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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 엥겔스가 쾨니히스베르크의 요제프 블로흐에게, 최인호 역
(1890년 9월 21일, 런던)
(…) 유물론적 역사 파악에 따르면, 역사에서 종국적인 결정적 계기는 현실적 생활의 생산과 재생산입니다. 맑스도 나도 결코 이 이상의 것을 주장한 적이 없습니다. 그런데 이 명제를 경제적 계기가 유일한 결정적 계기라고 왜곡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이 명제를 아무것도 말하지 않는, 추상적이고 허무맹랑한 공문구로 바꾸어 버리는 것입니다. 경제적 처지는 토대입니다. 그러나 상부구조의 다양한 계기들−계급투쟁의 정치적 형태와 계급투쟁의 결과들−전투가 끝난 후 승리한 계급이 확립한 헌법 등등−법형태, 그리고 또 이 모든 현실적 투쟁이 거기에 참가한 사람들의 머리에 반영된 것으로서의 정치적, 법률적, 철학적 이론, 종교적 견해와 이 견해의 교의 체계로의 가일층의 발전 등도 역사적 투쟁의 진행 과정에 영향을 주며 많은 경우에 주로 이 투쟁의 형태를 결정합니다. 이 모든 계기들은 상호작용을 하며, 이 상호작용 속에서 결국 경제적 운동은 무한히 많은 우연들(즉, 그 내적 상호연관이 너무 멀거나 증명할 수 없기 때문에 상호연관이 없다고 간주하고 지나쳐 버릴 가능성이 있는 사물들과 사건들)을 통해서 필연적인 것으로서 자신을 관철해 갑니다. 그렇지 않다면 이론을 임의의 역사적 시기에 적용하는 것은 간단한 1차방정식을 푸는 것보다 더 쉬울 것입니다.(선집6,508)
우리는 스스로 우리의 역사를 만들어 갑니다. 그러나 첫째로 그것을 일정한 전제들과 조건들 하에서 만들어 갑니다. 그중 경제적 전제들과 조건들이 최종적으로 결정하는 것들입니다. 그러나 정치적 등등의 전제들과 조건들도, 심지어 인간들의 머릿속에 따라다니는 전통도, 결정적이지는 않더라도 일정한 역할을 합니다. 프로이센 국가도 역시 역사적인, 종국적으로 경제적인 원인들에 의해 성립했고 계속 발전했습니다. 그러나 북독일의 많은 소국가들 중에서 다름아닌 브란덴부르크가 남북의 경제적, 언어적 차이를, 종교개혁 이후에는 종교적 차이까지 구현하는 강대국이 되도록 규정한 것은 경제적 필연성일 뿐 다른 어떤 계기들(무엇보다 브란덴부르크가 프로이센을 점유함으로써 폴란드 문제에, 그리고 또 이것을 통해 국제정세에 얽혀 들어간 것−오스트리아 왕가 권력의 성립에서도 이것이 결정적이었습니다)도 아니라고 한다면, 그것은 실로 편협 고루한 주장이라고 볼 수밖에 없습니다. 과거와 현재의 독일 소국가 각각의 존재를 경제적으로 설명하려 한다면, 혹은 주데텐에서 타우누스에 이르는 산맥에 의해 형성된 지리상의 장벽을 독일을 관통하는 본격적인 균열로까지 확대시킨 고지 독일어의 자음 추이의 기원을 경제적으로 설명하려 한다면, 그것은 웃음거리를 면하기 어려울 것입니다.(선집6,509)
그러나 둘째로, 최종 결과는 언제나 수많은 개별 의지들의 충돌에서 생기며 또 이 각각의 개별 의지는 많은 특수한 생활조건들에 의해 지금과 같은 개별 의지로 다시 형성되는바, 역사는 그런 식으로 만들어집니다. 따라서 서로 교차하는 무수한 힘들, 무한한 힘의 평행사변형들의 집합이 존재하며 여기에서 결과−역사적 사건−가 생겨나는 것입니다. 이 결과 자체는 또한 전체로서 작용하는, 무의식적으로 아무런 의지 없이 작용하는 어떤 힘의 산물로 간주할 수 있습니다. 각 개인이 원하는 것은 다른 각 개인의 방해를 받으며, 따라서 아무도 원하지 않았던 것이 나오게 됩니다. 