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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 |
| 영원한 왕 예수님 말씀/ 누가복음 1:26-56 요절/ 누가복음 1:33 | 2018. 12. 16 |
성 탄 제 1 강 |
“영원히 야곱의 집을 왕으로 다스리실 것이며 그 나라가 무궁하리라.”
2018년 성탄절이 다가오고 있습니다. 성탄절은 하나님이 인간의 몸을 입고 이 땅에 오신 날입니다.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께서 하늘 보좌와 영광을 버리고 한 아기의 모습으로 태어나신 이유가 무엇입니까? 우리를 구원하기 위해서입니다. 한 아기 예수님은 바로 우리를 위해서 오셨습니다. 성탄절이 있기에 올해도 빛이 나고 아름답고 감사가 가득합니다. 오늘 본문은 마리아에게 임한 성탄 말씀입니다. 마리아는 어떤 은혜를 입었습니까? 그녀의 몸을 통해 이 땅에 오시는 예수님은 어떤 분이십니까? 오늘 성탄 말씀을 통하여 우리가 받은 은혜를 기억하고 새롭게 함으로써 기쁨과 소망이 넘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여섯째 달에 천사 가브리엘은 하나님의 보내심을 받아 갈릴리 나사렛이란 동네로 갔습니다. 가브리엘은 얼마 전에는 사가라에게 세례 요한의 탄생을 알려주었고, 이번에는 갈릴리 나사렛으로 이동하여 마리아를 찾아가 메시아의 탄생을 예고했습니다. 마리아가 살고 있는 마을 갈릴리는 이방인의 피가 많이 섞인 지역이었기에 경멸의 대상이 되었습니다. 특히 나사렛은 갈릴리 호수에서 서남쪽으로 24킬로미터 떨어진 작은 산골 마을이었습니다. 천사는 갈릴리 중에서도 작은 산골인 나사렛이란 곳을 찾아갔습니다. 동네가 좋아서 간 것이 아닌 하나님의 은혜를 받은 처녀 마리아가 있어서 찾아간 것입니다.
저자 누가는 마리아가 어떤 상태에 있었다고 말합니까? 그녀는 다윗의 자손 요셉이라 하는 사람과 약혼한 상태였습니다. 메시아는 다윗의 자손으로 오실 것이기 때문에 마리아가 다윗의 자손 요셉의 약혼녀라는 사실은 성모로 택함 받는 중요한 조건이 됩니다. 약혼하면 두 사람은 법적으로 부부가 되었습니다. 약혼녀를 두고 남자가 죽으면 그 약혼녀는 과부가 됩니다. 약혼 기간에는 정조를 지켜야만 했고, 정조를 어기면 사형을 당했습니다(신22:22). 천사는 마리아가 처녀인 것을 거듭 강조합니다. 이는 메시아가 다윗의 자손 중에서 탄생하셔야 할 뿐 아니라 처녀의 몸에서 탄생하셔야 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메시아를 잉태할 수 있는 조건을 갖추었다고 해서 마리아가 성모로 택함을 받은 것은 아닙니다. 마리아는 신앙이 깊은 경건한 여인이었고, 하나님의 뜻에 순종할 수 있는 내면성을 갖추었습니다. 무엇보다 마리아가 성모로 택함을 받은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운 선택 때문입니다.
요셉과 정혼한 마리아의 심정이 어떠했을까요? 요셉은 가난한 목수였지만 다윗 가문의 자손으로서 품격이 있었습니다. 각자 자기 소견대로 살아가는 시대에 요셉은 하나님을 경외하며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았습니다. 이런 요셉과 약혼한 마리아는 장차 단란한 가정을 이루어 자식들을 잘 키울 꿈에 부풀어 있었습니다.
