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길에 매서운 바람이 분다. 바람을 피해 현금인출기 앞에 서서 나는 잠시 바깥을 살핀다. 세닥소 앞 붕어빵 리어카의 비닐 장막이 요란하게 펄펄 않는 소리를 한다. 마치 힘겨운 삶을 떨치려는 몸부림으로 보인다. 붕어빵 가게 주인이 추위를 피해 세탁소에 있다가 나오는 모습이 보인다. 하지만 된바람이 그녀를 막다른 골목으로 내몰듯 하다. 오늘따라 걸음이 더욱 휘청거린다. 투명 비닐 장막을 벽돌로 눌러 정리하는 걸 보자 내 마음은 금방 싸락눈이라도 내릴 듯해서 어깨를 움츠린다.
‘이런 날은 차라리 집에서 하루쯤 푹 쉬지. 왜 나와서 사람의 마음을 우울하게 하는지’
뜨거운 감자를 삼킨 듯하다. 종종걸음치는 사람들은 아파트 정문 앞에서 더 옷깃을 여미고 집을 향해 사라진다. 이렇게 매서운 날에는 따뜻한 붕어빵도 보이지 않는지 모두 외면을한다. 세 개씩 석줄, 세로로 놓인 붕어빵의 통통한 배가 가라앉아 달라붙기 전 한 줄이라도 팔려햐 할 텐데……. 붕어빵을 파는 그녀보다 내가 더 안달이 나서 문을 열고야 말았다.
그녀는 일명 투잡 족이다. 아침 일찍부터 가가호호를 방문하여 세탁물을 거둬들여서 세탁소 주인에게 가져다주는 것이 그녀의 첫째 직업이다. 두 번째가 붕어빵 굽기이다. 민들레처럼 작달막한 키에 불면 날아갈 듯 연약한 체구의 그녀는 아이들을 학교에 보내고 커피 한잔을 하고 있을 때쯤 목소리로 먼저 만난다. 세~탁을 외치며 총총걸음으로 계단을 내려온다. 나도 두어 번 세탁물을 맡긴 적이 있다. 하지만 승강기 안이나 간혹 길에서 마주쳐도 모르는 사이에 가깝다.
날씨가 서늘해지는 늦가을이 되자 그녀의 붕어빵 가게가 차려졌다. 작년에도 이때쯤 일을 시작한 걸로 기억한다. 붕어빵을 굽는 솜씨는 엉망이었다. 리어카에는 분명 ‘통통 붕어빵’이라 적혀 있었지만, 팥이 덜 들어간 듯 짜부라진 빵이었다. 간혹 너무 오래 철판에 누워있어 진한 갈색이 된 붕어빵을 아파트 주민들에게 덤으로 얹어 주기도 했다.
해가 바뀐 뒤 그녀의 붕어빵 굽는 손놀림이 재빠르다. 한꺼번에 여러 개의 틀을 바삐 돌려가며 반죽을 붓고 팥 앙금을 툭툭 던지듯 얹는다. 그 위에 누런 주전자를 기울여 또다시 반죽을 붓는다. 철컥 금붕어 등짝이 열릴 때마다 통통 살 오른 황금 고기들이 나란하다. 구수한 냄새에 빨리 한입 베어 물고 싶어진다. 이제는 덤이야 줄겠지만, 마음은, 방금 구운 붕어빵처럼 빵빵해진다.
‘남편은 있는지, 혹 병들어 누워 있는건 아닌지’
‘아이들을 혼자서 공부 시키느라 저렇게 열심히 살아 보려고 하는지’
봉투에 담긴 붕어빵 여섯 마리를 안고 손을 녹이며 속을 보이지 않는 그녀를 두고 온갖 상상을 해본다.
장사를 하면서도 그렇게 살갑게 손님을 대하지 않는다. 헛웃음을 흘리며 손님을 요리하는 장사치 보다 차라리 믿음이 간다. 웃음에 인색하여도 비슷한 연배의 그녀라서가 아니라 어딘가 올곧아 보이는 모습에 후한 점수를 매긴 건지도 모르겠다. 아니 그녀에게서 오래전 한 여인의 모습을 보았기 때문일 게다.
어머니는 시장 초입 약국 앞에서 인삼 좌판을 하셨다. 농사만 짓다 도시로 온 어머니는 셈이 서툴렀다. 저울을 속이지 않고 좋은 물건을 판다는 소문에 단골도 점차 생겼다. 그리고 솜씨 좋은 어머니는 짬짬이 뜨개질로 뜬 모자를 팔았다.
가끔 용돈이 궁해지면 어머니를 찾아 시장에 갔다. 바람이 세상의 모든 것들에, 심술을 부리듯 사납게 소리를 내는 날이었다. 어머니는 약국 안에는 들어가지 못하고 옆 잡화점에서 발칫잠을 자듯 한쪽 구석에 끼어 앉아 졸고 계셨다. 체크무늬 보자기로 머리를 싸매고 옹송그리고 앉아있는 어머니의 어깨는 그날따라 더욱 좁고 추워 보였다. 급히 몸을 돌려 집으로 오는 내내 괜스레 화가 났다. 시장통 한번 둘러보지 못하고 경주마처럼 달려 집에 도착하니 눈물이 났다. 손님도 많지 않은 이런 날 하루쯤은 집에서 쉬지 꼭 저렇게 청승을 떨어 속을 뒤집어 놓는다. 어머니가 원망스러웠다. 사나운 날씨로 장사가 신통찮았는지 다른 날 보다 일찍 오신 어머니를 모른 척 하고 난 오래도록 헛잠을 잤다.
이제 나도 그때 어머니의 나이가 되었다.
“하루도 쉴 수 없었던 비탈진 삶을 지탱해 주었던 것은 너희 사 남매였다.”
추억처럼 말씀하시는 어머니 앞에서 발버둥 치며 소리 내어 울지도 못하는 마흔을 훌쩍 넘긴 나이가 되었다. 두 겹, 세 겹의 일로 고단했던 어머니의 삶은 서릿발자국 소리가 되어 내 가슴에 오늘도 서걱대며 지나간다.
바람 부는 한길에서 붕어빵을 굽고 있는 그녀에게 눈빛 맑은 아이가 분명 있지 싶다. 그러기에 물 먹인 솜처럼 가라앉았던 몸도 새벽이면 곧추세우고 일어날 수 있을 것이다. 혼자 살자고 저렇게 검푸른 손을 바삐 움직이는 이는 드물다. 붕어빵을 구우며 고단한 내 삶만은 닮지 말라 말할지도 모른다. 기름칠을 한 붕어빵틀처럼 반들반들 빛나는 그녀의 여문 두 눈을 본다. 그녀는 지금 붕어빵이 아닌 선명한 희망을 굽고 있다. 그녀의 꿈이 통통 부풀어 황금비늘을 달고서 푸른 바다를 헤엄칠 날을 그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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