그러므로 지금까지의 역사는 자연 과정과 같은 방식으로 움직이고 있으며 또 본질적으로 동일한 운동법칙 아래 놓여 있습니다. 개별 의지는−개별 의지의 소유자는 자신의 체질과 외적인, 종국적으로 경제적인 사정들(개인적인 것을 수도 있고 혹은 일반 사회적인 것일 수도 있는)로 말미암아 어떤^ 것을 원합니다−자신이 원하는 것에 도달하지 못하고 하나의 전체적 평균에, 하나의 공동의 결과에 융합됩니다. 그러나 이로부터 개별 의지=0으로 놓을 수 있다는 결론을 내릴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반대로 개별 의지 각각은 결과에 기여하는 것이며 그런 한에서 그 결과에 포함되어 있는 것입니다.(선집6,509-510)
다음으로 나는 당신에게 이 이론을 간접적으로가 아니라 원저서를 통해 연구하라고 권하고 싶습니다. 그것이 훨씬 더 쉽습니다. 맑스는 이 이론이 일정한 역할을 하지 않는 것을 쓴 적이 별로 없습니다. 특히 [L. 보나파르트의 브뤼메르 18일]은 이 이론을 적용한 아주 훌륭한 실례입니다. [자본]의 많은 지적들도 그러합니다. 다음으로 물론 나는 나의 저작들을 들 수 있을 것입니다: [E. 뒤링씨의 과학 변혁]과 [L. 포이어바흐 그리고 독일 고전철학의 종말]. 이 저작들에서 나는 역사적 유물론에 대해 상세히 서술했는데, 그것은 내가 아는 한 현존하는 가장 상세한 서술입니다.(선집6,510)
청년들이 때때로 경제적 측면에 두어야 할 것 이상으로 무게를 두는 것에 대해서 부분적으로는 맑스와 나 자신이 책임을 져야 합니다. 우리는 우리의 적수들을 논박할 때 그들이 부인한 주요 원칙을 강조하지 않을 수 없었으며, 또 상호작용에 첨가하는 기타 계기들을 설명하는 데 응분의 지면을 할애할 시간과 장소와 기회를 항상 갖고 있었던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어떤 역사적 시기를 서술할 때는, 즉 실제적 적용이 문제가 될 때는 사정이 다르며 거기서는 이러한 오류도 허용될 수 없습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흔히 주요 명제를 습득하게 되면 그 즉시 자신이 새로운 이론을 완전히 이해하였고 그것을 당장 적용할 수 있다고 믿는데 실로 유감스러울 뿐입니다. 그리고 나는 근래의 몇몇 ‘맑스주의자들’에게 이러한 비난을 퍼붓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리하여 또 놀랄 만한 일이 생겼습니다.(…)(선집6,510)
사회주의 학사, 1년차, 제19호, 1895년 10월 1일, 베를린 MEW 37, 463-465
20. 엥겔스가 베를린의 콘라트 슈미트에게, 최인호 역
(1890년 10월 27일, 런던)
(…) 처음으로 당신에게 답장을 쓸 수 있는 자유로운 시간을 갖게 되었습니다. 나는 당신이 취리히 포스트의 자리를 맡는 것이 좋다고 생각합니다. 거기서 당신은 경제에 대해서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을 것입니다. 특히 당신이, 취리히는 어디까지나 삼류의 화폐시장, 투기시장에 불과하며 따라서 거기서 받는 인상은 이중삼중으로 거울에 비쳐져 약화된 것이거나 의도적으로 왜곡된 것이라는 점을 잊지 않는다면 말입니다. 그러나 당신은 그 전체 조직을 실천적으로 배우게 되고, 또 런던, 뉴욕, 파리, 베를린, 빈에서 직접 날아온 증권거래소 보고를 쫓아가지 않을 수 없게 될 것입니다. 그러면 당신의 눈앞에는 세계시장이−화폐시장과 증권시장으로 반사되어− 펼쳐질 것입니다. 경제적 반사, 정치적 반사는 인간의 눈에서의 반사와 똑같습니다. 