가브리엘 천사는 마리아에게 말했습니다. “은혜를 받은 자여 평안할지어다. 주께서 너와 함께 하시도다.” 결혼의 단꿈에 젖어 있는 마리아에게 천사 가브리엘이 나타나서 인사를 했습니다. 이로써 마리아의 인생은 새로운 국면에 접어들게 되었습니다. “은혜”는 자격이 없는 인간에게 베풀어주시는 하나님의 호의요 일방적으로 주어지는 선물입니다. 가장 핵심적인 은혜는 죄 사함의 은혜입니다.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통해 구현된 속죄의 사랑이야말로 은혜 중의 은혜입니다. 그 은혜로 말미암아 죄로 인해서 심판을 받을 수밖에 없던 데서 하나님의 자녀로 새롭게 태어나는 것입니다. 그런데 마리아는 하나님의 아들을 낳고 키우는 특별한 은혜를 받았습니다. 마리아가 받은 은혜는 하나님의 구속역사에 귀하게 쓰임받는 은혜입니다. 사도 바울은 로마서 1:5에서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은혜와 사도의 직분을 받았다고 말했습니다. 우리도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죄사함의 은혜와 더불어 목자의 직분을 받았습니다. 목자의 직분을 받은 것, 다시 말해 하나님의 구속역사에 부르심을 받아 쓰임받게 된 것은 얼마나 큰 은혜입니까?
“은혜를 받은 자여” 이런 인사는 아무에게나 주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이는 하나님의 특별한 뜻과 계획 가운데 선택을 받은 자에게 주어지는 은총입니다. 주 하나님은 은혜를 받은 사람과 함께 하십니다. 인간이 누릴 수 있는 가장 큰 축복은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것입니다. 마리아가 받은 은혜가 너무 크기 때문에 가브리엘 천사는 부러워서 “은혜를 받은 자여 주께서 너와 함께 하시도다”라고 말했습니다. 마리아는 천사의 인사말에 심히 놀랐습니다. 평소에 아무런 은혜 받을 자격이 없다고 생각해서 어떤 기대로 하지 않았기 때문에 천사의 인사가 어찌함인가 생각했습니다. 이런 마리아에게 천사는 다시 한 번 마리아가 하나님의 은혜를 입었다고 말해줬습니다.
요셉은 속이 깊고 의로운 사람이었고, 마리아는 어느 곳을 가도 주인의식을 가지고 섬기는 여인이었습니다. 그래서 두 사람이 결혼하면 사가랴와 엘리사벳 부부처럼 아름다운 가정을 이루었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특별한 은혜가 임하지 않았다면 마리아는 나사렛 산골에서 남편 뒷바라지하고 자식들 뒤치다꺼리하면서 한평생을 보냈을 것입니다. 이런 산골 처녀가 하나님의 은혜를 입어서 인류가 흠모하는 성모가 되었습니다.
천사는 마리아가 구체적으로 어떤 은혜를 입었는지 말해 주었습니다. 31절을 보십시오. “보라 네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으리니 그 이름을 예수라 하라.” 어머니는 자식이 훌륭하게 성장할 때 빛을 발하게 됩니다. 이처럼 마리아가 성모로 추앙을 받게 된 것은 인류의 구원자이신 예수님을 잉태하고 낳았기 때문입니다. “예수”는 구약의 “여호수아”와 같은 이름으로 여호와는 구원이시다 라는 뜻입니다. 마리아가 낳을 아들은 장차 어떤 분이 되십니까? 32, 33절을 보십시오. “그가 큰 자가 되고 지극히 높으신 이의 아들이라 일컬어질 것이요 주 하나님께서 그 조상 다윗의 왕위를 그에게 주시리니 영원히 야곱의 집을 왕으로 다스리실 것이며 그 나라가 무궁하리라.” 첫째, 예수님은 큰 자가 되십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로서 존재 자체가 크신 분이십니다. 또한 예수님은 인격과 사역 면에서도 그 누구와도 비교할 수 없는 절대적으로 크신 분이십니다. 예수님은 완전한 인격을 가지셨습니다. 가장 높으신 분이시지만 가장 낮은 위치에서 섬기는 인생을 사셨습니다. 이런 삶을 통해서 겸손과 섬김이 위대하다는 것을 가르치셨습니다. 예수님은 온 마음과 성품과 힘을 다해서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내 몸처럼 사랑하는 것이 신앙의 본질이라고 가르치셨습니다. 또한 율법을 잘 지켜야 의롭게 되는 것이 아니라 전능하신 하나님을 믿는 것이 의롭게 되는 길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런 가르침은 당시로써는 혁명적이었습니다. 예수님의 위대성은 그분의 권세와 업적에서도 잘 나타났습니다. 예수님은 자연 세계와 영적 세계를 다스리는 권세를 가지셨습니다. 말씀 한마디로 광풍을 잠잠케 하시고 귀신들린 사람, 각종 질병에 걸린 사람들을 치료해 주셨습니다. 무엇보다도 십자가와 부활로 인간의 근본문제인 죄와 죽음 문제를 해결해 주셨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은 가장 크신 분이십니다.
