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효녀 자단 이야기
삼남일녀를 둔 곽 첨지는 억수로 부자다.
장남은 곽 첨지가 하던 일을 물려받아 저잣거리에서 돈놀이를 하고
둘째는 객줏집, 셋째는 너비아니 집을 하며 돈을 긁어 모으지만
곽 첨지는 항상 돈에 목말라있다.
돈으로 치면 어디에 내놔도 꿀릴게 없지만
사또 한마디에 그는 엉금엉금 기어야 한다.
아들 세놈 중에 한놈쯤은 급제를 해야 하는데 머리가 그뿐이니 누굴 탓하랴.
하나 남은 희망은 외동딸 자단이다.
급제한 사윗감이 제일이지만 찾을 수 없고
앞으로 급제 할 만한 젊은이를 찾아 100마지기 논을 미끼로 걸었지만
입질을 하는 놈들은 하나같이 곽 첨지 눈에 차질 않는다.
세월은 흘러 막내딸 자단이 스무살이 됐다.
그 와중에 곽 첨지가 기절 할 일이 터졌다.
자단이 헛구역질을 하는 것이다.
더더욱 기가막힌 일은 씨를 뿌린 놈이 천하의 개망나니 지 춘걸이란 사실이다.
삼패 기생 출신인 지 춘걸의 어미는 아비가 누군지도 몰라 아들에게 자기 성을 붙여 줬다.
그녀는 저잣거리 뒷골목에서 삼패 기생 몇을 데리고 색줏집을 꾸려가며
손님이 많을 땐 자신도 때때로 치마를 벗는다.
보고 배우며 자란게 그것뿐인 지 춘걸은 고을에서 호가 났다.
어염집 남의 부인과 간통하다가 몰매를 맞기도 하고
과부의 남창이 돼 푼돈을 뜯어 쓰고 처녀고 아지매고
치마만 둘렀다하면 기를 쓰고 달려 들었다.
그 개차반이 곽 첨지의 꿈을 박살내버린 것이다.
곽 첨지와 아들 셋이 지 춘걸을 잡아 광속 기둥에 몪어 놓고 몽둥이 찜질을 했다.
그때 밖에서 왁자지껄 했다.
자단이 대들보에 목을 맨 것이다.
다행히 침모가 발견해서 목숨을 건졌다.
곽 첨지가 크게 놀라 자단에게 달려가자,
''아부지, 그와 혼인하지 못하면 나는 죽을거요.,,
금이야 옥이야 키운 딸이 죽을 생각을 하다니...!
급제한 사윗감이고 뭐고 자단이를 살릴 방법을 찾아야 했다.
하는 수 없이 부랴부랴 혼례식을 올렸다.
신랑측 하객들이란 게
분바르고 입술을 새빨갛게 칠한 기생들과 저잣거리 왈패들이었고
안사돈이 되는 주모 모양새도 다른 기생들과 다를바 없었다.
곽 첨지는 골방에 들어가 대성통곡을 했다.
새신랑 지 춘걸이 사모관대 차림으로 들어와 곽 첨지에게 큰절을 올렸다.
''장인어른, 앞으로 새사람이 되겠습니다.,,
''내 자네한테 부탁할게 있네.,,
''뭡니까.? 말씀하십시요.,,
곽 첨지는 고개를 푹 숙이고 한숨을 토했다.
''이 고을을 떠나게. 내 딸년을 데리고 멀리 떠나 내 앞에 나타나지 말게.
그리고 자네 에미도 같이 떠나주게.,,
지 춘걸이 고개를 숙이더니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아..알았습니다.,,
이방이 사또의 예물이라며 하찮은 육포 한 보자기를 들고왔다.
곽 첨지의 가슴이 철렁 내려 앉았다.
백배 천배로 갚아야 하는 것은 불을 보듯 뻔한 사실이다.
조정에 줄을 대 매관매직으로 이 고을에 부임한 사또는
본전을 찾고도 백성의 고혈을 계속 짜내고 있다.
곽 첨지는 말도 안되는 이유로 동헌 마당에서 몇차례나 곤장을 맞았다.
이방이 떠나고 난 후에 가끔 곡차를 나누는 스님이 찾아왔다.
마주앉아 곡차를 나누다가 스님이,
''이 좋은 날 웬 한숨이 그리 긴가.?,, 하고 물었다.
''좋은 날...? 죽고 싶은 날입니다. 사또란게...,,
노스님이 말했다.
''곽 첨지 집안은 뭐 그리 대단한가.?
돈이 급해 애간장이 끊어지는 사람들에게도 돈 빌려 주고 고리를 들이대며
한식구 목줄이 걸려있는 몇뙈기 논밭을 당신 수중에 넣어오지 않았나.?
당신 사돈은 남의 가슴에 못질은 하지 않았잖아.!,,
곽 첨지는 불구덩이 속에 들어간 듯 온 몸이 화끈거렸다.
며칠후 색줏집이 문을 닫았다.
지 춘걸과 자단이도 소리 소문없이 사라졌다.
춘하추동이 일곱차례나 지나간 어느 날,
신임 사또가 부임했다.
돈보따리를 싸들고 곽 첨지는 천근같은 발걸음을 옮겼다.
''소인 저잣거리에서 대부업을 하는 곽 만석입니다.
이거 얼마되지 않지만...,,
''장인어른, 제 절 받으십시요.,,
지 춘걸이 사또가 돼 7년만에 돌아왔다.
곽 첨지가 허벅지를 꼬집었다.
''이게 분명 꿈은 아니지.!,,
7년전 지 춘걸은 멀리 안동으로 내려가 안동포를 소달구지에 싣고
한산에 가서 세모시와 물물교환 하고
세모시를 싣고 안동에 와 안동포와 교환해 떼부자가됐다.
물론 사또 자리는 돈으로 샀지만 백성들에게 돈 한 푼 받지 않고
가난한 사람들을 골고루 도와주며 선정을 베풀었다.
임기가 끝날 때쯤 이 고을 백성 수백명이 궁궐 앞에서 읍소해
임금님이 손수 지 춘걸을 평생 사또로 재임시키는 어명을 내렸다.
곽 첨지의 평생 소원이 이루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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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차반들이 맘만 잡으면 사람 좋아지고 잘 삽니다.
자단이 눈에는 개차반이 싹수가 있어 보였나 봅니다.
암튼 지 애비 소원을 풀어 준 효녀 자단이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