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나 큰 과오였는가 → 무엇이 일어났는가 → 왜 일어났는가 → 어떻게 현실의 체제가 되었는가 → 무엇을 바꾸어야 하는가’
인류의 과오 — 나치 독일
인류가 저지른 과오 가운데 나치 독일은 가장 극단적이고 명백하게 기록된 사례 가운데 하나다.
1933년 히틀러와 나치당이 집권한 뒤 독일은 빠르게 일당독재체제로 전환되었다. 나치는 독일인과 ‘아리아인’을 우월한 존재로 규정하고 유대인과 여러 집단을 열등하거나 공동체를 위협하는 존재로 규정했다.
차별은 선전과 혐오에 머물지 않았다. 법률과 행정, 경찰, 군대, 철도, 수용소와 산업시설이 동원되면서 인간을 분류하고 추방하고 강제노동시키고 마침내 조직적으로 살해하는 체제가 만들어졌다.
그게 가능하다니
그 결과 유럽 유대인 약 600만 명이 살해되었다.
당시 유럽 유대인 약 900만 명 가운데 거의 3분의 2였다. 이 가운데 약 270만 명이 절멸수용소에서, 약 200만 명이 집단총살과 관련 학살에서 목숨을 잃었다. 유대인 이외에도 소련군 포로 약 330만 명, 비유대계 폴란드인 약 180만 명, 로마인 최소 25만 명에서 최대 50만 명 등 수백만 명이 나치와 그 협력세력에 의해 살해되었다.
정확한 희생자 총수를 하나의 숫자로 환산하기는 어렵지만 그 규모가 수백만 명을 훨씬 넘어선다는 것은 방대한 기록과 인구자료를 통해 확인된다. (홀로코스트 백과사전)
그러나 숫자만으로는 이 과오를 설명할 수 없다. 우리는 세 가지 질문을 해야 한다.
원인론 — 인간은 왜 이런 일을 저질렀는가?
전쟁 패배, 경제위기, 정치적 혼란과 사회적 불안은 나치즘이 성장할 조건을 만들었다.
그러나 더 깊은 곳에는 인간과 집단의 공포와 욕망이 있었다. 자신의 불행을 다른 집단의 탓으로 돌리고, 자기 집단의 우월성을 믿으며, 타자를 제거하면 자신의 안전과 번영을 지킬 수 있다고 생각했다. 여기에 이미 유럽사회에 존재하던 반유대주의가 결합했다. 반유대주의는 나치 이데올로기의 핵심 요소였다. (홀로코스트 백과사전)
과오의 가장 깊은 원인은 잘못을 잘못이라고 생각하지 않게 되는 데 있었다. 다른 인간을 억압하고 제거하는 것을 악행이 아니라 민족의 생존과 번영을 위한 불가피한 일이라고 정당화했다.
인간의 욕망과 공포가 우열의 세계관과 결합하고, 그 세계관이 폭력을 정당화한 것이다.
현상론 — 그 생각은 어떻게 현실이 되었는가?
잘못된 생각만으로 600만 명을 죽일 수는 없다.
나치의 과오는 생각이 권력이 되고, 권력이 제도가 되고, 제도가 일상이 되는 과정에서 거대한 현실이 되었다.
민주주의를 무너뜨리고 반대자를 제거했으며, 선전과 교육을 장악하고 차별을 법률로 만들었다. 유대인의 시민권을 박탈하고 재산을 빼앗고 게토와 수용소로 보내고, 마침내 국가와 조직과 기술을 이용하여 대량살상을 수행했다. 나치 독일은 1939년 폴란드를 침공했고 이후 점령지역이 확대되면서 박해와 학살 역시 유럽 전역으로 확대되었다. (미국 홀로코스트 기념관)
따라서 나치의 과오는 몇몇 악한 인간의 범죄만이 아니었다.
부조리한 세계관이 정치·경제·법률·관료제·과학기술과 결합하여 스스로를 강화하는 하나의 사회체제가 된 것이었다.
전환론 — 어떻게 다시 이런 과오를 만들지 않을 것인가?
나치 독일을 연구하는 최종 목적은 과거를 비난하는 데 있지 않다.
더 중요한 질문은 우리 안에 같은 과오를 만들어낼 가능성이 지금도 존재하는가이다.
독재를 민주주의로 바꾸고, 차별법을 폐지하고, 인권을 보장하고, 권력을 분산시키는 것은 중요하다. 그러나 제도만 바꾸어서는 충분하지 않다.
강한 자가 더 많이 갖는 것이 당연하다는 생각, 우리의 번영을 위해 다른 사람의 희생은 불가피하다는 생각, 불안과 실패의 책임을 약자와 타자에게 돌리는 습관, 자기 집단의 이익을 인간 전체의 존엄보다 앞세우는 세계관 자체가 바뀌어야 한다.
그러므로 전환은 제도의 전환인 동시에 인간의 전환이고, 관계의 전환이며, 문명의 전환이어야 한다.
나치 독일의 과오는 이렇게 세 문장으로 압축할 수 있다.
원인론은 묻는다. 인간은 왜 타인을 희생시키면서도 그것을 정당하다고 믿게 되는가.
현상론은 묻는다. 그 믿음은 어떻게 권력·제도·경제·기술과 결합하여 거대한 현실이 되는가.
전환론은 묻는다. 그 생각과 구조를 어떻게 바꾸어 같은 과오의 재생산을 막을 것인가.
나치는 패망했다. 그러나 나치를 가능하게 했던 인간의 욕망과 공포, 타자화와 정당화, 권력의 자기강화까지 1945년에 함께 사라진 것은 아니다.
그래서 나치 독일은 끝난 역사인 동시에, 인류가 계속 공부해야 할 현재의 문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