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 말 론
마지막 일들에 대하여...
2010년 학성동성당 대림 특강[요약]
원주교구 사목국장 김민규 요한 신부님
1. 종말론의 근거는 성서
여러분은 終末론을 믿으십니까?
믿는다고 하시는 분도 계실 것이고, 믿지않는다고 하시는 분들도, 또 확신을 가지실 수 없는 분들도 계실 것입니다. 그 중에서 특히 믿지 않는 다고 하시는 분들은 1992년에 있었던 자칭 "다가올 미래"를 준비한다고 하는 다미선교회 이장림 목사의 휴거 소동을 기억 하시는 분들이실겁니다. 성서를 연구하시던 학자들중에서 성서에 기록된 사건들을 중심으로 날짜를 세어서 아담의 시대에서 부터 아브라함의 시대까지 2천년, 아브라함의 시대에서 예수님 탄생까지 2천년, 다시 예수님의 탄생부터 2천년이라는 시간적 공통점을 발견하였습니다. 그리고 시편의 주님 당신께는 "천년도 하루와 같다."라는 구절을 연결하여 생각하였습니다. 하느님께서 엿새동안 세상을 창조하시고 이레째 되는 날 쉬셨으므로, 다음 천년은 "하느님, 당신께서 직접 세상을 다스리시게 될 것이다."라고 주장을 하는 사람들이 생겨났고, 이를 "천년왕국설"이라고 합니다.
2. 성서 기록의 기능
하지만, 성서는 미래의 어느 날에 일어날 일에 대해 기록한 암호가 아닙니다. 잘 아시다시피 성서는 문자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문자는 사람의 언어를 기록하는 데 사용하고, 언어는 사람끼리 생각이나 느낌을 전달하기 위해 사용합니다. 이 언어는 두 가지 기능을 가지고 있습니다.
言語는 1. 정보전달의 기능과 2.감정전달의 기능이 있습니다. 정보전달의 기능은 참과 거짓을 구분할 수 있으며, 맞는 정보와 틀린 정보가 구분이 됩니다. 그러나 감정전달의 기능은 참과 거짓을 구분할 수는 없지만 분명히 존재하는 사실을 전달합니다.
예를 들자면, "김민규 요한 신부는 지금 학성동 주임신부이다." 이 것은 분명히 틀린 말입니다. 또하나 "김성훈 스테파노 신부는 지금 학성동 주임신부이다." 이것은 분명히 맞는 말입니다. 예를 더 들면 "김성훈 스테파노 신부는 김민규 요한 신부를 싫어한다." 이것은 맞다 틀리다를 구분할 수 없는 것입니다. 싫어하는 것과 좋아 하는 것은 보이지 않지만 존재하는 것입니다.
3. 성서가 쓰여진 시기
성서는 주로 고난의 시대에 씌여졌습니다. 창세기는 바빌론 유배시대에 씌여 졌으며, 묵시록은 로마로부터 지배를 받던 시대에 씌여졌습니다. 창세기의 천지창조를 가만히 묵상해 보면 옛날 이야기를 듣는 것 같습니다. 고난의 시기에 하느님에 대한 믿음을 하나, 둘, 사람들이 포기할때 그 시대의 현자들이 자신의 민족들이 "이 꼴"에 빠진 이유를 "숙고하고, 되돌아보고, 반성하며" 끝까지 하느님에 대한 믿음을 포기하지 말라고 씌여졌습니다. 묵시록 역시 마찬가지 입니다.
교회는 외부적으로 로마로 부터 박해를 받고, 내부적으로는 거짓 교사들과 예언자들의 잘못된 가르침에 빠져있던 희망이 없던 시기에 하느님과 하느님의 구원에 대한 희망을 버리지 말라고 하느님 나라에 대한 구체적인 비젼을 제시하였던 것입니다.
4.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심판
예언은 미래에 대한 이야기가 아닙니다. 현재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그것은 바로 잘못된 것이 있다면
"지금 고쳐라"
하고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지금 고쳐서 하느님과 함께 할 수 있는 방법을 선택할 수 있도록 하는 것 이것이 예언입니다. 마태복음 25장 31절의 최후의 심판에 관한 예언이 있습니다. 오른 편의 양과 왼편의 염소, 그둘의 차이는 바로 "사랑"입니다. 형제들 중 가장 보잘 것 없는 사람 하나에게 먹을것과 마실것을 주고, 병들었을때 보살펴주고, 따듯하게 맞아주는 것... 그렇습니다. 그것은 바로 여러분이 잘 알고계시듯 "사랑"에 대해 이야기 하는 것 입니다.
5. 노파 이야기
러시아의 작자 도스토예프스키의 까라마조프의 형제들에 "노파와 양파"의 일화가 나옵니다. 노파가 살아서 베푼 유일한 사랑인 거지에게 던져준 썩어가는 양파로 인해 실낱같은 구원의 줄을 잡지만 그를 붙잡는 모든 손을 뿌리쳤을때 그 실낱같은 구원의 줄마져 끊어져서 영원한 지옥의 나락속으로 빠져버립니다. 작가 역시 자기에게 내밀어진 사랑을 다 뿌리쳤을때 구원은 없다고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6. 어떻게 살 것인가?
천국은 장소가 아니라 "사랑이신 분" "하느님 당신"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하느님의 뜻이 그대로 펼쳐지는 곳이며, 사랑을 가지고 살아갈 때 그분께 나아갈 수 있는 곳입니다. 지옥 역시 장소가 아니라 자신에게 내밀어진 마지막 사랑까지 다 뿌리친 결과, 스스로 초래한 자기소외의 절정이 바로 지옥인 것입니다. 그렇게 하느님의 사랑을 실천함으로써 바로 이 땅위에서 시작되었지만 아직 완성되지 않은 것이 천국이며, 지옥은 내가 사랑을 뿌리칠때 마다 완성되어 가는 것입니다.
마태 25:34 "너희는 내 아버지의 축복을 받은 사람들이니 와서 세상 창조 때 부터 너희를 위하여 준비한 이 나라를 차지하여라."
마태 25:41 "이 저주받은 자들아, 나에게서 떠나 악마와 그의 졸도들을 가두려고 준비한 영원한 불 속에 들어가라."
2010.12.08
찬미 예수님
그리스도이신 예수님의 탄생과 재림을 기다리는 待臨시기를 맞아 대림 2주간 특강이
2010년 12월 7일 저녁 7시 미사 후 1시간 25분동안 학성동성당에서 있었습니다.
교구 사목국 신부님이신 김민규 요한 신부님께서 미사와 강의를 해 주셨습니다.
특강시간에 들은 내용을 중심으로 정리를 하여, 은혜로운 대림 시기를 준비하는 제단앞의 네개의 초처럼 제 마음을 다시한번 가다듬고자 신부님의 강의를 요약하여 이 글을 씁니다.
혹시 제가 잘못 이해를 한 부분이 있다거나, 잘못된 내용을 서술하였다면 따끔한 질책을 부탁드립니다. 겸허히 수용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