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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말씀과 통(通)하는 성도들 창 12:1-4
독일의 발츠라는 목사가 미국에 있는 교회를 방문했는데, 그 교회에서 일등성도라고 소개한 분이 있다. 그는 모든 예배에 한번도 빠지지 않고, 매일매일 교회에서 기도도 하고, 봉사도 하며 지내는 분이라고 설명했다. 그러자 발츠목사가 그분은 가족은 없는지 하는 일(직장)은 없는지, 사회생활을 하지 않는지 물으면서, 그리스도인은 가정에서, 사회에서, 직장에서 해야 할 임무도 소홀히 하지 않는 사람이라고 말했다. 교회에서 산다고, 예배를 열심히 드린다고 일등성도는 아니라는 것이다. 세상속에서의 그리스도인의 역할을 성실히 수행할 때 일등성도가 되는 것이다.
코로나 19로 2년 넘게 어려운 시간을 보내고 있다. 코로나는 하나님의 뜻일까? 하나님이 코로나 19를 만드신 것은 아니라, 에덴동산에서의 인간의 죄 때문에 저주로 만들어진 가시와 엉겅퀴처럼 죄로 인해 얻어진 것이다. 그런데 하나님은 코로나를 제거하지 않고 가만히 계시며, 이 시대를 허락하셨다는 것이다. 왜 허락하셨을까? 예배도 마음대로 드리지 못하고, 찬양도, 기도도 마음대로 하지 못하는데, 성도들이 마음놓고 교회도 다니지 못하는 데, 왜? 우리가 하나님의 뜻대로, 창조의 뜻대로 살지 못했기 때문이다. 우리의 신앙에 문제가 있기 때문에 하나님은 이 시간들을 허락하시고 침묵하고 계신 것이다. 따라서 우리는 다시금 하나님의 뜻을 구해야 한다. 나의 예배의 문제, 기도의 문제, 신앙의 문제를 다시금 돌아 보아야 한다. 우리의 신앙은 알게 모르게 전통에 사로잡혀 있다. 틀에 박힌 신앙생활을 하고 있는 것이다. 베드로가 하늘에서 내려온 큰 보따리를 열어보니 전통적으로 유대인들이 부정한 음식이라 먹지 않는 동물들이 들어 있었다. 그때 주님께서 “잡아 먹으라.”고 하시자 “주여 그럴 수 없나이다 속되고 깨끗하지 아니한 것을 내가 결코 먹지 아니하였나이다.” 주님이 말씀하신다. “하나님께서 깨끗하게 한 것을 네가 속되다 하지 말라.”(행 10:11~15) 주님이 잡아먹으라고 하는 보따리의 음식을 전통에 사로잡혀 먹을 수 없다고 고집피우는 것처럼 우리의 신앙도 하나님의 말씀보다는 전통에 사로잡혀서 말씀을 거부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16세기 영국의 성경 번역가 윌리엄 틴데일(William Tyndale)은 교회 다니는 사람들이 행복할 수밖에 없음을 이렇게 말했다. “복음은 병든 자, 상처 입은 자를 기쁘게 하고 찬송하게 하며 춤추게 하고 기쁨으로 뛰놀게 한다.” 그런데 오해하지 말아야 할 것은 병이 치유되고, 상처가 회복되어서만이 기쁘고 즐거운 것은 아니다. 복음은 병이 있음에도, 상처가 있음에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쁘고 찬송하고 기쁨이 있게 하는 힘이 있다는 것이다. 문제는 복음을 복음으로 받아들여야 하고, 들려지는 말씀을 전능하신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아들여야 한다. 그런데 그것을 우리가 왜곡하기 때문에 문제가 생긴다. 성경에 보면 말씀을 왜곡한 인물들이 많이 나온다.
동의보감에 ‘통즉불통 불통즉통(通則不痛 不通則痛)’이라는 말이 있다. ‘기가 통하면 아프지 않고, 기가 통하지 않으면 아프다.’ 하나님의 기운이 잘 통하면 건강한 성도가 되고, 그 기운이 잘 통하지 않으면 병든 성도의 모습을 갖게 된다. 하나님의 말씀과 잘 통하면 건강한 성도가 되는데, 말씀과 잘 통하지 않으면 말씀을 왜곡해서 어리석은 성도가 되는 것이다.
말씀과의 접속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은 대표적인 인물이 아담과 하와이다. 하나님께서 아담과 하와를 창조하시고, 그들로 에덴동산에서 살게 하시면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동산 각종 나무의 열매는 네가 임의로 먹되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는 먹지 말라 네가 먹는 날에는 반드시 죽으리라." (창2:16~17) 이것이 말씀의 본질인데, 사탄의 유혹을 받은 하와는 사탄에게 이렇게 말한다. “동산 중앙에 있는 나무의 열매는 하나님의 말씀에 너희는 먹지도 말고 만지지도 말라 너희가 죽을까 하노라 하셨느니라.”(창 3:3)
하와는 ‘반드시 죽으리라’는 하나님의 말씀을 ‘죽을까 하노라’로 교묘하게 왜곡시켰다. 그리고 하와는 하나님의 말씀을 왜곡한 결과로 아무 거리낌 없이 금단의 열매를 먹었다. 그 왜곡의 결과는 불순종과 타락이었다.
