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굴도 모르는 사람들이 서로를 위로하는 <달콤창고>
사탕, 초콜릿, 과자가 옹기종기 늘어서 있다. 메모지에 쓴 손 편지도 보인다. ‘힘내세요’, ‘행복하세요’ 같은 응원의 글도 있고, 감사 인사가 적힌 쪽지도 있다.
이러한 풍경을 볼 수 있는 곳은 뜻밖에도 지하철의 한 물품보관함. 수많은 사람들이 잠시 물건을 보관하는 용도로 사용하는 물품보관함이 특별한 공간으로 변신한 것은 2015년이다. 소셜 다이어리 앱 ‘어라운드’의 한 사용자가 서울 지하철 2호선 강남역의 물품보관함에 초콜릿을 넣어두었으니 누구든 꺼내먹으라는 글을 올리면서부터다.
이 소소한 나눔에 감동받은 사람들이 동참했고, 달콤한 간식을 먹고 힘내라는 의미에서 ‘달콤창고’라는 이름이 붙었다. 한 달에 5만 원인 물품보관함 대여료를 기꺼이 지불하는 사람들과 가벼운 주머니를 털어 얼굴도 모르는 타인을 위해 간식을 넣어두는 사람들 덕분에 달콤창고는 전국 지하철역을 중심으로 퍼져나갔고 불과 몇 달 만에 백여 곳으로 늘어났다.
달콤창고는 지하철 물품보관함을 벗어나 대학교 안 사물함에도, 지하상가의 양말가게 한 구석이나 조그만 김밥가게 안에도 터를 잡았다. 이용하는 사람도 다양하다. 여섯 살 어린아이가 사탕을 두고 가기도 하고, 취업준비생이나 수험생이 자신과 비슷한 처지의 사람들을 위해 간식을 나누어주기도 한다. 달콤창고의 위치와 비밀번호는 ‘어라운드’ 앱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달콤창고에 누가 간식을 가져다 놓고 또 가져가는지는 아무도 모르지만, 이 공간을 통해 익명의 사람들이 서로를 위로하며 마음을 나누고 있었다. 어떻게 일면식도 없는 사람들끼리 살갑게 챙겨주고 따뜻한 말을 건넬 수 있을까? 이기기 위해 남을 밟고 올라서야 하는 무한경쟁의 시대에 달콤창고는 이해하기 힘든 낯선 흐름이다.
지금 우리 사회의 갑갑한 현실을 마주하면 더욱 그러하다. 한 나라 국민이 겪는 경제적 고통의 정도를 보여주는 지표가 있다. 실업률과 물가상승률을 토대로 산출되는 ‘체감경제고통지수’가 그것인데, 지수가 높을수록 경제적 고통이 심하다는 뜻이다. 우리나라의 ‘체감경제고통지수’는 2006년 13포인트에서 점점 올라 2015년에는 22포인트까지 치솟았다. 국민이 느끼는 경제적 고통이 해가 갈수록 큰 폭으로 증가했다는 증거다. 생활이 넉넉해지기는커녕 점점 더 어려워지는데, 이렇게 강자만이 살아남는 정글 속에서 사람들은 왜 자신이 가진 것을 남과 나누려고 할까? (22~24쪽)
경제가 어려울수록 착한소비가 늘어난다?
이렇듯 가장 이해득실을 따지게 되는 소비 행위를 할 때도 사람들은 이전과 달리 합리적이지 않은 행동을 한다. 게다가 정말 역설적이게도 위기가 닥칠 때 사람들의 착한 움직임을 더욱 커진다.
경제가 나빠질 때 착한소비의 패턴이 어떻게 변하는지를 분명하게 보여주는 그래프가 있다. 전 세계 공정무역 매출액은 지난 2004년 이래 꾸준히 증가해왔는데, 특히 2008년 이후 금융위기의 여파로 세계경제성장률이 마이너스로 돌아섰을 때 놀랍게도 공정무역 매출액은 오히려 증가추세를 보였다.
우리나라 상황도 이와 다르지 않다. 우리나라의 공정무역 매출액은 2008년에서 2009년까지 1년 사이 무려 210퍼센트나 증가했다. 경제가 안 좋을 때 타인을 생각하는 착한소비가 오히려 늘어나는 이상한 현상이 벌어진 것이다.
서울 서촌에 위치한 카페 ‘투포인트 커피’에서는 공정무역 커피를 판매한다. 공정무역 커피는 실제 커피를 재배하는 농부에게 정당한 가격을 지불하고 사오는 것이다. 커피는 세계에서 석유 다음으로 교역량이 많은 품목이지만, 산유국이 부유한 것과 달리 커피를 재배하는 나라의 국민들은 아주 가난하다. 다국적 대기업과 중간 유통업체가 폭리를 취하면서 커피 재배농에게는 말도 안 되게 적은 금액을 지불 하기 때문이다. 불공정한 거래 탓에 농민들은 커피콩 1킬로그램에 1달러를 받기가 어렵다.
이러한 사실은 전 세계가 공정무역의 중요성에 눈 뜨는 계기가 되었다. 한국에도 공정무역 커피 시장 규모는 50억 원에 달한다.
‘투포인트 커피’에서 사용하는 원두는 모두 아프리카 산, 그 가운데서도 케냐 산이 대부분이다. ‘투포인트’라는 이름처럼 중간거래를 없애고 생산자와 소비자를 바로 연결하기 위해 전 물량을 커피 농장에서 직수입한다. 덕분에 커피 농부는 1킬로그램당 3~7달러를 받을 수 있게 되었다고 한다.
‘투포인트 커피’는 농민에게 정당한 대가를 지불하는 것 외에도 학교에 우물 파기 등 공동체를 변화시킬 수 있는 일을 하면서 카페 수입의 30퍼센트가량을 아프리카에 환원한다. 실제로 학교 안에 우물이 생기자 학생들이 하루에 두 시간 이상 걸어서 옆 마을로 물을 길으러 가지 않아도 되어 중학교 진학률이 두 배로 늘어나기도 했다. 또 직거래를 하면서 농민들도 자부심을 갖고 커피 품질을 높이기 위해 더 노력하고 있다고 한다.
공정무역 취지에 공감하는 소비자가 점점 늘어나면서 매년 ‘투포인트 커피’가 수입하는 커피콩 물량이 30퍼센트가량씩 늘고 있다. 커피 한 잔을 마시는 사소한 소비행위에도 자기만의 가치를 표현하고 싶어하는 욕구가 늘고 있다. (27~29쪽)
많은 친구들이 찾아 읽어주어 요지경 내 생각은 접고 책이 모두 10장으로 나뉘어있어 각 장마다 한두 부분씩 그대로 올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