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RT 수서역 인근의 한 음식점,
잔을 높이 들고 회장의 “빛사냥, 일박” 선창에 따라 모두는 “이일”로 화답하고,
총무의 선창 “목포는” 에 일동은 “항구다”를 외치면서 건배를 마쳤다.
일박이일의 목포 출사는 이렇게 막을 내렸다.
첫날, 오후에 합류키로 한 서승우 형를 뺀 15명이 SRT 수서역 맞이방에 모이기로 했는데 이틀 전 귀국한 박찬홍 형이 안 보인다. 출발 30분전인데 교대역이란다. 전철 안에서부터 열심히 뛴 덕에 출발 2분전에 탑승하는데 성공했다.
빛사냥이 시작 된지 6년이 흘렀는데 16명의 대인원이 함께 출사를 간 것은 처음이다. 그것도 일년에 봄, 가을로 두 번가는 일박이일에는 두 말 할 나위도 없이 말이다. 지방 출사 시 이런 대인원이 함께하면 장단점이 각각 있다. 인원이 많으면 웃고 떠드는 재미가 더하지만, 이동 시 불편한 점이 따르게 마련이다.
목포를 목표지로 잡고 촬영계획을 세우기 위해 목포에 관한 각종 자료를 인터넷에서 수집해 일박이일의 동선을 잡았다. 지도를 그리고 그 위에 우리가 갈 곳을 점찍어 나갔다. 한 두 군데 이동경로를 제외하고는 차를 탈 필요를 느끼지 않았다. 그래. “이번 출사는 모두 걸어 다닌다”는 “걸어서 출사여행”을 계획한 것이다.
목포는 그렇게 좁았다. 이렇게 걸어서 다니는 여행이라면 인원이 많아도 별 불편을 느끼지 않겠다고 생각했다.
고속열차는 2시간 남짓 달리더니 우리를 목포역에 내려준다.
목포역을 배경으로 단체사진 한 장 찍었다.
손상찬형이 핸드폰으로도 한 장 더 찍는다고 길 가는 아주머니에게 맡겼더니 옆에서 지켜보던 아저씨가 “앗다, 이 양반아, 저 위 목포역이 나오게 찍어 뿌려야지” 하면서 핸드폰을 빼앗아 한 장 더 하면서 몇 장을 찍었다. 몇 분 후 확인하니 아무것도 안 찍혔다.
시간 절약을 위해 역에서 5분 거리에 위치한 해장국집을 찾았다. 기차에서 예약전화를 했더니 예악은 사절이란다. 일요일 점심인데 식당 안이 만원인걸 보면 콧대를 세울 만 한 집인가 보다. 후배 백종원의 사대천왕인가에 나왔던 집이다.
배도 불렀으니 이제 걸을 준비들 하셨나?
일행 대부분은 목포가 초행이다. 홍도 가면서 잠시 들른 동기들 몇을 제외하면 말이다.
목포역 앞 번화가를 가로지르고 국도 1,2호선 기점 기념탑을 지나 제일 먼저 도착한 곳은 언덕에 자리 잡은 구일본영사관이었던 건물인 근대역사박물관이다. 붉은 색 벽돌집의 외모에서 일본 냄새가 풍긴다. 조선시대에는 수군 군사요충지인 목포진, 만호진(만호가 거주)으로, 일제 강점기에는 호남곡창의 쌀을 실어 나르는 주요 항구로서, 삼일 운동에 이르기 까지 목포의 근대 역사를 한눈에 볼 수 있게 꾸며져 있다.
이곳에서 바로 아래 굽어보이는 곳이 이훈동 저택으로 일본식 저택에 정원이 아름답기로 유명한 곳인데 토요일에만 개방해 기념관만 둘러보았다. 기념관에는 고인이 수집한 도자기며, 고서화등 국보급 전시물로 가득했다. 집 뒤편을 올려다보니 유달산 오포대가 푸른 하늘을 배경으로 우뚝 서 있다.
표지판을 따라 언덕길을 걸어 올라가 유달산 입구 노적봉을 마주하고 섰다.
저 큰 바위를 이엉으로 모두 덮으니 왜놈이 이를 군량미로 착각해 지레 겁을 먹고 달아났다는 일화가 전해오는 바위다.
자, 이제부터는 산을 올라야 한다. 유달산은 모두가 처음이다.
산 중턱 오포대 북서쪽에는 시가지가 펼쳐져있고, 동쪽에는 삼학도, 남쪽으로는 바다와 육지가 겹겹이 쌓여있다.
해넘이 까지는 꽤 시간이 남았다.
일행은 조각공원을 향했다. 유달산 허리를 감싸고도는 둘레 길을 따라 가면서 간간이 마주 치는 사람들에게 얼마나 더 가면 되느냐고 묻는다. “조금만 더 가면 되요.” 라는 말이 수차례 반복 되고 서야 조각공원에 도착했고, 이 곳 사람들의 조금이란 말의 의미도 알게 되었다.