둘째, 예수님은 지극히 높으신 이의 아들이십니다. “지극히 높으신 이”는 하나님께만 붙이는 칭호입니다. 예수님은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 예수님은 신성을 가지신 분이십니다. 예수님의 본체는 하나님이십니다. 예수님은 본래 하나님의 아들로서 지극히 높으신 분이시기 때문에 우주의 티끌과 같은 인간은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을 찬양해야 합니다.
셋째, 예수님은 다윗의 왕위를 이어받으신 메시아이십니다. 다윗은 이상적인 왕이었습니다. 다윗은 목동시절 양떼를 지키고 있을 때 곰이나 사자가 나타나서 양들을 잡아가면 목숨을 걸고 달려가서 양들을 구했습니다. 왕으로 다스릴 때도 백성들을 진실로 사랑했고, 백성들의 안녕을 위해서 목숨을 내놓고 싸웠습니다. 이처럼 다윗은 자신을 위해서 살지 않고 백성들을 위해서 살았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사랑과 공평과 정의로 다스렸고 그의 다스림을 받은 백성들은 행복과 평안을 누렸습니다. 이후부터 백성들은 다윗과 같은 왕이 나타나서 자신들을 통치해 주기를 바랐습니다. 예수님은 영원히 야곱의 집을 왕으로 다스리실 것이며 그 나라는 무궁할 것입니다. “야곱의 집”은 예수님을 중심으로 새롭게 형성되는 새 이스라엘을 가리킵니다. 이는 예수님을 왕으로 영접하고 그 분의 통치를 받는 하나님 나라 백성을 가리킵니다. 사람은 어느 누구의 통치도 받고 싶어 하지 않습니다. 자신이 왕이 되어 마음대로 살고자 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통치를 받지 않으면 사단의 통치를 받게 됩니다. 구원받은 자라도 예수님의 통치를 받지 않으면 또다시 죄의 수렁에 빠지고 비참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을 왕으로 영접하고 그 분의 통치를 받고자 해야 합니다. 그러면 예수님이 그 사람의 내면에 임하셔서 온유와 겸손과 사랑으로 통치하십니다. 예수님은 연약한 자들의 연약함을 깊이 이해하시고 감당해 주십니다. 죄로 병든 영혼이라도 정죄치 않으시고 용서해 주시고 병든 내면을 치유하셔서 건강한 인생을 살게 하십니다. 예수님의 통치를 받는 사람은 어떤 시련 가운데서도 천국의 기쁨을 맛보며 희망찬 삶을 살아갈 수 있습니다.
영원한 왕 예수님이 다스리는 나라는 무궁합니다. 열왕기를 보면 위대한 왕일지라도 통치기간이 4,50년을 넘지 못합니다. 4,50년 동안 태평성대를 누리다가 왕이 죽으면 백성들은 또 다시 파탄에 빠지게 됩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나라는 영원하고 그 분의 통치도 영원합니다. 그래서 그 분의 통치를 받는 백성들은 영원토록 행복과 평안을 누릴 수 있습니다. 세상 영광은 풀의 꽃과 같습니다. 올림픽 마라톤에서 금메달을 딴 사람도 늙으면 계단을 오르기 힘들어합니다. 대기업 회장이라도 늙으면 잘 먹지 못하고 그 많은 돈을 제대로 쓰지도 못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통치를 받는 자들은 그의 나라에서 영원히 왕과 같은 인생을 살게 됩니다.