또한 아브람의 이야기도 있다. “사래가 아브람에게 이르되 여호와께서 내 출산을 허락하지 아니하셨으니 원하건대 내 여종에게 들어가라 내가 혹 그로 말미암아 자녀를 얻을까 하노라 하매 아브람이 사래의 말을 들으니라.”(창 16:2) 그 당시에는 하란 주변의 사회적 풍습인 축첩제도가 있었다. 축첩제도는 아내가 아이를 낳지 못할 경우 아내의 여종을 첩으로 들여 자식을 낳을 수 있게 하는 제도이다. 하나님의 법은 일부일처제이고, 아내 사래를 통해 큰 민족을 이루는 것인데, 아브람은 하나님의 약속을 왜곡하여 세상적인 풍습을 쫓았다. 그 결과로 지금도 이스마엘 자손과의 끊임없는 싸움이 이어지고 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출애굽 후에 시내산 아래에서 진을 쳤을 때의 일이다. 모세가 계명을 받으러 시내 산 정상으로 올라간 지 몇 주가 지나도 오지 않았다. 이에 백성들의 요구에 따라서 아론은 백성들이 가지고 온 금붙이로 금송아지를 만든 뒤에 그 앞에 제단을 쌓고 이렇게 선포했다. "... 이스라엘아 이는 너희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낸 너희의 신이로다 하는지라 아론이 보고 그 앞에 제단을 쌓고 이에 아론이 공포하여 이르되 내일은 여호와의 절일이니라 하니"(출 32:3~5) 아론은 자기 자신이 손으로 빚어 만든 금송아지를 ‘자신들을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낸 너희 하나님’이라고 공포함으로써 하나님의 형상을 금송아지 우상으로 왜곡시켜버렸다.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과의 접속이 잘 이루어져야 한다. 요즘은 어디를 가든 와이파이(Wi-Fi)가 터지는가에 관심이 많다. 와이파이가 연결되는 곳에서는 인터넷을 편리하게 사용할 수 있다. 인터넷이 연결되는 순간, 지구촌 어디와도 소통할 수 있다. 우리가 얻고 싶은 대로 정보를 얻을 수 있다.
하지만 성도들은 무엇보다 하나님과의 접속이 일어나야 한다. 세상에서 최고의 연결은 하나님과 연결되는 것이다. 하나님과 우리가 연결되었다는 것은 우리가 하나님의 통로가 된다는 의미이다. 하나님과의 접속이 일어날 때, 접속된 사람을 통해 하나님의 지혜가 흘러가고, 하나님의 능력을 드러나고, 하나님의 역사가 이뤄진다. 하나님과 접속된 곳은 하나님께서 일하시는 곳이 된다. 하나님과 접속이 일어나는 순간, 우리의 삶에 하나님의 역사가 일어난다. 그러므로 하나님과 연결되는 것이 중요하다. 하나님과 연결되지 않으면, 아무 소용이 없다.
세 종류의 사람이 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사람이 있고, 하나님의 음성을 아예 듣지 못하는 사람이 있고,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다 말았다 하는 사람이 있다. 신앙의 차이(Wi-Fi)로 인해 일어나는 것이다.
하나님의 음성을 듣지 못하는 사람은 하나님과의 연결이 끊어진 사람이다. 아무리 연결하려고 해도 연결되지 않는다.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다 말았다 하는 사람은 하나님과의 수신 상태가 약한 사람이다. 하나님의 음성이 들릴 때도 있고, 들리지 않을 때도 있다. 결정적인 순간에는 하나님의 음성을 듣지 못한다. 하나님의 음성을 항상 듣는 사람은 하나님과의 수신 상태가 매우 양호한 사람이다. 어디서든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수 있다. 분명한 것은 하나님의 말씀이 잘 들릴 때 우리는 말씀을 따라 살 수 있다.
하나님의 말씀이 잘 들려,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사는 사람들은 하나님께 축복을 받는다. 따라서 행복한 인생이 된다. 많은 실수도 있었지만,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살려고 노력했던 인물이 아브라함이다. 창 12:4에 “아브람이 여호와의 말씀을 따라 갔고 롯도 그와 함께 갔으며 아브람이 하란을 떠날 때에 칠십오 세였더라.” 라고 했다. 여기서 인생의 두 부류를 보게 된다. 하나는 아브라함처럼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사는 사람이고, 다른 하나는 롯처럼 사람을 따라 사는 사람이다. 롯은 결국 더 좋은 환경을 따라 살다가 소돔과 고모라 사람이 되고 말았다. 그러나 아브라함은 결국 믿음의 조상, 축복의 근원이 되었다.
구림교회 모든 성도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왜곡하는 신앙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과 잘 통해서 말씀을 따라 신앙생활 함으로 축복의 인생이 되기를 바란다. 그러면 말씀을 따라 사는 신앙의 모습은 무엇인가?
1. 하나님의 말씀과 통하는 사람은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한다.