원래 오늘 저녁 귀경하는 스케줄이었던 이종욱 형은 빛사냥이 아니라 124군 부대라며 여기 까지만 하겠다고 손사례를 친다. 이 공원에서 조금 쉬었다 서울로 올라가겠노라고---.
어려운 일정에도 함께 해 준 이종욱 형에게 모두들 감사의 그리고 잘 가라는 말을 남기고 일행은 유달산 산길을 따라 정상으로 향한다.
유달산은 목포의 서남단 끝자락에 우뚝 솟은 작은 산(228m)이지만 올라갈수록 경사가 가팔아지고 돌계단을 수없이 올라야 정상에 도착 할 수 있다.
후일담이지만 임승길 형에게는 벅찬 일정이었다. 산을 오르면서 다리에 힘도 풀리고 배낭 무게로 균형을 잡기도 어려울 때, 배낭을 대신 메주고 손을 잡아 준 동기가 있었다고, 그 순간부터 나도 모르게 힘이 솟아 낫단다. 그 친구는 바로 김봉기 형이다.
유달산 1등바위 정상에 섰다. 한 평도 안 되는 좁은 바위, 정상석을 앞에 두고 인증 샷을 하나씩 간직한다.
목포시와 고하도를 잇는 목포대교가 남북으로 길게 늘어서 있고, 그 너머로 섬들이 총총히 박혀있다. 붉은 해는 느린 걸음으로 바다 건너 지평선을 향해 서서히 내려온다. 은빛으로 빛나던 바다는 점차 붉은색을 더하면서 황금빛 바다로 변해가고 있다.
배낭에서 삼각대를 꺼내고 카메라를 그 위에 얹는다.
하늘에는 구름 한 점 없고 해넘이를 촬영하기에는 더할 나위 없이 좋은 날이다.
이런 순간을 맞는 빛사냥꾼들은 흥분을 감추고 촬영 준비에 몰두 한다.
Lcd창에 황금빛 바다, 목포대교와 그 넘어 섬과 그리고 붉은 해, 그 위의 붉게 물든 노을을 배치하고, 리모컨으로 한 컷, 한 컷 필름에 담고, 마음에 담는다.
필름에 담겨지는 지는 해는 지평선이나 수평선에 다가올수록 그 윤곽이 더욱 뚜렷해진다.
절정의 순간은 잠간, 해는 시야에서 사라지고 붉은 기운이 한동안 하늘을 덮는다.
이때 바다로 나갔던 어선 두 척이 황금빛 바다에 긴 꼬리를 드리우면서 항구로 들어오고 있다. 뛰는 가슴을 진정 시키면서 또 셔터를 눌러댄다.
곧 어둠이 닥쳐올 것이다.
가로등도 제대로 갖춰지지 않은 산, 그것도 가파른 계단 길을 내려가려면 서둘러야 한다.
이곳에 좀 더 머물면서 오색등불로 옷을 갈아입은 목포대교의 야경을 촬영하고 싶은 마음 굴뚝같았으나 안전을 생각해 조기 하산을 결정하고 걸음을 재촉했지만 몇 걸음도 못 나가 핸드폰 플래쉬를 켜야만 했다.
산을 반쯤 내려와 바다가 보이는 곳에 이르니 목포대교의 야경이 눈에 들어온다.
대교 일부가 산에 가렸지만 더운밥 찬밥 가릴 처지가 안 되는 우리들은 카메라를 꺼내 손각대로 몇 장 찍었다.
피곤한 모습들이 역역한데 콜택시는 불러도 반응이 없다. 그래 걷자 하고 예약된 식당까지 또 걸었다. 걷는 내내 모두 말이 없다가 목포항 식당에 도착해 상 위에 빽빽이 놓인 색색의 수많은 접시들을 보고서야 굳어진 안색이 풀어진다.
휴스턴에서 공수한 발렌타인 21년산으로 건배를 하고 펄펄뛰는 농어와 광어, 그리고 소주와 맥주를 곁들인 만찬이 시작됐다.
매번 빛사냥 따라 다니면서 신세만 졌다는 휴스턴 김철성형과 역마살 가득 한 박찬홍형이 같이 쏜 저녁이라 더욱 의미 있는 자리가 되었다.
오는 것이 있으면 가는 것이 있어야 정도 더 든다고, 두 친구를 앞세워 라이브 카페같이 생긴 노래방을 찾아 들어갔다. 우리 외에는 아무도 안 들이는 조건으로 말이다.
곽태균 형의 사회로 진행된 2부 행사는 여수 카페에서와 마찬 가지로 매우 점잖게 시작 되었지만, 누군가의 발동으로 이내 홀은 광란의 밤으로 변하고 말았다. 고삐 풀린 망아지들이 뛰노는 모습이라면 과한 표현 일까, 하여간 오늘 15,000보를 강행한 스트레스는 물론 일상의 찌든 스트레스까지 한순간에 날려버린 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