반사는 볼록렌즈를 통해서 들어오며 따라서 머리로 서있는 전도된 모습을 취합니다. 단지, 우리의 표상에서 그것을 발로 서게 하는 신경기관이 없을 뿐입니다. 화폐시장의 사람들은 산업과 세계시장의 운동을 화폐시장과 증권시장의 전도된 반영 속에서만 보며, 따라서 그들에게는 결과가 원인으로 보입니다. 나는 이미 40년대에 맨체스터에서 이것을 보았습니다: 런던 주식거래소의 보고들은 산업의 진행 과정과 산업의 주기적 최대치와 최소치를 아는 데 전혀 보탬이 되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그것의 신사들은 사실 대부분 징후에 불과한 화폐시장 공황을 가지고 모든 것을 설명하려 했기 때문입니다. 당시에는, 산업 공황의 발생을 일시적 과잉생산으로 설명하는 것이 잘못이라는 것을 증명하는 것이 문제였습니다. 따라서 문제는 왜곡을 일으킬 수 있는 경향적인 측면까지 갖고 있었습니다. 이 점은 이제는−적어도 우리에게는 영원히−사라졌으며, 게다가 화폐시장도 그 자신의 공황을 가질 수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이 공황에서는 직접적인 산업 혼란은 부차적인 역할을 할 뿐이며 심지어 아무런 역할을 하지 못할 때도 있습니다. 그리고 이 부분에서는 아직도, 특히 최근 20년 간에 대해서는 역사적으로 확정되고 구명되어야 할 것이 많이 있습니다.(선집6,511-512)
분업이 사회적 규모로 이루어지는 곳에서는 또한 부분노동 상호간의 자립화가 일어납니다. 생산은 종국적으로 결정적인 것입니다. 그러나 생산물의 거래가 본래의 생산에 대해서 자립하자마자, 그것은 독자적인 운동을 하게 됩니다. 이 운동은 물론 전체적으로는 생산의 지배를 받지만 개별적으로는 그리고 이 일반적 의존성 내부에서는 다시 독자적인 법칙을 가집니다. 이 독자적인 법칙은 이 새로운 요인의 본성 내부에 놓여 있는 것으로서 독자적인 국면을 거치며 생산의 운동에 다시 반작용을 가합니다. 아메리카의 발견은 금에 대한 갈망 덕택에 이루어졌습니다. 그전에 포르투갈인들을 아프리카에 가게 만든 것도 바로 이 금에 대한 갈망입니다(조에트베르의 귀금속-생산을 참조하십시오). 왜냐하면 14세기와 15세기에 엄청나게 확대된 유럽의 산업과 이에 상응하는 상업은 독일−독일은 1450~1550년 당시 최대의 은 생산국이었습니다−이 공급할 수 있는 것보다 더 많은 교환수단을 요구했기 때문입니다. 1500~1800년에 포르투갈인, 네덜란드인, 영국인이 인도를 정복한 것은 인도로부터의 수입에 그 목적이 있었습니다. 인도로의 수출에 대해 생각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순전히 상업적 이해에 의해 규정되었던 이러한 발견과 정복은 산업에 실로 거대한 반작용을 가했습니다−발견하고 정복한 나라들로의 수출에 대한 욕구가 비로소 대공업을 창출하고 발전시켰던 것입니다.(선집6,512)
화폐시장도 이와 같습니다. 화폐 거래가 상품 거래에서 분리되자, 화^폐 거래는−생산과 상품 거래에 의해 만들어진 일정한 조건들 아래에서, 그리고 이 경계들 내부에서−독자적인 발전을 하게 되고, 그 자신의 본성에 의해 결정되는 특수한 법칙들과 독특한 국면들을 갖게 됩니다. 게다가 화폐 거래는 이런 식으로 더 한층 발전하여 증권 거래에까지 확대됩니다. 그리하여 국채 증권뿐 아니라 산업주식과 교통주식까지 생겨나게 됩니다. 따라서 화폐 거래는 전체로서 자신을 지배하는 생산의 일부에 대한 직접적 지배권을 획득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생산에 대한 화폐 거래의 반작용은 더욱 강력하고 더욱 복잡하게 됩니다. 