이런 인류의 메시아 예수님을 낳아서 키우는 성모로 택함을 받는 것보다 더 영광스러운 일이 어디에 있겠습니까? 그래서 가브리엘 천사는 두 번씩이나 “네가 하나님의 은혜를 받았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 쓰임 받는 인생은 특별하기 때문에 희생과 고난이 따릅니다. 성모로 택함을 받은 마리아는 그 은혜를 감당하기 위해서 처녀의 몸으로 잉태해야 합니다. 또한 마리아는 성모가 되면서 아기자기한 여인의 꿈이 깨져 버렸습니다. 약혼한 몸으로 임신했기 때문에 요셉의 오해를 사게 되었습니다. 사람들에게 간음한 여인이라는 누명을 써서 돌에 맞아 죽을 수도 있습니다. 나중에는 사랑하는 아들이 사람들에게 버림받고 채찍에 맞고 십자가에 달려 죽어가는 모습을 지켜보아야 합니다. 그렇지만 이런 고난은 의미있는 고난이요 생명을 잉태하는 고난이며, 주님께서 함께 하사 견디게 하시고 이겨낼 수 있게 해 주십니다.
처녀 마리아는 하나님의 은혜를 어떻게 감당해야 할지 알지 못해 천사에게 물었습니다. “나는 남자를 알지 못하니 어찌 이 일이 있으리이까” 천사는 성령이 그녀에게 임하시고 하나님의 능력이 그녀를 덮으심으로 그녀가 메시아를 잉태하고 낳게 될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는 인간의 이성으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신비한 하나님의 역사입니다. 이런 방법이 아니면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께서 한 아기의 모습으로 이 땅에 태어날 수 없습니다. 이런 방법이 아니면 아담의 죄성을 물려받지 않은 흠 없는 인간이 될 수 없습니다. 예수님은 이런 신비스러운 방법으로 잉태되신 후에 인간의 탄생과 성장과정을 똑같이 밟으셨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완전한 하나님이시오, 죄가 없으신 완전한 인간으로서 우리들의 죄를 대속할 수 있게 된 것입니다.
천사는 마리아에게 믿음을 심기 위해서 친족 엘리사벳의 예를 들었습니다. 엘리사벳은 늙어서 자식을 낳을 수 없는 상태였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능력으로 임신하여 여섯 달이나 되었습니다. 대저 하나님의 모든 말씀은 능하지 못하심이 없습니다. 말씀의 능력을 믿을 때 어떤 일도 해내고 하나님의 은혜를 감당할 수 있습니다. 마리아는 하나님 앞에서 믿음의 결단을 드렸습니다. “주의 여종이오니 말씀대로 내게 이루어지이다.” 마리아는 주의 여종으로서 자신의 신분을 인식하고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기로 마음을 정하였습니다. 그녀는 말씀의 능력을 믿고 자신을 하나님께 내어 드렸습니다. 처녀의 몸으로 임신한다는 것은 받아들이기 힘든 일입니다. 정혼한 요셉이 크게 상처를 받고 무슨 일을 저지를지 알 수 없습니다. 사람들의 조롱과 비난을 받으면서 평생 살 수도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리아는 자신을 주의 여종이라고 했습니다. 마리아는 중 고등학생 정도 밖에 되지 않은 나이였지만 주의 여종으로서의 분명한 정체성이 있었습니다. 마리아는 요셉과 상의해 보거나 부모에게 물어봐야 한다고 하지 않았습니다. 기도해 보고 나중에 알려주겠다고 하지 않았습니다. 마리아는 즉각적으로 믿음의 결단과 온전한 순종을 드렸습니다. “말씀대로 내게 이루어지이다. 아멘!” 마리아는 하나님께 쓰임받을 수 있는 준비된 믿음의 여인이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의 능력은 자신이 하나님의 종임을 깊이 인식하고 고백한 사람들에게 나타납니다. 