짜노 스님께 환한 부처님 모습과
법당에서 홍류동 계곡을 바라보면서
참선에 드시는 스님들을 부러워 하실까봐
그렇게 사진만 안보이게 했나 봅니다
@수련( 선정심 ) 스님 컴이 이상있나 보네요.
폰으로하니 희얀한것도 있습니다
보현암 지장보살님 친견하고갑니다.
용천님의 상세한 설명으로 비구니스님의 자리매김에 기여하심이 크신 혜춘스님께 합장_()()()_
언젠가 여름장마 뒷길에 다녀온 홍류동 계곡의 물흐름 소리도 들리는것 같으며.
고맙습니다.
예 그러합니다 앞산에는 홍류계곡 물소리가 천지를 뒤흔들었는데
비가 안와서인지 물소리는 낙옆사이에 숨어 졸졸 흐르고 있었습니다
사실 조금알고 올라선 보현암과 금강굴에 시그럽꼬 톡톡쏘는 감귤을
부처님께 올려드리고 스님네 선방 수행시간이라서 조용조용히 댕겼습니다
선방에 대중공양 올리시고 잘 하셨습니다. _()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