화폐 거래업자들은 철도, 광산, 제철소 등등의 소유자들입니다. 이러한 생산수단들은 두 개의 얼굴을 갖고 있습니다: 이 생산수단들의 경영은 직접적 생산의 이익에 따라야 하거나 혹은 화폐 거래업자들이 주주인 한 그들의 요구에 따라야 합니다. 가장 적절한 예는 다음의 것입니다: 북아메리카의 철도. 이 철도의 경영은 제이 굴드, 반더빌트 등등과 같은 자들의 그때그때의 증권거래소 조작−철도의 특수성이나 교통수단으로서의 철도의 이해와는 전혀 무관한−에 의해 완전히 좌우됩니다. 또 여기 영국에서도 우리는 두 개의 철도회사 사이에 있는 지역 분계선을 둘러싸고 수십년 동안 계속된 여러 철도회사들의 투쟁−이 투쟁 때문에 엄청난 돈이 낭비되었지만, 그것은 생산과 교통의 이익을 위해서 쓰인 것이 아니라 오로지 대부분의 경우 주식 소유 화폐거래업자들이 증권거래소를 조작할 수 있게 하려는 목적밖에 없는 경쟁 때문에 낭비된 것입니다−을 보았습니다.(선집6,513)
이상에서 상품거래에 대한 생산의 관계 및 화폐거래에 대한 이 양자의 관계를 내가 어떻게 파악하고 있는가에 대해서 몇 가지 대략적인 서술을 하였습니다. 이로써 나는 역사적 유물론 일반에 대한 당신의 질문에 이미 기본적인 대답을 한 셈입니다. 분업의 관점에서 보면 문제를 가장 쉽게 이해할 수 있습니다. 사회는 사회의 생존에 필수불가결한 일정한 공동 기능을 낳습니다. 이 기능의 수행을 위해 임명된 사람들은 사회의 내부에서 분업의 새로운 부문을 형성합니다. 이로써 이들은 자신의 위임자들의 이해와 구별되는 특수한 이해를 갖게 됩니다. 그들은 위임자들에 맞서 자립화합니다−그리하여 국가가 생겨납니다. 그리고 이제 상품거래의 경우나 화^폐거래의 경우와 유사한 일이 일어납니다: 새로운 자립적 권력은 전체적으로는 생산의 운동을 따라야 하지만, 그것에 고유한, 즉 일단 획득되면 점차적으로 확대발전해 가는 상대적 자립성에 힘입어 생산의 조건들과 과정에 다시 반작용을 미칩니다. 이것은 두 개의 불균등한 힘, 즉 한편으로는 경제적 운동과 다른 한편으로는 되도록 더 많은 자립성을 얻으려 하는, 일단 만들어진 이상 독자적인 운동까지 할 수 있게 된 새로운 정치권력 사이의 상호작용입니다. 경제적 운동은 전체적으로는 자신을 관철해 가지만 또한 자신이 만들어낸 상대적 자립성을 갖고 있는 정치적 운동의 반작용을 받지 않으면 안 됩니다. 이 정치적 운동은 한편으로는 국가권력의 운동이고 다른 한편으로 그와 동시에 생겨난 반대파의 운동입니다. 산업시장의 운동은 화폐시장에서 전체적으로, 앞서 대략적으로 언급한 유보조건들 아래에서 당연히 전도되어 반영됩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정부와 반대파의 투쟁에서도 기존의 투쟁하는 계급들의 투쟁이 반영됩니다. 여기서도 앞과 마찬가지로 전도되어 반영되고, 직접적이 아니라 간접적으로 반영되며, 계급투쟁으로서가 아니라 정치적 원칙을 둘러싼 투쟁으로서 반영됩니다. 이렇게 완전히 전도되기 때문에, 우리가 다시 그 진상을 알아채는 데 수천 년이 걸린 것입니다.(선집6,513-514)
경제적 발전에 대한 국가권력의 반작용은 세 가지 양식이 있을 수 있습니다: 반작용이 경제적 발전과 같은 방향을 취할 수 있는데, 이때는 발전이 더욱 급속히 진행됩니다. 반작용이 경제적 발전과 반대 방향을 취할 수 있는데, 이때는 오늘날 모든 큰 민족의 경우에서 그러한 것처럼 결국은 그 반작용은 파산합니다. 또는 반작용이 경제적 발전에 대해서 일정한 방향을 차단하고 또 다른 일정한 방향을 명령할 수 있습니다−이때는 결국 위의 두 경우 중의 하나로 귀착합니다. 두 번째, 세 번째 경우에서 정치권력이 경제적 발전에 막대한 손해를 입히고 힘과 자원의 대량 낭비를 초래할 수 있다는 것은 확실합니다.(선집6,514)
