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사 버스 - 마젤란이 세계 일주에 성공했어요 1519년에서부터 1522년까지 마젤란의 세계 일주와 유럽의 팽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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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anjy9713
2023.09.05. 16:51조회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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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사 버스
마젤란이 세계 일주에 성공했어요
1519년에서부터 1522년까지 마젤란의 세계 일주와 유럽의 팽창
- 페르디난드 마젤란(1480~1521) : 포르투갈의 탐험가예요. 에스파냐를 출발해 남아메리카를 지나 태평양을 횡단해 마침내 필리핀에 도착했어요.
이번 정거장에서는 콜럼버스를 이어 계속 나타난 탐험가들을 만나볼 거야. 콜럼버스가 찾아낸 땅이 인도가 아니라 아메리카였다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유럽 사람들은 인도 땅으로 가기 위한 노력을 다시 시작했단다. 더구나 이때는 유럽 사람들이 십자군 전쟁을 치른 뒤 동양의 나라들에 대한 지식이 더욱 많아진 상태였어. 또 마르코 폴로가 중국을 비롯해 동쪽의 나라들을 여행하고 나서 쓴 《동방견문록》이라는 책은 유럽 사람들의 호기심과 모험심을 더욱 자극했지.
하지만 당시 유럽에서 아시아로 가는 길에는 이슬람 세력이 떡 하니 버티고 있었어. 이들은 유럽 사람들이 동쪽으로 가는 길목을 막고 교역을 방해하거나 중개 무역을 해 많은 이익을 챙겼지. 그랬기 때문에 유럽 사람들은 육지가 아닌 바닷길을 새로 개척해 직접 아시아로 가고싶어 했어.
그러던 1519년 9월, 드디어 유럽 사람들의 열망을 실은 배가 동양으로 출발했단다. 포르투갈 사람인 페르디난드 마젤란이 그 주인공이었어. 그는 에스파냐의 세비야에서 5척의 배에 선원 237명을 태우고 떠났지. 마젤란은 동양에 거대한 바다가 있다는 걸 이미 알고 있었어. 그래서 대서양과 태평양을 잇는 길을 찾아 세계 일주를 계획했지.
세 달이 지나, 배는 오늘날의 브라질 해안에 도착했어. 그리고 다시 출발해 대륙의 끄트머리에 도착했지. 그곳에는 좁은 해협이 있었는데, 그는 여기를 ‘마젤란’이라고 이름 붙였어.
마젤란 해협을 지나자 드넓은 바다가 나타났어! 바로 태평양이야. 다시 북쪽을 향해 전진하던 마젤란 일행은 넉 달간의 긴 여행 끝에 드디어 육지를 발견했는데, 그곳이 오늘날 필리핀 제도란다.
육지에 도착한 마젤란 일행은 그곳의 원주민들에게 먹을 것을 달라고 했어. 또 크리스트교를 전파하려고 했단다. 하지만 원주민들이 이 요구를 받아들이지 않아 결국 싸움이 벌어졌지. 마젤란은 여기서 목숨을 잃었어. 겨우 목숨을 건진 나머지 선원들은 배 두 척에 나눠 타고 서둘러 그곳을 도망쳤어. 선장을 잃은 이들은 해적으로 변해 중국 무역선을 공격하거나, 향신료와 값나가는 물건을 빼앗기도 했단다. 하지만 그마저도 한 척은 풍랑에 침몰하고 단 한 척만이 3년 뒤 에스파냐로 돌아왔어.
출발한 선원이 237명인데 돌아온 선원은 18명뿐이었다고 하니 얼마나 힘든 여행이었는지 짐작이 가지? 하지만 이들이 가져온 향신료는 아주 비싼 값으로 팔렸어. 덕분에 일확천금을 꿈꾸는 많은 사람들이 마젤란의 뒤를 이어 동양으로 향하게 되었지.
마젤란의 세계 일주로 사람들은 지구가 둥글다는 사실을 확실히 믿게 되었어. 또 항해를 통해 들여온 금과 은 덕분에 유럽의 상공업은 크게 발전했단다.
이번 정거장에서 더 알아보기 ‘아메리카’라는 이름의 유래 아메리카는 오랜 옛날 아시아에서 건너가 정착한 아메리칸 인디언과 에스키모가 사는 땅이었어요. 11세기경 북유럽에 살던 바이킹은 그곳에 사람이 살고 있다는 것을 처음 알게 되었지요. 유럽에서 아메리카 탐험을 시작한 것은 콜럼버스가 처음이에요. 콜럼버스는 그곳이 인도라고 착각했지만, 나중에 이탈리아의 탐험가인 아메리고 베스푸치(1454 ~ 1512)가 그곳이 신대륙임을 밝혔지요. 그 뒤에 그곳은 그의 이름을 따 ‘아메리카’라고 불리게 되었어요. 고대 아메리카 문명 아메리카의 고대 문명으로 대표적인 것은 중앙아메리카의 마야 문명과 남아메리카의 잉카 문명이에요. 마야족 사람들은 상형 문자를 썼고, 달력을 만들었으며 금 · 은세공 기술이 뛰어났다고 전해지지요. 마야 문명은 10세기까지 번영을 누리다가 그 뒤로는 아스테카 문명으로 이어졌지요. 건축과 예술 분야에서 뛰어났던 아스테카 문명은 13세기부터 시작되어 1521년 에스파냐의 정복자 코르테스에게 멸망할 때까지 계속되었어요. 잉카 문명은 수학과 건축술에서 뛰어났어요. 또 여러 색의 끈으로 의미를 나타내는 결승 문자를 사용하기도 했답니다. 하지만 잉카 문명 역시 1532년 에스파냐의 정복자 피사로의 공격으로 결국 멸망하고 말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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