“너는 너의 고향과 친척과 아버지의 집을 떠나 내가 네게 보여 줄 땅으로 가라.”(창 12:1)
아브람에게 있어서 하나님의 말씀은 곧 하나님의 명령이었다. 하나님의 명령은 사실 순종하기 어려운 명령이었다. 75세나 된 노인이 자신의 고향과 친척과 아버지의 집을 떠난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러나 아브람은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하였다. 이는 그가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사는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사는 사람은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하는 것을 당연시 한다. 그래서 그는 하나님의 부르심을 따르는데 방해가 되는 것을 기꺼이 떠난다. 아브람은 우상숭배의 도시, 우상숭배의 사람들을 떠났다. 그리고 그는 하나님께서 그에게 보여 줄 땅으로 나아갔다.
신학자 본회퍼는 “신앙은 주님의 명령에 순종하는 것이다.” 라고 했다. 성도 여러분,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사는 사람들 곧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함으로써 떠나야 할 곳은 떠나고 나아가야 할 곳을 향해서는 지체하지 않고 나아가시기를 바란다. 그래서 상황과 환경에 따라 흔들리지 말고 어떠한 고난과 위기 속에서도 말씀으로 영혼을 소생케 하며 삶을 새롭게 하시는 하나님의 선하심과 인자하심을 체험하게 되시기를 축원한다.
2. 하나님의 말씀과 통하는 사람은 하나님의 약속을 신뢰한다.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하게 하리니 너는 복이 될지라.”(창 12:2)
아브람에게 있어서 하나님의 말씀은 곧 하나님의 약속이었다. 하나님의 약속은 사실 신뢰하기 어려운 약속이었다. 아브람은 75세, 아내 사래는 65세, 노부부가 자녀를 낳아 큰 민족을 이루게 된다는 것은 결코 미더운 일이 아니었다. 그러나 아브람은 하나님의 약속을 신뢰하였다. 이는 그가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사는 사람이었음을 잘 보여주고 있다.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사는 사람은 하나님의 약속을 신뢰하는 것을 당연시 한다. 그리고 그는 하나님의 약속이 틀림없이 실현되는 것을 경험하게 된다. 하나님의 명령대로 고향, 친척, 아버지의 집을 떠난 아브람은 하나님의 약속대로 땅과 민족과 복을 받았다. 이로써 아브람은 할례를 받지 못한 채 우상숭배의 땅에서 살았던 하찮은 존재에서 ‘복의 근원’이 되었다.
3. 하나님의 말씀과 통하는 사람은 하나님의 축복을 선용한다.
“너를 축복하는 자에게는 내가 복을 내리고 너를 저주하는 자에게는 내가 저주하리니 땅의 모든 족속이 너로 말미암아 복을 얻을 것이라.”(창 12:3)
아브람에게 있어서 하나님의 말씀은 곧 하나님의 축복이었다. 하나님의 축복은 사실 기대하기 어려운 축복이었다. 낯선 땅에 이민 가서 정착을 한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게다가 땅의 모든 족속이 아브람으로 말미암아 복을 얻게 되기까지 복의 근원으로서의 사명을 감당한다는 것은 더더욱 어려운 일이었다. 그러나 아브람은 하나님의 축복을 선용하여 복의 근원이 되었다. 이는 그가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사는 사람임을 잘 보여주고 있다.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사는 사람은 하나님의 축복을 선용하는 것을 당연시 한다. 그리고 그는 하나님의 축복에 대한 사명을 감당하면서 하나님께서 그를 축복하는 자에게는 복을 내려주시고, 그를 저주하는 자에게는 저주하심을 경험하며 하나님께 감사와 영광을 돌리게 되는 줄 믿는다.
존 번연은 “하나님이 당신의 기도를 들으시길 원한다면, 하나님이 당신에게 말씀하시는 것을 들으라.” 고 했다. 그렇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따르는 사람은 기도 응답도 받는다.
다윗과 요나단의 황국명목사의 간증이다. 1981년에 친구 전태식목사과 함께 다윗과 요나단을 만들어 찬양 사역을 시작했다. 1992년도 친구가 미국으로 가고 황목사는 홀로서기를 하다가 무리해서 성대결정에 걸렸고, 의사가 평생노래 할 수 없을 수도 있다고 했다. 심지어는 말을 할 수도 없다고 했고, 현대 의학으로는 치료가 불가능하다고 했다. 그래서 절망속에서 울면 기다하다가 1994년도에 회복되었다. 그 회복의 은혜로 만든 5집 곡이 ‘주만 바라볼찌라.’이다. 무리해서 98년도 IMF시기에 건강을 잃게 되고 죽음의 힘든 순간이 왔을 때, 만든 노래가‘주님 손잡고 일어서세요.’‘해같이 빛나라.’ 그래서 지금 살아서 찬양사역을 열심히 하고 있다.
하나님의 말씀과 통하는 성도들은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하고, 하나님의 약속을 신뢰하며, 하나님의 축복을 선용한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살아 있고 활력이 있어 좌우에 날선 어떤 검보다도 예리하여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까지 하며 또 마음의 생각과 뜻을 판단하는”(히 4:12)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살아감으로써 ‘복 있는 사람’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