이 밖에 경제자원을 약탈하고 야만적으로 파괴하는 경우도 있는데, 이 때문에 이전에는 사정에 따라서는 한 지방, 한 나라의 경제발전 전체가 파멸할 수도 있었습니다. 오늘날 이러한 경우는 적어도 큰 민족들에게서는^ 대부분 그 반대의 결과를 가져옵니다: 패자가 결국은 경제적으로, 정치적으로, 도덕적으로 승자보다 더 많은 것을 얻게 되는 수가 많습니다.(선집6,514-515)
법률도 마찬가지입니다: 직업적 법률가들을 만들어 내는 새로운 분업이 필요하지자 다시 새로운 자립적 영역이 열리는데, 이 영역은 일반적으로 생산과 상업에 크게 의존함에도 불구하고 후자의 영역들에 대한 특수한 반작용 능력을 갖고 있습니다. 현대 국가에서 법은 일반적인 경제적 상태에 조응해야 하고 그것의 표현이어야 할 뿐만 아니라 내적 모순으로 말미암아 자기 자신과 충돌하는 일이 없는 자기 완결적인 표현이어야 합니다. 그리고 이를 달성하려다 보면 경제적 관계들의 충실한 반영을 더욱더 파괴하게 됩니다. 그리고 법전이 어떤 계급의 지배를 노골적으로, 완화하지 않고, 왜곡 없이 표현하는 일이 드물면 드물수록 이와 같은 일은 더욱 빈번하게 나타납니다: 이것 자체는 벌써 ‘법 개념’에 반하는 일입니다. 1792~1796년에 혁명적 부르주아지가 보여 주었던 순수하고 수미일관한 법 개념은 벌써 나폴레옹 법전에 와서 여러 측면에서 왜곡되었습니다. 그리고 나폴레옹 법전에 구현된 법 개념조차도 프롤레타리아트 세력의 증대에 따라 날이 갈수록 상당히 약화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나폴레옹 법전이 세계 도처에서 새로운 법전 편찬의 기초를 제공하는 법전이 되는 것을 방해하지 않습니다. 이처럼 ‘법 발전’의 진로를 살펴보면 그 핵심은 대부분, 처음에는 경제적 관계를 법률적 원칙으로 직접 번역하는 데서 나타나는 모순들을 제거하고 조화로운 법 체계를 세우려고 시도하다가 다음에는 이후의 경제적 발전의 영향과 강제력 때문에 이 체계가 끊임없이 다시 파괴되고 새로운 모순 속에 끌려 들어간다는 것입니다(나는 여기서 우선 민법의 경우만을 말하고 있습니다).(선집6,515)
경제적 관계들이 법 원리로서 반영될 적에도 이 반영은 필연적으로 머리로 선 반영입니다: 이 반영은 행위자의 의식에 들어가지 않고 이루어집니다. 법률가는 선험적 명제를 가지고 행동한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그 명제는 경제적 반사일 뿐입니다−이처럼 모든 것이 머리로 서 있습니다. 그리고 아직 인식되지 않는 한에서는 우리가 이데올로기적 견해라고 부르는 것을 구성하는 이러한 전도는 다시 경제적 토대에 반작용을 미치며 일정한^ 한계 안에서 이 토대를 변화시킬 수 있는바, 이는 내게는 자명한 사실로 여겨집니다. 가족의 발전 단계가 동일하다는 것을 전제한다면, 상속권의 기초는 경제적인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컨대 오로지 경제적 원인들 때문에 영국에서는 유언의 절대적 자유가 보장되고 프랑스에서는 유언의 자유가 그 세부 항목에서까지 강력하게 제한된다는 주장을 내놓고 그것을 증명한다는 것은 극히 어려운 일일 것입니다. 그러나 양자 모두 재산의 분배에 영향을 미침으로써 경제에 강력한 반작용을 미치고 있습니다.(선집6,515-516)