하나님의 종의 분명한 정체성이 있는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은혜가 임하고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집니다. 모라비안 성도들은 자신은 주님의 종이라는 분명한 정체성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주님의 종들의 방향에 100% 순종했습니다. 가라면 가고 서라면 섰습니다. 결혼 방향이 주어지면 믿음으로 결혼했습니다. 선교역사를 위해서라면 공동묘지 관리원이 되기도 하고 신발 두 짝만 들고 알라스카에 선교사로 나가기도 했습니다. 최에스더 선교사는 주님의 종으로서 분명한 정체성이 있었기에 결혼 방향에 대해 부모가 반대했을 때도 흔들리지 않았습니다. 또한 물질도 없고 직장도 없었지만 다만 예수님의 지상명령에 순종하여 아일랜드 선교사로 나아갔습니다. 주님의 종으로서 자신을 인식하고 하나님께 장래와 모든 것을 맡긴 사람들을 통하여 생명의 역사가 일어나고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집니다. 우리가 주님의 종이요 목자로서의 분명한 정체성을 가지고 춘천 5개대 캠퍼스에 올라갈 뿐 아니라 해외 캠퍼스로 나아갈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마리아는 믿음으로 하나님의 뜻에 순종했지만 마음에 위로와 확신이 필요했습니다. 이때 그녀는 누구를 찾아갔습니까? 약혼한 요셉이나 부모님을 찾아갈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신앙의 선배인 엘리사벳을 찾아갔습니다. 이것은 매우 지혜로운 선택이었습니다. 갈릴리 나사렛에서 유대 땅까지는 적어도 3일이 걸리는 고된 여행길이었습니다. 마리아는 힘들다고 방문을 포기하지 않았고, 이는 그녀의 믿음이 살아있다는 증거입니다. 엘리사벳은 성령으로 충만하였습니다. 엘리사벳 복 중의 아기도 성령이 충만했습니다. 남편 사가랴도 성령이 충만했습니다. 한 마디로 사가랴 가정은 성령이 충만한 가정이었습니다. 그래서 그 가정에 들어가게 되면 누구든지 성령의 감동을 받게 됩니다. 이런 가정에서 세례 요한이 성장하여 엘리야의 심령과 능력을 덧입게 됩니다.
마리아가 엘리사벳에게 문안할 때 엘리사벳의 복 중에 있는 아이가 뛰놀았습니다. 어머니와 모태에 있는 아기가 연결되어 있습니다. 함께 생각하고 함께 느낍니다. 또한 엘리사벳은 마리아에게 일어난 일을 하나님의 역사 편에서 해석하고 신앙적으로 격려해 주었습니다. 만일 인간적으로 생각했다면 이렇게 말했을 것입니다. “마리아야 너 큰일 났다. 이 일을 요셉이 알면 어떻게 되겠니? 네 앞 길이 너무 험하구나” 또한 자신은 메시아의 선구자를 임신했는데 마리아는 메시아를 잉태했다고 비교하고 시기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엘리사벳은 성령의 충만함을 입어서 “여자 중에 네가 복이 있으며 네 태 중의 아이도 복이 있도다.”라고 격려해 주었습니다. 딸과 같은 마리아에게 “내 주의 어머니”라고 말하면서 마리아의 믿음의 결단을 축복해 주었습니다. 또한 “주께서 하신 말씀이 반드시 이루어지리라고 믿은 여자에게 복이 있다”라고 말하면서 마리아가 믿음을 갖도록 도와줍니다. 엘리사벳이 자꾸 복이 있는 자라고 하니까 나중에 마리아는 자신을 만세에 복이 있는 여자라고 노래합니다. 이를 볼 때 하나님의 편에서 보고 축복해 줄 수 있는 엘리사벳과 같은 목자들이 많이 필요하다는 것을 배웁니다.
46-56절은 마리아의 찬양시입니다. 마리아는 엘리사벳의 카운슬링을 들은 후에 심령에 드리워졌던 근심과 두려움이 사라졌습니다. 성령의 밝은 빛으로 충만해져서 하나님을 찬양했습니다. 마리아의 찬양시를 살펴보면 ‘나와 함께 하신 하나님’에 대한 개인적인 체험에서 시작하여 이스라엘 백성과 함께 하시는 하나님, 우리 인생들과 함께 하시는 하나님은 어떤 분이신가? 로 나아가고 있습니다.
