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담회/회장] <1화> 견휜에 얽힌 전설<1화> 견휜에 얽힌 전설
안녕하십니까. 만담회의 회장 박지석입니다. 만담회의 1화로 안동의 전설 중 하나인 견휜에 얽힌 전설에 대해 이야기 해 보겠습니다.
[첫 번째 이야기]
(지렁이의 자손 견훤)
고려때 삼태사가 후백제의 견훤과 이 고장에서 싸웠다. 태조 왕건은 임금이기 때문에 여기까지 오지 않았고 권태사, 김태사, 장태사가 견훤을 기지로 물리쳤다.
안동시내에서 북쪽으로 약 5리 정도 가면 못이 하나 있다. 견훤이 그 못 가까이서 진을 치고 싸움을 했는데, 그 힘이 대단했다. 삼태사가 가만히 조사해 본 결과, 견훤이 지렁이 자손임을 알았다. 견훤은 문경에 있는 어느 굴 속에서 태어났는데, 지룡의 아들이라는 사실을 알아냈던 것이다.
자세히 지켜보니 견훤이 못의 흙탕물에 목욕을 하고 나서는 기운을 내고 용기백배하여 삼태사의 진영으로 쳐들어오는 것이었다. 그래서 삼태사는 견훤이 지렁이의 자손이라는 것을 완전히 믿게 되었다.
지렁이는 소금물에 약하다는 것을 알고 삼태사는 견훤이 목욕하는 못에 소금을 갖다 뿌리기로 했다. 아무도 모르게 그 못에다 많은 소금을 뿌려 두었다. 견훤은 여느 때와 다름없이 그 못에 뛰어들어서 목욕을 하는 것이었다.
과연 소금물에 목욕을 하고 난 견훤은 기운이 빠져 맥이 없어 보였다. 이 때를 기다린 삼태사의 군사들은 후백제의 진영으로 일제히 쳐들어갔다.
견훤은 삼태사를 맞아 싸우기는커녕 도망가기에도 힘겨웠다.
마침내 병산(지금의 송현)까지 가서 견훤은 삼태사에게 잡히고 후백제의 군사들은 모두 패퇴하기에 이르렀다.
삼태사는 적의 동정을 잘 살펴 지혜로서 적을 물리치고 훌륭한 전공을 세울 수가 있었다. 이 싸움을 옛 사람들은 병산싸움이라고 한다.
[두 번째 이야기]
(왕건과 견훤의 결투지 합전교)
합전(合戰)다리는 안동시 송현동에 있다. 속칭 소빰다리라고도 하는 이 합전교의 명칭은 왕건과 견훤이 여기서 진을 치고 싸웠기 때문에 붙여진 것이다.
고려의 왕건과 후백제의 견훤이 이 지역에서 서로 진을 치고 격전의 기회를 엿보고 있는 참이었다.
강을 사이로 왕건과 현재 안동공고와 70사단 자리에 진을 치고 견훤은 강 저쪽 편에서 재를 끼고 진을 쳤다.
견훤이 싸움에 지쳐 피로한 기색을 틈타서 왕건의 군사는 점차 총공격을 폈다.
그러나 견훤의 군대도 만만치 않았다. 싸움은 몇 날 며칠 계속되었고 양쪽의 군사들도 하나 둘 죽어 갔다.
싸움이 계속될수록 용감하던 견훤의 군사는 점차 사기를 잃기 시작했다.
그것은 양군을 통솔하는 왕건과 견훤의 싸움이기도 했는데 이 때 견훤의 사기는 왕건에 비해 떨어져 있었기 때문이다. 마지막 싸움은 강을 사이에 두고 전개되었다.
승부를 건 마지막 싸움이었기 때문에 더욱 처절했다. 마침내 왕건은 이 싸움에서 견훤을 물리치고 승리를 거두었다.
양군이 강을 사이에 두고 큰 싸움을 벌였던 곳에는 강 이쪽과 저쪽을 연결하는 다리가 놓였다. 시대의 흐름에 따라서 돌다리가 큰크리트로 된 교량으로 바뀌기도 했지만 그 이름은 오늘날도 합전다리로 불리어지고 있다.
나는 합전다리를 가보았다. 그 앞에는 합천다리라 써있는 표지판만이 남아있었다. 그러나 누가 알겠는가 그곳이 생사를 두고 싸웠던 전쟁터라는 것을..
[세 번째 이야기]
(진 모 래)
첫 번째 이야기에서 이야기 했듯이 견훤은 원래 지렁이의 화신이었다고 한다. 첫 번째 이야기에서와 같이 견휜은 삼태사의 기지에 대패를 하고 말았다. 결국 견휜은 하동으로 도망을 갔다. 그 때 삼태사가 소금을 뿌린 강이 남아있는데, 그때 그들은 "진모래"라 불렀다.
지금도 이 내(川)를 소금물이 흘렀다 하여 "간수내"(서지리에 있는 마을로 음이 변해 "가수내"로 불리운다)라 부르고 견훤이 숨었던 모래를 "진모래"라 한다.
이 진모래의 모래벌은 안동댐건설로 수몰되었으며 삼태사를 모신 사당은 현재 안동시내에 있다.
[네 번째 이야기]
(동채싸움의 유래)
지렁이의 화신인 견훤이 안동으로 쳐들어 왔다. 이를 안 삼태사(三太師)는 지렁이를 물리칠 궁리를 하다가 동채를 만들어서 견훤이 진을 치고있는 병산(지금의 송현)으로 나아갔다.
이때 견훤은 마침 지렁이로 변하여 강가 모래벌에서 뒹굴고 있었다. 견훤을 잡을 수 있는 썩 좋은 기회라고 생각한 삼태사는 지렁이를 몰아 넣어서 두 동채머리 사이에 끼워 죽였다.
견훤을 물리치던 동채싸움이 하나의 풍속이 되어서 정월 대보름날이면 동채를 만들어서 지렁이를 잡던 식으로 싸움을 한다고 전한다.
현재 동채싸움은 중요 무형문화재 제24호(1969.1.1)로 지정되어 있으며 그 명칭이 "안동차전놀이"로 되어 있다.
잘 읽으셨는지요? 처음이라 부족한 점도 많은데, 잘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근데 견휜이 정말 지렁이 일까?? 현재 드라마 왕건에서는 그렇게 나오기는 하지만..
전설이니 다 믿을수도 없겠져..^^;;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