공중에 더 높이 떠 있는 이데올로기 영역인 종교, 철학 등등에 대해서 말하자면, 이것은 역사 시기에 의해 발견되고 계승된 선사적 내용−오늘날의 우리들로서는 황당무계한 이야기라고 부를 만한−을 갖고 있습니다. 자연, 인간 자체의 성질, 신, 마력 등등에 대한 이러한 다양한 잘못된 표상들은 대부분 부정적인 경제적 기초만을 갖고 있습니다. 선사시대의 낮은 경제적 발전은 그 보충으로서, 때로는 조건으로서, 심지어 원인으로서 자연에 대한 잘못된 표상들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경제적 욕구가 자연에 대한 인식의 발전에 주요한 원동력이었고 또 시간이 갈수록 더욱더 주요한 원동력이 되고 있었다고 할지라도, 원시시대의 이 모든 황당무계한 이야기들에 대해서 그 경제적 원인을 찾으려 한다면 그것은 현학일 것입니다. 과학의 역사는 이러한 황당무계한 이야기를 점차적으로 제거하는 역사, 혹은 새롭지만 훨씬 덜 불합리한 황당무계한 이야기로 대체하는 역사입니다. 과학에 종사하는 사람들은 분업의 특수한 영역에 속해 있으며, 자신들이 독립적인 영역에서 일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들이 사회적 분업의 내부에서 자립적인 집단을 형성하고 있는 한, 그들의 오류까지 포함하여 그들의 생산은 경제적 발전을 포함한 사회적 발전 전체에 반작용을 미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 자신은 역시 경제적 발전의 지배적 영향 아래 있습니다. 예컨대 이것은 부르주아 시기의 철학을 통해 가장 쉽게 증명될 수 있습니다. 홉스는 최초의 현대적 유물론자(18세기의 의미에서)였으나, 절대 왕정이 유럽 전역에서 전성기를 누리고 있었고 영국에서 인민과의 투쟁에 착수하던 그 시기에 그는 전제주의자였습니다. 로크는 종교적으로도 정치적으로도 1688년의 계급타협의 아들이었습니다. 영국의 이신^론자들과, 그들의 보다 철저한 계승자 프랑스 유물론자들은 진정한 부르주아 철학자들이었습니다−게다가 프랑스인들은 부르주아 혁명의 철학자들이었습니다. 칸트에서 헤겔에 이르는 독일 철학에서 독일의 속물은 어디서나 나타납니다−때로는 긍정적으로, 때로는 부정적으로. 그러나 분업의 특정한 분야로서 각 시대의 철학은, 그 선행자들이 넘겨준 그리고 그들이 출발점으로 삼고 있는 일정한 사상 재료를 전제로서 가지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경제적으로 뒤떨어진 나라가 철학에서는 제1바이얼린을 연주할 수도 있는 것입니다: 18세기에는 프랑스가 영국에 대하여−프랑스인들은 영국 철학에 입각하고 있었습니다−, 이후에는 독일이 이 두 나라에 대하여 그러합니다. 그러나 독일에서나 프랑스에서나 그 시대의 일반적 문예 번영과 마찬가지로 철학도 경제적 도약의 결과였습니다. 이 영역들에 대해서도 경제적 발전이 종국적 우위에 있다는 것은 제게는 틀림없는 사실입니다. 그러나 이 우위는 개별 영역 자체가 지정한 조건들 내부에 존재합니다: 이 위위는 철학에서는 예컨대 선행자들이 제공한 기존의 철학적 재료에 경제적 영향(이 영향은 다시 대부분 정치적 등등의 외피를 쓰고서 비로소 작용합니다)이 작용을 미치는 식으로 나타납니다. 경제는 여기서 아무것도 새로 만들지 않지만, 기존의 사상적 소재에 변화와 발전이 일어나는 양식을 규정합니다. 그리고 경제는 대부분 정치적, 법률적, 도덕적 반사들을 통해서 간접적으로 규정할 뿐입니다. 철학에 가장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는 것은 이러한 반사들입니다.(선집6,516-517)
종교에 대해서는 나는 포이어바흐에 관한 마지막 장에서 가장 필요한 사항을 말해 두었습니다.(선집6,517)
