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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로코롬 하기로 합의하고는 나라의 도읍을 정하기 위해 고허촌의 촌장 소벌고가 모든 촌장을 데리고, 높은 곳에 올라 사방을 살피던 중 경주 남쪽 방향의 양산 아래 있는 나정 이라는 우물가에서 오색영롱한 빛이 비치고 백마 한 마리가 무릎을 꿇고 절하고 있는 것이 보이는 거였습니다.
그래서,촌장들이 한달음에 모두가 그 곳으로 달려가서, 흰 말이 절하던, 자리를 살펴보니 반짝반짝 보라빛을 띄는 큰 바기지 같은 알 한개가 고기에는 있는 거였습니다. 촌장들은 고게 너무도 신기해 알을 들어다 보기도 하고 톡톡 두드려 보기도 하였습니다. 그러면서 촌장들 모두가 똑 같은 생각을했습니다.아마도 "이 알은 새로운로 나라를 세우려 하는 여섯 마을을 위해 하늘이 내려 주신 선물인 것 같다.” 라는 생각이 들어서, 각 촌장들이 이구동성으로 "하늘이 내려주신 선물인 것 같다."라고 말하게 되는 거였습니다. 그래서 그들이 그 선물(알)을 깨트려보니, 그 안에서는 아주 잘생긴 사내아이가 웃고 있는 거였습니다.
그래서, 촌장들은 그아이를 하늘이 선물해준 아이란 직감이 들자! 모두가 이 아이가 자라면 여섯 마을을 다스리는 임금으로 모시기로 합의 결정하고는 나라를 밝게 다스려 주길 바라는 임금이란 말 을 진한말로는 고걸 혁거세 하는 기라!그래서 아이의 이름을 ‘혁거세’ 지었다고 합니다.그리고는 박같이 생긴 둥근 알에서 태어났다고 하여 성을 ‘박’ 이라 해서,그레서 그아이를 박혁거세라고 부르게 된거라고 합니다. 요렇게 해서 임금의 된, 그 아이가 바로 신라의 시조인, ‘박혁거세’인 것입니다.
그런데 희안한 것은,같은 날 사량리 라는 마을에 있는, 알영이라는 우물가에서도 희한하고도 신기한 일이 일어났다고 합니다.닭의 머리를 한 용이 나타나 여자아이를 낳고는갔는 데, 용의 왼쪽 갈비뼈 밑에서 나온 그 여자 아이는 선녀보다 더 아름다웠지만 입술이 마치 닭 부리처럼 생겨서 보기 흉했던 것이었습니다.그래서 동내 아녀자들이 이 아이를 월성 냇가로 안고 가서 깨끗한 냇물에 목욕을 시키자 세상에 거짓말처럼 고,입술에 붙어있던 부리가 감쪽 같이 떨어져 나갔다고 합니다. 그래서,촌장들은 이 아이가 태어난 우물의 이름을 따라 여자아이의 이름을 ‘알영’이라 이름 지었다고합니다.
그리고 난후 각 촌장들은 이 두 아이을 하늘에서 내려주신 선물인 왕과 왕비라 여기고 그들이 태어난 남쪽 산기슭에다 궁궐을 짓고 정성껏 보살펴서 그 아이들이 열세 살 되자! 각 촌장들은 두 아이를 결혼시키고 그들의 마을을 다스릴, 왕과 왕비로 모셨다고합니다. 그라고는 이 여섯 마을이 합쳐져, 한 나라가 되자, 나라의 이름은 맨 처음은 ‘서라벌’로 정하였는데 이 이름은 훗날 ‘신라’라는 이름으로 바뀌어 졌고, 박혁거세왕과 알영 왕비는 백성들의 사랑과 축복을 받으며 촌장들이 기대한 대로 정말로 진짜 나무랄 곳이 하나도 없는 고런 훌륭한 나라가 되도록 잘 다스려 주었다고 합니다.
혁거세왕이 나라를 다스린지 61년이 되던 해에 돌아가셨는데, 왕이 돌아가시던 날 흰 말이 하늘에서 내려와서는, 왕을 태우고 하늘로 올라갔는 데,그 후 일주일동안은 날이 흐리고는 계속 비가 왔다고 합니다. 그리고 왕이 말을 타고 올라가시던 7일째 되던 날, 천둥 번개가 치드니, 왕의 몸이 다섯 조각으로 흩어져 땅에 떨어졌는 데,왕의 시신이 고로코롬 되서 죽자! 왕의 죽음을 슬퍼하며 시름시름 앓던 알영 왕비 마져, 박혁거세왕의 몸이 하늘에서 떨어지던,바로 그날 눈을 감고 죽드란 겁니다. 그래서 백성들은 더 슬퍼하면서 다섯 조각으로 흩어진 왕의 몸을 모아 왕비와 같이 장사를 지내주려고 왕의 시신이 떨어진 곳을 찾고는 고기로 가서 시신을 수습하려고 하면 그때마다 큰 뱀이 나타나 혀를 날름거리며 왕의 몸을 내어 주지 않는 거였습니다.
고로코롬 사람들이 접근을 못하게 방해해서 결국은 하수가 없어서,그래서 천사 남산 기슭에 떨어져 흩어진 왕의 시신을 한곳으로 모우는 것은 포기를하고 결국은 따로따로 무덤을 만들게 되었는 데, 그러다 보니, 혁거세왕의 무덤은 다섯 개가 되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무덤의 이름도 천둥과 번개가 쳤다고 ‘우릉(오릉)’이라고 지었는 데, 그런데 또 뱀이 나타나 방해했다고 해서 "뱀 ‘사’자를 써서 ‘사릉’이라"고, 부르기도 한다고 합니다. 혁거세왕이 죽자! 뒤를 이어서 그 아들인 ‘남해’가 왕이 임금이 되었는 데, 백성들은 그를 ‘차차웅’이라고 불렀고,그가 죽자! 뒤를 차차웅의 아들인 유리왕이 신라를 다스리게해...서, 신라의 마지막 왕인 제56대 경순왕때까지 신라 1000년의 역사는 요렇게 시작되어 이어져 오다 끝나고 말았다고 합니다
"경주 박혁거세의 오릉(우릉,사릉)유적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