마리아는 그녀의 영혼으로 주를 찬양합니다. 이교도들은 제우스와 아폴로를 주라고 불렀습니다. 로마제국의 백성들은 그들의 황제를 주라고 불렀습니다. 그러나 마리아는 하나님을 ‘내 주’라고 부르며 찬양합니다. 찬양하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그것은 하나님께서 그의 여종의 비천함을 돌보셨기 때문입니다. 비천함은 낮은 신분을 가리킵니다. 여종은 유대 사회에서 뿐 아니라 로마 사회에서도 멸시받는 소외 계층에 속한 자였습니다. 이처럼 자기와 같이 낮은 신분의 여인이 하나님의 아들을 잉태했다는 것은 비천함을 돌아보신 결과입니다. 마리아는 자신을 가리켜 가장 행복한 사람이라고 말합니다. 이는 하나님의 역사에 쓰임받는 은총을 근거로 하고 있습니다.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큰 일을 마리아에게 행하셨습니다. 큰 일은 아기 예수님을 잉태하고 낳는 일입니다. 마리아가 만세에 복이 있는 여인이 된 것은 성모로서 하나님의 구속역사에 쓰임 받았기 때문입니다. 진정한 복이 어디에 있습니까? 만민 구속역사에 쓰임 받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올해 많은 어려움이 있었지만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연단하시고 캠퍼스 개척과 세계선교에 귀하게 쓰셨습니다. 우리의 비천함을 돌아보시고 우리를 만민 구속역사에 귀히 써 주신 주님께 감사와 찬양을 드립니다!
51-55절은 예수님이 통치하시는 나라의 성격이 어떠한지 잘 보여줍니다. 그 나라에서는 끊임없이 높아지고자 애를 쓰는 사람, 권세를 잡고 군림하던 사람, 부유한 삶을 살면서 가난한 자들을 돌아보지 않았던 사람은 낮아지고 비천하게 됩니다. 반면에 이 세상에서 비천하게 산 사람, 가난한 사람, 겸손한 사람은 긍휼함을 입어서 높임을 받게 됩니다. 예수님이 다스리는 나라에서는 이 세상에서의 삶과 반대되는 역전 현상이 일어납니다. 우리 주 하나님은 공평하신 분이십니다. 또한 역전의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은 왜 역전의 역사를 이루십니까? 첫째로, 아무든지 하나님 앞에서 자랑하지 못하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하나님은 이 세상에서 자랑할 것이 없는 자들을 택하셔서 자랑할 것이 있는 자들을 부끄럽게 하십니다. 둘째로, 아무든지 하나님 앞에서 절망하지 못하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본문의 비천한 자, 굶주린 자는 절망하기 쉬운 자들입니다. 하나님께서 이들을 높이시며 좋은 것으로 배부르게 하심은 이 세상에서 아무리 절망적인 상황에 있는 자들이라 하더라도 복음을 듣고 절망하지 못하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셋째로, 아무든지 하나님을 믿는 자는 구원하시기 위해서입니다. 마리아는 하나님을 ‘내 구주’라고 불렀습니다. 하나님은 어떤 사람이라도 그를 의지하는 자는 버리지 않으십니다. 세상에서는 돈이 없고 권력을 잃으면 버림을 받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를 믿는 어떤 인간도 버리지 않습니다. 상한 갈대, 꺼져가는 심지와 같은 자도 치료하시고 능력을 주셔서 살게 하십니다. 죄인을 용서하시고 병든 자를 고치시며 무능한 자에게 능력을 부어주셔서 귀하게 사용하십니다. 이는 그 목적이 인간을 구원하는데 있기 때문입니다. 이런 역사가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심으로서 시작되었습니다. 그래서 영원한 왕이신 예수님으로 인해서 이 세상에서 비천한 자, 고달픈 자, 슬픈 자, 병든 자, 실패한 자, 절망한 자들이 소망을 가질 수 있습니다.
마리아의 몸을 통해 이 땅에 오신 예수님은 우리 구주요 영원한 왕이십니다. 우리를 죄와 어두움으로부터 구원하시기 위해 한 아기로 태어나신 예수님을 새롭게 영접하고 그 다스림을 받음으로 은혜와 기쁨과 소망이 넘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이 놀라운 성탄의 복음을 캠퍼스 학우들과 이웃들에게 전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