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남주(낭송) - (2021) 제21회 김남주문학제 포엠콘서트 00. 김남주 육성 시 낭송 '아버지의 무덤을 찾아서'
아버지의 무덤을 찾아서
- 김남주
추수가 끝난 들녘이다.
나는 어머니의 등불을 따라 밤길을 걷는다.
마른 옥수숫대 사이로 난 좁다란 밭길이 끝나고
어머니의 그림자가 논길로 꺾이는 어귀에서
나는 잠시 발을 멈추고
논가에 쓰러져 있는 흰 옷의 허수아비를 일으켜 세운다.
아버지 제가 왔어요. 절 받으세요.
그동안 숨어 살고 갇혀 사느라
임종도 지켜보지 못한 불효자식을 용서하세요.
그러나 허수아비는 대답이 없다.
야야 거그서 뭣하냐 어서 오지 않고
저 만큼에서 어머니가 재촉하신다.
아버지 생각이 나서 그래요. 어머니
가뭄의 논바닥에 물을 댄다고
아버지와 같이 여기서 이슬잠을 자다가
새벽에 제가 피똥을 싸는 배를 앓았어요.
나도 알고 있어야 그 해 가을 일은
그때 느그 아부지 놀래가지고 너를 업고
어성교 약방으로 달려가던 모양이 눈에 선하다야
그날 새벽에 니가 꼭 죽는 줄 알았어야
나는 다시 어머니의 등불을 따라
또랑을 건너고 솔밭 사이 황톳길로 들어선다.
다 왔다 저기 저것이 느그 아부지 묏등이어야
니가 서울서 숨어 살 때 돌아가셨는디
참 불쌍한 사람이어야 일만 평생 죽자살자 하고
자식덜 덕 한 번 못 보고 저승 사람 됐으니께
느그 아부지가 너를 을마나 생각했는 줄 아냐
너는 평생 돈하고는 먼 사람일 것이라면서
저 아래 징갤 논배미는
니 몫으로 띠어놓으라고 하고
마지막 숨을 거두셨단다.
산언덕바지에 앉아 있는 아버지의 무덤은
일곱마지기 우리 논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이놈아
니가 그러고 댕긴다고 세상이 뒤집힐 것 같으냐
첫 감옥에서 나와
무릎 꿇고 사랑방에 앉아 있을 때
아버지가 내게 하셨던 꾸중이 떠올랐다.
가엾은 양반
첫댓글 낭송된 시와 발표된 시가 조금 차이가 납니다.
운동권 아들을 생각하면서 살았던
그 아비는 정말 가엾은 어른이었지요.
잠시 경청하고 갑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