그러므로 만약 바르트가 우리는 경제적 운동의 정치적 반사 등등이 이 운동 자체에 미치는 반작용을 조금도 인정하지 않았다고 생각한다면, 그는 그야말로 풍차와 싸우고 있는 것입니다. 그는 맑스의 브뤼메르 18일을 읽어 봐야 할 것입니다. 여기에서는 당연히 경제적 조건들에 일반적으로 의존하는 한에서 정치적 투쟁과 사건이 맡는 특수한 역할만이 묘사되어 있습니다. 혹은 그는 예컨대 자본의 노동일에 관한 장을 읽어 봐야 할 것입니다. 여기에서는 정치적 행위인 입법이 노동일의 문제에서 결정적 작용을 합^니다. 혹은 부르주아지의 역사에 관한 장(제24장)을 읽어 봐야 할 것입니다. 정치권력이 경제적으로 무력하다면, 우리가 도대체 무엇 때문에 프롤레타리아트의 정치적 독재를 위해서 투쟁하겠습니까? 폭력(즉, 국가 권력)도 역시 하나의 경제적 힘(Potenz)입니다.(선집6,517-518)
그런데 지금 내게는 이 책을 비판할 시간이 없습니다. 먼저 제3권을 출판해야 합니다. 그리고 나는 예를 들면 베른슈타인이 이 책을 훌륭히 비판할 수 있을 것이라고 믿습니다.(선집6,518)
이 신사들 모두에게 결여되어 있는 것은 변증법입니다. 그들은 언제나 여기서는 원인만을, 저기서는 결과만을 봅니다. 이것은 하나의 공허한 추상이라는 것, 현실 세계에서는 그러한 형이상학적인 양극 대립은 오직 위기 시에만 존재한다는 것, 거대한 전 과정은 상호작용−비록 매우 불균등한 힘들의 상호작용이고, 그중에서 경제적 운동이 가장 강력하고 가장 본원적이고 가장 결정적인 힘이라 하더라도−의 형식으로 진행된다는 것, 여기서 절대적인 것은 아무것도 없으며 모든 것이 상대적이라는 것, 이러한 것들을 그들은 전혀 모르고 있습니다. 그들에게는 헤겔은 존재하지 않습니다.(선집6,518)
당내의 소란에 대해서 말하자면, 반대파 신사들이 억지로 저를 끌어들였기 때문에 저로서는 달리 선택의 여지가 없었습니다. 에른스트씨가 저를 대하는 방식은 그를 초등학생으로 보지 않는 이상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뻔뻔스러운 것입니다. 그가 병들어 있고 그래서 살기 위해 글을 써야만 한다는 것이 저로서는 유감스럽습니다. 너무나 강력한 환상을 갖고 있어서 씌어 있는 것을 거꾸로 이해하지 않고는 한 줄도 읽을 수 없는 사람, 그런 사람은 사회주의처럼 비환상적인 영역 이외의 다른 영역에서 그의 상상력을 적용할 수 있습니다. 그런 사람은 소설, 희곡, 예술비평이나 이에 준하는 것들을 써야 합니다. 왜냐하면 그것은 부르주아 교양에만 해를 끼칠 뿐이고 그리하여 우리를 이롭게 하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한다면 그도 아마 많이 성숙해져서 우리 분야에서도 무언가를 할 수 있게 될지 모릅니다. 그러나 나는 다음의 이야기만은 해 두어야겠습니다: 이 반대파가 내놓은 것만큼 미숙하고 황당무계한 이론의 허섭쓰레기를 나는 어디에서도 본 적이 없습^니다. 그리고 엄청난 자만심에 빠져 있는 이 새파란 젊은이들이 당의 전술을 좌지우지하려 하고 있습니다! 빈의 노동자 신문에 실린 베벨의 단 하나의 기고문에서 저는 이 청년들의 허섭쓰레기 전체에서보다 더 많은 것을 배웠습니다. 그런데도 이 청년들은, 상황을 놀라울 정도로 올바르게 파악하고 그것을 단 두 마디로 명료하게 서술하는 이 뛰어난 두뇌의 소유자보다 자신들이 더 가치 있는 존재들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모조리 형편없는 통속 작가들입니다. 그리고 가장 괜찮은 통속 작가조차 이미 잘못된 자입니다.(…)(선집6,518-519)
MEW 37, 488-494.
